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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4)화 (24/300)

나는 검지를 입술에 대고 사라로사에게 애교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들켰다. 이거 사라로사만 알고 있어 줄래요? 저택 메이드 복이 예뻐 보여서 한번 입어 보고 싶었거든요.”

“네, 네, 네! 그러셨군요. 메이드 복도 잘 어울리세요!”

다행히 사라로사는 순진하고 착해서 당장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 리본이 삐뚤어졌네요. 사라로사는 손에 쟁반 들고 있으니까 내가 해 줄게요.”

“앗, 그래요? 가, 감사해요.”

사라로사를 지나친 뒤 나를 알아보는 다른 사람은 더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메이드 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복도에서 마주친 다른 고용인들은 나를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다.

하지만 계단을 오를 때 내 정체를 알아차린 또 다른 목격자가 나타나고 말았다.

“어? 너 설마… 7호실?”

나는 머리 끈을 풀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뭐, 뭐야, 그 차림은?!”

4호실의 양육자 레이븐이 나를 보고 눈과 입을 크게 벌렸다.

나는 깜짝 놀란 눈으로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는 레이븐을 향해 ‘쳇’하고 혀를 차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첫 번째 목격자는 그냥 넘어갔지만 두 번째는 살려 둘 수 없지!’

“4호실 아저씨.”

내가 계단을 밟아 다가가자, 레이븐이 흠칫해서 뒷걸음질 쳤다.

“뭐, 뭐야, 왜 이래?”

“당신, 봐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네요. 그럴 때는 얼른 도망치라고 예비 양육자 교습소에서 알려 주지 않던가요?”

일부러 음산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나에게 밀려난 레이븐이 거의 벽에 처박혔다.

“그게 무슨…! 나한테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별채에서도 느낀 거지만 레이븐은 반사 신경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멍하니 나를 보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뒤 재빨리 옆으로 몸을 피하려 하는 움직임이 신속했다.

쾅!

하지만 내가 그의 다리 사이로 발을 뻗어 벽을 걷어차는 게 더 빨랐다.

내 발에 막혀 졸지에 옴짝달싹 못 하게 된 레이븐이 흔들리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런데 내 반응을 보고 어디로 생각이 튀었는지, 돌연 레이븐이 숨을 훅 들이마셨다. 이어서 조심스럽게 벌려진 그의 입에서 소리 낮춘 심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설마… 지금 그 복장도 그렇고, 너 뭔가 다른 목적을 가지고 비밀리에 저택을 조사하고 있기라도 했던 거냐?”

이 아저씨, 수사물 같은 거 좋아하나?

“그러지 않아도 이상했어! 저택에 들어오자마자 신입이 겁도 없이 다른 양육자들한테 선전포고를 하고, 유령이 나온다고 소문 난 별채에 기어들어 간 것부터 수상했다고! 게다가 이 나를 단숨에 제압한 그 몸놀림도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치면, 유령 나온다고 소문난 별채에 여자 만나러 들어간 이 아저씨는 뭐가 되는 걸까? 게다가 혼자서 제압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센 것도 아니더구먼.

하지만 알아서 오해하는 게 우스워서 그냥 내버려 뒀다.

“그, 그럼… 혹시 양육자들 사이에서 풍문으로 도는 얘기도 사실인 건가? 스텔라에서 배출하는 양육자들은 사실 보통 양육자가 아니라, 저택에 있는 다른 양육자들을 통솔하고 감시하는 목적으로 비밀리에 투입된 최정예 요원이라고 하던데….”

레이븐은 별채에서 유령을 만났을 때처럼 껌딱지처럼 벽에 붙어 서서 나를 경계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혼자 머릿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를 힐끔거리면서 바쁘게 눈을 굴리는 모습이 참으로 하찮아 보였다.

“아저씨. 그런 말 이렇게 소리 내서 해도 되겠어요? 쓸데없이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으면 원래 명줄이 짧아지는 법인 거 몰라요?”

“앗! 저,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했나요?”

짐짓 협박조로 속삭인 내 말에 4호실 레이븐이 펄쩍 뛰었다. 나는 그를 가늠하듯이 가늘게 뜬 눈으로 훑어보면서 일부러 들으란 양 흐음, 하고 소리를 냈다.

“눈치가 제법 나쁘지 않은 것 같긴 한데, 그럼 그쪽이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아시려나? 별채에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아저씨는 벌써 두 번이나 나랑 마주쳐 버렸잖아.”

“헉…. 네! 몸조심, 입조심 하겠습니다.”

레이븐이 급격히 공손해진 모습으로 두 손을 모아쥐고 내 눈치를 보았다.

설마 이런 걸 진짜로 믿다니, 의외로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이런 캐릭터는 또 처음인데 나름대로 신선했다. 이렇게 보니 놀리는 맛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아저씨. 우리 조심하면서 살자.”

나는 레이븐의 양쪽 정강이 사이에 처박았던 발을 내렸다.

그런데 레이븐은 바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다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 나를 따라왔다.

“저기, 그럼 혹시 제 경고를 무시하고 1호실 누님한테 별채의 유령 얘기를 직접 한 것도 다 계획된 거였냐… 요?”

레이븐도 마리엔과 나 사이에 있던 일을 귀동냥으로 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조심스러운 어투로 말을 이었다.

“1호실 누님이 그 얘기를 듣고 채찍을 휘둘렀다고 들었는데…. 혹시 1호실 누님을 시험하려고 그랬다든가…? 허유, 전 7호실 린 님께 깊은 뜻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런 미친 짓을 하다니 정말 또라이라고 생각을… 아, 아니! 지금 이건 제 말실수…! 아이고, 요놈의 주둥이.”

“아, 그러고 보니까, 아저씨. 그거에 대해서는 우리가 또 정산할 게 남은 것 같은데.”

레이븐이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나도 잠깐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제 잘못을 알긴 아는지, 레이븐이 흠칫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뭐, 뭐야, 왜 또 이러시나요?”

“그거 일부러 나 물 먹이려고 그랬던 거 아닌가 싶어서.”

“아아아니, 그게 무슨 말이세요? 제가 왜 그런 짓을?!”

“그쪽이 나보다 먼저 별채의 유령이 이전 1호실 페어와 연관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나 본데, 그러면서 혼자만 입 싹 씻은 건 도대체 뭔데요? 물론 사안이 사안이니까 남한테 자세히 말하기 좀 그랬다고 쳐도, 대충 언질만이라도 해 줄 수 있었던 거 아닌가? 응?”

나는 레이븐을 향해 유감스러운 듯이 말했다.

“도대체가 여기 사람들은 신입을 소중히 여겨 주질 않네요…. 너무 서운해서 자꾸 손이 뒷주머니로 가려고 하잖아.”

별채에서처럼 손을 뒤로 움직여 총을 꺼내는 척하자 레이븐이 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아! 나도 이전 1호실 사람들은 직접 본 게 아니라서 긴가민가했다고! 아니, 했거든요! 그냥 별채에서 본 그, 그 여자가 1호실 누님이랑 닮아서 나중에 혹시 하고 생각만 했을 뿐이라…. 그래서 말을 안 한 거지, 절대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요!”

“아무튼, 내가 진짜 순진하고 마음씨 약한 신입 양육자였으면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았겠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내가 1호실 양육자인 마리엔에게 직접 가서 어그로를 끈 건 레이븐의 탓이 아니었다. 먼저 말했듯이 내가 공격적인 플레이를 즐기는 유저라 그렇지.

게다가 분명 버그가 생기지 않아 게임 기능이 멀쩡했다면, 시스템부터도 나를 마리엔에게 이끌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보라색 방 에피소드의 핵심은 1호실인 모양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제 분명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라 실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면서 레이븐이 이런 민감한 문제를 내게 언급조차 해 주지 않은 건 좀 괘씸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아저씨한테 진짜 화가 나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역시 레이븐은 놀려 주는 맛이 있어서, 지금도 반응을 구경하는 게 꽤 재미있었다.

“어머머…! 4호실 양육자 아니야? 지금 거기서 메이드랑 뭐 하는 거야?”

소리 높인 음성이 뒤에서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앗, 반응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러자 시야에 들어온 건 올리브그린색 머리와 갈색 눈을 가진 날카로운 인상의 미녀. 5호실의 양육자 올리비아였다.

그동안 가끔 다른 양육자들과 저택에서 마주친 적도 있었지만 그들은 거의 나를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래서 올리비아와 이렇게 가까이에서 얼굴을 마주한 건 환영회 이후 처음이었다.

그녀는 오늘도 아주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물론 게임 배경이 중세 서양풍인 만큼 저런 옷을 입어도 이상할 건 없었지만, 이런 저녁에 입기에는 지나치게 호화로운 게 사실이었다.

올리비아의 옆에 있는 하늘색 곱슬머리와 연녹색 눈을 가진 순한 인상의 소년 역시, 오늘도 그녀와 드레스 코드를 맞춘 듯한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앗! 저 옷 좀 예쁘다. 나도 우리 다이안이랑 드레스 코드 맞춰 입고 싶어지네.

“어?! 잠깐, 뭐야…! 설마 그쪽은 7호실?!”

어쩌면 내 얼굴을 못 알아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올리비아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안녕하세요, 5호실 올리비아 씨. 세르쥬와 저녁 산책이라도 나가시나 봐요.”

나는 인사성이 밝은 동방예의지국의 사람이라, 오늘도 나한테 뾰족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올리비아에게 먼저 인사해 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인사에 답해 주는 대신, 나한테 밀쳐져 벽에 붙어 서 있는 레이븐과 나를 번갈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어머어머, 웬일이야! 지금 거기서 둘이 뭐 하는 거야? 더군다나 지금 그 옷차림은…! 하, 4호실이 메이드라면 환장하는 건 알았지만 도대체 둘이 무슨 상황극을 즐기는 거야? 더군다나 방도 아니고 이런 탁 트인 복도에서 애들 교육에 안 좋게!”

“뭐, 아니! 그거 완전 오해거든…!”

“시끄러워! 이 양육자 자격도 없는 인간!”

올리비아가 파렴치하다는 듯한 시선을 보내며 얼른 세르쥬의 눈을 가렸다.

“게다가 4호실,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같이 7호실 양육자 흉볼 때는 언제고 그새 이렇게 둘이 딱 붙어 있는 건지, 정말 기가 막혀서!”

그녀는 얼굴을 종잇장처럼 구기더니, 이내 ‘하!’ 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아이를 데리고 빠른 걸음으로 우리를 지나쳐 갔다.

나와 레이븐은 황당하게 멀어지는 올리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헐…. 오해 완전 짜증 난다. 지금 아저씨랑 나랑 그렇고 그런 거라고 착각한 거죠?”

“내가 더 짜증 나거든?!”

조금 전까지의 조심스럽던 태도도 잊은 듯이 레이븐이 발끈했다.

“그보다 아저씨, 5호실 양육자 언니랑 내 욕 했다고?”

“앗….”

하지만 내가 덧붙인 말에는 켕기는 게 있는지 레이븐이 움찔했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면서 레이븐에게서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4호실이 메이드에 환장하는 건 몰랐네요.”

“아, 그거 진짜 헛소리라고! 5호실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레이븐이 진짜 환장하겠다는 듯이 버럭 소리 질렀다.

“꺄아아아악!”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여자의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려온 건 바로 그때였다. 조금 전에 들었던 익숙한 목소리였다.

레이븐과 나는 한번 시선을 마주한 뒤 비명이 들려온 곳으로 향했다.

“악! 저리 꺼져!”

역시 비명의 주인공은 올리비아였다. 하지만 찢어질 듯한 비명을 듣고 예상한 것과 달리, 그녀는 아주 멀쩡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게 더러운 손을 뻗어! 내 드레스에 새까만 게 묻잖아…!”

퍽! 퍽!

올리비아가 들고 있던 지팡이로 시종을 마구 두드려 패는 게 보였다. 물론 그 시종은 모로스였다. 얼마 전에 본 메이드장 제인처럼 온몸이 검게 변한 시종이 올리비아의 지팡이를 쳐내고 그녀의 뒤에 있던 하늘색 머리칼을 가진 소년, 세르쥬에게 손을 뻗었다.

“어딜 감히!”

올리비아가 도대체 어디에서 그런 힘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강한 힘으로 모로스를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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