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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저택의 도련님을 지키는 방법 (2)화 (2/300)

‘그런데 왜 퀘스트 창이 안 뜨지?’

뭔가 이상했지만 일단은 게임을 40회차 넘게 플레이하는 동안 몸에 익은 대로 테이블보를 던져 앞으로의 유혈 사태로부터 다이안의 눈을 가렸다. 난 연약한 미소년을 아끼는 매너 있는 플레이어니까 말이지.

스릉!

동시에 벽에 장식용으로 걸려 있던 칼을 빼 들고 달렸다.

튜토리얼이나 다름없는 에피소드다 보니, 메이드장을 처리하는 건 쉬웠다. 검은 혈관이 도드라진 괴상한 몰골로 나한테 달려들던 메이드장의 머리가 순식간에 뎅겅 잘려 나갔다.

어…? 근데 뭐야. 왜 블러 처리 안 해 줘요…?

눈앞에 검은 피가 튀었다. 원래라면 흐릿하게 표현되었을 악취 나는 액체가 내 얼굴까지 적셨다. 메이드장의 몸이 눈앞에서 허물어졌다. 잘린 머리도 데구루루 바닥을 굴렀다.

나는 손에 칼을 든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마침내 방 안에 고인 정적이 등골을 시리게 만들었다.

그때, 테이블보를 뒤집어쓴 소년에게서 얕은 숨소리가 섞인 자그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죽었어?”

죽었다. 쓰러진 메이드장 주변에 어느새 검은 꽃이 피어 있었으니까.

생긴 건 붉은 시체꽃과 똑같았지만 괴물에게서 핀 꽃은 이처럼 검은색이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리며 들고 있던 칼로 메이드장의 몸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바닥에 있던 시체가 순식간에 재가 되어 흩어졌다.

게임에서 늘 보던 장면인데,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기묘할 정도로 생생했다. 꼭 게임이 아니라 진짜 현실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얼얼함이 밀려왔다.

“오구. 걱정 마, 애기야. 내가 다음엔 진짜 꼭 살려 줄게.”

‘그럼 너한테 맡길게.’

다이안의 방문 앞에서 눈을 뜨기 전,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목소리가 머리를 스쳤다.

이후 아무리 로그아웃을 외쳐도 게임은 종료되지 않았다. 게다가 메이드장을 벴을 때 느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실감 나는 손의 감촉과 얼굴에 튄 뜨거운 피의 느낌까지도… 괴상할 정도로 현실감이 넘쳤다.

그때 불현듯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깨달아 버렸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진짜 이 게임 속으로 들어와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01. 44회차 시작

“침실을 금방 청소할 테니 도련님과 양육자님은 접대실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예, 천천히…. 아니, 좀 빨리해 주세요.”

잠시 후 메이드들이 방을 청소하러 왔다.

그들은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재 가루가 된 메이드장을 보고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장비를 들고 와 어지럽혀진 방을 정리하는 모습이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했다.

그동안 나는 침실 옆에 딸린 접대실에서 내 육성 캐릭터인 다이안과 마주 보고 앉았다.

“…….”

“…….”

우리 둘 다 충격을 받은 탓에 접대실에는 침묵만 맴돌았다.

나는 나대로 게임의 시스템 창이 말을 듣지 않는 상황에 당황했고, 눈앞의 도련님은 도련님대로 현재 상황을 머리에 입력하고 받아들이느라 여유가 없어 보였다.

‘로그아웃. 로그아웃!’

속으로 로그아웃을 다시 외쳐 봤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환경 설정! 아이템 창! 캐릭터 정보! 맵 확인!’

다른 게임 용어를 아무리 외쳐 봐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이게! 진짜 신종 버그인가? 왜 아무것도 안 돼?’

게다가 원래 게임에서는 메이드장을 죽인 이후에 바로 다음 에피소드로 스킵해서 넘어가는데, 지금은 그런 기능도 사용할 수 없었다. 아까부터 로그아웃이 안 되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 저기요.”

결국 팍팍한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접대실 문가에 서 있는 메이드를 불렀다.

그런데 순간 내가 자신을 부른 줄 알았는지, 맞은편에 앉은 소년이 몸을 움찔거렸다. 나도 덩달아 몸을 움찔 떨었다.

‘애기야, 내가 무섭니…?’

내 최애 캐릭터가 날 경계하는 현실에 잠깐 현타가 왔다. 하지만 당연한 일인가? 첫 만남에서 메이드장의 목을 장대하게 날려 버린 직후였으니까.

아까 블러 처리도 없이 생으로 목격한 장면을 떠올리자 속이 안 좋아졌다. 나는 애써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려 노력하며 메이드에게 말했다.

“여기 성수 디퓨저부터 하나 가져다주실래요? 그리고 따뜻한 차도 부탁해요.”

성수 디퓨저는 플레이어들이 쓰던 용어라 못 알아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메이드는 눈치가 빨랐다. 그녀는 후딱 나가서 내가 깨 버린 화병과 똑같은 걸 들고 왔다.

잠시 후 성수를 담은 화병에 연보라색 꽃이 꽂혀 테이블 위에 놓였다. 은은한 향기가 퍼져 나갔다. 시스템 창이 안 떠서 정확한 농도는 파악할 수 없었지만 방 안의 공기가 좀 맑아진 것 같았다. 더불어 내 마음에도 서서히 안정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 두 개도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메이드는 내가 부탁한 것 말고, 물에 적신 수건도 가져왔다. 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메이드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얼굴을 닦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아, 맞네. 감사합니다.”

맞아, 지금 나한테 메이드장 피가 묻어 있었지. 다이안이 날 보고 무서워할 만했네. 나는 얼른 물수건을 들어 얼굴을 문질렀다.

다이안은 앞에 놓인 차를 마시지 않고 찻잔을 손에 쥔 채 그냥 빤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나는 얼굴과 손을 닦은 뒤 차를 한 번에 쭉 들이켰다.

“흡.”

따뜻한 차를 들이부었더니 혀가 얼얼했다. 하지만 덕분에 정신이 좀 든 것 같았다. 다이안은 여전히 한 마리의 가련한 토끼처럼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까의 까칠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잔뜩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그걸 보니 왠지 잘 달래 줘서 안심시켜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연장자의 의무감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저기, 아무래도 우리 첫인사부터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

“우와, 이게 뭐야?”

낭랑한 목소리가 고막을 울린 건 바로 그때였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열린 방문 밖에서 누군가 빼꼼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게 보였다.

“드디어 7호실에 양육자가 왔다고 해서 구경하러 왔더니, 난리 났네?”

이후 허락도 없이 불쑥 방으로 들어와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한 건 보브 커트를 한 금발 미소년이었다. 나이는 다이안과 비슷해 보였다.

프릴이 많이 달린 드레스 셔츠에 반바지, 니 삭스…. 원래 <괴물 저택의 도련님들-천사 소년 키우기>의 육성 대상인 소년들은 대개 저런 차림새지만, 이 소년은 유독 화려한 느낌이었다.

“새로운 양육자가 ‘모로스’를 죽였다는 거 진짜야?”

게다가 말투만큼이나 생김새도 화려하고 도도했다. 꽤 오랫동안 이 게임 덕후로 산 데다가, 육성 대상을 선택할 때 프로필을 본 적이 있어 지금 나타난 소년이 누구인지 당연히 나도 알고 있었다.

2호실의 천사 ‘미뉴엘’. 미뉴엘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올린 영상 기록에도 매일 단골로 등장하는 인기 많은 육성 대상이었다. 나도 다이안을 키우면서 현타를 맞을 때마다 잠깐이나마 진지하게 갈아탈까 고민하곤 하던 차애 캐릭터 중 하나이기도 했다.

종달새처럼 춤을 추듯이 총총 걸어온 소년이 접대실의 테이블에 걸터앉았다.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나를 향해 반짝거렸다. 하지만 그는 가까이에서 내 얼굴을 보자마자 흠칫했다. 음, 아무래도 피가 덜 닦였나 보다.

“우와…. 모로스 죽인 거 진짜인가 보네. 생긴 건 허약하게 생겼는데 꽤 쓸 만한 양육자인가 봐? 신참 씨 이름이 뭐야?”

“네가 내 양육자 이름을 왜 물어봐?”

대답은 내가 아닌 다이안에게서 튀어나왔다. 나는 동그래진 눈으로 미뉴엘에게 앙칼지게 쏘아붙인 다이안을 쳐다봤다. 다이안은 미뉴엘을 거의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의 눈빛도 목소리만큼이나 날카로웠다.

“뭐야, 고작 이름 하나 물어본 것뿐인데 왜 이렇게 예민하게 굴어?”

미뉴엘이 콧방귀를 뀌었다. 나도 의외였다.

‘뽀시래기 둘이 사이가 안 좋았나?’

게임에 그런 설정은 없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미뉴엘을 향한 다이안의 태도는 노골적으로 적대적이었다.

“왜, 기껏 처음으로 생긴 양육자인데 나한테 뺏길까 봐 겁나?”

하지만 미뉴엘이 비웃듯이 덧붙인 말을 듣고 나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미뉴엘의 말을 들은 다이안이 꼭 정곡을 찔린 듯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하마터면 벽을 부술 뻔했다.

‘지, 지금 누나 뺏기기 싫어서 하악질 하는 거야?’

버그 만세다! 원래 이 장면은 그냥 건너뛰게 설정되어 있어서 이런 다이안의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흥, 하긴 내가 너라도 겁나겠네. 여기 있는 애들이 다 같은 등급인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너랑 나 중에 고르라고 하면 양육자들이 누구를 선택할지 너무 뻔하잖아?”

미뉴엘이 우쭐거리며 다이안을 비웃듯이 말했다. 2호실의 천사인 미뉴엘은 원래도 좀 잘난 척하는 성격이었다.

“이봐, 신참 씨. 그냥 이 녀석 말고 내 양육자 할래?”

“당장 내 방에서 나가, 미뉴엘!”

다이안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으르렁거렸다.

“난 이미 양육자가 있지만 그쪽이라면 특별히 바꿔 줄 수 있어. 육성 대상하고 양육자 둘 다 동의하면 페어 변경 가능한 거 알지?”

“헛소리하지 마! 린은 내 양육자야!”

“아, 이름이 린이구나? 예쁜 이름이네. 내 이름이랑도 잘 어울리는 것 같고.”

미뉴엘이 다이안을 향해 도발하듯이 말하자, 다이안은 사나운 눈초리로 미뉴엘을 쏘아봤다.

그래 봤자 노란 고양이와 흰 고양이 두 마리의 접전을 보는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뭐가 뭔지 잘은 몰라도, 지금 그 두 마리의 아기 고양이가 둘 다 나를 집사로 간택하려고 싸우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아니, 잠깐만. 싸우지 말고 일단 진정하자, 얘들아.”

그래서인지 그들을 말리는 내 목소리도 생각보다 몰랑몰랑하게 흘러나왔다. 다이안과 미뉴엘은 둘 다 서로에게 흥 콧방귀를 뀐 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신참 씨, 솔직히 말해 봐. 원래 1순위 지망은 누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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