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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3)화 (3/300)

아무래도 미뉴엘은 나한테 관심이 상당히 많은 것 같았다. 테이블 옆에 있는 빈 의자에 마음대로 앉은 그가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진짜 나 아니야? 난 예비 양육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편인데. 빈자리가 하나뿐이라 7호실을 선택한 거지?”

그런데 노란 아기 고양이, 귀엽긴 한데 너 아까부터 우리 다이안 너무 약 올린다. 미뉴엘의 말을 들은 다이안이 파르르 몸을 떠는 게 느껴져서 내 마음이 다 아렸다.

게임에 없던 양육자란 직업이 왜 저절로 선택된 건지도 모르겠고, 지금 이 상황도 완전히 이해한 게 아니었지만 이것만은 내가 확실히 대답할 수 있었다.

“난 내가 원해서 다이안을 선택한 건데.”

“뭐, 말도 안 돼! 그럼 처음부터 1지망이 7호실이었단 말이야?”

미뉴엘이 경악했다. 대답을 듣기 싫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을 깨물고 있던 다이안도 고개를 홱 들어 나를 쳐다봤다.

물론 게임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도 다이안은 키우기가 어렵다고 소문나 인기가 없는 편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싶었다.

“그, 그럼 2지망은?”

“다이안.”

“3지망은?!”

“다이안.”

물론 아주 잠깐 다이안 말고 그냥 다른 캐릭터로 갈아탈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확고부동한 애정 1순위는 다이안이었지만 그다음으로 좋아하는 애들도 당연히 있었고.

‘하지만 내 최애가 보는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잖아!’

문답이 오갈수록 미뉴엘의 얼굴에 떠오른 충격과 경악도 점점 커져 갔다. 나는 거기에 마지막으로 점을 찍었다.

“참고로 지금까지 선택할 기회가 총 43번 있었는데 난 그때마다 전부 다이안을 골랐지.”

미뉴엘은 완전히 말문이 막힌 눈치였다. 나를 향한 다이안의 눈은 언젠가부터 아롱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미뉴엘 못지않게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계속되는 내 말에 아무래도 감동한 눈치였다. 다이안의 초롱초롱한 눈빛에 난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43번 선택한 건 사실이지만 43번 죽이기도 했는데….’

하지만 그건 내 탓이 아니었다. 다이안 육성을 어렵게 만든 게임 제작사 잘못이니까!

“허, 이제 보니까 사람 보는 눈이 없는 양육자였네! 됐어, 그런 멍청이는 내 쪽에서 사양이야!”

미뉴엘은 내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지 않자 자존심이 상한 듯, 씩씩거리며 방을 떠났다. 그런 뒤 접대실에는 다시 다이안과 나만 남게 되었다.

“진짜… 내가 1지망이었어?”

다이안이 아까처럼 테이블 위에서 맞잡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물었다. 나를 힐끔 올려다보는 눈이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또 벽을 부수고 싶어졌다.

“그럼…! 아니, 그럼요! 진짜 다이안 도련님이 제1지망이에요.”

“진짜로?”

“진짜 진짜!”

거듭 반복해서 확답하자 그제야 만족한 듯이 다이안이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는 아까처럼 불편하고 서먹한 공기가 아니라 수줍음과 기쁨이 뒤섞인 공기가 그의 주위에 몽실몽실 떠돌고 있었다.

‘아깝다! 이 모습을 영상으로 저장해서 남겨 놔야 하는데!’

한탄스러웠지만 시스템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아무튼 다이안이 나를 이렇게 좋아해 주니 나도 의욕이 막 샘솟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이안에게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 자세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다시 소개할게요. 제 이름은 린 도체스터고요. 오늘부터 레드포드 저택에서 도련님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다이안이야. 잘 부탁해.”

나를 보는 하얀 아기 고양이의 눈에는 이제 미약한 신뢰감까지 떠올라 있었다. 아까는 불안해 보였는데, 그래도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란 걸 알고 이제는 마음을 좀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린은 양육자면서 말투가 특이하네. 꼭 메이드 같아.”

순간 뜨끔했다.

우리 아기 고양이 눈치가 빠르구나. 이 누나가 메이드 직업에 알 박은 지 오래돼서 그래.

“이게 편해서요. 혹시 도련님은 불편하세요?”

“난 딱히 상관없어. 그냥 린이 편한 대로 해.”

그나저나, 다이안의 얼굴을 보니 이번 회차에 자동 선택된 ‘양육자’라는 직업에 대해 그에게 직접 물어보는 건 아무래도 어려울 듯했다. 이렇게 나한테 신뢰감 어린 눈빛을 보내고 있는데, 내 무지가 탄로 나면 아무래도 서로 민망해질 것 같고…. 무엇보다도, 자라나는 꿈나무 어린이의 희망과 기대를 와장창 깨트리는 짓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보다는 일단 방금 일에 대한 설명부터 다이안에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전에 그 메이드장은 제가 괜히 죽인 게 아니고요….”

“알아, 모로스였던 거지? 내가 뭐, 그것도 모를까 봐?”

그래서 입을 열자 다이안이 그 정도는 안다는 듯이 새치름하게 말했다.

“나도 조금 전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당황한 것뿐이야. 그, 그러니까 린도 혹시 내가 그런 걸 무서워한다고 착각하지 마. 알았어?”

아까 겁먹은 토끼처럼 쭈굴거리던 게 이제야 창피해졌는지, 다이안이 눈을 부릅뜨면서 뒤늦게 센 척했다. 나는 그 용맹함에 감화되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귀, 귀여워…! 원래 이 나이 때 이렇게 깜찍했었나? 물론 청소년 버전 다이안도 귀여웠지만, 그래도 이런 뽀시래기 시절은 오랜만이라 그런지, 내 기억보다 더 귀여워진 느낌인데?’

이 게임은 쓸데없이 현실성이 넘쳐서, 육성 캐릭터도 나이를 먹으면 질풍노도의 사춘기 시절을 겪곤 했다. 그래서 다이안도 10대 중반 정도의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청개구리처럼 내 말을 안 듣고 제멋대로 굴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렇게 게임이 리셋되어 다이안의 귀염성 있는 모습을 오랜만에 보게 되니 신선하기 그지없었다. 꼭 용맹한 아기 고양이가 내 심장에 솜방망이 펀치를 하는 느낌에 가슴을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마, 맞아요. 물론 우리 다이안 도련님은 그런 건 전혀 안 무서우시겠죠.”

다이안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술을 옴짝거렸다.

“그리고… 나도 미뉴엘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쓸모없진 않아.”

그러다가 그가 이내 결의 섞인 눈으로 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까는 내가 놀라서 아무것도 못 했지만 혹시 다음에 또 그런 게 나오면, 그때는 내가 린을 지켜 줄게!”

으아아…!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이를 꽉 깨물었다.

“하, 진짜 귀엽네. 어디에서 온 요정이지?”

“뭐…?”

“앗, 제가 소리 내서 말했나요? 죄송합니다. 너무 귀여워서 속으로 오구오구 해 준다는 게 그만.”

마음 같아서는 엉덩이도 팡팡 해 주고 저 찹쌀떡 같은 볼살도 와랄랄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손목에 쇠고랑이 채워져 철컹철컹할 것 같아서 참았다.

“귀엽… 요정…?”

다이안은 당황한 듯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눈을 깜빡거렸다.

“설마 지금 그거 나한테 한 소리….”

맞아! 완전 너한테 한 소리야!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다이안의 말랑한 볼때기가 서서히 빨갛게 달아오르는 걸 보고 속으로 수도 없이 영상 저장을 외쳤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다이안의 귀여운 모습은 내 마음속에만 저장되었을 뿐이었다.

“양육자님, 인사를 마치셨으면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때 접대실 밖에서 메이드가 나를 불렀다. 마침 다이안의 방을 다 치운 듯, 다른 메이드들도 철수하는 분위기였다.

다이안이 빨개진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난 쉬고 싶으니까 그만 나가 봐.”

“벌써요? 조금만 더 있다가 나가면 안 될까요?”

“안 돼, 혼자 있고 싶으니까 지금 당장 나가!”

다이안이 매몰차게 외치며 나를 쏘아봤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은 잘 익은 사과 같아서 무섭지는 않았다.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귀여웠지만 여기서 더 놀리면 안 될 것 같았다. 첫날부터 이상한 사람으로 찍히기는 싫으니까 오늘은 그냥 여기에서 물러나자.

“그럼 전 일단 방으로 가서 씻고 옷부터 갈아입을게요. 금방 다시 올 테니까 쉬고 있으세요, 도련님!”

나는 다이안에게 인사한 뒤 그의 방을 나섰다.

***

메이드에게 안내받은 방은 아주 익숙했다. 게임을 시작할 때 모든 플레이어에게 동일하게 제공되는 방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침대, 소파, 책상, 의자, 티 테이블, 서랍장, 장식장 등등 구색을 맞출 만한 가구들은 전부 방에 구비되어 있었다. 거기다 작은 드레스 룸과 세면실, 욕실까지 딸려 있어 내 눈에는 이 정도만으로도 꽤 호화로워 보였다. 추가로 돈을 바르면 취향대로 방을 꾸밀 수 있었는데 난 그쪽으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 데 돈을 쓸 바에는 우리 애 꼬까옷이나 하나 더 사 입히는 게 백 배 보람 있었다.

참고로 여기에서도 게임 시스템은 여전히 응답하지 않았다.

‘현실에서 48시간이 지나면 자동 로그아웃되는 설정인데 설마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 아니겠지?’

어디 보자. 현실과 게임상의 시간 흐름은 다르게 설계되어 있으니까 현실에서 48시간이면 여기서는 대략 보름 정도인가?

“하씨, 그 전에 오류 수정해라. 주말 지나면 출근해야 한다고.”

내가 원래 좀 낙천적인 성격이긴 한데, 게임을 하다가 이 정도 오류가 난 건 처음이라 좀 불안했다.

‘정말?’

‘그럼 너한테 맡길게.’

이렇게 조용한 방에 혼자 있으니 또 아까 일이 생각났다. 확실히 단순한 오류치고는 너무 이상했던 현상이었다. 온몸을 뒤덮었던 붉은 시체꽃의 감촉을 떠올리자 뒷덜미가 싸늘해졌다.

게다가 조금 전에 메이드장을 벨 때 느꼈던 손끝의 생생한 감각까지 자꾸 떠올랐다. 그럴 때면 꼭 지금 이것이 게임이 아니라 진짜 현실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이게 게임이 아닐 리가 없었다. 그렇잖아?

“안 되겠어. 움직이자.”

가만히 있으니까 자꾸 쓸데없는 잡생각만 들었다.

일단 세면대에 가서 얼굴이랑 손부터 물로 깨끗이 다시 씻었다. 그러면서 거울을 확인하니 얼굴은 커스터마이징한 그대로였다. 그걸 보니 안심이 되었다.

‘봐, 역시 게임이잖아. 이건 오류가 안 나서 다행이네.’

뽀득뽀득 깨끗하게 세안을 끝마친 다음 드레스 룸을 열어 봤다.

옷장 안에는 저택에서 제공하는 듯한 유니폼이 한 벌 들어 있었다. 그런데 메이드복도 아니고, 처음 보는 유니폼이었다. 그 ‘양육자’라는 직업 전용인가? 달랑 한 벌만 준 걸 보면 매일 입어야 하는 옷은 아닌 것 같은데.

‘그나저나 여기도 없잖아?’

아까부터 내가 찾고 있는 건 내 짐 가방이었다.

원래 게임이 시작되면 알아서 침대 위에 나타나야 할 가방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안에 기본으로 제공되는 무기와 소지품을 포함해 직업 관련한 매뉴얼 북이 들어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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