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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31)화 (31/300)

“하, 정말 기가 막히는군. 이 내가, 이런 하급 땅덩어리에서 이딴 취급을 받다니….”

이를 악문 라파엘이 소리를 죽여 또다시 욕설을 읊조렸다.

내가 봤을 때 라파엘은 누구보다 성스러운 생김새를 하고서, 누구보다 인성이 파탄 난 남자인 것 같았다. 라파엘에 비하면 콘라드도 천사라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나는 라파엘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참, 외모랑 이름이 아깝구나.’

그때 잠깐 무언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하던 라파엘이 말했다.

“…됐다. 손님방에 머물러 주지. 이왕 온 김에 레드포드를 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

“굳이요? 그냥 마구간이 나을 것 같은데.”

“너…!”

“괜찮을 거예요, 린 님. 창문을 활짝 열어 두면 폐소 공포증도 덜할 테니까요. 아… 물론 밤에는 창을 열면 안 되지만요.”

레드포드 저택에서 한밤중에 창문을 열어 두면 안 된다는 규칙을 뒤늦게 떠올린 듯이 사라로사가 우물쭈물 덧붙였다.

“됐으니 방으로 안내나 해.”

라파엘이 더 상대하기도 싫다는 듯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저택으로 향하는 동안 사라로사가 라파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그런데… 혹시 사제님이신가요?”

사라로사도 라파엘의 옷을 보고 성직자라 생각한 게 분명했다. 사라로사를 포함한 저택의 사람들에게는 오늘 나를 보러 오는 손님이 스텔라 소속이라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숫기가 없어 내가 처음 레드포드 저택에 들어왔을 때도 거리감 있는 태도를 보이던 사라로사가 오늘 라파엘의 앞에서는 이상하게 말이 많았다.

라파엘은 인물 정보에 적혀 있던 진짜 신분을 감추고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그렇다.”

“우와… 신기하네요. 제가 살던 곳에서는 성직자를 보기 되게 어렵거든요.”

라파엘을 보는 사라로사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그래도 다행히 저 성격 파탄자에게 품은 감정은 호기심과 선망 이상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경계하고 있다가 안도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휴, 다행이다. 혹시 다람쥐 같은 사라로사가 저 인격 파탄자의 겉가죽에 혹한 걸까 봐 긴장하고 있었네.’

“흥, 그렇겠지. 하급 세계의 수준은 알 만하니.”

라파엘이 사라로사를 비웃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놈이 그런데 아까부터 계속 하급, 하급, 하면서 깔보는 소리를 하더니, 사라로사한테도 그러네. 이번 회차에서는 초면이라 좀 서먹하지만 사라로사는 이래 봬도 나와 게임상으로 nn년 동안이나 같이 메이드 동료로 일하면서 친구를 먹었던 사이였다. 현실에서 그 정도 시간이면 평생 친구라 할 만했다.

그런데 그런 사라로사를 이 인성 파탄자가 무시하니 내 기분이 괜히 좀 꽁기해졌다.

나는 라파엘에게 슬그머니 다가갔다. 내가 접근하자 그는 얼굴을 구기면서 몸을 미세하게 움찔 떨었다.

그런 라파엘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선배님, 조금은 말조심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라파엘은 귀가 간지러운 듯이 어깨를 작게 들썩였다.

“그게 무슨 소리지? 내가 이런 하잘것없는 인간의 눈치라도 보면서 말해야 한다는 건가?”

“지금 본 기관의 명령을 따라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잖아요, 선배님.”

물론 아직 이 세계관 파악을 전부 다 한 건 아니지만, 조금 전에 라파엘과 대화하며 확인한 설정에 맞춰 적당히 아는 척을 해 봤다. 일단 호칭에 대해 뭐라고 안 하는 걸 보니, 이렇게 부르는 게 맞는 모양이군.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가이드가 적당히 번역해서 전달할 텐데.”

라파엘이 나를 무지렁이 보듯이 하며 말했다.

오호라, 또 새로운 설정을 하나 알았다. 시스템, 즉 이 녀석이 가이드라 부르는 것에 그런 기능이 있다고?

“그래도 제 가이드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먹통이 되었는데 선배님 것도 그러지 말란 법이 없죠. 경솔하게 굴다가 혹시 민감한 내용이 이곳 사람들에게 유출되기라도 하면, 본 기관에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건… 일리가 있군.”

내 말에 라파엘이 마지못해 동의하며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런데 린 도체스터, 지금 나더러 경솔하다고 돌려서 비난한 건가?”

“그럴 리가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 앞에서는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선배님.”

나는 오해라는 듯이 한껏 무해한 얼굴로 라파엘을 향해 방긋 웃었다.

또 라파엘이 내 얼굴을 보고 움찔 몸을 떨었다. 하지만 이상한 반응도 잠깐이었을 뿐, 그는 곧 못 볼 걸 본 듯이 얼굴을 구기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참, 선배님. 그리고 추신에 적혀 있던 것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내 말에 라파엘의 고개는 또다시 급하게 내 쪽으로 돌려졌다. 거참, 변덕스러운 주인 때문에 모가지가 고생하는구먼.

“그래…?! 붉은 오렌지를 준비했나? 어디에 있지?”

“제 방에요.”

“대주교님이 좋아하시겠군. 세계 각지의 특산물을 수집하는 걸 즐기시니까.”

아, 그 대주교인지 뭔지한테 주려고 그런 추신을 덧붙인 거였구나? 난 또 하도 의미심장하게 덧붙여 놨길래 무슨 비밀 암호인 줄 알았네.

‘역시 대주교의 딸랑이….’

우아한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던 별명을 떠올리자 눈앞의 남자에게 저절로 차게 식은 눈빛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플레이어의 기본 인물 정보란에는 내가 대주교의 수양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놈이 대주교한테는 딸랑거리면서 나는 무시하고 막 대할 수 있다는 건….

‘대주교와 내가 정상적인 가족인 건 아닌가 보네.’

썩 유쾌하지 않은 이 느낌은 나한테 그다지 낯설지 않았다.

나는 슬쩍 인상을 찌푸린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새 밖에서는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

우르릉! 쾅!

그날,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심상치 않은 폭우였다.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저택의 분위기는 한결 더 음산해졌다.

“안 보이는데…. 아예 속에 깊이 심어진 건가?”

라파엘이 손님용 객실로 안내받은 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 상의의 단추를 풀었다. 그러고 나서 옷을 반쯤 내리고 뒤로 돌아 거울을 확인했다.

하지만 아까 손으로 만져졌던 단단한 물체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라파엘은 이걸 어떻게 교체했다는 걸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어깨 뒤쪽에 손을 대자 다시 딱딱한 게 만져졌다.

“어, 나왔다!”

그런데 손을 대자 반응이 있었다. 보라색의 타원형 보석 같은 것이 내가 만진 살 위로 올라온 것이다.

나는 꽤 겁이 없는 성격이라 손톱으로 이걸 한번 긁어서 빼내려고 해 봤다. 하지만 소용은 없었다. 꼭 이 보석같이 생긴 게 그새 내 피부 밑에 단단히 뿌리라도 내린 것 같았다.

그렇다고 칼로 후벼 파내 보는 건 그리 내키지 않아서 그냥 놔두기로 했다. 일단, 이게 시스템처럼 기능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다시 없어지면 불편할 것 같았으니까.

시스템 로딩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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