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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8)화 (18/300)

“뭐야? 귀찮게 아침부터 뭐 하러 찾아왔어?”

“미뉴엘, 아팠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아주 멀쩡해 보이네.”

미뉴엘은 어제 그렇게 시름시름 앓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지나치게 생생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언제 침대 신세를 졌냐는 듯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단발을 앞머리 한 올까지 흐트러짐 없게 빗고, 옷도 예쁘게 차려입은 미뉴엘이 나와 다이안을 보고 눈을 흘겼다.

다이안은 그런 미뉴엘을 보고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의구심 어린 눈으로 나를 슬쩍 돌아보는 걸 봐서는, 혹시 내가 뭘 잘못 알고 있던 게 아닌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다이안의 뒷머리를 오구오구 쓰다듬으며 웃었다.

“어젯밤 처방제 효과가 좋았나 보네요. 이제 괜찮은 것 같아서 다행이다, 미뉴엘.”

거봐, 별채에서 가져온 꽃을 머리맡에 두고 자면 말끔히 나을 거라니까. 내가 이래 봬도 이 에피소드만 43번을 깨 봤다고!

‘물론 이만큼이나 게임을 플레이할 때까지 엔딩을 못 봤다는 의미기도 하지….’

아무튼 꽃이 효과 있던 건 사실이니, 어젯밤까지 반응이 영 미지근하던 체스휘에게 의기양양하게 그것 보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미뉴엘의 방에 없었다.

“그런데 이 꽃은 또 뭐야?”

“아프다고 해서 병문안 꽃을 가져왔어. 뭐… 지금 보니 필요 없는 것 같긴 하지만.”

그런데 어째서인지 다이안이 내민 꽃을 보는 미뉴엘의 눈빛이 썩 곱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이까지 뿌드득 가는 것 같았다.

“이건… 보라색이잖아! 난! 보라색 꽃이! 아주 싫어…!”

꽃다발 속에 보라색 꽃은 한 송이밖에 없는데요….

하지만 미뉴엘의 눈에는 그것만 보이는 모양이었다.

참, 누가 보면 보라색 꽃에 알레르기라도 있는 줄 알겠구나. 혹시 별채에 있는 보라색 방에 갔다가 이런 꼴을 당하게 돼서, 그걸 연상하게 하는 상황이나 물건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건가?

문제는 사정을 모르는 다이안이 미뉴엘의 말에 발끈했다는 점이었다.

“기껏 신경 써서 가져왔더니 왜 또 성질이야? 받기 싫으면 말아! 이 꽃다발은 내가 가지면 되니까.”

에구구, 이러다 또 싸우는 거 아냐?

나는 중재의 필요성을 느끼고 끼어들었다. 그런데 뭐라고 말을 돌리지?

“미뉴엘, 그런데 체스휘 씨는?”

체스휘, 너로 정했다!

“어젯밤에 봤을 때도 바로 너한테 간다고 하던데, 혹시 밤늦게까지 간병하다가 쉬러 간 거야?”

마침 체스휘의 부재가 궁금하던 참이기도 했다. 물론 꼭 육성 대상과 양육자가 같이 아침 식사를 해야 하는 건 아니라, 그가 지금 여기에 없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제까지도 나름대로 살뜰히 미뉴엘을 간호하던 체스휘를 봐서 그런지, 지금의 빈자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내 말을 들은 다이안이 두 눈을 부릅뜬 채 나를 휙 돌아봤다.

“린, 어젯밤에 미뉴엘 양육자랑 둘이 만났어?”

“아, 미뉴엘 때문에요. 잠깐 만났다가 금방 헤어졌어요.”

“미뉴엘 때문에 둘이 왜 만나?”

“제가 미뉴엘을 금방 낫게 할 방법을 알고 있어서 알려 주려고요.”

다이안의 눈 사이즈가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렇구나…. 난 또 벌써 그 양육자랑 그렇게 친해졌나 했네.”

앗, 설마 또 질투한 건가?

이번 44회차의 우리 개복치 고양이는 유독 불안감과 질투심이 많은 것 같았으니 그럴 수도 있었다. 나는 다이안이 또 쓸데없는 걸 신경 쓰기 전에 말해 줬다.

“걱정 마세요! 앞으로 제가 누구랑 친해져도 도련님이 계속 1순위일 거거든요.”

“뭐야, 애도 아니고 난 그런 거 상관 안 하거든? 누가 그런 거, 그런 거 궁금하대?”

내가 정곡을 찔렀는지 다이안의 귀가 빨개진 게 보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새침하게 시치미를 뗐다.

아구, 귀여워! 누구 애가 이렇게 귀여운지 몰라.

오늘도 영상 저장을 할 수 없는 상황을 한탄하며 대신 다이안의 머리를 두 손으로 마구 쓰담쓰담해 줬다. 다이안 성격에 싫으면 충분히 내 손을 뿌리치거나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는 뺨을 붉힌 채 그냥 얌전히 있었다.

“이것들이 지금 내 방에서 뭐 하는 짓이야? 그런 건 나가서 해!”

그렇게 오순도순한 우리를 황당하다는 듯이 지켜보던 미뉴엘이 이내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그리고 체스휘는 나도 몰라! 자기 방에 있겠지, 뭐. 내가 알 바야?”

미뉴엘은 도대체 조금 전부터 뭐에 그렇게 심통이 났는지, 야멸차게 콧방귀를 뀌면서 덧붙였다. 다이안도 미뉴엘을 따라 흥, 하고 콧바람을 내쉬었다.

“미뉴엘 네 양육자, 너한테 감기라도 옮은 거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에잇, 아침부터 귀찮게. 둘 다 나가! 난 이제 오전 일정을 시작할 시간이니까.”

급기야 미뉴엘은 신경질을 부리며 우리를 쫓아냈다.

쾅!

“아이쿠.”

뒤에서 큰 소리를 내며 닫힌 문을 쳐다보면서 혀를 찼다.

하여간 노란 아기 고양이 성격 참.

“나 참, 또 뭐 때문에 저렇게 성질이람?”

다이안도 문밖으로 내쳐질 때 떨어뜨린 꽃다발을 다시 주우며 씩씩거렸다.

“기껏 린이 신경 써서 와 줬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앗, 지금 저를 걱정해 주신 거예요? 제가 마음 상했을까 봐?”

감동해서 말하자, 무심코 투덜거리던 다이안이 갑자기 뚝 말을 멈췄다.

“…아무튼! 꽃다발도 나름대로 생각해서 가져왔더니 화만 내고.”

그는 귀엽게도 티 나게 말을 돌렸다.

“같은 ■■ 후보니 나쁘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미뉴엘 성격은 참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응?

그런데 이어지는 다이안의 말을 듣다가 나는 이상한 위화감을 느꼈다. 중간에 웬 이상한 말이 들린 것 같은데?

“도련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뭐가?”

“방금 무슨 후보라고 말하셨잖아요.”

“■■ 후보 말이야? 그게 왜?”

다이안이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얼굴이 천연했으나, 분명 내 귀에는 또다시 그의 말 중 일부가 이상하게 들렸다. 노이즈가 낀 것 같기도 하고, 발음이 뭉개진 것 같기도 한 희한한 어감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내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다.

그때 마침 댕댕, 하고 종이 울리는 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아, 나도 오전 일정 시작해야 해. 빨리 방으로 가자.”

나는 일단 다이안을 방으로 데려다주고 다시 내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심각한 기분으로 아까 읽다가 덮은 매뉴얼 북을 다시 펼쳤다.

***

“저기 봐. 다이안 쟤, 또 혼자 무슨 생각을 저렇게 하고 있대?”

“놔둬. 표정 보니까 또 그 예쁜 양육자 누나 생각하고 있겠지.”

“아, 부럽다. 나도 예쁜 누나랑 페어 하고 싶어. 솔직히 레이븐은 너무 아저씨 같아.”

햇빛 따스한 오후 시간.

아이들이 소곤거리면서 킥킥 웃는 소리가 잠깐 먼 곳으로 달아나 있던 다이안의 정신을 다시 현실로 불러들였다.

다이안은 퍼뜩 상황을 깨닫고 서둘러 표정을 가다듬었다. 그런 뒤 눈에 힘을 주고 주변에 있던 아이들을 괜히 흘겨봤다.

“시끄러워. 난 그냥 햇빛이 좋아서 창밖을 보고 있었을 뿐이야.”

“흐응, 그렇겠지. 그래서 우리한테 의견도 물어보면서 양육자 누나한테 줄 선물까지 따로 고심하고 있는 거겠지.”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저 다 안다는 듯한 얼굴로 다이안을 보며 히죽거릴 뿐이었다. 다이안은 그들이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눈을 부라렸다.

“다들 조용히 해. 곧 선생님 오실 시간이니까.”

레드포드 저택의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개인 가정 교사를 두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른 방의 아이들과 같이 수업을 듣는 경우도 드물게 있었다.

얼마 전 다친 발목은 린이 직접 치료해 준 뒤 생각보다 빨리 나았다. 그래서 벌써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이렇게 방 밖에서 듣는 수업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레드포드 저택의 의사인 콘라드가 치료했을 때도 이렇게 빠른 효과를 본 적이 없었는데….

‘린은 천재인 게 분명해.’

다이안은 다소 팔불출적인 생각을 하며 혼자 또 입술을 씰룩거렸다.

하지만 그러다가 그는 또 문득 정신을 차리고는 큼큼 괜히 혼자서 헛기침을 하며 누가 보지도 않는데 표정 관리를 했다.

린을 생각할 때마다 자꾸 멍청하게 헤벌쭉 웃게 되어서 곤란했다.

린이 저택에 온 지 아직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가끔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그녀를 알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린이 그를 친밀하게 대해 주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짧지 않은 혼자만의 저택 생활 끝에 처음으로 생긴 양육자가 린이라니. 다이안은 자신이 너무 큰 행운을 거머쥔 게 아닌지 두려울 지경이었다.

사실 레드포드 저택에서 열두 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양육자 한번 가져 본 적 없는 건 다이안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인내를 갖고 기다렸지만 시간이 갈수록 좌절하는 마음만 커졌다. 이제 올해 생일이 지나기 전까지 양육자를 구하지 못하면, 다이안은 무언가를 제대로 해 보기도 전에 부적합자로 판명 나 레드포드 저택을 떠나야 했다.

린이 나타난 건, 다이안이 내심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을 때였다.

“다이안 도련님. 이번에 7호실에 양육자가 배정될 예정입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꿈을 꾸는 줄 알았다.

예비 양육자 중에 그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인가? 너무 설레고 떨려서, 린이 올 때까지 무슨 정신으로 시간을 보냈는지도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넌 양육자가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모르는구나? 양육자한테는 말이야, 초장부터 세게 나가는 게 중요해.”

다이안에게 양육자가 생긴다는 소문을 듣고, 그동안 그에게 큰 관심이 없던 다른 아이들까지 호기심을 느끼는 눈치였다.

“순순히 말을 잘 듣고 착한 모습을 보이잖아? 그럼 약한 줄 알고 금방 다른 놈한테 눈을 돌린다니까. 그러니까 무조건 강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레드포드의 아이들 중 예비 양육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축에 속하는 미뉴엘은 다이안을 찾아와 잘난 척하며 조언이랍시고 저런 말을 떠들어 대기까지 했다. 다이안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지만, 아주 조금은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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