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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42)화 (42/300)

“그럼 전 물러나 보겠습니다, 마리엔 님.”

늦은 저녁.

레드포드 저택의 메이드인 멜로디아는 오늘도 직접 1호실 양육자인 마리엔이 머무는 방을 정리한 뒤 복도로 나섰다.

그녀는 이 레드포드 저택에 들어와 마리엔의 시중을 드는 것을 삶의 보람으로 여기고 있었다.

“멜로디아.”

“샤밀라, 일 다 끝났어?”

“응, 이것만 처리하면 돼.”

그렇게 복도로 나와 걷던 멜로디아는 동료 메이드인 샤밀라와 마주쳤다. 샤밀라는 1호실의 소년인 루스카의 담당 메이드였다.

루스카의 잠자리를 봐 준 뒤 그의 방에 있던 화병을 들고나온 샤밀라의 손목에도 멜로디아와 같은 붉은 리본이 묶여 있었다.

“어차피 나도 오늘 일은 다 끝났으니까 같이 가자.”

“나야 좋지. 아, 오늘도 피곤하다. 우리 빨리 끝내고 방으로 가서 쉬자.”

두 사람은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오늘 사용된 화병 속의 성수와 꽃을 처리하려고 움직였다.

원래 시간이 지나 성수의 효력이 떨어지면 꽃은 시들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샤밀라가 들고 온 화병 속의 꽃은 아직도 싱싱했다. 메이드들이 각별하게 주의해 방에 있는 꽃이 시들기 전에 주기적으로 화병을 갈았기 때문이다.

꽃은 소각장에, 사용한 성수는 폐수 처리장에, 마지막으로 화병은 소독을 위해 지정된 방에 가져다 놓는 것이 저택의 규칙이었다.

멜로디아와 샤밀라도 그것을 순서대로 이행했다.

정해진 규칙을 어겼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저택에서 사라지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참. 그런데 멜로디아 너, 7호실 양육자한테 실수인 척 물 뿌렸다며?”

그런데 마지막으로 화병을 가져다 두러 1층 끝방에 들어갔을 때, 샤밀라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멜로디아는 흠칫 몸을 떨었다.

샤밀라의 말을 듣자, 반사적으로 그때 당시의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멜로디아는 경계심 어린 눈으로 샤밀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로즈마리가 빨래 널다가 봤대. 이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인데 그 많은 눈을 완벽하게 가릴 수 있을 줄 알았어?”

샤밀라가 혀를 차면서 답했다.

멜로디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은 당황스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의 그 일은 멜로디아도 복도를 지나가다가 건물 밖으로 나가는 7호실 양육자 린을 발견하고 충동적으로 저질렀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멜로디아는 곧 자신이 한 일을 합리화하듯이 단호하게 말했다.

“7호실 양육자님이 먼저 마리엔 님 앞에서 입을 함부로 놀렸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너 진짜 간도 크다.”

샤밀라는 들고 있던 화병을 선반 위에 내려놓으면서 멜로디아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러다 7호실 양육자님이 저택에 온 첫날부터 모로스를 없앤 것처럼 너도 죽이려고 하면 어쩌려고?”

그 말은 멜로디아의 안에 숨겨진 불안감을 자극했다.

사실 멜로디아도 7호실 양육자 린의 보복이 두려웠다. 그래서 누군가 청소를 하려고 복도에 가져다 놓은 물을 막상 호기롭게 린에게 끼얹은 것이 무색하게도, 곧바로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물에 젖은 상태로 자신을 올려다보던 린의 말간 얼굴이 얼마나 위협적으로 느껴졌는지 모른다.

하지만 린은 실수였다고 변명하는 멜로디아의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후에 도망치듯이 자리를 떠난 멜로디아를 다시 찾아오지도 않았다.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7호실 양육자는 멜로디아에게 복수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서 멜로디아도 이제는 서서히 마음을 놓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샤밀라가 지나간 일을 또다시 상기하게 만들자, 가슴 밑바닥에 묻어 둔 불안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듯했다.

“뭐, 그래도 내심 괜찮지 않을까 싶긴 한데.”

샤밀라도 멜로디아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아차 싶었는지, 그녀를 위로하는 말을 꺼냈다.

“7호실 양육자님 말이야. 그 악마의 화원에 들어가고도 멀쩡히 돌아왔잖아. 게다가 꽃들이 7호실 양육자님을 피했다고, 2호실 양육자님이 그랬다면서?”

샤밀라의 논리는 명쾌했다.

“그러니까 7호실 양육자님, 사실은 엄청나게 착한 거 아니야?”

멜로디아는 그 말을 듣고 불편한 마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린이 못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 곤란해지는 건 자신이면서, 막상 그녀가 천사 같은 마음씨를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샤밀라가 주장하자 껄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꼭 자신이 착한 사람을 괴롭히는 못된 악역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넌 그 말을 믿어?”

“그럼 안 믿어? 화원 안에서 실종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머리가 회까닥해서 돌지도 않은 상태로 멀쩡히 돌아왔는데?”

샤밀라와 멜로디아는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방의 한쪽에 준비된 깨끗한 성수와 수건으로 손을 닦았다.

“오늘도 복도를 지나갈 때 잠깐 마주쳤는데, 여기 온 양육자답지 않게 천진난만해 보이긴 하더라.”

“…….”

“그러니까 지난번에 마리엔 님 앞에서 그런 것도 악의 없이, 진짜 뭘 몰라서 그런 거였나 보던데.”

멜로디아도 악마의 화원에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 걸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그녀도 화원 안에서 무사히 돌아온 린이 정말 선량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사실 멜로디아가 린에게 양동이의 물을 붓는 그런 간 큰 짓을 한 데에도, 내심 그런 영악한 계산이 숨겨져 있었다.

정말 린이 악마의 화원에 빨아 먹힐 악의도 없을 정도로 착하다면, 고작 이 정도 일로 자신을 벌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7호실 양육자의 담당 메이드인 사라로사가 자신의 주인에 대해 매일 좋은 말을 하고 다니는 것도 그런 생각에 한몫했다.

사라로사는 린이 얼마나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인지 입이 닳도록 말했다. 특히 이번에는 그녀에게 받은 선물을 다른 메이드들에게 자랑하고 다니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멜로디아의 마음은 편해지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밑자락에 깔린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멜로디아, 그런 짓까지 한 건 네가 조금 심했어.”

샤밀라도 방의 문고리를 잡아 돌리며 멜로디아를 타이르듯이 말했다.

“마리엔 님도 7호실 양육자님에게 그렇게 화가 난 것 같진 않으니까, 너도 그만 마음 풀어. 혹시 기회가 되면 7호실 양육자님한테 사과라도 한마디 하고. 나도 네가 일부러 그런 거라고 어디 가서 말 안 할 테니까.”

“뭐…. 봐서 기회가 되면.”

사실 멜로디아도 이대로 린의 눈치만 보고 있기에는 마음이 편하지 못하던 참이라 샤밀라의 말에 못 이긴 척 동의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멜로디아는 사실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고도 발 뻗고 잘 수 있을 만큼 성격이 나쁘지는 못했다.

“그럼 우리도 이제 그만 방에 돌아가서 쉬… 헉!”

그러나 다음 순간, 두 사람은 화병을 보관하는 방의 문을 열자마자 기절할 것처럼 놀라고 말았다.

“7, 7호실 양육자님?”

문 앞에 7호실 양육자 린이 서 있었다. 그녀는 멜로디아와 샤밀라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렇게 놀라요? 둘이 내 얘기라도 하고 있었어요?”

멜로디아는 린의 얘기를 듣고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 그럴 리가요. 여긴 어쩐 일이세요, 7호실 양육자님?”

샤밀라도 당황한 듯이 말을 더듬으며 린에게 물었다.

다행히 린은 그들에게서 수상한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그 유순해 보이는 예쁜 얼굴에 오늘도 천진해 보이는 미소를 지은 채로 답했다.

“지나가다가 말소리가 들려서요. 이 방은 뭘 하는 곳이에요?”

“사용한 화병을 놔두는 곳이에요.”

샤밀라가 린의 질문에 대답할 동안, 멜로디아의 시선은 줄곧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내 멜로디아가 떨리는 눈을 들어 린을 마주했다. 그녀는 굳은 입술을 겨우 달싹여 작은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그, 그런데 린 님. 손에 들고 있는 그건 도대체 왜 가져 오신 건가요?”

“아, 이거요.”

멜로디아의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낀 린이 손에 들고 있던 도끼를 힐끗 내려다봤다.

다음 순간, 다시 멜로디아에게 시선을 옮긴 린이 방긋 웃었다.

“목을 따는 데는 칼보다 도끼가 나으니까요.”

공포에 질려 굳어진 멜로디아에게 곧바로 날카롭게 갈린 도끼가 휘둘러졌다.

퍼억!

***

“허억!”

멜로디아는 경악하며 눈을 떴다.

“뭐, 뭐, 뭐, 뭐야!”

허둥지둥 몸을 일으켜 목을 감쌌으나, 다행히도 그녀의 머리는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잘 붙어 있었다. 멜로디아는 식은땀에 온몸이 흠뻑 젖은 채 황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왜 그래, 멜로디아?”

그때, 어두운 방의 한쪽에서 잠기운 어린 샤밀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샤밀라는 잠을 자다가 멜로디아가 큰 소리를 내서 깨어난 듯했다.

멜로디아는 익숙한 방을 돌아보다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침실…? 그럼 내가 지금 꿈을 꾼 건가?”

“뭐야, 악몽이라도 꿨어? 난 또 무슨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네.”

구시렁거린 샤밀라가 다시 고개를 돌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고 나서 금방 또다시 깊은 잠에 빠진 듯한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멜로디아는 아직도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안도 어린 숨을 내쉬었다.

뭐 이런 재수 없는 꿈을 다 꿨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게 꿈이라서 너무 다행이었다.

어쩌면 꿈은 무의식을 반영한다는 소리가 맞는 것 같았다.

멜로디아는 일전에 7호실 양육자인 린에게 물을 쏟은 이후로 극심한 불안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꿈의 내용을 곱씹는 그녀의 얼굴에 껄끄러운 빛이 떠올랐다.

“으.”

그러다 문득 멜로디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조금씩 현실 감각이 돌아오면서 마음이 놓이자, 식은땀을 흘린 몸이 싸늘하게 식은 것이 느껴졌다.

멜로디아는 조용히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조금 망설여졌으나, 이대로 잠들기는 찜찜했다.

그래서 그녀는 옷가지를 챙겨 들고 조심스럽게 방문을 연 뒤, 살금살금 복도로 나갔다.

불이 전부 꺼져 어두운 복도에는 아주 스산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문득, 고용인이 지켜야 할 레드포드 저택의 규칙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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