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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34)화 (34/300)

금방 문 쪽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누가 밖에 창문을 열어 놨나 봐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누군가 빠르게 식당을 안팎으로 오가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웃었다. 나 스스로도 거기에 어떤 감정이 담긴 건지 알 수 없는, 미묘한 웃음이었다.

잠시 후, 촛대를 든 고용인이 식당으로 들어와 안에도 불을 밝혔다.

“아 씨, 조금 전에는 진짜 귀신 나오는 줄 알았네. 오늘 분위기 왜 이렇게 우중충해?”

레이븐이 투덜거렸다. 그는 얼마 전에 있었던 별채에서의 일에 트라우마라도 남은 것 같았다. 하지만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나와 마리엔의 눈치를 번갈아 살피는 모습이 참 하찮아 보였다.

“가자, 루스카.”

마리엔은 레이븐의 말을 무시한 뒤 루스카를 데리고 다시 문으로 걷기 시작했다. 미뉴엘은 여전히 투덜거리고 있었고, 체스휘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띤 채 나처럼 주변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그때 목이 타는지, 올리비아가 미리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던 식전 차를 마시려고 잔을 들었다.

나는 손등에 턱을 괴고 앉아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오늘따라 올리비아의 드레스는 티 하나 없이 새하얬고, 그런 그녀의 드레스가 붉게 물드는 건 별로 보고 싶지 않았다.

“올리비아 씨, 그거 먹지 마요.”

그래서 말했다.

“뭐?”

다행히 올리비아는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곧바로 입으로 가져가던 찻잔을 멈췄다.

그러고는 날카롭게 눈을 치켜뜬 채 앞에 있는 화병에 찻잔 속의 물을 부었다.

촤악!

생기를 머금고 싱그럽게 피어나 있던 꽃이 단숨에 시들었다.

“어떤 새끼야!”

올리비아가 의자를 넘어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가 봐도 올리비아의 찻잔에는 치명적인 유해물이 들어 있었으니, 저렇게 광분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 중에 범인 있으면 당장 자수해! 입 씻고 있다가 걸리면 내가 대가리 다 터트려 버릴 거니까!”

그런데 생각보다 이 언니, 입이 거치네….

물론 올리비아에게 욕 좀 먹었다고 해서 범인이 나올 리 없었다.

“뭐야, 밥맛 떨어지게. 이런 일 생길 때마다 고용인들을 갈아도 꼭 한 번씩 주기적으로 먹을 걸 가지고 장난치는 것들이 나온단 말이야.”

레이븐은 남의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투덜거렸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 씨.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리는 거랬는데 이게 무슨 짓이야? 체스휘! 앞으로 내가 먹을 음식은 다 네가 먼저 먹어 보도록 해.”

“난 미뉴엘이 내 목숨도 좀 소중히 여겨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미뉴엘 다음으로 유감스러운 듯한 체스휘의 말이 이어지고, 이내 씩씩거리던 올리비아가 문밖으로 소리쳤다.

“거기 누구 없어?!”

금방 메이드가 달려왔다.

“네, 양육자 님! 무슨 일이신가요? 혹시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신….”

“찻잔에 손댔던 사람들 지금 당장 전부 다 불러 와! 조금 전에 식당 불 꺼졌을 때 들어왔던 사람들도 한 명도 빼놓지 말고 데려오도록 해!”

사나운 음성이 식당 안에 울렸다.

메이드는 무언가 큰일이 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사색이 된 얼굴로 급히 식당을 뛰어나갔다.

“난 상관없는 일이니 이만 가보겠어요.”

1호실 양육자 마리엔이 루스카의 손을 잡은 채 유유히 문 쪽으로 걸어갔다.

“아아, 산통 다 깨졌네. 저녁은 굶어야 되나.”

4호실 레이븐도 그 뒤를 따라 덜컹, 의자를 밀며 몸을 일으켰다.

올리비아가 그들을 향해 눈을 번뜩였다.

“아직 범인도 안 잡았는데 어딜 가?”

“지금 5호실이 말한 대로, 찻잔에 손댄 사람들을 조사하다 보면 범인이 나오겠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이 중에서 누가 사주한 일일지도 모르잖아? 아니면 독을 숨겨 왔다가 방금 불이 꺼졌을 때 넣었을 수도 있지.”

“그래서, 지금 내 몸수색이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마리엔의 입술에 싸늘한 미소가 그려졌다. 올리비아의 눈도 날카롭게 빛났다.

레이븐은 여전히 엉거주춤하게 일어난 상태로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니에요, 올리비아 씨.”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긴장감 어린 공기를 깨트리며 식당 안에 울렸다.

“전 눈이 밝은 편인데, 불이 꺼졌을 때 올리비아 씨의 찻잔에 독을 넣은 사람은 없었어요.”

그 말을 한 사람은 이 상황이 따분한 듯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체스휘였다.

그래도 그의 말이 효과가 있기는 했는지, 사람들 사이의 날 선 분위기가 아주 살짝 이완되는 것 같았다.

나는 앞에 식전 과일로 준비된 딸기를 옴뇸뇸 집어 먹으면서 상황을 관망했다.

“7호실은 지금 그게 입에 들어가?!”

그런 나를 발견한 5호실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소리쳤다.

“전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세요. 여기 딸기가 맛집이네요.”

“거기에도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게 넘어가냐고! 진짜 뭘 믿고 간이 저렇게 큰지 모르겠어….”

올리비아는 살짝 허탈해 보였다. 그녀는 기운이 빠진 듯이 더 이상 1호실의 마리엔을 막아서지 않았다.

마리엔은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본 뒤 루스카를 데리고 식당을 나섰다. 레이븐도 지금이 기회라 여겼는지, 그 뒤를 따라 홀랑 사라졌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이, 올리비아가 나를 향해 미사포 같은 머리 장식이 휘날릴 정도로 고개를 급히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7호실은 내 찻잔에 독이 든 걸 어떻게 안 거야?”

“그냥 느낌으로요.”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냄새로요?”

“7호실이 개야?”

잠시 후, 올리비아는 다른 사람들을 모두 식당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고는 식탁 위에 있는 찻잔에 한 번이라도 손을 댄 사람들을 전부 식당에 불러 모은 뒤 밖에서 문을 잠그게 했다.

“아무도 들어오지 마.”

마지막으로 본 올리비아의 얼굴은 야차와 다름없었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아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린 씨, 아무래도 금방 끝나진 않을 것 같은데 우리도 방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체스휘의 말을 듣고 나는 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지나가듯이 확인했다.

“체스휘 씨도 본 거 맞죠?”

그러자 체스휘가 천천히, 눈을 가늘게 접어 웃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답이 되었다.

“린 씨의 손님도 저택에 머무는 중인데 시끄러운 저녁이네요. 앞으로는 조용하면 좋을 텐데.”

식당에 먼저 모였던 다른 호실의 양육자와 아이들이 전부 떠난 뒤 나도 걸음을 옮겼다.

창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 오래 걷지 않아, 복도에서 그렇지 않아도 만나고 싶었던 사람과 마주쳤다.

“왜 그랬어요?”

“뭐가 말이지?”

내가 뭘 묻는 건지 뻔히 알 텐데도 마리엔은 태연히 반문했다. 그런 그녀를 보며 입술을 작게 삐죽였다.

“당연히, 왜 독이 들어 있던 세르쥬의 찻잔을 올리비아 씨의 찻잔과 바꿨는지 궁금해서 물은 거죠.”

마리엔은 루스카를 방에 데려다주고 다시 나온 듯했다. 이곳은 다이안의 방으로 향하는 길목이니, 마리엔도 나를 만나려고 여기로 발길을 돌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에두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아까 식당이 어두워졌을 때 바꿔치기했잖아요.”

분명 체스휘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마리엔은 올리비아의 찻잔에 독을 넣지 않았다. 단지 독이 들어 있던 다른 사람의 찻잔을 올리비아의 앞에 가져다 놓았을 뿐이다.

마리엔이 내 의문에 답했다.

“아이가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베일 너머로 보이는 마리엔의 얼굴만큼이나 건조한 목소리였다.

“그럼 그냥 세르쥬의 찻잔에 독이 있다고 알려 주면 되잖아요. 굳이 그걸 올리비아 씨 먹으라고 앞에 둘 건 뭐예요?”

“이건 각자의 시험이야. 그 시험지를 남이 대신 풀어 줄 수는 없는 거지.”

마리엔의 논리는 참 심플했다.

“하물며 애초에 위험을 무릅쓸 것을 각오하고 이 저택에 들어온 사람이라면, 자기 앞에 놓인 찻잔에 독이 든 것쯤은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러다 죽으면 무능해서 그런 거고요?”

4호실의 양육자인 레이븐과 그리 다르지 않은 생각이었다. 이 정도쯤 되면, 여기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대충 이해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내가 마리엔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나 보다. 그녀는 거기에서 한술 더 떴다.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일찌감치 죽는 게 나아. 하루라도 빨리 더 좋은 다른 양육자가 와서 아이를 지킬 수 있게.”

검은 천에 반쯤 가려진 마리엔의 푸른 눈이 겨울 바다보다도 더 차갑게 빛났다.

“그러니 너도 오늘처럼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네가 맡은 아이나 집중해서 보호해.”

마리엔은 그렇게 경고인지 충고인지 모를 말을 싸늘히 읊조린 후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나는 마리엔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의 인물 정보를 열어 봤다.

<마리엔(29)>

- 제21세계 출신(프란시스 예비 양육자 육성 기관 소속)

- 레드포드 저택 1호실 루스카의 양육자

- 성격: 상냥함, 완고함, 고결함, 솔직함, 엄격함

- 별명: 검은 베일의 순교자

- 현재 상태: 슬픔

- 호감도: ?/?(비활성화)(시스템 로딩 70% 이상부터 열람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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