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24)

  <화려한 6월>

  

  

  

  

  다음날 녹음은 테스가 기대했던 그대로였다. 케이지의 목소리는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에 기가 막히게 스며들어서 제대로 결정했는지 재론할 이유조차 없게 

만들었다. 다이언과 에스텔의 눈치를 살피자 그들 역시 만족했음을 알 수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다이언은 조금은 건방지게 한 마디 던졌다.

  

  "야, 꼬마 숙녀, 제대로 요리를 하는데!"

  

  랠프와 잭의 동의를 얻자마자 테스는 스튜디오에 케이지를 붙들어 놓고 6월말부터 

시작되는 순회 공연을 같이 갈 수 있는지 물었다. 충격을 받은 소녀의 표정을 

살피는 일은 재미있었다.

  

  "놀리시는 거죠? 진짜 저하구?"

  

  "그럼, 너하구."

  

  "하지만…… 왜죠?"

  

  "넌 내 음악을 잘 아니까, 기가 막힌 목소리를 가졌으니까. 또 나하고 너무도 

죽이 잘 맞으니까."

  

  케이지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중얼거렸다.

  

  "아이구 하느님 맙소사."

  

  이렇게 해서 테스의 인생에서 가장 바쁜 일정이 시작되었다.

  

  내슈빌 사람들에게 6월은 전통적으로 가장 요란한 시기였다. 시에서 주관하는 

거리 축제인 '서머 라이츠 페스티벌'이 사흘에 걸쳐 개최되었고 이 기간은 

그리어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연례 소프트볼 대회의 개막식과도 맞물렸다.

  

  곧이어 TNN에서 주관하는 '뮤직 시티 뉴스 시상식'이 있고 그 뒤에 전 세계의 

팬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행사가 따랐다. 이른바 '팬 축제'인 그 1주일 

동안 대중 음악의 팬들 2만 4000명이 자신들의 우상을 보기 위해 테네시 주립 

운동장에서 막사를 치고 주둔했다.

  

  가수들은 이때 팬들과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고 집에서 만든 파이를 제공하고 

아이들에게 유명 가수의 이름을 본만 이름을 지어 주고 티셔츠와 기념 컵과 

커피잔과 앨범에 사인을 하고 하고 또 해야 했다.

  

  팬 축제 기간 중 테스는 하루에 라디오 방송국 10개 정도와 인터뷰를 했으며 

3시간 동안 자신의 홍보 부스를 지키다가 가끔 다른 가수의 부스에도 가 봐야 

했다. 신문과 잡지사 인터뷰도 해야했으며 레코드 상점에서 사인을 했고, 물론 

이따금 있는 노래 공연에도 빠지지 않았다.

  

  얼굴에 마이크를 단 수많은 DJ들은 그녀를 보기만 한면 "여러분, 시애틀에서 

온 여러분을 환영하기 위해 테스 맥파일 양이왔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틀사, 

스위트워터, 오클라호마 등등 출신지는 그때그때 바뀌었다. DJ들이 어디 출신이든지 

팬 축제 기간 내내 그들은 자기 고향에 있는 팬들을 위해 특별히 음성을 녹음해 

가고 싶다고 요청했다.

  

  또 미국 전역에서 날아온 각 팬클럽 대표자들과 만나고 그들로부터 특별공로상 

비슷한 것을 받았으며, DJ들과 또 음반 도매상 지배인들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해주어야 했다.

  

  너무너무 힘든 주간이었지만 케이지는 테스 곁에 꼭 붙어 다녔고, 테스는 

소녀가 같이 있어 주는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케이지는 군말 없이 잔심부름을 

했으며 시원한 콜라를 날라다주고 티셔츠를 팔고 전화를 받고 또 테스와 사진을 

찍고자 용감하게 달려드는 팬들에게 테스를 대신해 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소녀가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으며, 하루18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린 스타가 우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조차 테스에게 

끝없는 용기와 에너지를 주었다는 사실이다.

  

  케이지에게 이 일은 신성하고도 흥미 있는 일이었다. 모든 일이 기꺼이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새로운 경험으로 비쳤다. 컨트리 음악의 스타가 감수해야 

할 어려운 일들을 직접 보면서 소녀는 자신 또한 이런 일을 원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팬 축제가 끝나자 콘서트 연습이 다시 시작되었다.

  

  테스가 서게 될 무대에는 작은 트레일러 12대 분량의 조명 기구, 의상, 소도구, 

대도구가 필요했고 이것들을 설치하는 데는 고용인 50여 명만으로는 모자라 

그때그때 콘서트가 열리는 지역 주민 20여 명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모두가 순회 공연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케이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일의 강도도 작업량도 많아졌기 때문에 케이지는 계속 테스의 집에서 

지냈다.

  

  케이지는 매일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그렇지 않은 날에는 케니가 딸에게 

전화를 했고, 마지막에는 꼭 테스를 바꾸어 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통화가 

부녀지간의 통화보다 길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이야깃거리는 마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녀에게 자기 사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그에게 자기 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교회 성가대 소식을 말했다.

  

  그녀는 콘서트 연습을 말했다.

  

  그는 메어리를 돌보았다.

  

  그녀는 케이지를 돌보았다.

  

  그는 새 자동차를 주문했다고 알려 주었다.

  

  그녀는 메어리가 아직 결정을 내리진 않았지만 메어리와 그와 페이스를 위해 

애너하임 콘서트의 제일 좋은 좌석표 3장을 지방공연 매니저를 통해 보냈다고 

알려 주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물었다.

  

  "당신은 올 거죠?"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응……. 갈 거요."

  

  그녀는 자신에게는 몹시도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고 싶었다. 아무튼 그녀는 

말했다.

  

  "페이스는 어쩐대요?"

  

  "아직 물어 보지 않았소."

  

  "그래요?"

  

  "그래요."

  

  "왜요?"

  

  그가 한참 입을 다문 사이 두 사람은 웅웅거리는 신호음이 변하는 소리로 

전화 저편 상대방이 자세를 바꾸었음을 알았다. 케니는 부엌 선반에 등을 기댄 

채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전화선을 비비꼬는 자신의 

집게손가락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결혼식 피로연이 있었던 그 밤을 떠올렸다. 

드디어 그는 조금은 더 퉁명스럽고 더 작아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테스, 당신도 잘 알 텐데."

  

  말로 하지 못한 이야기가 친밀감으로 변하며 침묵을 채웠다.

  

  결국 그는 그녀가 어딘 가로 도망이라도 친 듯 이름을 불렀다.

  

  "테스?"

  

  "기뻐요."

  

  그녀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도 그녀처럼 오랫동안 숨이 막혔던 듯 한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머릿속에 여러 가지 계획이 지나갔다.

  

  "나와 케이지가 묵을 비벌리 월셔에 당신의 객실도 예약해 놓겠어요. 애너하임에서 

L.A.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 거리지만 당신에게 로데오 드라이브를 보여 주고 

싶고 또 엄마가 여기 오신다면 엄마에게 '아이비'에서 점심도 대접하고 또 

'바타글리아?로 당신을 데려가서 아주아주 비싼 선물을 사주고 싶어요. 자세한 

일은 지방 공연 매니저에게 부탁하겠어요. 리무진, 좌석권, 무대출입증 등등 

모든 걸요. 케니, 난 지금 정말 행복해요."

  

  "나도 행복해요. 메어리 아주머니를 설득해 봐야지."

  

  그가 말했다.

  

  "그렇게 해줘요. 이젠…… 늦었어요."

  

  "그래요."

  

  "이젠 잘 자라는 인사를 해야겠죠?"

  

  "그래야겠지요."

  

  "그럼…… 잘 자요."

  

  "잘 자요."

  

  "케니, 잠깐만!"

  

  그는 기다렸다.

  

  "여기 있어요."

  

  "페이스 말인데……."

  

  어차피 해야 할 말이었다.

  

  "확실하게 해주세요."

  

  "확실해요."

  

  "그럼 됐어요. 곧 만나요."

  

  "다시 한 번, 잘 자요."

  

  "안녕, 케니."

  

  그리고 두 사람은 언제나처림 억지로 전화를 끊었다.

  

  

  

  애너하임 콘서트 날은 하루하루 가까워졌다. 테스는 날마다 메어리에게 전화를 

걸어 케니와 같이 오라고 설득했다. 메어리는 똑 같은 말만 반복했다.

  

  "글쎄, 엉덩이 수술한 데가 괜찮은지 모르겠구나. 더구나 비행기도 오래 

타야 할거고."

  

  "엄마, 제발."

  

  "테스야, 말했잖니, 두고 보자고."

  

  테스가 전용 비행기인 호커 시들레이 제트기를 타고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날에도 메어리는 똑같은 말을 했다. 비행기에는 케이지도 같이 탔다.

  

  

  

  케니는 로스앤젤레스로 떠나기 하루 전, 페이스와 같이 목요일 밤마다 하는 

브리지 놀이를 했다. 사람들이 페이스의 집으로 모였고, 케니는 그날 게임에서 

형편없이 졌다. 페이스는 비난하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따금 카드 너머로 

실망스러운 눈길을 던졌고, 입술을 꼭 깨물고 그를 노려보기도 했다.

  

  저녁 9시가 되자 그녀는 손님들에게 따뜻한 복숭아 파이를 내놓았고 10시가 

되자 케니를 뺀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집을 나갔다. 그는 그녀와 같이 설거지를 

하고 카드놀이를 했던 탁자를 정리하고 의자를 포갰다.

  

  그녀의 집 현관에 있는 작은 벽장 속으로 금속제 의자 4개를 집어넣고 부엌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은식기 함 안에 포크와 스푼을 정리해서 넣는 중이었다. 

그녀는 후식 접시들을 선반에 엎어 놓았다.

  

  "케니."

  

  그녀는 포크 하나하나를 검사하고 벨벳으로 된 함 속에 넣으며 말했다.

  

  "오늘 당신이 한 실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어요."

  

  "실수라니?"

  

  "난 갓난아이가 아니에요. 왜 나더러 같이 L.A.로 가자고 묻지 않는지 알아요."

  

  그녀는 은식기 함의 뚜껑을 닫고 그를 쳐다보았다. 두 손은 함의 가장자리를 

둥글게 쥐었다.

  

  "좌석표를 받긴 했는데, 2장밖에 없었소."

  

  "케니……, 이러지 말아요."

  

  그녀는 자신의 지적 능력을 모욕당한 것처럼 말하고는 다른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는 따라가지 않고 기다렸다. 그녀는 앞치마를 벗으며 다시 돌아와서는 

서랍을 열어 앞치마를 집어넣고 그대로 서랍을 내려다보았다.

  

  "그녀가 내슈빌로 돌아가고 2주일쯤 지났을 때 눈치 채기 시작했어요. 그때가 

당신이 그 여자에게 빠져 든 시기인 걸 부인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케니, 

생각해 봐요."

  

  그녀는 한 손을 은식기 함에 얹은 채 그에게 몸을 돌렸다.

  

  "모든 일이 끝나면 그녀가 당신에게 어떻게 대할 것 같나요?"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솔직한 심정을 말했다.

  

  "모르겠소."

  

  페이스는 그가 너무도 빨리 자기 죄를 인정하는 것에 정신이 아찔했다. 그녀는 

표정 없는 얼굴로 턱을 끌어당겼다. 케니가 테스와 연결되는 일을 전적으로 

부인할 줄로 생각했다. 그런데 완전히 반대되는 그의 대답으로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갔다.

  

  페이스가 말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같이 지내 온 시간을 아무의미 없는 과거로 

만들겠다는 말인가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라니? 우리가 대체 뭘 가졌소, 페이스?"

  

  "8년 동안의 충실함이오!"

  

  그녀는 다소 화를 내며 대답했다.

  

  "적어도 난 당신에 대한 지조를 지켰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결혼에 대해서 얼마나 이야기했소? 우리 둘 모두 결혼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어떻고?"

  

  "당신이 지금까지 우리 관계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편리한 쪽만 이용했소. 그 점을 인정해요, 페이스."

  

  "그게 뭐 잘못인가요?"

  

  그녀는 흥분해서 날카롭게 대들었다.

  

  그는 이 질문에는 대답을 않고 고개만 이쪽 저쪽으로 흔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은식기 함에 손을 올린 채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당신을 놓치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 당신이 L.A.로 가서 다시 그 여자와 

같이 자면 난 당신을 잃게 되겠죠."

  

  그는 처음으로 화가 난 심정을 표시했다.

  

  "사실을 똑바로 알고 말을 해요. 난 한 번도 그녀와 잔 적 없소."

  

  "그래요, 하지만 마음속에는 같이 잘 계획이 있죠. 그렇죠?"

  

  그가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더욱 큰 소리로 되물었다.

  

  "내 말이 맞죠?"

  

  "페이스, 우리가 오늘 이러려고 8년 동안이나 사귀지는 않았잖소. 우리 중 

누구도 우리 사이를 끝낼 용기가 없단 말인가? 난 일흔 살이 되어서도 반평생 

동안 한 여자하고 데이트만 하는 그런 남자가 되고 싶진 않소. 그렇게 사는 

게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모른단 말이오?"

  

  그녀는 손을 옆으로 내리고 등을 쭉 폈다.

  

  "당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걸 확인했어요."

  

  그녀는 방을 건너서 개수대 위를 비추는 작은 전등만 남기고 머리 위의 휘황찬란한 

조명 스위치를 내렸다.

  

  "그래요, 내 마음은 바뀌지 않아."

  

  그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나직이 말했다.

  

  "당신은 여길 나가겠죠. 그리고……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겠죠."

  

  "그 여자를 사랑하는 것 같소, 페이스."

  

  "오, 바보 소리 말아요!"

  

  그녀는 난생 처음 멸시하는 투로 말했다.

  

  "당신이 보기에 내가 웃긴가요?"

  

  "그녀도 당신을 사랑할 것이라고 믿어요? 그게 정말 웃기는 일 아니고 뭐예요? 

그런 여자가…… 너무도 유명하고 부자인 여자가 뭐가 부족해서 당신과 사랑에 

빠지겠어요? 그녀의 동기가 무얼까요?"

  

  페이스는 천성적으로 잔혹한 여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말은 깊은 상처를 

냈다. 그녀는 그가 다른 여인들에게, 그 중에서도 특히 테스 맥파일에게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페이스는 계속 빈정거렸다.

  

  "그 여자가 무엇 때문에 케이지에게 그렇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지, 당신을 

불러들이기 위한 미끼로 케이지를 이용하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기나 

했나요? 내 말이 그럴듯하지 않나요?"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당신에게 그러 듯이 케이지도 이용하고 버리지는 않을까요? 오, 케니, 그럼 

당신 딸이 겪을 아픔이 얼마나 클지 깨닫지 못하겠어요? 당신 딸은 지금 당신의 

영향력보다도 테스 맥파일의 주문에 더 강하게 걸렸다구요."

  

  그는 갑자기 화가 끓었다. 그는 가능한 화를 누르며 입을 떼었다.

  

  "페이스, 당신과 나는 긴 세월 동안 사귀면서 한 번도 이런 싸움을 한 적이 

없었소. 그런데 지금 와서는 정말 잘도 빈정대는군. 그래서 내가 후회할 말을 

하기 전에 여기서 나가는 게 좋겠소."

  

  그는 문으로 나가다가 어깨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난 내일 L.A.로 갈 거고, 거기서 사흘 동안 지낼 거요. 내가없는 동안 내 

집에서 당신 옷들을 가지고 나가요. 열쇠는 부엌 식탁 밑에 두도록 해요."

  

  그는 양손으로 쇠그물 문을 꽝 소리가 나도록 닫았고 그녀는 얼이 빠진 채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케니!"

  

  그녀는 쫓아 나가며 소리쳤다.

  

  "케니, 기다려요!"

  

  바깥에 나온 그녀는 쫓아가겠다는 마음을 바꾸었다. 계단 위에 그대로 서서 

밤의 어둠 속으로 점점 멀어지는 그를 향해 몸만 내밀었다.

  

  "케니, 제발,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어요. 가지 말아요."

  

  "난 가겠소, 페이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쳤다.

  

  "케니, 어린애처럼 그러지 말아요. 우리 사이를 이렇게 끝낼 수는 없잖아요!"

  

  "이웃 사람들이 다 듣겠군, 페이스. 어서 집안으로 들어가요."

  

  잠시 후 그가 차를 타고 떠났고, 계단 위에 애처롭게 선 페이스는 짧은 시간에 

자신의 인생이 갑자기 변해 버린 사실에 아연했다. 아무 말 없이 그를 그냥 

보내 주었어야 했다. 그를 L.A.로 가게 내버려두고 그녀가 의심하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의 방식대로 하도록 가만 두었어야 했다.

  

  그녀는 입술을 매만지며 마치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부엌 안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모든 것이 말끔했고 질서 정연했다.

  

  "아, 케니."

  

  그녀는 찬장에 쿵 기대고 고개를 젖히며 낮은 소리를 냈다.

  

  "당신은 몹시 괴로울 거예요."

  

  하지만 이 말의 속뜻은 페이스 자신이 겪을 외로움의 상처를 말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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