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24)

  <그남자의 여자>

  

  

  

  

  그로부터 두 달이 안 되어 그들은 케니의 지휘로 그녀가 노래를 불렀던 바로 

그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주말마다 교회에 행사가 있었고 신부 

역시 공연이 아직 남았기 때문에 결혼식은 평일인 수요일 오후 1시로 잡았다. 

테스는 결혼식 전주에는 밴쿠버에서 결혼식 다음주에는 세러버포트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날, 하늘은 높고 뒤뜰에서는 매미 소리가 울려 퍼지는 뜨거운 늦여름의 

이날만큼은 그녀가 팬들 소유가 아니라 단 하나밖에 없는 그 남자의 여자였다.

  

  메어리는 결혼식 1시간 전에 옷을 갈아입고 부엌에서 딸들을 기다렸다. 르니와 

테스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메어리는 두 자매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이 아침의 집안에 퍼져 나가는 것을 음미했다.

  

  "엄마, 저 왔어요."

  

  테스가 부엌으로 들어가는 아치에 섰다.

  

  늙은 여인은 몸을 돌리고 한 손으로 입끌 가렸다.

  

  "오, 세상에. 오……. 평생을 살면서 오늘처럼 기쁜 날은 없었어. 내 결혼식 

날보다도 가슴이 더 설레는구나."

  

  "이젠 울지 마세요, 엄마. 자꾸 울면 르니 언니와 제가 곱게 해드린 화장이 

다 망가지잖아요."

  

  메어리는 감정을 눌렀다.

  

  "한번 돌아 보렴. 신부 좀 보자꾸나."

  

  테스는 신부 드레스를 자랑하듯 한 바퀴 빙글 돌았다. 소매가 어깨 위로 

불쑥 올라오고 목은 네모지게 패였으며 치맛단이 발목에서 10센티미터 내려오는, 

순백색 리넨으로 아주 단순하게 디자인한 새 드레스였다. 구두 역시 하얀 리넨으로 

만든 펌프스였다. 머리는 뒤로 높이 올린 다음 베일 대신 무스카리 화환을 

썼다. 보석이라고는 케니가 결혼 예물로 준, 가장자리에 다이아몬드 장식이 

박히고 에메랄드가 사파이어 옆에서 빛을 발하는 반지에 이것과 맞춘 사파이어 

귀고리가 전부였다.

  

  "아주 예쁘죠?"

  

  르니는 문가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오, 하느님."

  

  메어리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랫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작은 부엌에서 신부가 가장 아름다운 존재인 

것은 틀림없었다.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보았던, 보기 흥한 시계가 시간을 

알려 주었다. 구식 식탁에는 끝이 말려 올라간 플라스틱 접시 깔개가 아직도 

있었다. 수천 군데 긁힌 자국이 있는 포마이카 선반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집안은 바깥 날씨에 비해 서늘했다.

  

  "엄마, 막내딸이 제일 감리교회에서 결혼하는 걸보고 싶으시면 제발 집에 

에어 컨디셔너를 들이도록 허락해 주세요. 신부가 이런 한 여름날 더위를 참으며 

다락방에서 옷을 갈아입을 줄 생각하신다면 그건 오산이에요. 그랬다간 다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기진 맥진해서 교회로 끌려가고 말 테니까요."

  

  그래서 메어리는 냉난방 기구를 설치하는 클라렌스 스필포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클라렌스, 지금 우리 집에 와서 에어 컨디셔너 좀 달아 줘. 내 딸 테스가 

결혼하거든. 신랑은 자네도 알 거야. 케니 크로넥이지. 결혼식이 끝나면 케니는 

내슈빌로 가서 테스 사업을 도와 줄 거야. 케니의 딸 케이지는 어쩌냐구? 요즘 

테스와 같이 노래한다네. 그러니까 클라렌스, 여기 언제 올 수 있지?"

  

  마을 사람 모두 1시간 후에 제일 감리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았다. 

기자들이 벌떼처럼 교회로 몰려올 것이다. 테스는 어수선한 자리에서 신랑을 

맞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케니와 그녀는 한 가지 비밀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메어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 이해하시죠? 케니와 저는 잠시 단둘이 있다가 교회로 같이 가겠어요."

  

  "그러렴. 네 결혼식이니까 네가 하고 싶은 대로하렴. 난 지갑만 찾으면 돼."

  

  요즘 들어 눈에 띄게 걷기 힘들어하는 메어리가 침실 쪽으로 나가는 것을 

본 테스와 르니는 슬픈 웃음을 교환했다.

  

  "오늘 아침 오래 같이 있어 줘서 고마워."

  

  테스는 르니를 껴안았고, 르니는 테스의 등을 쓰다듬었다.

  

  "안 그랬다면 오히려 내가 섭섭했을 텐데, 뭘."

  

  "내가 신부 들러리 부탁하지 않은 거 정말 괜찮아?"

  

  "그럼. 완벽한 들러리를 제대로 뽑았잖아."

  

  "이해해 주니까 정말 고마워."

  

  "모두 준비됐다."

  

  메어라가 돌아왔다.

  

  "르니야, 이제 나가자, 신랑 신부는 자기들하고 싶은 대로하게 내버려두고."

  

  르니는 뒷문에서 걸음을 멈추고 마지막으로 신부를 돌아보았다.

  

  "오늘은 엄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야. 엄마한테 가장 사랑 받는 사위가 

누군지 이제는 물어 볼 것도 없겠어. 이런 사실을 우리 모두가 고맙게 생각해, 

테스."

  

  "고마워, 언니."

  

  그들이 나가자 집안은 조용해졌다. 차문이 닫히고 시동이 걸렸다. 차는 사라졌다. 

부엌에서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만 들려 왔다. 테스는 싱크대 위에 있는 창문으로 

바깥을 살펴보았다.

  

  뒤뜰 잔디는 짧게 깎였다. 텃밭에는 붉은 토마토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케니의 

차고 위편으로 커다란 덩굴이 반짝거렸다. 어린 시절 그와 놀았던 그의 집 

뒷 현관으로 햇빛이 쏟아졌다. 문이 열린 그의 차고 안에 그녀가 결혼 선물로 

사 준 메르세데스 벤츠자동차의 끄트머리가 보였다. 그녀는 기꺼이 결혼 선물을 

한 것이었지만 이제 윈터그린 엔터프라이즈의 부사장이 된 그는 합법적인 세금 

계산을 위해 회사 경비로 지출하라고 충고했다.

  

  그녀는 결혼 생활이 순조로울 것이며 또 앞으로 그가 자기 사업에 커다란 

도움이 되리라는 자신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다시 시간을 확인한 다음 냉장고 위에 있던 치자꽃을 들었다.

  

  "그래, 이제 가야지."

  

  혼잣말을 하고 부엌에서 나오려다가 그녀는 순간 멈추어 서서 독신 여성으로서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부엌을 다시 둘러보았다. 무엇에 이끌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는 순간 예상하지 못했던 향수가 밀려왔다. 

그대로 두자, 내가 언제 돌아 오더 라도 이 모습 이대로 볼 수 있도록. 플라스틱 

깔개도 시계도,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은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도록. 그녀는 

생각했다.

  

  바깥으로 나오자 뜨거운 태양 빛이 머리 위에서 쏟아졌다.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오솔길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5분도 안되어 뒷문으로 케니가 나왔다. 

회색 턱시도에 주름이 잡힌 하얀셔츠를 입었다. 멀리 있긴 했지만 그를 보자 

가슴이 뛰었다. 보수적이기만 한 남자가 예상 밖의 옷차림으로 그녀를 놀라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다시 드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집 뒤뜰 깊숙한 곳에 선 채 서로를 지켜보았다. 고들은 텃밭에 

물을 주기 위해 제멋대로 움직이는 호스를 잡으러 맨발로 뛰어다니던 테스와, 

역시 맨발로 뒷계단에 서서 커피잔을 든 채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케니가 

맞았던 어느 날의 새벽을 떠올렸다.

  

  오늘은 아무도 맨발이 아니었다. 대신 그들이 구상했던 대로하객들을 매료할 

구두를 신었다.

  

  그들은 천천히 걸음을 떼고 무성한 여름 풀밭 사이를 지나 뒤뜰을 건넜다. 

오르간 소리 대신 대황 잎새 어디선가 매미 울음소리가 들렸다. 신부 들러리 

대신 테스 앞에는 하얀 양배추가 줄을 이어 섰다. 교회의 통로 패신 조잡한 

콘크리트 바닥이, 제단 대신 오솔길이 있었다.

  

  그들은 사랑에 빠지는 동안 많이도 만났던, 그의 집과 그녀의 집 중간 지점에 

이르렀다.

  

  태양이 얌전하게 빗질한 그의 검은머리와 그녀의 붉은 곱슬머리 위에서 반짝거렸다.

  

  그는 그녀가 든 치자꽃을 살짝 밀치며 그녀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안녕."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안녕."

  

  "결혼 축하하오."

  

  "당신도 결혼 축하해요."

  

  "당신은……."

  

  그는 적절한 말을 찾아냈다.

  

  "눈부셔요."

  

  "나도 느껴요. 당신은 아주 멋있어요."

  

  "난 세상에서 제일 가는 행운아요."

  

  그들은 잠시 웃음을 지었고, 그가 다시 말했다.

  

  "준비됐소?"

  

  "네."

  

  "나도. 그럼 합시다."

  

  그녀는 잠시 시선을 떨어뜨린 다음 다시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나, 테스 맥파일은."

  

  "나, 케니 크로넥은."

  

  "당신 케니 크로넥을."

  

  "당신 테스 맥파일을."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사랑하는 남편으로 맞이하겠습니다."

  

  "내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사랑하는 아내로 맞이하겠습니다."

  

  "오늘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하고."

  

  "오늘 당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당신을 사랑하고."

  

  "모든 것을 버리며."

  

  "모든 것을 버리며."

  

  "우리가 가진 모든 것과 앞으로 가질 모든 것을 나누겠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 일할 때나 쉴 때, 걱정과 염려……, 당신의 딸…… 내 

어머니와…… 모든 사람들과 의무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서로에게 친절하며."

  

  "네, 그리고 존경하며."

  

  "당신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당신이 어려울 때 힘이 되고 당신이 위로 받고 

싶을 때 위로가 될 것을 맹세합니다."

  

  "당신과 같은 맹세를 합니다."

  

  그들은 빠뜨린 게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난 당신의 팬들과…… 그들이 당신을 요구한다 해도 질투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그녀는 웃음 지었다.

  

  "케니, 정말 마음도 넓지."

  

  "이게 아마 제일 힘든 일일 거요."

  

  그녀는 그의 손가락을 만지며 대답했다.

  

  "나도요. 당신을 멀리 떠나 있으면 힘들 거예요."

  

  그들은 다시 말을 잃었고 웃지도 않은 채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웃으면 그 

만큼 이 순간이 줄어드는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케니, 사랑해요."

  

  "사랑해요, 테스."

  

  "영원히."

  

  "영원히."

  

  머리 위 어디선가 파리 한 마리가 윙윙거리고 늦여름 태양에 치자꽃 향기가 

코를 찌르고 자갈이 깔린 오솔길에서는 먼지 냄새가 났지만 그는 머리를 숙여 

그녀에게 가볍게 키스했다.

  

  그가 다시 몸을 펴자 두 사람은 활짝 웃었다.

  

  "벌써 결혼한 기분이 들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도 그래요. 이젠 모든 사람 앞에서 그 기분을 다시 확인합시다."

  

  

  

  놀랍게도 결혼식은 제일 감리교회에서 펼쳐진 결혼식 중 가장 점잖은 결혼식이었다. 

사람들은 연예인들이 축가를 부르는 화려한 결혼식을 기대했지만 대신 병이 

나은 애서턴 부인이 지휘하는 제일 감리교회 성가대가 축가를 불렀다. 또 몇십 

명이 들러리를 설 거라는 예상도 단 2명의 들러리로 깨졌다. 그렇더라도 들러리는 

당연히 남자와 여자여야 했다. 하지만 케이지 크로넥과 메어리 맥파일이 교회 

통로를 걸어 올라가는 순간 그 전통 역시 깨졌다. 신부가 나타났다. 버섯 형태로 

부풀어오른, 수천 달러 짜리 고급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보리라 기대했던 하객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신부는 단순한 드레스를 입었고 

머리에는 그보다 더 소박한 화환을 얹었을 뿐이었다.

  

  신부는 통로를 걸어가는 동안 내내 케니를 보고 웃음 지었다.

  

  신랑은 기딩스 목사와 같이 제단 옆에서 신부를 기다렸다. 목사가 말했다.

  

  "이 여인을 이 남자에게 결혼시키겠습니까."

  

  메어리가 먼저 대답했다.

  

  "네."

  

  그 다음은 케이지가 대답했다.

  

  "네."

  

  이 두 사람이야말로 오늘의 결혼식을 공식적으로 축복하기에 가장 적절한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케니가 메어리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으며 그녀를 어떻게 

돌봐 왔는지, 또 케이지의 친할머니가 죽은 다음 메어리가 케이지를 마치 친 

손주처럼 돌보아준 사실을 이 교회에 있는 모든 사람이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전통이 깨진다 한들 그 유명한 테스 맥파일이 자기 결혼식에 두 여자를 증인으로 

내세우지 않으면 누구를 내세운단 말인가.

  

  신부는 장미를 주는 방법에서도 다시 한 번 전통을 깨뜨렸다. 일반적으로는 

신랑 신부의 부모가 인사를 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케니는 메어리에게 장미를 

주었고 테스는 케이지에게 주었다. 이네 사람이 얼굴을 비빌 때 그들의 눈에는 

흐릿한 안개가 서렸다.

  

  하객들이 놀랄 일은 또 있었다. 결혼 서약이 끝나자 신부가 마이크를 잡고 

신랑을 위해 노래를 부른 것이다. 곧이어 케이지까지 다른 마이크를 잡고 화음을 

맞추자 이젠 놀랄 일도 아니었다. 누가 이런 결혼식을 예상이라도 했겠는가? 

지금 새 어머니와 의붓딸이 이중창으로 부르는 이 노래는 둘이 같이 지은 것으로 

앞으로 나올 테스의 새 앨범에서 타이틀곡이 될 노래였다.

  

  크로넥과 맥파일 집안의 결혼식을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없지는 않았는데, 

내슈빌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테스의 친구들이 많았던 것이다. 테스의 친구들은 

공항에 나타났을 때부터 식당과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테스가 친구로 손꼽는 이들은 뭐니뭐니 해도 자타가 공인하는 컨트리 음악계의 

거목들이었기 때문이다.

  

  신랑 신부는 환호성을 지르며 교회 바깥으로 나간 다음 손님들 한명 한명과 

인사를 나누었다. 스타들 역시 다른 하객들과 똑같이 집사의 안내를 받아 인사를 

나누면서 새롭게 탄생한 부부를 축하해 주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윈터그린 

사람들은 어느새 스타들과 팔짱을 끼고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혼식장에는 스타 이상으로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페이스가 온 것이다. 

테스와 케니는 그녀를 초대할지 말지 고민했지만 결국 페이스가 케니의 인생에서 

중요한사람이었음을 인정했고, 그럼 당연히 초대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페이스는 철두철미하게도 교양 있는 숙녀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처럼 줄을 

서서 신랑 신부를 기다리는 적절한 행동을 보였고 테스의 손을 잡을 때는 웃기까지 

했다.

  

  "테스, 결혼을 축하해요. 아주 아름다워요. 오늘 초대해 주어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케니의 손도 잡았다. 마음이 아픈 것은 잠시 잊고 단지여기 왔다는 

기쁨만 생각하며 웃었다.

  

  "케니, 당신과 테스가 오래도록 아주아주 행복하기만을 빌겠어요."

  

  신랑 신부는 흰색 리무진을 타고 커런트 리버 코브로 향했다. 피로연장은 

여느 때하고는 사뭇 달랐다. 미국 남부의 시골 냄새를 물씬 풍기는 닭튀김 

냄새가 났다. 테스의 밴드가 연회장 음악을 맡았고 내슈빌에서 알아주는 스타들은 

한 사람씩 나와 노래를 불러 춤추는 사람들의 흥을 돋우었다. 즉흥 쇼가 한참 

무르익어 갈 때 주디는 발끈 화가 나서 머리를 흔들어 대며 숙녀용 휴게실로 

들어갔다.

  

  "그 잘난 친구들을 데리고 유세를 떠는 꼴이라니!"

  

  그녀는 립스틱을 고쳐 칠하던 두 여자에게 씩씩거렸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야."

  

  주디는 테스의 생활이 보여 주는 단면을 어느 것 하나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유명인들이 동생의 친구라는 사실을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하객으로 온 스타들은 

테스처럼 앨범이 수백만 장씩 팔리고 유명한 잡지의 표지에 얼굴이 나온 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이 백만 장자였다. 하지만 테스가 오늘 이들을 초대한 것은 잘난 

체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들 역시 테스에 대한 진정한 애정 때문에 

바쁜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오늘 결혼식에 참석한 것이다.

  

  주디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는 빈스 질과 레바 매킨타이어가 자신들이 오래 

전 발표했던 히트곡 <오클라호마 스윙>을 부르던 중이었다. 댄스 플로어에서 

춤을 추던 테스는 주디를 보자 이제 막 남편이 된 케니에게 말했다.

  

  "주디 언니예요. 또 시샘이 났나 봐요."

  

  그는 테스의 얼굴을 자기 쪽으로 돌리게 하고 말했다.

  

  "당신, 이거 알아요? 당신이 애써도 주디의 마음은 쉽게 돌이킬 수 없어요."

  

  "이젠 알아요."

  

  "주디가 당신 결혼식을 망치도록 그냥 내버려두진 않겠지요?"

  

  그녀는 솔직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요."

  

  그녀는 주디의 뿌리 깊은 질투심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화가 

나는 대신 언니에 대한 연민이 찾아들었다. 댄스 플로어 한구석에서는 질투심 

많은 주디와는 정반대로 지속적인 사랑과 확신을 보내 주는 르니가 짐과 같이 

춤을 추었다. 저쪽에 또한 사람이 있었다. 어머니였다.

  

  지금 엄마가 누구와 이야기를 하시지? 바로 앨런 잭슨이잖아!

  

  둥그런 식탁에 앉은 메어리는 카드 파티라도 벌이듯이 테스의 친구들 틈에 

파묻혔다.

  

  "엄마 좀 보세요."

  

  테스가 말했다.

  

  케니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껄껄 웃었다.

  

  "장모님이 오늘도 샴페인에 얼큰하게 취하시겠는걸."

  

  "6개월 전 앨런을 찾아가 미안하다고 사과할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엄마 

덕분에 사과할 일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엄마는 엄마답게 그대로 계시고, 

난 저런 엄마를 사랑해요."

  

  두 사람은 메어리에게만 작별 인사를 하고 몰래 사람들 틈을 빠져 나올 생각이었다. 

메어리가 말했다.

  

  "두 사람 가능한 빨리 집에 찾아와야 해."

  

  "그럴게요."

  

  "케이지가 여기 있는 동안 내가 잘 돌볼게."

  

  케니가 1주일 먼저 내슈빌에 가 있는 동안 케이지는 케니의 새 자동차 메르세데스를 

돌보며 윈터그린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고마워요, 엄마."

  

  테스가 인사를 했고 모녀는 키스를 나누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

  

  케니는 진실한 마음을 담아 처음으로 메어리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메어리는 케니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뺨에 입을 맞추었다.

  

  "사랑스러운 내 사위, 자네 어머니도 이 순간 하늘에서 웃으실거야. 자, 

이젠 마누라를 데리고 여길 빠져나가야지."

  

  그들은 케이지는 만나 보고 나가기로 했다. 케니는 새 자동차열쇠를 딸의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새 메르세데스 조심해서 타야 한다."

  

  케이지는 케니의 뺨에 쪽 입을 맞추었다.

  

  "아빠야말로 새 엄마에게 정성 들여 조심하세요."

  

  그런 다음 케이지는 테스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안녕, 맥 엄마, 신혼 여행 잘 보내세요."

  

  공항으로 가는 길에 리무진은 콘 핸드릭슨 정유 트럭 뒤를 따라갔다.

  

  테스는 가죽 의자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큰 소리로 웃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소?"

  

  "지난 4월 집으로 돌아올 때 일이 생각나서요. 그때도 난 콘의 트럭 뒤꽁무니를 

따라 마을 광장을 뺑뺑 돌았어요. 우리가 만났던 그날 말이에요."

  

  "으음……."

  

  "그런데 저 차를 또 만났잖아요."

  

  "저 차를 이번엔 잡아 봅시다."

  

  그들은 쓰리 리버스 공항에서 대기중이던 전용 비행기를 타고 내슈빌로 간 

다음 거기서 Z를 탔다.

  

  그녀는 남편을 향해 싱긋 웃으며 물었다.

  

  "드라이브하는 게 어때요?"

  

  "야호."

  

  그는 익살맞게 웃고는 자동차 열쇠를 받았다.

  

  "무엇보다도 이번이 진짜 사랑이겠군, 그렇지 않소?"

  

  테스 맥파일 크로넥 정도의 백만 장자라면 이국적인 도시에 가장 화려한 

신방을 마련하고 결혼 첫날밤을 보내야 마땅하리라. 하지만 고급 호텔 맛을 

볼 만큼 본 그녀는 집이야말로 가장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비록 케니의 물건을 상당수 옮겨 놓긴 했지만 그 자신은 아직 완전히, 이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들은 몇 가지 이유로 결혼 첫날밤이 될 때까지 테스 

집에서 같이 자는 일을 미루어 왔다. 한가지 이유는 케이지 때문이었다. 비록 

이미 L.A.에서 테스의 객실에 같이 있었던 사실을 들키긴 했지만 바로 홀 아래 

사는 딸에게 나쁜 본보기를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또 하나는 언제 어느 때라도 

싸구려 잡지의 머리 기사 거리를 찾아 헤매는 기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케니와 테스의 의지, 곧 결혼식을 한 날 밤을 자신들의 

기대와 사랑을 완성하는 날로 스스로 택한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집에 도착하자 케니가 말했다.

  

  "내가 주인 노릇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크로넥 부인?"

  

  그녀가 대답했다.

  

  "이젠 다른 도리가 없잖아요, 크로넥 씨."

  

  케니는 테스를 안았다. 온 집안에 조용한 음악이 흘렀다. 하지만 그것은 

컨트리 음악도 록음악도 아닌 드뷔시의 <환상곡>이었다. 현관에서 잠시 키스를 

한 다음 그는 그녀를 내려 주었다. 마리아는 브랜디를 넣은 소스를 곁들인 

닭 가슴살 요리와 바삭바삭한 프랑스 빵을 준비하고 냉장고에는 엉겅퀴 샐러드를 

넣어 두었다. 두 사람을 위한 식탁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고 유리잔에는 흰장미 

한 송이가 꽂혔다. 거실 피아노 의자에는 선물 꾸러미가 산처럼 쌓였다. 계단을 

올라 침실로 연결되는 이중문을 열자 화장대에 놓인 붉은 장미 꽃다발에서 

향기가 퍼져 나와 온 방을 채웠다.

  

  케니는 문가에 서서 테스의 손을 붙잡았다.

  

  순간 그는 단순히 보고 받아들이는 것 이상의 넘치는 감정을 느꼈다.

  

  "내가 이곳에서 당신과 살게 되다니 꿈만 같소."

  

  "나도 때로는 믿기지 않을 때가 있어요."

  

  "저걸 봐요, 우리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우리가 무엇을 얻었는지."

  

  "사랑도 있어요. 행운 중에서도 사랑이 조금 더 큰 것 같지 않아요?"

  

  행운은 당연히 그들의 편이었다. 두 사람은 둘이 같이하는 인생이 기다리는 

곳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커다란 침대에 앉아 마리아가 만들어 준 맛있는 호두 닭구이를 먹고 잠깐 

수영을 한 다음 바닥에 앉아 결혼 선물들의 포장을 뜯었다. 이제 작은 선물 

하나만이 남았다.

  

  "엄마가 이걸 마지막에 뜯어보라고 하셨어요."

  

  테스가 말했다.

  

  "이젠 뜯어도 돼요."

  

  그가 말했다.

  

  그녀는 스카치 테이프를 뜯기 시작했다.

  

  "이 안에 뭐가 있을까요?"

  

  "글쎄, 모르겠는걸."

  

  그것은 지갑보다도 작은 상자였다. 포장을 모두 뜯어내고 작은 판지를 들치자 

무언가 그녀의 손 안으로 떨어졌다. 사진 액자였다 그 안에는 테스와 궤니가 

두세 살쯤 되었을 때 메어리의 집 뒷계단에서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맨발의 

두 아이는 마치 사진을 찍기 전 한바탕 장난을 쳤던 듯 발가락을 계단에 걸치고 

무릎을 꿇고 앉아, 검정이 묻고 햇빛에 까맣게 탄 얼굴로 수박을 먹었다.

  

  테스는 그날 메어리가 느꼈을 감정을 똑같이 경험했다.

  

  "아, 이것 좀 봐요."

  

  그도 사진을 보았다. 무언가 걸린 것처럼 목이 뜨거워졌다.

  

  "이 사진 본 적 있어요?"

  

  그녀가 물었다.

  

  "못 본 것 같소."

  

  그녀는 유리 액자에 낀 먼지를 닦았다. 

  

  "그 동안 이 사진을 어디에 두셨을까요?"

  

  "어머니 장롱 안에 있었겠지요. 어머니들은 소중한 것을 그런데다가 보관하니까."

  

  "두 분은 이때부터 오늘이 있을 줄 아셨을까요? 같이 노는 우리를 보면서?"

  

  "어머니란 때로 보통 사람이 못 보는 것도 내다보지요."

  

  그들은 자신들이 운명의 끈으로 매어졌다는 사실에 다시 키스를 했고 어느 

때보다도 깊은 애정을 느꼈다.

  

  "몇 시죠?"

  

  그녀가 물었다.

  

  "11시가 다 됐소."

  

  "상관없어요. 엄마에게 전화하겠어요."

  

  그는 환하게 웃음을 지은 다음 벌떡 일어서서 그녀를 잡고 일으켜 주었다.

  

  "그래, 전화합시다!"

  

  그들은 사진 액자를 손에 든 채 전화를 걸었다. 메어리를 깨우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자신들이 얼마나 행복한지 말해 주었다. 케이지와도 통화를 해야 

했는데, 그저 간단하게 잘 자라는 말과 사랑한다는 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2층에 올라가면서도 그들은 사진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에 

깰 때마다 볼 수 있도록 침대 옆 탁자에 잘 세워두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또 그 다음날 아침에도 이 사진은 그들을 지켜 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사진을 들여다볼 때마다 케이지가 호텔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마치 이렇게 되도록 예정되었던 것 같지 않아요?"

  

  이 생각을 떠올리며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향해 웃음 지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대답은 필요 없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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