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야아악…!
퍼억, 소리와 함께 모로스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가 창문을 깼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로스는 창문 밖으로 넘어가지 않고 창틀에 다시 튕겨 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와, 얼마나 세게 쳤으면 저 몸집의 사람… 아니, 모로스가 저렇게 가뿐하게 날아가지? 역시 사람은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되나 보다. 가장 호리호리하고 힘이 없게 생긴 올리비아가 저런 괴력의 소유자였다니.
건물 밖에서도 사람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깨진 유리가 떨어져서 어쩌면 밖에 있는 사람들이 다쳤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안위를 확인하러 갈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모로스가 조금 전의 타격에도 아무런 충격을 입지 않은 것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올리비아와 세르쥬에게 달려들었기 때문이다.
“이 벌레 같은 게!”
올리비아가 다시 모로스를 공격하려 했지만, 하필 그녀의 지팡이는 조금 전 세게 휘두를 때 벽에 박힌 상태였다.
총을 쏠까 했지만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는 모로스와 올리비아의 동선이 너무 일직선으로 겹쳐 있었다. 잘못했다가는 모로스와 함께 올리비아까지 관통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 7호실…!”
할 수 없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직접 달려갔다. 뒤에서 레이븐이 깜짝 놀란 듯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되찾은 가방에서 미리 챙겨 온 작은 칼을 옷 속에서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44회차가 시작된 첫날에 메이드장 제인의 목을 베면서 느낀 불쾌한 감촉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써졌다.
결국은 작게 혀를 찬 뒤, 깨진 창문에서 불어온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커튼 중 하나를 잡고 뛰었다. 그리고 막 올리비아를 덮치려 하던 모로스의 머리를 뜯어낸 커튼으로 휘감아 뒤로 당겼다. 커튼에 목이 졸린 모로스가 ‘케엑’ 소리 내며 버둥거렸다.
“그거 잘 잡고 있어!”
그러는 동안 벽의 홈에서 지팡이를 빼낸 올리비아가 팔을 휘둘렀다. 그 사이에 무언가를 조작했는지, 지팡이의 밑 부분에서 뾰족한 날붙이가 튀어나왔다.
푹!
곧 그것이 모로스의 심장을 꿰뚫었다.
하얀 커튼 자락이 순식간에 검게 물들고, 곧 바닥에 검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눈매를 찌푸렸다. 힘이 빠져 축 늘어진 탓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모로스에게서 손을 뗐다. 그러자 밑으로 떨어진 커튼 속에서 검은 꽃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쥬쥬! 오, 우리 스위트 슈가! 다친 곳은 없니?”
올리비아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던 아이의 상태를 호들갑스럽게 살폈다. 다행히 아이는 다친 곳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세상 얌전하고 순하게 생긴 세르쥬는 의외로 담력이 큰지, 조금 전에 등장한 모로스의 공격에도 별로 놀라지 않은 눈치였다. 오히려 그는 자신에게 달려와 소란을 떠는 올리비아를 향해 피곤하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지팡이 멋지네요. 처음부터 모로스를 두드려 패지 말고 그냥 그걸로 바로 해치웠으면 더 간단히 끝났을 텐데.”
나는 들고 있던 커튼 귀퉁이를 완전히 바닥에 놓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올리비아가 도끼눈을 뜬 채 나를 돌아보았다.
“무슨 상관이야? 내가 모로스를 패든, 죽이든!”
“5호실, 그냥 7호실한테 고맙다 그래. 방심하고 있다가 당할 뻔한 건 사실이잖아.”
“닥쳐! 도와달라고 한 적 없으니까.”
뒤에서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레이븐이 혀를 찼다.
“들었지? 7호실도 다음엔 끼어들지 마. 죽으면 다 자기가 약해서 그런 건데.”
이 아저씨는 그런 생각으로 팔짱 끼고 보고만 있었나 보구먼.
“그래요, 다음에 4호실이 모로스를 상대하고 있을 때는 그 말 참고할게요.”
“엇.”
그때 밑에서 사람들이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앗, 이러다 내가 메이드 복 입은 거 동네방네 소문 다 나겠네!
“아무튼 그럼 전 먼저 갑니다! 뒷정리는 알아서들 하세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 도착하기 전에 얼른 자리를 떠났다.
“사라로사?”
그런데 방문 앞에 아까 본 사라로사가 와 있었다.
“린 님! 린 님 앞으로 편지가 도착해서 가져왔어요.”
“어, 그래요?”
편지? 내 앞으로 무슨 편지가 왔다는 거지?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라 호기심이 생겨났다.
사라로사는 유독 조심스러운 태도로 검은색 편지 봉투를 곱게 올려 둔 쟁반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 들어 발신인을 확인했다.
제44세계 중앙 비밀 기관 스텔라(stēlla) 사무국
매우 흥미롭게도, 미지의 엘리트 양육자 육성 시설에서 보낸 편지였다.
***
린 도체스터 재원에게.
안녕하세요.
중앙 세계 시간 기준으로 지난 9월 5일 린 도체스터 재원이 레드포드 저택에 무사 입성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만 선출된 재원에게 지급되는 가이드의 교신에 문제가 있는 것을 발견해, 중앙 세계 기준- 오는 15일 16시 귀하의 앞으로 스페어 가이드를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파견인은 ‘라파엘 카드리고’입니다.
레드포드 저택에서 방문을 기다려 주세요.
ps. 오렌지는 붉은색. – 라파엘 카드리고의 전언입니다.
- 제44세계 중앙 비밀 기관 스텔라(stēla) 사무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