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총괄 집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양육자들 사이에서 썩 좋지 않은 반응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공동생활? 이게 무슨 개뼈다귀 뜯어 먹는 소리야?”
올리비아가 코웃음을 쳤다. 레이븐도 짜증스럽게 얼굴을 구기며 따져 물었다.
“며칠 내내 양육자 일곱 명이서 다 같이 한 방에서 먹고 자면서 생활하기라도 하란 말인가?”
“아, 물론 그건 아닙니다. 아무리 그래도 취침은 여성 양육자분들과 남성 양육자분들이 따로….”
“취침도 저 시꺼먼 놈들하고 같이하라고? 낮에는 양육자들 전부 한 방에 우르르 들어가서 모여 있고? 우리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일단 제 얘기를 마저 들어주십시오.”
다한증이라도 걸렸는지, 총괄 집사는 안쓰러울 정도로 땀을 많이 흘리면서 양육자들에게 저자세로 굽실거렸다.
총괄 집사의 설명은 이랬다.
레드포드 저택은 외부와의 원활한 소통이 어려운 고립된 환경으로, 평소에도 저택의 출입문은 주말에만 열리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성수 또한 지금 당장 조달하는 게 어렵다고 했다.
또한 성수는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상위 세계의 교황청에서 당장 오늘부터 작업에 들어가도 그것을 넉넉한 분량만큼 확보하려면 어차피 며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한동안은 남은 성수로 저택에서 버텨야 하는데, 총괄 집사는 그래서 최소한의 방에만 성수 꽃병을 두고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서 생활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노라고 덧붙였다.
하여 고용인들은 고용인들끼리, 양육자들은 양육자들끼리, 또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며칠 동안만 공동생활을 하도록 양해를 구하고 싶다, 이게 결론이었다.
“남은 성수의 양이 충분치 못해 내린 결정이니, 부디 양육자님들께서도 너른 마음으로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총괄 집사장이 마지막으로 양육자들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의 말대로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설령 불만이 있다고 해도 뭘 어쩌겠는가? 결국은 처음에 반발하던 사람들도 마지못해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정이 그러니 할 수 없군요. 괜히 여기서 힘 빼지 말고 방으로 들어가죠. 그렇지 않아도 복도의 공기가 텁텁해서 불쾌하던 참이니까.”
1호실 마리엔의 말에는 나도 동의했다. 이렇게 꽃병이 전부 사라지고 나니, 평소에는 병풍처럼 큰 존재감이 없던 성수 디퓨저의 중요성을 알 수 있었다.
양육자들의 허락을 얻은 총괄 집사가 우리를 안내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저녁 전까지 함께 지내실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도련님들과는 바로 옆방이니 양육자님들도 안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의 뒤를 따르며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아이들은 지금 다른 방에 먼저 모여 있나요?”
“예, 도련님들 모두… 는 아니고, 대부분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지금 준비한 방에 모여 계십니다.”
총괄 집사가 말한 ‘모두’에서 제외된 아이가 누구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런 좁아터진 방에서 일곱 명이나 같이 부대끼며 지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야?”
총괄 집사에게 안내받은 곳으로 가자마자 미뉴엘이 빽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워, 미뉴엘. 우리도 불만 없는 거 아니거든.”
“맞아, 어차피 잠깐인데 그냥 대충 좀 있자.”
“하여간에 까탈스러워서는.”
다른 소년들이 그런 미뉴엘을 향해 야유했다. 물론 미뉴엘은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난 너희랑 다르게 섬세해서, 나보다 못생기고 지저분한 애들이랑 같이 붙어 있으면 스트레스받는단 말이야!”
“뭐? 누가 너보다 못생기고 지저분하다는 거야?”
“너, 레오. 방금 주스를 마신 컵을 왜 창문 앞에 가져다 놨지? 게다가 방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주스를 먹다가 바닥에 흘리기까지 했지? 그게 다가 아니야. 옷깃에 그 빨간 건 설마 아침에 먹은 잼이 묻은 건가? 이래도 네가 나보다 못생기고 지저분하지 않다고?”
“읏, 그, 그건 실수로…! 으으, 그래! 백번 양보해서 후자는 그렇다 쳐도 내가 왜 너보다 못생겼다는 거야?”
“그걸 정말 몰라서 물어? 저기 가서 거울이나 봐!”
미뉴엘이 참으로 야멸차게도 소리쳤다.
양육자들이 다들 체스휘를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미뉴엘에게 못생겼다고 까인 레오의 담당 양육자, 레이븐이 특히 발끈했다.
“우리 레오가 어디가 어때서!”
체스휘는 ‘으음.’ 하고 낮은 소리를 흘리며 손으로 미간을 눌렀다.
뭐랄까, 미뉴엘은 꼭 자기관리에 엄격해서 틈날 때마다 꼼꼼하게 그루밍하는 걸로도 모자라, 옆에 있는 고양이들의 후줄근한 모습까지 그냥 봐 주지 못하는 깐깐한 고양이 같았다.
총괄 집사가 양육자들에게 안내해 준 방은, 그가 앞서 말했듯이 지금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의 바로 옆이었다. 양육자들은 먼저 아이들이 모인 방으로 향했다.
“미뉴엘…. 오늘도 잠깐 눈을 뗀 사이에 열심히 적을 만들고 있네요.”
“체스휘! 너 왜 이제 와!”
미뉴엘이 체스휘를 보자마자 도끼눈을 떴다.
“내가 생활할 공간이 엉망진창이잖아! 양육자면 최선을 다해 나를 보호해야지!”
“글쎄, 상황을 보니 내가 따로 나설 필요는 없어 보이는데.”
“무능하기는!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게 언제부터 양육자의 자질이 됐어? 당장 새 성수를 만들어 오든가, 아니면 이 방에 있는 떨거지들을 당장 치우란 말이야!”
미뉴엘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떽떽거렸다.
이번에는 체스휘를 향하는 양육자들의 시선에 동정심이 더해졌다.
나도 미뉴엘과 체스휘를 보며 한번 작게 혀를 찬 뒤, 다이안에게 다가갔다.
“다이안 도련님! 성수 때문에 며칠 동안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던데, 다른 아이들하고 같이 있어도 괜찮아요?”
“좀 불편해도 할 수 없지.”
다이안은 제법 의젓하게 말했지만, 그의 시선이 분홍 머리 소년을 무심코 힐끗거린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전 바로 옆 방에 있을 거니까 혹시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 아니, 그냥 여기서 부르세요! 바로 듣고 달려올 테니까요.”
“진짜? 바로 달려올 거야?”
“그럼요! 언제 어디서든 바로 오지요.”
내 대답을 들은 다이안이 귀엽게 헷, 하고 웃었다. 거기에 얻어맞은 내 좌심방과 우심방이 하마터면 하나로 합쳐질 뻔했다.
“여기, 아픈 어린이가 누구입니까…?”
문가에서 다 죽어 가는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왕진 가방을 들고 나타난 건 의사 콘라드였다. 오늘도 그는 긴 갈색 머리를 느슨히 묶고 죽은 동태처럼 빛이 바랜 눈을 반쯤 감고 있었다.
<콘라드(24세)>
- 제40세계 출신(타나토스 세계 의료 협회 소속)
- 레드포드 저택 의사
- 성격: 나태함, 게으름, 즉흥적, 약삭빠름
- 별명: 상처받은 명의
- 현재 상태: 귀찮음, 피곤함
- 특이 사항: 잠재 능력 보유자
- 호감도: ?/?(비활성화)(시스템 로딩 70% 이상부터 열람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