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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4)화 (14/300)

“그럼. 정당방위니까.”

“정당방위라니! 내가 뭘 했다고!”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나는 친절한 플레이어였기 때문에, 살짝 설정값이 더러운 게임 데이터 덩어리에게 친절하게 그의 죄목을 설명해 주었다.

“이 으슥한 밤중에 혼자 외출하는 여자를 살금살금 몰래 뒤쫓아 왔잖아. 게다가 그걸로 끝이 아니라 허락도 없이 대뜸 접근해서 손을 뻗었지. 그걸 좋은 의도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원래 이런 짓을 하려면 총알 맞을 각오도 해야 하는 건데 몰랐어?”

원래 가상현실 게임에서 NPC가 플레이어에게 불법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버그가 생긴 데다, 이놈은 검증되지 않은 신 캐릭터이니 혹시 모를 일이었다.

음, 그리고….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기분 나쁘잖아. 왜 쥐새끼처럼 한밤중에 사람 뒤를 밟고 그러는데? 가뜩이나 이제부터 집중해서 해야 할 일도 있어서 상대해 줄 시간도 없는데, 귀찮게.

“아니!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다 오해거든? 너, 넌 내가 무슨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난 그런 사람 아니….”

“쉿. 조용히 해. 귀 따가워.”

“헉! 지, 진정…. 일단 진정해! 봐! 나 손 들었어! 손 들었다고!”

바로 앞에서 흥분한 목소리로 꽥꽥거리는 게 거슬려서 총을 좀 더 바짝 들이밀었더니 4호실이 급격히 동공을 흔들며 얼어붙었다.

“일단 내 얘기 먼저 들어 봐. 그건 내려놓고! 지금 날 쏘면 너도 여기에 더 발 못 붙이고 있을 텐데, 그런 건 싫을 것 아니야! 이대로 인생 종 치고 싶어?”

진짜 겁먹었나 보네. 과연 구현도가 뛰어난 게임답게, 총을 앞에 두고 벌벌 떠는 남자의 모습은 진짜 사람처럼 생동감 넘쳤다. 아무튼, 이렇게 간이 작은 놈이 왜 사람 뒤는 쫓아와서 귀찮게 구는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어 혀를 찼다.

나는 식은땀이 맺힌 남자의 얼굴을 보면서 흐음, 낮게 소리를 냈다.

“너 하나 쐈다고 내 인생 종 칠 이유가 어디 있어? 막말로 여기 있는 사람들이 네 복수를 대신 해 주겠다고 한꺼번에 다 덤벼도 나한테 문제 될 일은 없을걸.”

그러면서 일부러 보란 듯이 거들먹거리는 미소를 입가에 그린 뒤 속삭였다.

“너도 엘리트 출신이면 내 실력 알 것 아니야.”

먼저 나한테 짜증 나는 짓을 한 4호실을 골리고 싶은 마음 반, 또 지금 내 앞에서 잔뜩 졸아붙은 이 남자가 진짜 엘리트 코스를 밟았는지 궁금해서 떠보고 싶은 마음 반으로 꺼낸 말이었다.

이 정도 협박과 은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굴자, 남자가 말문이 막힌 듯이 입을 뻐끔거렸다.

“그, 당연히 나도 알지만….”

알긴 뭘 알아? 눈동자 흔들리는 거 어떡할 건데.

꼭 살인마를 앞에 둔 것처럼 얼굴이 더 희게 질린 걸 보니, 그는 내 말에 더 겁을 먹은 것 같았다.

그러다 그가 목소리를 작게 죽인 채 내게 소곤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너 진짜 엘리트 출신이야?”

이 와중에도 이런 게 궁금하다니 생각보다는 담이 큰 건지, 아니면 눈치가 없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물어봐? 그러는 너는 진짜 엘리트 출신 맞아?”

“다, 당연하지! 거기에서 네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까 물어본 거야!”

아닌 것 같은데…. 얘 지금 구라 치는 것 같은데?

왠지 촉이 왔지만 아직은 더 떠볼 게 있을 것 같아서 지금 당장 4호실을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그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었다.

“그보다 여긴 왜 쫓아왔는지나 말해. 진짜 머리에 구멍 나기 싫으면.”

“그건….”

내 말에 4호실 남자가 망설였다. 그런데 대답을 기다리면서 나도 모르게 손을 조금 느슨히 했나 보다.

갑자기 그가 나를 곁눈질하던 눈을 번뜩였다. 조금 전까지 졸아붙었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빠르게 몸을 움직인 남자가 총을 든 내 손목을 확 움켜쥐었다. 나를 제압하려 드는 남자의 힘은 제법 강했다. 하지만 ‘호오, 여기서 반격을 시도하다니 이게 신 캐릭터의 신선함인가?’라는 생각만 들었을 뿐 긴장감은 생기지 않았다.

빡!

“악!”

팔을 비틀어 4호실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그의 턱을 팔꿈치로 갈겼다. 그러고 나서 휘청거리는 남자의 엉덩이를 뻥 걷어찼다.

호리호리한 몸뚱어리가 앞에 있던 별채의 문을 밀치고 우당탕 굴러 넘어졌다.

“4호실 아저씨.”

“헉!”

“목숨이 여러 개인가 봐요.”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4호실에게 다가갔다. 조용한 건물 안에 또각또각 작은 발소리가 울렸다.

사색이 된 채 고개를 돌린 4호실이 황급히 변명했다.

“아니! 나는 그냥 무기만 좀 치우려고…!”

그는 뭐가 그렇게 억울한지, 혼자서 횡설수설하다가 급기야 욕설을 내뱉었다.

“젠장, 내가 왜…! 연애 한 번 하려다가 이게 무슨 꼴이야!”

“연애?”

나는 코웃음을 쳤다.

“뭐야, 설마 너랑 나랑? 아저씨 김칫국 마시는 취미도 있어요? 그게 무슨 더러운 소리야?”

“아니, 너 말고…!”

어이가 없다는 듯한 내 반응에 4호실이 발끈했다.

“아 씨, 내 취향을 뭘로 보고! 너같이 난폭한 계집애는 나도 한 수레를 퍼다 줘도 싫거든! 그게 아니라 난 오늘 세라한테 12시에 여기서 만나자는 편지를 받고….”

“쉿. 그만 떠들어.”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쓸데없이 점점 커져서 조용히 경고했다.

“실내에서는 정숙, 몰라?”

쾅!

내 뒤에 있던 문이 갑자기 닫힌 건 바로 그때였다.

4호실 남자가 나동그라지면서 열렸던 별채의 문이 혼자서 다시 밀폐되었다. 내 등 뒤로 쏟아져 들어오던 달빛도 닫힌 문에 막혀 사라졌다.

“뭐, 뭐야?”

갑작스러운 큰 소음에 4호실은 깜짝 놀란 듯했다. 하지만 나는 상황을 깨닫고 탄식했다.

“아, 맞다. 둘이 같이 들어와 버렸네.”

“뭐? 그게 무슨….”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4호실 남자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나는 약간의 짜증과 난처함을 느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친분도 없는 남자와 단둘이 갇힌 별채는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기분 탓인지, 건물 안의 공기가 아까보다 약간 서늘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 앞에 넘어져 있는 남자를 다시 내려다보며 손에 들고 있던 총으로 머리를 긁었다. 탐탁지 않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었다.

4호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뭐야, 도대체 뭔데?”

그러니까, 지금 너랑 나랑 던전 입장을 해 버렸다고.

***

4호실 남자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어리둥절해 보였다.

철컥, 철컥!

바로 그때, 조금 전에 큰 소음을 내며 혼자 닫힌 문에서 갑자기 수상쩍은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억지로 문고리를 돌리는 듯한 소리였다.

똑똑!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고, 곧바로 문 옆에 있는 창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으악! 씨, 깜짝이야! 저게 뭐야…!”

간이 작은 4호실이 놀라서 펄쩍 뛰었다. 그는 어두운 창밖에 웬 허연 얼굴이 둥실 떠 있는 걸 발견하고 더 소스라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달빛을 머금은 얼굴이 익숙하다는 걸 바로 깨닫고 창가로 다가갔다.

“체스휘 씨.”

지금은 어둠 속에 있어 금발이라기보다는 연갈색으로 보이는 체스휘의 머리칼이 바람에 작게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가벼운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창밖의 체스휘가 나하고 내 뒤에 있는 4호실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체스휘도 뭔가를 깨달았는지 손을 들어 창문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걸쇠가 단단히 잠긴 창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체스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의 입이 다시 움직였다.

‘창-문-걸-쇠.’

이번에는 천천히 한 음절씩 떼서 말해 입 모양을 읽어내는 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창문이 잠긴 건 걸쇠 탓이 아니었다. 나도 체스휘에게 상황을 설명하려고 창문을 여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문이랑 창문, 다 잠겼어요.”

입을 천천히 뻐끔거리면서 손짓 발짓을 더하자 체스휘도 대충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지금은 못 여니까 잠깐만,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체스휘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천천히 뒤로 물러나 팔짱을 끼고 섰다.

그의 시선이 다시 나와 4호실 남자를 차례로 스쳤다. 체스휘의 눈썹이 비대칭으로 휘었다. 그는 이 상황이 좀 어이없는 듯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만나기로 한 사람이 건물 안에서 문을 다 걸어 잠그고 있으면 나 같아도 그럴 테니까.

“허, 뭐야. 신참, 설마 2호실이랑 여기서 몰래 만나기로 했어?”

바닥에 붙어 있던 4호실이 헛웃음을 터트린 건 그때였다.

“아니,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눈이 맞아? 와, 그렇게 안 봤는데 저 녀석 꽤 손이 빠르네.”

그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창밖의 체스휘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넘어질 때 벗겨진 신발 한 짝을 찾아 까치발로 깡총거리며 뛰어가는 꼴이 꼭 약 먹은 곱등이 같았다. 볼록 솟아오른 그의 정수리 머리가 더듬이처럼 흔들렸다.

시계 앞으로 날아간 신발을 찾아 발을 구겨 넣은 4호실이 이번엔 날 보면서 썩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아닌가? 지금까지 2호실이 여자 만난다는 소리는 못 들었으니까… 새로 온 신참 손이 빠르다고 해야 하나? 나 참, 의외로 저 샌님 같은 안경잡이 녀석의 인기가 제법….”

“총 든 사람 앞에서 너무 입조심을 안 하네. 우리 조금 전 일도 아직 정산 안 했는데요, 아저씨.”

“왁, 씨! 아, 알았어! 입 다물게. 일단 그 흉물스러운 건 좀 치우고…!”

반은 위협, 반은 조롱 삼아 총을 겨누자 4호실이 또 졸아서 시계에 찰싹 달라붙었다.

참, 볼수록 허접해서 상대할 마음이 안 들었다. 그래서 일단은 그냥 빨리 필요한 물건만 구해서 별채의 문을 열 생각으로 4호실 남자를 두고 1층 로비를 떠나 혼자 걸음을 옮겼다.

“어이없네, 진짜. 내가 이 오밤중에 왜 변태랑 둘이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뭐? 누가 변태야…! 그리고 나야말로 너처럼 난폭한 여자랑 같이 있기 싫거든!”

“그럼 가요, 아저씨. 안 말려. 누가 따라오라고 했나?”

“아아니, 그래도 어떻게 이 어두컴컴한 곳을 여자 혼자 보내나….”

조용한 실내에 4호실 남자와 내가 번갈아 투덜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와 나는 단둘이 으슥한 별채의 복도를 걷고 있었다.

“젠장. 갑자기 별채가 밀폐되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귀신 나오는 별채라는 소문이 진짜인 것도 아닐 텐데….”

사실은 앞으로 할 일에 4호실 남자가 도움이 하나도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1층에 혼자 두고 움직이려고 했다. 하지만 시곗바늘 소리만 울리는 어두운 곳에 혼자만 있기는 무서웠는지, 부득불 나를 쫓아오더라.

하긴, 어떻게든 문을 열려고 혼자 오만 난리를 다 치고 창문까지 깨려고 했는데도 실패했으면 이상함을 느끼긴 했겠지. 창밖에 있는 체스휘가 그 모습을 얼마나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도록 하겠다.

아무튼 그래서 4호실은 지금 이 상황에 대해 뭔가를 아는 듯한 나를 따라오기로 한 것 같았다.

“하, 난 그냥 세라랑 데이트하러 온 것뿐인데 갑자기 이런 봉변이나 당하고…. 오늘 일진이 왜 이러냐, 진짜.”

그런데 아까부터 지방 방송 심각하네. 4호실은 지금 상황이 굉장히 억울한 듯이 한탄 어린 목소리로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세라가 여기서 만나자고 쪽지를 보냈다고 했지?

“세라라면 아까 복도에서 그쪽을 되게 멸시하는 눈으로 보던 그 예쁜 메이드 언니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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