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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48)화 (48/300)

“대수롭지 않은 일이 맞으니까요. 저택에서 5호실 하나 죽는다고 해서 무슨 큰일이 난다고.”

“아, 진짜. 사람이 호구처럼 참고 있으니까 아까부터 계속 짜증 나게 하네. 댁도 그 대수롭지 않은 일 좀 당하게 해 줘?”

“할 수 있으면 해 보든지요.”

하지만 역시 두 사람의 평화는 짧았다. 금방 다시 티격태격하기 시작한 올리비아와 유지니아를 보며 마리엔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시끄럽군요, 둘 다. 계속 싸우고 싶으면 나가서 싸워요.”

레이븐도 기다렸다는 듯이 뒤를 이어 짜증을 냈다.

“1호실 누님 말이 맞아. 둘 다 적당히 좀 해. 어쨌거나 다 같이 며칠 동안 한방에서 지내야 하는데, 설마 내내 이럴 거야?”

“그래요. 어차피 독 사건이든 성수 사건이든, 우리들끼리 이렇게 싸워서 해결될 일도 아니잖아요.”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남의 싸움 구경이라지만 나도 슬슬 귀가 따갑던 참이라 한마디 보탰다.

올리비아와 유지니아는 서로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흥, 하고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렸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날 동안 오직 6호실의 길버트만 관찰자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한결같은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렇게 오랫동안 혼자만 조용히 있는 것도 신기하네. 입이 간지럽지도 않나?’

내 시선을 느낀 듯이 길버트가 고개를 돌려서 우연히 눈이 마주쳤으나, 그는 한번 움찔거리며 눈매를 떤 뒤 금방 내게서 시선을 비꼈다.

“레이븐 씨, 그런데 원래 저택에서 이런 일이 자주 생겼어요?”

나는 내 옆에 앉은 레이븐에게 물었다. 이 중에서 나름대로 저택에 오래 있었고, 또 내 질문에 그나마 흔쾌히 답변해 줄 사람은 4호실의 레이븐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어, 원래 이상한 일이 드물게 생기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런데 내가 말을 걸자 그의 현재 상태창에 또 ‘설렘’ 표시가 떠올라서 살짝 찜찜해졌다.

“성수에 문제가 생긴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얼마 전에 5호실한테 있었던 일처럼 음식에 독이 들어간 경우도 종종 있었고…. 생각해 보면, 그것 말고도 별의별 이상한 일이 꽤 생기는 편이지. 7호실도 알다시피 이 저택이 워낙 좀… 그렇잖아?”

레이븐은 그렇게 말하면서 1호실의 마리엔을 살짝 곁눈질해 눈치를 살폈다. 아무래도 별채에서의 일을 생각하는 듯했다.

확실히 저택에서는 평소에도 이상한 일이 많이 생기는 편이었다. 애초에 고용인 규칙에도 초현실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고 말이다.

“그럼 그때마다 범인을 못 잡은 거예요?”

“잡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잡힌 범인은 왜 그런 짓을 했대요?”

“원래 우리 양육자들이나 여기 사는 애들한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좀 있잖아.”

나는 레이븐의 말에 천연덕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그렇죠. 그런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니까요.”

“무지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지. 세상에는 잘난 사람들을 질투하고 남이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인간도 있는 법이니까.”

레이븐이 저렇게 거들먹거리듯이 말하고 다른 양육자들도 은근히 동조하는 표정을 짓는 걸 보니, 양육자는 저택 안에서만 권위가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상당히 대우받는 특수 직업인 모양이다.

“게다가 공허에 아이들을 보내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인간들도 있잖아?”

그 순간 귀가 쫑긋했다.

혹시 스텔라에서 찾고 있는 반동분자도 그런 경우인 걸까?

“그런 사람들이 저택에 섞여 들어오기도 하나 보죠?”

“아무래도 사상적 문제가 있는 사람을 완벽하게 골라내기 어렵다 보니까 가끔 한 명씩 들어와서 분탕질을 치는 수준이지. 뭐, 이번에 5호실 찻잔에 독 넣은 사람처럼 단순히 개인적인 원한인 경우도 있긴 한데.”

“난, 그 고용인, 매질, 안 했다고…!”

레이븐의 말에 올리비아가 이를 꽉 악물고 살기등등하게 읊조렸다. 그 기세가 오죽 살벌하던지, 레이븐도 입을 딱 다물었다.

“그 자칭 범인이라는 놈이 다음 날 죽은 채로 발견된 것도 그렇고, 다른 누가 사주한 게 분명해! 4호실도 왜 제일 중요한 얘기는 빼고 해?”

올리비아가 거칠게 찻잔을 내려놓은 뒤 입매를 싸늘히 비틀었다.

“같은 양육자들끼리도 음습한 짓 하는 거 말이야! 난 내가 있던 예비 양육자 시설에서, 저택에 가면 모로스보다도 다른 양육자들을 제일 먼저 경계하고 조심하라고 배웠거든?”

그 순간 테이블 위의 분위기가 싸해졌다.

모든 양육자의 현재 상태에 ‘긴장’ 혹은 ‘불안’ 표시가 동시에 새로 떠올랐다.

“그래서 난 여기에 있는 사람들 다 안 믿어. 앞에서는 웃으면서 뒤에서 독을 탔을지 알 게 뭐야?”

“5호실은 양육자들을 의심하는 거예요?”

“담당하는 아이가 최종적으로 선발되면 양육자도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으니까, 일찌감치 경쟁자를 줄이고 싶어 하는 게 당연하잖아?”

그러자 유지니아가 피식, 비웃음처럼 느껴지는 웃음을 흘렸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5호실은 고작 그런 것 때문에 양육자가 됐단 말인가요?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수준 떨어지는 이유잖아.’라고 덧붙여진 목소리는 작아서 거의 중얼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테이블 하나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아 있던 양육자들의 귀에 들리기에는 충분한 크기였다.

그 순간 올리비아가 아하하, 하고 소리 내 웃었다.

“너, 아까부터 내가 많이 참은 거 알지?”

그리고 즐거움이라고는 한 톨도 느껴지지 않는, 뜨겁게 이글거리는 올리비아의 눈빛이 유지니아를 꿰뚫었다.

“그래, 그 수준 떨어지는 년한테 수준 떨어지는 짓 한번 당해 봐라.”

쾅! 와장창!

올리비아가 유지니아한테 찻잔을 덥석 잡아 내던졌다. 유지니아도 가만히 있지 않고 그것을 피하며 테이블을 발로 냅다 걷어찼다. 그러자 올리비아는 테이블보를 잡아당겨 그 위에 있던 모든 집기가 허공에 붕 떠오르게 만들었고….

“수준 떨어지는 년한테 오늘 한번 죽어 봐!”

“죽일 수 있으면 죽여 보시든가. 그쪽이 먼저 싸움을 걸었으니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어요.”

테이블 위에 있던 접시와 찻잔들이 바닥으로 떨어져 시끄럽게 깨지는 것과 동시에 두 양육자 간의 난투가 시작되었다.

“어억,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레이븐이 날아드는 물건들을 피해 고개를 숙이며 소리쳤다. 마리엔도 누군가 얼굴로 내던진 접시를 손으로 잡아채며 한숨을 내쉬었다. 길버트의 상황도 썩 다르지 않았다.

“아, 잡았다!”

그러는 동안 나도 테이블 위에 있던 성수 화병이 떨어져서 박살 나기 전에 붙잡는 데 성공했다.

아휴, 아까운 성수 화병 하나 버릴 뻔했네! 저 두 사람도 참, 가뜩이나 남은 성수도 얼마 없는데 상황은 좀 봐 가면서 싸울 것이지.

“저 다녀 왔… 어라?”

그때, 방문이 열리고, 체스휘가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벽난로의 부지깽이와 벽에 걸려 있던 촛대를 하나씩 든 채 설치는 양육자들과 온갖 물건이 날아다니는 방 안의 풍경을 보며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체스휘 씨, 빨리 오셨네요.”

“제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왜 이런 개판이 됐죠?”

체스휘의 눈에도 이게 개판으로 보이는구나.

아무래도 총괄 집사장이 방을 잘 고른 것 같았다. 그나마 여기는 장식용 무기 같은 게 벽에 걸려 있지 않아서 다행이지, 만약 그랬으면 벌써 심각한 유혈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헉!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진정들 하세요, 양육자님들! 방의 물건이 다 망가져도 한동안 새로 들여올 수 없단 말입니다!”

올리비아와 유지니아가 멈춘 것은, 소란을 듣고 온 총괄 집사 슈나우더와 임시 메이드장 메리다가 사색이 되어 애걸복걸한 뒤였다.

***

“다이안 도련님!”

어느 정도 상황이 정리되고 고용인들이 방을 청소할 동안 양육자들은 분위기도 환기시킬 겸 옆방에 있는 아이들을 보러 갔다.

양육자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간식을 먹는 시간이었던 듯했다. 하지만 그들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사이좋게 모여앉은 게 아니라, 죄다 뿔뿔이 흩어져 삭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양육자들을 본 아이들의 얼굴에도 반가움이 떠올랐다.

“다른 애들이랑 사이좋게 잘 지냈어요? 혹시 별일은 없었고요?”

나는 창가 쪽 소파에 앉은 다이안에게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냥 혼자 책 보고 있었어. 조금 전에 다른 애들이 조금 다투긴 했는데… 심한 정도는 아니었고.”

다이안이 힐끔거리는 곳을 확인하니, 누가 다퉜는지 알 만했다. 미뉴엘과 레오가 2차전을 했구먼.

“그런데 좀 전에 옆방이 시끄럽던데 무슨 일 있었어?”

“으음, 양육자들 간에 찐한 친목 도모 시간을 보냈지요.”

“무슨 친목 도모를 어떻게 하면 그런 소리가 나?”

다이안이 미간을 슬며시 좁히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 주기 위해서라도 다 큰 어른 둘이 방 안의 물건들을 때려 부수면서 싸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냥 그런 게 있답니다. 다이안 도련님도 크면 다 알게 될 거예요.”

그래서 그냥 아련한 눈으로 다이안을 보며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다이안은 자신을 애 취급하는 거냐면서 투덜거렸다. 그 모습도 깜찍해서 나는 다이안을 꽉 끌어안고 오구오구 귀여워해 줬다.

그러면서 방 안에 있는 다른 양육자들의 모습을 살폈다.

1호실의 마리엔과 루스카는 오늘도 애틋하게 무어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2호실의 미뉴엘은 또 체스휘에게 그동안의 불만 사항을 열심히 토로하고 있었다. 3호실은 2호실과 반대로 유지니아가 비비를 꾸중하는 듯했는데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풀이 죽은 비비의 모습이 좀 안 돼 보였다.

그리고 4호실은 미뉴엘의 ‘못생겼어!’ 공격을 연타로 받고 넋이 나가 보이는 레오에게 레이븐이 열심히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듯했다. 또 5호실의 올리비아가 이번에도 귀찮아하는 세르쥬를 붙잡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는 광경이 보였다.

“…….”

“…….”

그 와중에 6호실 페어만 아무 말도 안 하고 나란히 앉아만 있었다.

응? 그런데 이상했다.

양육자들이 다 자기 애를 하나씩 보고 있는데 왜 남는 애가 한 명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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