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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3)화 (23/300)

저택에서 사용되는 침구, 카펫, 소파 커버, 식탁보, 커튼 등을 주기적으로 소독하는 방.

마스크를 쓴 메이드들이 빨랫줄에 널린 색색의 천들의 먼지를 털어 내고 세탁실에서 직접 조제한 세정액을 뿌렸다.

그러다 어떤 메이드가 감독관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본 뒤 소곤거렸다.

“그 얘기 들었어? 1호실 담당 메이드가 또 한 명 사라졌다더라.”

“설마 또 악마의 화원에 들어간 거야?”

“그렇다나 봐. 다른 1호실 메이드들이 사라진 메이드의 물건들을 전부 소각장에 내놓는 걸 토마스가 봤대.”

다른 메이드들도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며 하나둘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이유가 뭐래?”

“루스카 님의 약을 바꿔치기했다던데. 본인은 고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는데… 화원에 들어갔다가 아예 돌아오지도 못한 걸 보면 뻔하지. 아, 그쪽에 있는 세정액 좀 더 줄래?”

“여기요.”

“고마워.”

그러던 중에 낯선 목소리를 가진 메이드가 자연스럽게 끼어들었다. 세정액을 건네받은 메이드가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침구를 정리하는 메이드의 손길이 굉장히 능숙해서 이내 의문 어린 시선을 거두었다.

“그런데 1호실 메이드 중에 악마의 화원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너 저택에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았나 보구나. 가끔 있어. 마리엔 님은 루스카 님에게 생기는 조그마한 위험 요소도 용납하지 않으시거든.”

메이드들은 악마의 화원에 대한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조금 더 수군거렸다.

들어가면 정기를 쪽쪽 빨아 먹히는 저주받은 정원이라느니, 그 안에 들어갔다가 멀쩡히 돌아온 사람은 본 적이 없다느니, 하면서.

그 외에, 저택에 있는 다른 높으신 분들 앞에서는 절대 하지 못할 이야기도 많이 오고 갔다. 원래 사람이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동료들 앞에서는 마음의 빗장도 약해져 입이 가벼워지는 법이었다.

“그런데, 마리엔 님이 엄격한 걸 알면서 왜 1호실에 가고 싶어 하는 메이드들이 많은 거야? 루스카 도련님은… 몸이 건강한 것도 아니잖아. 그건 꽤 큰 핸디캡인데.”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육체의 건강함이 평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니까…. 순위식 때도 1호실이 꾸준히 높은 점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 훌륭한 ■■이 되기 위한 기준이 꼭 한 가지인 건 아니지.”

“게다가 솔직히… 좀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도 있어. 난 마리엔 님하고 루스카 님을 보면, 전에 1호실에 있던 분들 몫까지 두 배로 응원하고 싶어지더라.”

“아아, 맞아. 난 나중에 들어와서 이전 페어들을 직접 보지는 못했는데, 1년 이상 일한 고용인들은 마리엔 님하고 루스카 님을 보면 예전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던데.”

“그런데 이전 1호실 페어 분들은 왜 그렇게 된 거래? 다들 거기에 대해서는 쉬쉬하던데, 역시 모로스인가? 마리엔 님을 보면, 그 동생인 이전 양육자분도 강했을 것 같은데 기습에는 어쩔 수 없었던 건가….”

“제가 어디서 언뜻 들은 바로는, 모로스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던데요.”

“헉, 그럼 뭔데?”

그때 옆에서 카펫을 뒤집던 메이드가 끼어들었다.

“너도 그 소문 들은 거구나? 사실은 이전 1호실 페어가 저택에 있던 누군가에게 살해됐다는 얘기.”

“어…. 사고 같은 게 아니고요? 실수로 발코니 난간이나 계단에서 떨어졌다거나, 뭐, 그런 종류의.”

“내가 듣기로는 예전 1호실 도련님은 살해당했고, 양육자님은 자살한 거랬어.”

“아니야, 난 마리네즈 님이 살해당한 거라고 들었는데.”

“뭐야, 어느 쪽이든 한 명은 살해당한 게 맞다는 거야?”

“아무튼 그 생각 하면 1호실 페어도 그렇지만, 2호실 양육자님도 좀 안됐지 뭐야.”

“응? 2호실 양육자라면 체스휘 님 말이야? 왜?”

“왜긴, 이전 1호실 양육자인 마리네즈 님하고 연인이었으니까.”

“헙!”

메이드들 사이에서 크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 한 명은 유독 많이 놀란 듯했다.

그 숨 넘어가는 소리를 들은 어떤 메이드가 알 만하다는 듯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너도 2호실 양육자님한테 관심 있었구나? 뭐, 난 그런 스타일 취향이 아니긴 한데 의외로 좋아하는 애들도 종종 있더라.”

얘기는 또 잠깐 다른 길로 새서, 남자 양육자들의 품평회가 시작되었다.

2호실의 체스휘는 자기 양육 대상인 미뉴엘에게 너무 꽉 잡혀 사는 게 보여서 별로라는 의견과, 반대로 아이들의 말을 잘 따라 주는 모습이 가정적이고 자상하게 보여서 좋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난 6호실 길버트 님 같은 우직한 스타일이 좋아.”

“좀 음침해 보이지 않아? 지나칠 정도로 말이 없잖아. 혹시 사귀기라도 하면 재미없어서 어떻게 만나려고?”

“그럼 넌 4호실 같은 말 많은 스타일이 좋단 말이야?”

“누가 그렇대? 뭐, 생긴 건 좀 괜찮지만. 스텔라 출신이라고도 하고. 음, 아냐…. 아니다. 그래도 그 정도로 혀가 가벼운 건 또 별로긴 해. 너무 우쭐거리기도 하고.”

“난 차라리 양육자들 중에서 한 명만 골라야 한다면 마리엔 님과 유지니아 님을 선택하겠어.”

“야, 그런데 이거 지금 의미 있는 대화야? 왜 갑자기 다들 진지해지고 그래.”

메이드들이 얼굴을 맞대고 깔깔거리면서 웃었다.

“어차피 별세계 사람들인데 우리끼리 이 정도 얘기는 할 수도 있지 뭘 그래?”

“그런데 마리네즈 님이랑 체스휘 님 얘기가 진짜면 좀 의외다. 마리엔 님을 보면 동생도 성격이 강했을 것 같은데, 체스휘 님은 좀… 뭔가 허술하고 어설픈 느낌이 있잖아?”

“그러니까 상극끼리 잘 맞았던 거 아닐까?”

그러다 줄에 걸어 둔 천들을 뒤집느라 잠깐 메이드들의 말소리가 그쳤다.

잠시 후, 또 다른 메이드가 이불을 털면서 말했다.

“흠, 리리 말대로 의외로 성격이 상반된 사람에게 더 끌리는 걸 수도 있어. 너희, 메이드 중에 세라 알지? 세라가 체스휘 님한테 제대로 관심 있는 것 같았는데.”

“헉, 진짜?”

“어휴, 말도 마. 솔직히 세라가 예쁘긴 진짜 예쁘잖아? 그런데 체스휘 님한테 무슨 수를 써도 절대 안 넘어온다더라. 그래서 걔 지금 바짝 독이 올랐어.”

“뭐야, 뭐야. 설마… 아직 마리네즈 님을 못 잊어서 세라를 안 받아주는 건가?”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우와…. 순정남이네.”

“그런 거 왠지 슬프면서도 멋지다.”

그러고 나서 잠깐 숙연해져 있던 메이드들이 화제를 바꿔 다시 저택 안에서 최근에 있었던 다른 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보라색 별채에서 요즘은 밤에 어린애 발소리가 들리지 않더라, 메이드장 제인이 죽고 임시로 직책을 맡은 메리다 님이 일을 너무 깐깐하게 시켜서 힘들더라.

또 쇼핑 귀신인 몇 호실의 양육자는 어제 사람을 불러서 옷을 산더미처럼 사들였고, 몇 호실의 아이는 오늘 승마 시간에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쳤고, 등등등….

“거기, 그만 떠들고 일들 하지?”

“헉!”

그때 감독관이 돌아왔다. 메이드들은 서둘러 부지런히 일하는 시늉을 하며 입을 닫았다.

메이드들이 다시 한가해진 건 휴식 시간이 되어서였다.

“아우, 덥다. 그래도 이상하게 오늘은 되게 빨리 끝났네?”

“그러게. 언니도 이리 와서 물 좀 마셔.”

“응? 그런데 방금까지 한 명 더 있지 않았어?”

“어, 진짜? 혼자만 말 안 트고 존댓말 쓰던 애 어디 갔지?”

답답하던 마스크를 벗은 메이드들이 의아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이미 린은 자리를 떠난 뒤였다.

***

‘역시 메이드 네트워크 최고!’

나는 복도로 나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메이드들의 정보통에 엄지를 척 치켜올렸다.

‘이래서 그동안 내가 메이드 직업에 알 박았던 건데.’

물론 내 덕질 대상인 다이안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도 있었지만, 일단 메이드는 이 수상한 저택을 누구보다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또 가장 쉽게 정보를 캐낼 수 있는, 단언컨대 게임 속 최고의 직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메이드도 아닌데 뻐꾸기 짓 해서 미안합니다, 언니들! 그 대신 은혜 갚은 우렁이처럼 엄청 열심히 일하고 나왔으니까 이걸로 쌤쌤합시다.’

이래 봬도 게임 속에서 메이드 생활을 꽤 길게 해 봐서, 나는 여느 베테랑 메이드 못지않게 일을 잘했다. 그러니 결국 오늘은 상부상조, 메이드 언니들과 나 모두 꿩 먹고 알 먹고 한 셈이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네.”

나는 방금 듣고 온 내용을 떠올렸다.

물론 악마의 화원에 들어갔던 1호실 마리엔의 메이드가 정말 사라졌다는 것과, 그 악마의 화원이 정기를 빨아먹느니 어쩌느니 하는 내용도 흥미롭긴 했다. 하지만 내 귀를 제일 쫑긋하게 만드는 건 따로 있었다.

이전 1호실 사람들이 어쩌면 살해당한 걸지도 모른다니. 설마 ‘저택의 살인마를 찾아라.’ 같은 에피소드라도 추가된 건가?

게다가 체스휘가 이전 1호실 양육자와 연인 사이였다는 이야기도 놀라웠다.

혹시 그래서 그의 앞에서 이전 1호실 얘기를 했을 때 살짝 묘한 분위기였던 걸까?

게다가 그 예쁘기로 유명한 메이드 세라가 대놓고 관심을 표현하는데도 절대 안 넘어갔다니….

그럼 역시 얼마 전에 체스휘의 방에서는 내가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오해할 뻔한 게 맞았나 보다.

그래도 아주 살짝은 쌍방일지도 모른다고 여전히 의심하고 있었는데 미안합니다, 체스휘 씨…!

그러고 보니 그때도 메이드가 체스휘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었지, 체스휘는 메이드한테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었다. 게다가 4호실 양육자인 레이븐도 체스휘가 그동안 여자를 만나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고 했고 말이다.

‘그럼… 혹시 체스휘의 설정값은 슬픈 과거가 있는 캐릭터인 걸까?’

내 귀가 얇아서 그런가. 갑자기 저런 얘기를 듣고 나니 체스휘가 아픈 상처를 가진 사연 있는 남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끔 사람이 세상만사가 다 따분한 듯이 멍하니 있던 것도 사실은 우수에 젖은 모습이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어? 린 님?!”

그런데 마침 쟁반을 든 채 혼자서 복도를 지나가던 사라로사가 나를 발견했다.

“아, 아니, 어떻게 된 거예요? 왜 그런 차림을 하시고…!”

그녀는 자신과 같은 옷을 입은 나를 보고 놀라서 두 눈을 흔들었다.

아이쿠, 비품실에서 여분의 메이드 복을 꺼내 입었는데 들켜 버렸다.

사라로사에게 저택에 대한 정보를 얻기에는 그녀도 신입 메이드이고, 또 다른 고용인들과는 아직 이런 깊은 대화를 나눌 정도로 호감도를 쌓지 못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종종 이 옷을 입을 일이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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