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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30)화 (30/300)

뭐야, 혹시 너무 누추해서 들어가기 싫다는 건가?

라파엘의 눈빛은 뭔가 굉장히 찜찜한 것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그 찜찜함의 종류는 더럽거나 하찮은 것을 보는 듯한 것이 아니라, 꺼림칙한 것을 볼 때의 찜찜함에 가까웠다.

결국 라파엘과 나는 응접실 대신 건물 뒤쪽의 후미진 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인적이 드문 곳으로 오자마자 라파엘이 선홍색 입술을 열어 그 고운 목소리로 내뱉은 말은 참으로 신랄하고 거칠었다.

“젠장, 제18세계의 공기는 역시 고약하군. 중앙 세계의 하급 인간들이 벌레들처럼 득시글거리는 곳이라 그런가?”

욕설을 읊조리며 바닥에 침까지 뱉는 라파엘의 얼굴에서는 더 이상 조금 전의 품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라파엘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기대했던 엘프남이 아니란 사실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을 듯했다.

나는 꽤 점수가 높았던 라파엘의 첫인상이 내 안에서 와장창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내 실망스러운 시선을 느꼈는지, 라파엘이 얼굴을 구겼다.

“뭐냐? 그 건방진 눈빛은. 본국에서는 내 눈도 똑바로 못 보던 게, 운 좋게 감시인으로 선출되어 왔다고 해서 그새 기가 산 거냐? 조금 전에도 감히 내 이름을 그 더러운 입으로 소리 내 부르지를 않나, 기강이 해이해져서는. 본국의 대주교님이 아무리 널 예쁘게 봐 주신다고 해도, 그래 봤자 넌 일개 도살꾼에 불과해.”

그런데 그가 나를 노려보며 줄줄이 내뱉은 말을 듣고 ‘어라?’ 싶어졌다. 나도 모르게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이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낯설고 새로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남자가 내게 하는 말의 한마디도 허투루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 정도로 의미심장했다.

“게다가 중앙 세계에 오자마자 도대체 뭘 했기에 가이드의 교신까지 먹통으로 만드는지. 하여간에 멍청한 것. 네가 입고 쓰는 모든 것은 우리 스텔라에서 베푼 것임을 잊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는데도.”

일단 라파엘이 나를 굉장히 깔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를 보는 라파엘의 눈빛에서 조금 전에 하급 인간들이 어쩌고 하면서 침을 뱉을 때와 엇비슷한 멸시가 느껴졌다.

“그래도 위대한 대주교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네게 스페어 가이드의 사용을 허가해 주시기로 결정하셨다. 그러니 앞으로는 잊지 말고 정기적으로 나한테 연락을 취하도록.”

갑자기 산발적인 여러 정보가 머리에 주입되어서 잠깐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나한테 지나치게 가깝게 접근한 라파엘이 내 팔을 잡아당기더니, 상의의 뒷카라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퍼억!

“으억!”

거의 동시에 내 주먹에 맞은 라파엘이 나가떨어졌다.

앗,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손이 나가 버렸네.

바닥에 넘어진 라파엘이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온다는 듯이 나를 올려다봤다.

“이게 무슨… 너 미쳤어?”

“아, 갑자기 훅 들어오시기에 놀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근데 방금 맞을 짓 한 거 맞지 않나?”

“어디서 헛소리를…!”

후두둑! 챙그랑!

라파엘의 분기에 찬 목소리는 옆쪽에서 들려온 소음에 멈춰졌다.

고개를 돌리자 닥터 콘라드가 왕진 가방을 떨어뜨린 채 입을 벌리고 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이 조각상 같은 금욕 냉미남에게 내가 가차 없이 주먹을 날린 걸 보고 경악한 것 같았다. 낡은 가방이 바닥에 부딪힌 충격으로 열리면서, 그 안에 들어 있던 청진기 같은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 전 아무것도 못 봤습니다. 하던 거 계속하십시오.”

하지만 콘라드는 그것들을 후다닥 주워 담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 딱 봐도 귀찮은 일에 엮이고 싶어 하지 않는 게 티 났다.

“이, 귀족들의 개나 다름없는 게 감히 날 쳐?!”

라파엘이 나한테 맞아 나동그라진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인 게 수치스러운지 얼굴을 붉히면서 벌떡 일어났다. 거의 동시에, 조각한 듯이 반듯하게 솟아 있던 그의 코 밑으로 붉은 선이 주르륵 그려졌다.

“앗, 코피.”

“너, 너! 감히 내 몸에 피를 내게 하다니!”

그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내가 너무 정확히 급소를 때렸나 보다. 라파엘이 코를 훑으며 노발대발했다.

“내가 가이드를 교체하느라 그런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어디서 같잖은 핑계를 대면서 하극상을 벌여? 진짜 죽고 싶은 거냐?”

나는 라파엘의 말을 듣고 팔을 움직여 조금 전에 그가 손가락으로 누른 곳을 만졌다. 평소에는 잘 몰랐는데, 어깨 뒤쪽의 어딘가를 눌러 보니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단단한 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눈매를 꿈틀거렸다.

이게 뭐지? 웬 딱딱하고 동그란 물체가 만져지는데.

바로 그때, 눈앞에 익숙한 상태 창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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