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체스휘와 미뉴엘에게 주워들은 말을 듣고 예비 양육자를 양성하는 기관이 있다는 건 유추하고 있었는데, 이런 것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지금 저택의 양육자들이 나한테 무시당한다고 생각해 모욕감을 느낀 것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해명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설령 그렇다 해도 이들이 내게 괜한 시비를 거는 게 한눈에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걸고넘어지던 말을 생각해 보면, 내가 엘리트 출신이라고 생각해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게 분명했다.
‘아니, 그런데 열등감이든 텃세든, 이유가 뭐든 간에… 애들도 있는 자리인데 양육자란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보여도 되는 건가? 이거 양육자 자격 미달 아니에요? 네?’
“그보다 레이븐 씨, 린 씨를 직접 만나니까 어때요? 역시 아는 얼굴이에요?”
그때, 체스휘가 웃는 듯 마는 듯 눈을 가늘게 접어 보이며 누군가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
“지금 보니 린 씨는 레이븐 씨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아까 우리끼리 얘기했을 때 레이븐 씨는 스텔라에서 린 씨의 이름을 들어 본 적 있다고 했던 것 같아서.”
아까 나한테 튀는 걸 좋아하나 보다느니 어쩌고 하면서 입을 털었던 주황 머리 남자가 갑자기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린 듯이 기침을 했다.
그러고 보니 체스휘가 여기에 엘리트 출신 양육자가 한 명 있다고 했었지? 4호실이랬나. 그게 저 주황 머리 남자인가 보다.
“아, 저분이 아까 체스휘 씨가 말한 스텔라 소속인가 보네요?”
나는 그래서 엘리트랍시고 재수가 없나, 하고 생각하며 그를 쳐다보았다. 여기 있는 양육자들이 나를 보고 한 생각과 비슷할지도 몰랐지만, 저 남자는 실제로 재수가 없었으니 내 생각은 타당했다.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느껴졌다.
‘내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다고?’
혹시 이것도 게임 속 설정 중 하나인가? 플레이어가 양육자 직업을 선택하면 진짜 그 엘리트 출신인지 뭔지로 기본 설정이 되는 건가?
레이븐이라 불린 남자가 금방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크흠…. 같은 스텔라여도 기수가 다르면 서로 모를 수도 있지.”
그러고 나서 그는 입을 다물었다. 조금 전과 달리 어쩐지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아무튼 자기소개는 필요할 듯하니 순서대로 말하지요.”
그때 아까의 분홍 머리 소년 옆에 있던 단발머리 여자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화제를 전환했다. 그렇게 해서 듣게 된 그들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았다.
<1호실>
- 육성 대상자: 루스카
검은 머리칼과 푸른 눈을 가진 차분하고 냉정한 인상의 소년. 단정한 느낌에 말수가 적은 편.
- 양육자: 마리엔
긴 붉은 머리칼과 벽안을 가진 싸늘한 인상의 미녀. 낮에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나한테 극성 학부모 같은 모습을 보였던 매운맛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