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8)화 (8/300)

“나, 나한테서 난 거 아니야.”

“알아요. 방금 그 소리는 다이안 냥냥이한테서 난 소리예요.”

“다이안 냥…! 이상하게 부르지 마!”

정말 이 게임에서는 로그아웃과 영상 저장 기능 복구가 시급했다. 다이안과 나는 아웅다웅하면서 테이블에 앉았다.

“참, 이거 보세요. 짜잔! 올 때 가져다 달라고 하셨던 게 이거 맞죠?”

내가 가져온 또 다른 접시의 뚜껑을 열자 다이안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가 원하던 건 보라색 꽃으로 장식된 케이크였다. 표면은 분홍색 시럽으로 코팅되어 먹음직스러운 윤기가 흘렀는데, 다이안 말로는 환영회 때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간식이라고 했다.

“내 말대로 두 개 받아 왔어?”

“네, 원하시면 도련님이 두 개 다 드셔도 돼요.”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다이안의 앞으로 케이크 접시를 두 개 다 밀어 줬다.

누나는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식당에서 타락한 어른들을 봐서 기분이 저조했는데, 역시 우리 귀염둥이가 최고야.

“아냐, 내가 두 개 다 먹으려는 게 아니라….”

그런데 이유가 뭘까? 다이안은 두 개의 케이크를 앞에 두고 안절부절못했다.

“이건… 그러니까 원래 이렇게 해야 하는 건데….”

양손을 꼼지락거리던 다이안이 접시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렇게 해서 두 개의 케이크를 가까이에 붙이니…. 완성된 건 하트 모양이었다.

흐억!

“귀, 귀여워…!”

나도 모르게 턱을 받치고 있던 손을 내려 테이블을 내려쳤다.

뭐야, 뭐야, 뭐야! 그동안 메이드로 일할 때도 몰랐는데, 우리 주방장 톰 아저씨, 이런 귀여운 센스가 있었어?

“새로운 양육자가 왔을 때만 이렇게 만들어 주거든. 그런데 난 지금까지 짝이 없어서….”

다이안이 고개를 숙이고 웅얼거렸다. 그는 조금 부끄러운 것 같기도 했고, 기쁜 것 같기도 했다.

“아구, 그래서 저랑 같이 두 개 받아서 하트 만들고 싶어써용?”

“그,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어떤 기분인지….”

“그래서 어떤 기분인데요?”

나는 히죽 웃으며 다이안의 볼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대답은 굳이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이안의 얼굴이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나쁘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고집스럽게 말하는 게 다이안다웠다.

“나도 똑같아요.”

난 키득 웃으면서 다이안을 끌어안았다.

“지금 되게 좋아요.”

왠지 테이블에 혼자 외롭게 앉아 다른 사람들을 부럽게 바라보았을 다이안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상상되었다. 그래서 그를 더 꽉 안아 주었다.

아마도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을 아이는 내 품에서 몇 번 작은 숨을 색색 내쉬다가 잠시 후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나를 마주 안았다.

“…나도.”

곧 아주 조그만 목소리가 깃털처럼 내 귓가에 내려앉았다.

“나도 좋아.”

44번의 만남들 중 분명 내 안에서 가장 큰 의미로 남을 첫날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03. 개복치 도련님을 지켜라

레드포드 저택의 아침은 일찍 시작되었다.

고용인들은 오전 5시에 복도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깨어나, 가벼운 세안과 몸단장 후 곧바로 예배당으로 향했다.

“자, 오늘도 아침 기도를 합시다.”

아침 식사 전에 이렇게 고용인들이 다 같이 예배당에 모여 기도하는 건, 레드포드 저택에서 매일 있는 일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아침 기도를 마치고 나면 한 명씩 차례로 앞으로 나가, 은 대야에 준비된 성수를 이마에 뿌렸다.

하지만 맑고 투명한 아침 햇살이 드리운 이 예배당의 분위기는 요즘 들어 아주 음침했다. 모두가 긴장감과 의심 그리고 경계심이 깃든 눈으로 옆 사람을 힐끗거렸다.

사흘 전, 새로 온 7호실의 양육자가 메이드장을 죽였을 때부터.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일로 메이드장이 ‘모로스’였다는 사실을 레드포드 저택의 모두가 알게 되었을 때부터였다.

그동안 메이드장 제인은 고용인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는 사람답게 단 한 번도 기도 시간에 빠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누구도 그녀가 모로스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은, 이렇게 매일 성수로 몸을 정화해도 정체를 숨기고 있는 모로스를 색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시사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까지 함께 어울리던 동료가 사실은 괴물일 수도 있단 생각에 긴장된 마음을 놓지 못했다.

“7호실에 새로 온 양육자 봤어?”

오늘도 삭막했던 아침 기도를 마치고, 고용인들은 그들의 전용 식당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그래도 메이드장의 죽음 이후 사흘이 지난 오늘은 사람들도 다시 어울리며 조금씩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 생겼으면서 엘리트 출신일지도 모른다니. 어쩐지 첫날부터 모로스를 죽인 것부터가 심상치 않았어….”

역시 이번에 새로 온 7호실의 양육자에 대해 속닥거리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어젯밤에도 별채에서 어린애 뛰는 소리가 들렸다며? 완전 소름 끼쳐.”

그 외에 밤마다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별채의 보라색 방 이야기.

“우리 내기한 건 어떻게 하지? 이번에 7호실 양육자까지 왔으니 선택한 거 바꿀 사람 있어?”

“내 생각에는 그래도 역시 1호실의 루스카 도련님이나 2호실의 미뉴엘 도련님이 제일 가능성이….”

또 레드포드 저택의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고용인들의 입에서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앗, 사라로사! 안녕!”

그 모든 소음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주근깨투성이에 갈색 머리칼을 가진 메이드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흠칫했다. 고개를 돌리자 숙소의 옆방을 사용하는 베티가 보였다. 그녀는 다른 메이드들과 수다를 떨다가 사라로사를 발견하고 이리 오라는 듯이 손짓했다. 사라로사는 주춤거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아, 안녕, 베티.”

“사라로사. 너, 7호실 담당이지?”

불과 일주일 전에 레드포드 저택에 들어온 신입 메이드 사라로사는 아직 저택의 분위기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료 메이드들이 이렇게 먼저 말을 걸어 주는 건 그녀에게 고마운 일이었다.

“난 내내 조리실에 있어서 못 봤는데 새로 온 양육자 어때? 까다롭진 않아?”

하지만 베티가 물은 건 사라로사가 대답을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글쎄, 이제 고작 사흘째라… 아직 잘 모르겠어.”

“너한테 뭐 시키는 건 없어?”

“그냥, 가방을 잃어버려서 옷을 빌려 간 것 말고는….”

베티는 이후로도 몇 가지 질문을 더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반복되는 사라로사의 어물거리는 대답에 다른 메이드들은 김이 샌 눈치였다.

“그래…. 너 진짜 아는 거 없구나? 아쉽네. 아, 식당에 다 왔다. 아침 맛있게 먹어, 사라로사.”

그들은 식당에 도착해 또 다 같이 우르르 다른 곳으로 몰려갔고, 사라로사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아침 식사 후 고용인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맡은 일을 시작했다. 사라로사도 모시는 주인이 기상할 시각에 맞춰 세숫물을 준비했다.

“얘, 사라로사! 잠깐 서 봐.”

그런데 복도를 걷던 중, 붉은 리본을 손목에 맨 여자가 나타나 사라로사가 준비한 세숫물을 빼앗아 갔다.

“앗!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뭐긴. 마리엔 님이 기다리시니 오늘도 양보 부탁할게.”

사라로사에게서 세숫물을 강탈한 사람은 1호실의 양육자 마리엔을 모시는 담당 고용인이었다. 사라로사를 향해 뭐가 문제냐는 듯이 말하는 그녀의 모습이 뻔뻔했다.

“그, 그런 게 어디 있어? 이건 내가 뜬 물인데! 그리고 린 님도 기다리실….”

“어머, 그러니까 양보해 달라고 말한 거잖아? 꼭 내가 뺏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네. 동료 좋다는 게 뭐니?”

사라로사는 이게 말로만 듣던 직장 내 텃세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그녀가 부당함을 주장하며 따지는 것보다, 앞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떨어지는 게 먼저였다.

“그리고 너. 7호실에 처음으로 양육자가 왔다고 들떴나 본데, 아무리 그래도 우리 1호실과 7호실을 동급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사라로사는 그녀의 얼굴에 꽂힌 싸늘한 눈빛에 움츠러들었다.

1호실 담당 고용인은 그런 사라로사에게 콧방귀를 뀌어 준 뒤 손목의 붉은 리본을 휘날리며 먼저 자리를 떠났다.

사라로사는 터덜터덜 걸어가 다시 세숫물을 준비했다.

지난 일주일간 레드포드 저택에서 일해 보니, 이곳은 고용인들 사이에서도 암묵적으로 등급이 나누어져 있었다.

가장 거만한 것은 지금 사라로사의 세숫물을 강탈한 고용인 같은 경우였다.

성인이 되었을 때 살아서 ‘출가’할 가능성이 높은 도련님들과 양육자를 모시는 고용인들은 대부분 주인을 따라 콧대가 높았다.

어떤 이들은 손목에 주인의 방을 상징하는 색의 리본까지 보란 듯이 묶고 다니며 다른 고용인들을 핍박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사라로사는 운이 나쁜 편이었다.

그녀가 이 레드포드 저택에 처음 왔을 때 비어 있는 자리라고는 7호실의 담당 메이드뿐이었으니까. 그러니 사라로사에게는 처음부터 주인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던 셈이다.

물론 사흘 전에 드디어 7호실에도 양육자가 오면서 레드포드 저택의 판도도 조금 달라지긴 했다. 하지만 고용인들 사이에서 사라로사의 대우가 크게 변한 부분은 아직 없었다.

새로 온 양육자가 엘리트 출신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 7호실의 도련님’이니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사라로사는 기운 없이 계단을 올라갔다.

고용인들에게서 들은 다른 양육자들의 방과 달리 초라하기 그지없던 린의 방을 떠올리자 그녀는 또 조금 우울해졌다. 그 초라한 방이 꼭 줄을 잘못 잡은 사라로사의 앞날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똑똑.

“린 님, 세안하실 물을 가져왔어요.”

마침내 린의 방에 도착해 사라로사는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대답이 없었지만 이미 기상 시간이었다. 하여 그녀는 린을 깨우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펄럭!

그런데 문을 열자마자 어두운 침묵 대신 밝은 햇빛과 바람이 사라로사에게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앗!”

동시에 웬 하얀 천 자락도 그녀에게 날아왔다.

어디서 많이 본 무늬다 싶었더니, 빈 테이블을 덮고 있던 레이스 천이었다. 이 소박한 방에는 테이블을 누를 만한 장식물조차 없었다. 그래서 열린 창문에서 들어온 바람을 고스란히 맞은 테이블보가 펄럭이며 날아와 사라로사의 얼굴과 몸을 덮은 것이다.

바람과 천 조각의 갑작스러운 합동 공격을 피하지 못한 사라로사가 휘청였다.

하지만 사라로사가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전에, 방에 있던 사람이 훌쩍 다가와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감쌌다.

“괜찮아요?”

하얀 천 너머에서 여자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