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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10)화 (10/300)

다이안은 숟가락 속의 콩을 용맹하게 압살한 사람답지 않게, 입에 있는 걸 삼키지도 못하고 불쌍한 토끼처럼 파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게다가 날 향한 초점 흐린 눈도 약간 촉촉했다.

나는 순간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헷갈려서 일단 그를 칭찬했다.

“와아…. 콩도 잘 드시다니 정말 대단하시네요.”

하지만 왠지 다이안이 무리하는 것 같아서 바로 덧붙였다.

“그런데 드시기 싫으면 그냥 남겨도 돼요.”

다이안은 여전히 삼키지 못한 콩을 입에 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으니, 나 다 잘 머거. 편식 가틍 거… 안 해.”

아무래도 그는 조금 전에 자신이 콩을 골라내는 모습을 보고 내가 인상을 썼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당연히 오해였다.

‘안 그런 척하면서 자꾸 내 눈치를 보네.’

꼭 자신이 편식하는 것을 내가 싫어할까 봐 두렵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첫날부터 느꼈는데 다이안은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몰래 노심초사하는 것 같았다.

나는 가까스로 콩을 삼킨 뒤 서둘러 물을 들이켜는 다이안을 가만히 보다가 입술을 뗐다.

“그렇구나. 그럼 제 콩도 드릴 테니까 편식 안 하는 도련님이 대신 먹어 주실래요?”

“뭐어…?!”

내 말에 다이안이 하늘이 두 쪽 나기라도 한 듯이 충격받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그걸 모르는 척하며 능청스럽게 계속 말을 이었다.

“전 어른이지만 아직도 콩이 엄청 싫거든요. 어릴 때 억지로 먹으려고 했더니 더 싫어졌어요.”

“린은… 어른인데도 편식을 해?”

“그럼요! 오히려 어른이 애들보다 더 가리는 게 많은 경우도 있는걸요?”

“그래…?”

다이안이 멈칫해서 내 눈치를 살폈다.

꼭 내 말이 진짜인지 확인하려는 듯해서, 나는 옛 기억을 떠올리듯이 아련하게 눈을 흐렸다.

“저도 어릴 때 콩 한 알에 눈물 한 방울씩 뚝뚝 흘릴 정도로 괴로워하면서 억지로 먹었더니 그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지. 그때 무리해서 그렇게 안 먹었으면 지금은 그냥 그럭저럭 먹을 만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는데….”

애석하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다이안의 눈이 흔들렸다. 나는 골라낸 콩만 남은 다이안의 그릇과 내 그릇을 옆으로 홀랑 치우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울 정도로 싫으면 그냥 안 먹는 게 낫다고 봐요. 그러다 즐거워야 할 식사 시간 자체가 싫어지면 안 되잖아요.”

내 접시에는 콩뿐만이 아니라 데친 시금치도 남겨져 있었다. 그러니 방금 한 말은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내 편식이 다이안보다 심한 셈이었다.

앞에서 다이안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무슨 말을 할 듯 말 듯, 입을 움찔거리던 다이안이 이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린은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싫어하지 않을 거야?”

이번에 패치된 44회차는 도대체 왜 이런 설정을 추가했을까? 원래 우리 애기는 콩을 못 먹는다고 우울해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었는데.

그나저나 오늘도 햇빛을 받은 우리 애기의 찹쌀떡 같은 뺨이 참 하얗고 말랑해 보이는구나.

나는 충동을 못 참고 다이안의 젖살이 통통한 볼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답했다.

“당연하죠. 애초에 전 도련님이 완벽한 사람이라 좋아한 게 아닌데요.”

귀여워서 좋아했지!

“그리고 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요.”

다이안은 어쩐 일로 내가 제 뺨을 쿡쿡 찌르는데도 얌전했다. 그는 진짜냐고 묻듯이 장화 신은 고양이 같은 눈망울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악, 오늘도 너무 귀여워! 이 심장 폭행범 같으니.

나는 다이안의 어깨를 부여잡고 더 열성적으로 말했다.

“제가 장담하는데, 전 도련님이 숨만 쉬어도 좋아할 거예요! 그러니까 안심하셔도 좋아요.”

덕후의 마음을 우습게 보지 마라. 지금도 이미지 저장을 연타로 누르고 싶은 심정이니까!

‘젠장, 망할 시스템 오류.’

하지만 여전히 말을 안 듣는 시스템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이 주옥같은 장면들을 그냥 날릴 수밖에 없었다.

“린은… 애착형 양육자야?”

그때 다이안이 내게 조용히 물었다.

바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내가 뭐라고 반문하기 전에 다이안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다음 순간 벌어진 일에 나는 그대로 승천할 뻔했다.

“고마워, 린.”

갑자기 개냥이가 되어 나한테 덥석 안긴 다이안이 고개를 들어 나를 향해 천사처럼 예쁘게 생긋 웃었다.

“린이 내 양육자라 정말 기뻐.”

그때만큼은 정말 진심으로 ‘망할 시스템 오류 만세!’라고 외치고 싶었다.

***

‘좋은 삶이었다…!’

다이안의 방을 빠져나온 린은 누가 봐도 행복하고 즐거워 보이는 모습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복도를 걸었다.

그녀의 동그란 얼굴에는 오늘따라 미소가 만연했다. 꼭 춤을 추는 듯한 경쾌한 걸음걸이가 이어질 때마다 긴 머리칼과 치맛자락이 꽃송이처럼 나풀거렸다.

“안녕하세요, 셀린 씨! 좋은 오전이네요!”

“아, 예에. 좋은 오전입니다, 아가씨….”

“도레아 씨도 안녕하세요! 오늘도 눈부신 아침이에요!”

“네, 린 님. 눈부신 아침이네요.”

누가 봐도 기분이 좋은 듯한 린이 생글거리며 복도를 활보하자 여기저기서 시선이 날아왔다. 저택에 들어온 지 이제 고작 사흘밖에 안 된 린이 벌써 이름까지 다 외운 듯이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을 때는 다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린은 자신을 향한 시선에 익숙한 건지, 아니면 그런 데 무딘 건지, 여전한 행복 오로라를 흩뿌리며 날개라도 단 듯이 발걸음도 가볍게 계단을 빙그르르 돌아 내려갔다.

“어머, 티샤! 여기 리본이 살짝 삐뚤어졌어요.”

“가,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오늘 리본 색깔이 티샤의 멋진 에버그린 눈동자 색하고 정말 잘 어울리네요.”

“어머….”

그렇게 기분이 최고조를 찍은 상태에서 린은 자신도 모르는 새 고용인들의 호감도를 차곡차곡 축적하고 있었다.

‘양육자 직업 최고!’

린은 처음으로 버그에 먹힌 44회차 게임 시스템을 찬양했다.

그동안 그녀는 육성 캐릭터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밀착 덕질하기에 가장 딱이라는 생각에 메이드 직업을 주로 선택했다. 하지만 이제 보니 메이드도 양육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세상에, 우리 아기 고양이가 먼저 날 끌어안고 생긋 웃다니! 거기다 ‘린이 내 양육자라 정말 기뻐’라고? 그런 비슷한 말조차 지난 43회차 플레이 동안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는데!

‘크흑, 혹시 이게 신규 업데이트 버전이라면 대환영!’

로그아웃 버그가 생긴 건 심각한 오류였지만 그마저도 어느 정도는 용납이 될 정도였다.

린은 감격에 젖어 팔랑거리며 복도의 모퉁이를 돌았다.

“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 맑고 화창한 오전 시간에 어울리지 않는 누군가의 절절한 목소리가 고막을 찌른 건 바로 그때였다.

‘앗.’

린은 얼른 뒷걸음질 쳐 다시 모퉁이 뒤쪽의 사각지대에 들어섰다. 만약 앞에 있는 누군가가 그녀를 목격했다 해도, 보랏빛 잔상만 아주 살짝 인식했을 정도로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마, 마리엔 님. 절대 고의가 아니었어요! 정말이에요.”

귓가에 익숙한 이름이 들어왔다. 조금 전 린이 막 모퉁이를 돌자마자 시야에 담았던 얼굴도 낯설지 않았다.

호기심이 떠오른 린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녀는 다시 빼꼼 고개를 기울여 왼쪽으로 꺾어진 복도를 힐끗 살펴봤다.

역시 그곳에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거듭 사죄의 말을 읊는 메이드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앞에 서늘한 기운을 흘리며 서 있는 건 오늘도 검은 옷을 입은 붉은 머리의 여인이었다.

1호실 루스카의 양육자인 마리엔이 분명했다.

“앞으로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테니 부디….”

철썩!

무릎 꿇은 메이드의 입에서 다시 한번 애원하는 말이 내뱉어진 순간, 마리엔이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내려쳤다.

‘어우, 아프겠다.’

그 손길이 꽤나 야멸차서 린은 저도 모르게 혀를 찼다. 물론 어차피 전부 다 게임 데이터일 뿐이니 진짜 통증은 없을 터였지만.

“실수?”

처음 만난 순간부터 알아봤지만 1호실의 양육자 마리엔은 역시 마라맛 캐릭터인 것 같았다. 지금도 메이드를 잡는 모습이 오금이 저리도록 서슬 퍼렜다.

“네까짓 것 때문에 내 소중한 아이가 죽을 뻔했는데, 감히 실수이니 용서해 달라는 말을 입에 담아? 네 용기가 가상하긴 하구나.”

“주, 죽을 뻔한 것까지는 아니….”

“그걸 판가름할 자격을 내가 네게 주었던가?”

메이드가 뭐라고 변명하려 했으나 마리엔은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상황을 처음부터 보지 못한 린으로서는 도대체 무슨 일로 저들이 아침 댓바람부터 이런 흉흉한 광경을 만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지금 들은 대화를 통해, 저 메이드가 마리엔이 각별히 싸고도는 1호실의 루스카에게 좋지 않은 무언가를 한 것 같다고 짐작할 뿐이었다.

“루스카가 매일 먹어야 할 약을 일부러 바꿔치기해 놓고 어디서 가증스럽게 실수를 운운해?”

“일부러 바꿔치기하다니요! 절대 아니에요.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귀하신 분의 물건을 착오로 바꿔 가져다 드린 건 사실이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고의가 아니라 실수였어요! 믿어 주세요!”

그때, 마리엔에게 날카로운 힐책을 들은 메이드가 황급히 해명했다.

‘아하. 루스카의 약이 원인이었군.’

비로소 린은 일의 전말을 파악했다.

문득 지난번에 복도에서 주웠던 루스카의 약통 생각이 났다. 1호실의 루스카는 게임의 캐릭터 설정에 ‘병약’ 키워드가 있었다. 그래서 양육자인 마리엔도 그 부분에 민감하다는 설정인 것 같았다.

‘혹시 지난번에 내 손이 닿은 약통을 바로 버린 것도 그래서인가?’

어쩌면 마리엔이 자신에게만 까칠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네가 정말 아무 죄 없이 무고하다면.”

그래도 메이드에게 기회를 줄 생각인지, 마리엔이 그녀의 턱을 손으로 들어 올렸다. 검은 베일 너머로도 마리엔의 푸른 눈이 얼음 호수처럼 차갑게 빛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음 순간 메이드에게 허리를 숙여 속삭인 마리엔의 말도 냉담했다.

“지금 바로 악마의 화원에 들어가서 내일 아침까지 버텨 봐라. 제정신으로 멀쩡히 살아 돌아오면 용서해 주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메이드가 헉 숨을 들이켰다. 그녀는 질겁한 얼굴로 서둘러 마리엔의 다리를 붙들었다.

“아, 안 돼요! 마리엔 님, 그건, 그것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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