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4)

  <예정된 운명>

  

  

  

  

  테스의 거실 끝에 있는 소파 위로 램프 하나가 부드럽게 이글거렸다. 그녀는 

램프를 켜 둔 채 침구 정리가 된 침실로 들어갔다. 종이 비행기처럼 얇은 시트 

자락이 침대 아래로 늘어졌다. 베개들 위에는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가 적힌 

작은 카드와 금박지로 싼 동전 크기의 초콜릿이 2개 놓여 있었다.

  

  모든 준비가 다 되어 누울 사람을 기다리는 침대를 보자 그녀의 마음에 즐거운 

긴장감이 일어났다. 성적인 조바심을 누르면서 그의 얼굴 생김생김 하나를 

마음속에 떠올려 보았다. 사람들이 가득 찬방에서 그녀와 똑같은 정욕을 누르려고 

애를 쓰며 자신을 보던 케니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컵에 담긴 물의 표면이 

부풀어오르듯이 인간의 능력으로는 다 담아 둘 수 없을 정도의 감정이 자기 

속에 숨어 있는 것을 느꼈다.

  

  몸이 떨리는 이런 감정은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뺨 화장을 지울 때가 되자 

몸밖으로 넘쳐 날 것 같았다.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수건 하나로 몸을 

두르고 다른 수건으로 머리를 말렸다. 프리지어 향이 나는 향수를 뿌리고 흘린 

듯한 눈으로 거울에 비친, 수건으로 감싼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았다.

  

  그녀는 가슴 사이 움푹 들어간 자리에 있는 주근깨를 만져 보고 떨리는 배에 

손을 얹었다. 그의 눈에 이 모습을 보여 주어 그를 기쁘게 하고 싶었다.

  

  오늘밤이야,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호텔에서 제공한 하얀색 잠옷을 걸친 다음 머리에 두른 수건을 끄르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빗으며 그가 오기만을 안타깝게 기다렸다.

  

  

  

  케니는 택시도 재킷을 옷걸이에 걸고 보 타이를 풀었다. 얼굴을 씻은 다음 

잡지를 들고 자리에 앉아 시계를 보았다. 그녀에게 10분의 시간을 줄 참이었다.

  

  6분이 지났을 때 그는 자기가 잡지를 한 줄도 읽지 않고 한 장도 넘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잡지를 내팽개치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열쇠를 

호주머니에 넣고는 문으로 나갔다.

  

  리전트 호텔의 객실에는 초인종이 있었다. 그가 그녀의 객실초인종을 눌렀을 

때는 1시 27분이었다. 방문을 하기에는 이상한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의 생활 양식 또한 기묘하다면 기묘한 것이었다 그러자 결혼을 하면 두 

사람의 생활을 조화시킬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케니?"

  

  안쪽에서 부드러운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요."

  

  문이 열렸고, 그녀가 거기 서 있었다. 맨발에 제 몸집보다 훨씬 큰 하얀 

잠옷을 입고 비틀어 올린 젖은 머리에 말쑥한 얼굴이었다. 방 안 어디선가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무대 위의 화려하고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지운 그녀의 

자태는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는 아주 간단하게 말했다.

  

  "당신이 안 올 줄로만 알았어요."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문이 자동으로 닫혔다. 그는 그녀의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도록 그녀를 꼭 붙들고 위로 들어 올렸다. 첫 키스는 정교함이 문제가 

아닌 갈망 그 자체였다. 굶주린 사람처럼 입술을 연 두 사람의 육체는 그 동안 

헤어져 있었던 시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듯 서로에게 매달렸다. 그가 그녀 

몸을 내려 주자 둘은 끈 하나로 묶인 것처럼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키스는 새로운 기술과 쾌락을 실험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위로 몸을 묻으며 신음 소리를 냈다.

  

  그들은 간신히 입술을 떼었다.

  

  "이렇게 사랑을 나누기 전에 죽을 줄로만 알았어요."

  

  그녀는 키스를 하면서도 비단 같은 혀를 놀렸다.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오."

  

  그의 이가 그녀의 윗입술과 콧잔등과 눈썹 사이를 헤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남자만이 얻을 수 있는 자랑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놈들 엉덩이를 걷어차고 싶었소. 한명 한명 모두 다! 그 사람들이 당신에게 

그런 짓을 할 권리가 없다고 믿었으니까. 당신은 그 사람들 것이 아니라 내 

여자니까 말이야!"

  

  자신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그가 몹시도 사랑스러워 그녀는 빙그레 웃었다.

  

  이만하면 말은 충분했다. 그들이 같은 마음으로 기다렸던 격렬한 순간을 

위해선 쓸데없는 말로 입술을 허비하지 말아야 했다. 그는 다시 그녀의 입술을 

찾아내고, 덮고, 음미하고, 붙들어 놓았다. 그는 그녀의 등 아래로 손을 더듬어 

심장이 터질 듯이 강하게 눌렀다.

  

  물론 계속 이런 식으로 서로의 몸을 떠받치기는 힘들었다. 그들은 곧 다른 

무언가를 원했다. 그는 서서히 팔을 풀었고 그녀의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았다. 

그들은 몸을 떼는 순간에도 서로의 눈만을 들여다보았다. 한 사람이 웃었다. 

케니였다. 그는 웅얼거리는 소리로 물었다.

  

  "우린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그렇지 않소?"

  

  그녀도 따라 웃었다.

  

  "네, 그리고 아주 멋있지 않아요?"

  

  그는 그녀의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두 사람은 그가 처음 방안에 

들어왔을 때 서로의 얼굴을 감상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듯 이제서야 한참 동안 

서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다시 키스가 이어졌다. 처음의 필사적인 강렬함은 

많이 가라앉은 부드러운 키스였다. 그들은 손바닥을 넓게 펼쳐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서로의 몸을 훑어 갔다. 시간이 흐르도록 두 사람은 방 건너편에서 

비치는 흐릿한 램프 불빛이 닿는 문 가까이 에서 떠날 줄 몰랐다. 그가 그녀의 

허리띠를 풀려 하자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먼저 알아야 할 게 있어요. 당신과 페이스 문제인데."

  

  그는 웃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미련도 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내 집에서 자기 물건을 모두 가져가라고 이야기했소. 우리 사이는 이제 

끝났소."

  

  "정말요? 모든 것이?"

  

  "당신에게 거짓말하지 않아요, 테스. 페이스 이야기도 거짓이 아니야."

  

  그런 다음 그는 덧붙였다.

  

  "아무 것도 속이지 않아."

  

  그는 그의 말이 참말인 것을 알았다. 처음부터 그 자신과 페이스 문제에 

대해선 한 번도 그녀를 속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가 그의 손을 놓자 허리띠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따스한 그녀의 

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녀의 허리로 다가오는 손에서 흐릿한 향기가 

났다. 그는 부드럽게 그녀를 끌어안고 살짝 들어 올렸다. 둘의 치골이 닿으면서 

서로에게 더 가까워지는 기쁨으로 동의의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둘렀고, 그가 침착하게 몸의 균형을 잡는 동안 얌전하게 매달렸다.

  

  "냄새가 좋아."

  

  그는 중얼거리면서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마차에 그녀를 실을 것처럼 여전히 

그녀를 들어 안았다. 그녀를 실을 곳은 다른 방에 있는 침대뿐이리라.

  

  "당신을 위해 준비한 게 있어요. 프리지어 꽃이에요."

  

  "프리지어, 어디 있소?"

  

  "사방에."

  

  그들은 자신들의 리비도가 몸 속에서 부풀어오르는 사이 희롱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그가 몸을 굽혀 가슴 사이에 키스를 하리라 생각했다. 대신 

그는 그녀를 다시 고쳐 안고는 목과 얼굴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잠옷을 헤치고 

그녀의 따스한 등을 애무하려 했지만 빳빳하게 풀을 먹인 그의 셔츠 소매가 

방해를 했다. 그는 셔츠 소매를 끌어올린 다음 그녀의 등골뼈에서 아무 것도 

걸리지 않은 엉덩이까지 스르르 손을 내렸다. 그리고 드디어 햇빛을 먹고 익어 

가는 과일처럼 예쁜 젖가슴 위로 손을 옮겼다.

  

  이렇게 처음으로 맨살을 만지는 순간 두 사람은 지금까지 이 순간 만을 상상하며 

살아온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제 그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지자 온기가 퍼지면서 

더 깊은 곳을 향한 갈망이 솟아났다. 그녀는 머리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고 

두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잡았다. 그는 잠옷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맨살에 

머리를 대었다.

  

  "당신이 너무도 그리웠어요."

  

  그녀가 말했다.

  

  "나도 당신이 보고팠소."

  

  그는 그녀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대답했다.

  

  "너무도……."

  

  "내가 윈터그린을 떠났을 때……."

  

  그가 손가락을 꿈틀거리자 그녀는 몸서리를 치며 몸을 웅크리다가 다시 그의 

두 손에 자신의 몸을 내맡겼다.

  

  "그땐……."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단어가 달아난 것 같았다.

  

  "그땐……."

  

  "지옥으로 가는 기분이었겠지."

  

  그가 대신 속삭여 주었다.

  

  "네, 지옥이었어요."

  

  그녀는 그의 턱에 이마를 기대었다. 헝클어진 머리 위로 그의 숨결이 닿았다. 

그녀는 그의 모직 바지로 손을 늘어뜨리고 그 안에 감싸 인 그의 다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테스."

  

  그는 가쁘게 숨을 쉰 다음 입을 닫았다. 이곳에 이 여인과 같이 있다는 사실과, 

꿈과 같은 사랑을 나누는 것과, 그 오랜 세월동안 잡을 수 없었던 그녀의 손이 

이제 자신을 만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침대로 데려가 줘요, 케니."

  

  그녀가 속삭였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밝히는 테스를 깨닫는 순간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옛날의 

테스는 이제 수백만 명의 우상인 슈퍼스타 맥이 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자신은 그토록 그녀를 원했던 만큼이나 그녀가 원하는 그런 남자가 될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심경에 변화가 생긴 것을 눈치 챘다.

  

  "케니, 무슨 일이죠?"

  

  그녀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

  

  "아니오, 그저."

  

  그는 잠시 괴로운 표정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와 같이 있는지, 또 당신이 방금 한말……. 조금 

놀랐소. 나 역시 현재의 당신에게 조금은 넋이 나간 사람이란 걸 깨달았나 

봐요. 그게 전부요."

  

  "너무 그러지 말아요. 난 그냥 나예요, 테스일 뿐이죠."

  

  그녀는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래, 그저 당신, 테스일 뿐이지. 학교 버스를 같이 탔던 그 소녀야. 그 

소녀가 맥이 되었소. 그건 내 손이 닿을 수 없는 여인의 이름이었지요. 그런데 

당신은 다시 테스가 되어서 나와 같이 침대로 가기를 원하잖소. 인생에는 믿지 

못할 일이 가끔 일어난다는 것을 당신은 알지 모르지만."

  

  "그래도 당신이 나에게 주는 의미만큼 놀랍고 신기한 일은 없을걸요. 케니 

크로넥, 이웃집에 살던 소년. 누가 이걸 믿겠어요."그녀는 생긋 웃고 다시 

말했다.

  

  "침대로 데려가 줘요, 케니. 제발."

  

  그는 신부를 안고 교회를 나가는 신랑처럼 그녀를 안아 들고 밝은 빛이 쏟아지는 

침실 쪽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의 목을 꼭 붙들고 그의 턱에 따스한 입술을 

눌렀다. 백단향 냄새가 났다. 그녀는 이 냄새를 깊이 들이마셨다. 깔끔하게 

면도한 목에서 작은 땀방울이 솟았고 그녀는 혀로 그 냄새를 핥았다.

  

  "냄새가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머리 위에서 그는 씨익 웃었다.

  

  "날 따라하는군."

  

  "흐으음……."

  

  그녀는 그렇지 않아요 하는 뜻으로 콧노래를 불렀다.

  

  "이 냄새가 어디서 나는지 알고 하는 소리예요, 미스터 크로넥."

  

  그는 웃음을 지으며 운명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서 그녀의 다리를 풀어 주었다. 

그녀는 침대에 다리를 내리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잠옷이 몸 아래로 펼쳐졌다. 

그녀는 그의 셔츠에 있는 검은색 줄마노 단추를 만졌다. 그가 소매 단추를 

풀 때 그의 손가락 관절이 그녀의 가슴에 부딪혔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웃었다.

  

  그녀는 그의 셔츠 앞자락에 대고 웃음을 지었다.

  

  그는 그녀의 머리 위에서 웃음을 짓고 그 머리에 입을 맞춘 뒤 허리를 굽혀 

구두를 벗었다.

  

  "오늘 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둘 다 알아요. 그렇죠, 케니?"

  

  "그래, 알아요."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콘돔을 꺼내고 그녀 뒤 침대 위로 던졌다. 그녀는 

그의 허리 단추를 풀었고, 그는 지퍼를 내렸다. 두 사람은 팬티만 남기고 그의 

옷을 모두 벗겼다. 실크로 만든 팬티였다. 초록색 바탕에 주황색 고양이 그림이 

있었다.

  

  "당신이 실크 팬티를 입었어요?"

  

  그녀는 놀랍고 재미있어서 등을 뒤로 빼고 놀리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게다가 고양이 그림까지?"

  

  "새로 장만했소. 테스 맥파일을 침대로 데려가는 남자라면 이 정도는 입어 

주어야 할 것 같아서."

  

  "남자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상상을 하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요. 그럴 만한 

남자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요."

  

  "그 문제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합시다."

  

  그는 그녀를 끌어안으며 키스했다.

  

  "이야기할 게 산처럼 쌓였어요."

  

  "으음……."

  

  먼저 알몸이 된 그는 옷을 벗으려 하는 그녀의 무릎을 타고 올라가 그녀의 

잠옷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그는 아주 천천히 얼굴을 돌려 그녀의 어깨에서 

잠옷을 밀어 버리고 옆에 있는 시트를 부드럽게 구겼다. 잠옷과 시트가 부드러운 

동작으로 하나가되어서 동시에 떨어졌다. 그들은 처음으로 서로의 몸에 가까이 

닿았다. 거친 숨소리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똑같은 육감을 폭발시켰다. 처음에는 눈을 뜨고, 그 다음에는 감고, 

부드럽게 키스를 하며, 그 다음에는 원시적인 힘에 이끌리며.

  

  그는 낮은 소리로 속삭이기도 했다.

  

  "오, 테스……."

  

  바보가 되어 버린 남자가 자신의 느낌을 똑바로 전할 다른 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부드럽게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대답했다.

  

  "케니……. 케니……."

  

  그녀 역시 적절한 다음 어휘를 찾을 수 없었다.

  

  잠시 뒤 그가 속삭였다.

  

  "이렇게……?"

  

  그녀는 숨을 토하며 목을 뒤로 굽혔다.

  

  "응……."

  

  그리고 그녀는 시트 밑을 뒤져 콘돔을 찾아냈다.

  

  "그럼…… 이제 꺼내요."

  

  그리고 아무 부끄러움 없이 똑바로 쳐다보자, 그는 그녀의 말대로 했다.

  

  그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관자놀이에 붙은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며 다른 남자에게는 하지 않았던, 바로 이 남자만을 위한, 어떤 말을 

해야 한다는 충동을 느꼈다.

  

  "이제 말할게요, 케니. 사랑해요."

  

  그녀는 그의 얼굴에서 읽는 그 표정이 한없이 좋았다. 사랑의 의혹이 모두 

가시고 기쁨에 찬 얼굴이었다.

  

  "다시 한 번 말해 봐요, 테스."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는 자신의 영혼이 무언가를 잡았다는 느낌에 또 결국은 자신이 이 말을 

내뱉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랐다.

  

  "오, 하느님, 그래요, 난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는 환희에 들떴다.

  

  그는 그녀의 손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몸 속으로 그가 들어오자 그녀는 눈물을 흘렸고 두 사람은 동시에 

놀라운 절정으로 올라갔다. 그는 그녀의 살갗을 지나 그녀의 영혼 속으로, 

그녀의 마음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갔다.

  

  테스의 인생에서 지금 이 순간만큼 아름다운 풍경은 없었다. 그녀가 사랑을 

고백하고 음미하고 또 가장 완벽한 방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입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그는 천천히 움직이면서 속삭였다. 봄날의 어느 밤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나는 뒤뜰 잔디밭에서 처음 시작되었던 사랑을 이제 완성하는 중이었다.

  

  

  

  2시 15분이었다. 그들은 램프 불빛 밑에 누워 있었다. 피곤했지만 육체의 

피로는 기꺼이 받아들였으며 이 밤의 단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베개 

하나를 나누어 벤 두 사람의 몸은 거의 얽혀 있었다. 그의 눈가에 피곤이 어리면서 

오래 전에 잡혔을 주름이 보였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그 주름을 따라 더듬으며 

아까 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케니 크로넥, 옆집 살던 소년……. 누가 당신이 그런 사람인줄 생각이나 

했겠어요?"

  

  "난 아니오."

  

  그는 이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천년이 지나도 아니오."

  

  "난 지금 영 딴사람이 된 것 같아요."

  

  "아니오, 당신은 다른 어떤 사람이 아니오."

  

  그는 눈을 떴다.

  

  "언제부터인지 기억을 하지 못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당신을 사랑해 왔으니까."

  

  그녀는 그가 사무실에 간직하는 신문 기사 철이 떠올랐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오, 케니."

  

  "사실이오. 당신은 내가 죽어도 잊지 못할 여자였어요."

  

  "당신에게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없어서 미안해요. 하지만 난 올 봄에야 당신이란 

놀라운 존재에 눈을 떴고, 그러면서도 당신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부인했죠."

  

  그녀는 그의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만졌다.

  

  "하나 알고 싶지 않아요?"

  

  "음?"

  

  "난 윈터그린에서 돌아온 다음 줄곧 결혼식이 있었던 그날 어머니 집 뒤뜰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했어요. 우리가 다시 그런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면서요."

  

  "당신도 그랬소? 나도 같은 생각을 했지. 하지만 당신이 설마 그런 생각을 

하겠느냐고 나 자신을 비난했어요. 그런데 기회가 있었을 때 왜 하지 않았소? 

난 그날 밤 너무도 간절히 당신을 원했는데."

  

  "나도 당신을 간절히 원했어요."

  

  "그리고 갑자기 당신은 떠났고 난 기회를 잃고 말았어요. 당신이 떠난 다음 

당신 어머니 집 창가를 보며 거기에 당신이 더 이상 없다는 생각을 하자 미치도록 

외로워지더군."

  

  "난 전화가 울릴 때마다 가슴이 뛰었어요. 당신 전화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당신 전화가 아니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우울해졌어요. 그건 전에 

없던……. 누군가를 미치도록 그리워하는 것은 피를 말리는 일이었어요."

  

  "그런데 왜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소?"

  

  "모르겠어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 올렸다.

  

  "아마 두려웠던 게죠. 나 자신의 감정을 추스리기가. 또 그 감정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

  

  "나는 달랐소. 난 당신이 떠나자마자 진실을 알았지."

  

  "페이스와 같이 지 내면서도요?"

  

  "페이스와 난 서로에게 편리만을 제공하는 사이가 되어 갔소. 그녀는 내 

셔츠를 다려 주었지. 난 그녀의 집 잔디를 깎아 주고. 하지만 서로에게 편리만 

추구하는 관계는 평생을 가기에는 부족하지. 적어도 내게는 그랬소. 잠시 그녀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던 참에 당신이 고향에 돌아왔고, 페이스와 함께 

하는 인생이 어떨지 난 깨닫기 시작했소. 그 하나로…… 성 문제는……. 그건……."

  

  "계속 말해요. 말할 수 있어요. 내겐 아무 말이라도 괜찮아요."

  

  "좋아요. 만족스럽지 못했소. 그건……. 그래, 기계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

  

  "기계적이라."

  

  그녀는 조금 큰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계속 말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페이스는 헝클어지거나 흐트러진 걸 못 참는 성격이었소."

  

  테스는 그의 솔직함에 적이 놀랐다. 웃음이 나오려고 했지만 그녀는 웃음의 

물살을 둑에 가두었다. 그러나 참으려 애를 써도 자꾸 웃음이 새어 나왔고 

입을 가렸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녀는 손을 젓다가 결국은 입을 떼었다.

  

  "그 여자는 자기가 무엇을 놓쳤는지 몰랐나 보죠."

  

  테스는 처음에 그를 대신해 변명해 줄 생각으로 이런 말을 했지만 그 역시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것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소리였다.

  

  "오, 맙소사, 웃지 말아요!"

  

  그녀는 그에게 몸을 비비며 경고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둑은 터졌고 그들은 목소리를 추스리느라 애를 먹었다.

  

  잠시 후 베개 3개를 세운 다음 테스는 그의 팔을 당기고 그의 허벅지에 다리 

하나를 올리고는 시트를 끌어다 덮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남은 초콜릿의 껍질을 

벗겨 그녀에게 먼저 한 입 물린 다음 나머지를 자기 입에 넣었다.

  

  "좋아요."

  

  그는 침대 곁 탁자로 금박지를 던졌다.

  

  "당신은 어땠소?"

  

  "뭐가?"

  

  "당신의 성생활을 묻는 거요. 나 이전에 몇 명이나 있었소?"

  

  "꼭 밝혀야 해요?"

  

  "응."

  

  그녀는 그의 대답에 놀라 그를 노려보았다.

  

  "4명 있었어요."

  

  "4명이나!"

  

  "모두 스물 여덟 살 이전에 만난 사람들이죠. 가수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던 

그해에 나는 좀더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유명인의 생활을 지키는 

데는 장애물이 많은 법이죠. 그 후 내가 겪어야 했던 일을 당신은 짐작도 못 

할 거예요. 그건……아주 외로운 거예요."

  

  "그 중 심각한 관계는 있었소?"

  

  "없었어요."

  

  "그럼 최근에 만났던 그 음악 한다는 친구는?"

  

  "그 사람도 심각하진 않았어요. 사실대로 말하면, 그는 나름대로 노력했죠. 

하지만 내가 고향에 가서 당신이 엄마에게 얼마나 잘하는지 알게 되고, 또 

당신의 성가대에서 같이 노래를 부르고, 뒤뜰에서 당신을 만나고 하는 사이 

당신은 다른 남자들을 모두 역겨운 사내들로 만들었죠."

  

  "역겹다고?"

  

  그는 그녀의 단어 선택에 웃음이 나왔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그는 턱을 뒤로 당기고 그녀를 내려다보았지만 정수리만 보였다.

  

  "정확하게, 그래요."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는 말이오?"

  

  "사랑에 빠질 시간이 없었어요. 항상 여기 갔다 저기 갔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죠. 그리고 난 그 일들을 모두 성취했어요. 그리고……."

  

  그녀는 그의 가슴을 문지른 다음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재미있어……. 난 이런 사랑 행위 없이도, 당신 없이도 내 일생을 채워 

나가는 것에 익숙했는데. 그것이 나 자신을 속이는 생각인 줄도 모르고 지냈으니 

까요. 난 모든 것을 가졌다고 믿었어요……, 지금까지."

  

  혀 속의 초콜릿이 모두 녹았다. 첫 번째 사랑을 끝내고 잠시 누운 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느낌에 헤어지기가 정말 싫었다. 내일 낮에는 두 사람이 같이 지내게 

될 것이다. 그 다음 밤에는 콘서트가 그녀를 기다리고, 그 후에 그는 윈터그린으로 

그녀는 내슈빌로 돌아갈 것이다. 그 다음에는? 장거리 연애를 한단 말인가?

  

  두 사람 모두가 생각하던 문제를 먼저 입 밖으로 꺼낸 사람은 케니였다.

  

  "우리가 결혼하면 어떨까?"

  

  그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마치 이것이 서로에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듯 그대로 그의 몸에 파묻혀 있기만 했다.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도 그 생각을 하던 중이었어요."

  

  "난 그 생각밖에 하지 않았소. 하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결혼하면 어디에서 살게 될까요?"

  

  그녀가 물었다.

  

  "내슈빌에서."

  

  "윈터그린은?"

  

  "무슨 뜻이지? 두 군데서 살 순 없잖소."

  

  "왜요? 우린 충분히 그럴 능력 있어요."

  

  "난 집이 2개인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소."

  

  "케이지가 우리를 원한다면 가능해요. 물론 잠시 동안이긴 하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 팔린다는 생각에 익숙해질 때까지만 요. 그러려면 우린 아주 

용의 주도하게 행동해야겠지만."

  

  "그래요, 그럴 수도 있겠군."

  

  "엄마를 찾아갈 때면 언제라도 당신 집을 이용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당신 일은 어쩌죠?"

  

  그녀가 물었다.

  

  "내 사무실을 처분하고 당신 일을 돌보면 되지요."

  

  "정말 그럴 생각 있어요?"

  

  그녀는 깜짝 놀라 고개를 젖히고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과 전화를 했던 날, 그러니까 당신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다른 

사람에게 돈 문제를 맡기는 데는 너무 큰 위험이 따른다고 전화에 대고 하소연했던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나더군요. 봐요, 내가 있잖소. 테스, 난 공인 회계사야. 

나보다 더 당신의 재정문제를 잘 돌보아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말이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앉은 다음 골똘하게 그를 보았다.

  

  "정말 그런 생각했어요? 나와 결혼하면 당신의 일을 포기해야하는데도?"

  

  "포기할 수도 있지."

  

  "그리고 내슈빌로 이사를 해야 하는데? 군소리 없이?"

  

  "물론 그렇게 하겠소."

  

  "마누라한테 빌붙어 사는 놈이라고 사람들이 욕할 텐데?"

  

  그는 웃음을 터뜨리고 그녀를 끌어당겼다.

  

  "변명할 생각은 아니지만, 테스, 평생 처음 듣는 얼토당토않은 말이오. 난 

당신이 일하는 세계에 얼마나 많은 위험이 도사리는지 알아요. 또 당신을 지키는 

일 외에 다른 관심은 없소. 어떻게 해야 당신 사업을 성공시킬까 생각하며 

판단하려면 지금 일하는 것보다 휠 씬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리라는 것도 

각오가 되었소."

  

  "지금 이것저것 충분히 다 생각해 보고 이야기하나요?"

  

  "생각해 봐요. 내가 하루 종일 하는 게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맡기는 일이오. 당신의 일을 돕고 당신의 생활을 더 좋게 만드는 일을 내가 

거절할 이유가 없잖소?"

  

  그녀는 생각해 보고 그 말이 진심임을 알았다.

  

  "경영에 따르는 모든 문제를 당신에게 위임하면 난 창조적인 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되니까, 그야말로 환상이겠군요?"

  

  "난 당신의 세금, 급료 지불, 회계와 수입과 저작권에 관한 모든 문제를 

관리할 수 있소. 또 당신 회사의 직원 퇴직금과 재산증식과 보험, 그리고 당신이 

쇼를 하는 데 필요한 경비 전체를 포함해 재정 문제를 모두 다를 수 있지요. 

이런 일을 지금 누가 맡아 하나요?"

  

  "경리 사원 수가해요."

  

  "수라고?"

  

  그들은 동시에 수를 해고하기로 결정했다. 그런 다음 그가 말했다.

  

  "아무튼 내가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수한테 컴퓨터 시스템 인수 인계를 

받아야지. 우리 두 사람이 다 바쁠 정도로 일은 많겠지요?"

  

  "모르겠어요. 아마 많겠죠."

  

  그런 건 별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팔을 붙들고 자신 있지만 작은 

소리로 말했다.

  

  "테스, 당신은 날 믿어도 돼요."

  

  "오, 난 당신이 엄마에게 소금을 날라주었던 그날 밤 벌써 알았어요. 당신은 

마지막 잔돈까지 철저하게 계산했으니 까요."

  

  어머니 말이 나오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 당신이 윈터그린을 멀리 떠나면 엄마가 무척 섭섭하시겠어요."

  

  "자주 찾아가 뵈면 되지. 당신도 전보다 자주 찾아 뵙고. 내가 그렇게 만들고 

말겠소."

  

  어머니를 찾아가는 광경을 상상하니 모든 일이 별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케이지는 어쩌죠? 우리와 같이 살게 되나요?"

  

  "모르겠소. 당신 생각은 어때요?"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난 그 아이를 아주 좋아해요."

  

  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피곤한 눈을 감았다.

  

  "알아요. 그래서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으니까, 그렇지요? 케이지야 말로 

내가 당신을 이렇게 사랑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니까."

  

  "하지만 난 아이는 낳지 않을 거예요. 출산보다는 가수의 길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러면 케이지를 당신이 낳은 자식으로 생각하면 되잖소."

  

  그는 하품을 했다.

  

  그녀는 케이지를 자기 자식이라 여기는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잠시 동안이라도 케이지와 함께 셋이서 지내면 좋겠어요. 아직 그 아이한테 

호되게 당한 적이 없어 질리지 않았거든요."

  

  그는 껄껄 웃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뺨에다 문질렀다. 물기가 마른 머리카락은 

뮤지컬 <애니>의 주인공 애니의 머리처럼 곱슬거렸다. 그는 다시 한 번 하품을 

했고, 그녀의 목소리 역시 점점 힘을 잃었다.

  

  "내 집을 보여 주고 싶어요. 정말 아름다운 집이죠. 환상적인 발코니에, 

커다란 창가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도 있죠."

  

  "으음……."

  

  그는 중얼거렸다.

  

  "집에도 사무실이 있어요. 케이지 방도 따로 있구요. 우리 침실에서는 수영장이 

보이구요."

  

  우리 침실이라고. 그는 속으로 되뇌며 반쯤 잠이 든 상태에서도 웃음을 지었다. 

  

  "언제 보러 갈까요, 케니?"

  

  대답이 없었다.

  

  "어, 케니?"

  

  몸을 반쯤 일으킨 그녀는 잠든 그를 보았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그대로 

그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남은 인생 동안 같이 베개를 베는 그의 얼굴을 

상상해 보았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원한 임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지금 앞에 

보이는 풍경이 몹시도 좋았다.

  

  "케니, 사랑해요."

  

  그녀는 그의 옆에서 맞이하는 밤을 떠나보내기 앞서 그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속삭여 보았다.

  

  그녀는 그의 몸 위로 팔을 뻗어 램프를 껐다. 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다른 

베개들을 끌어당겨 바닥에 던졌다. 그녀가 그의 옆으로 파고들자 그는 조금 

움직거리며 그녀의 등에 몸을 대었다. 그리고 무언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그녀의 허리에 팔을 감고 따스한 가슴 쪽으로 그녀의 등을 끌어당겼다.

  

  그녀는 웃음 지었다. 이제 모든 것을 소유했다는 만족감에 눈을 감았다.

  

  

  

  날이 밝을 무렵 그녀는 그의 품에 웅크리고 잤던 자세 그대로 눈을 떴다. 

정말 편안하고 몸에 꼭 맞는 곳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가 꼼지락거리자 그녀는 몸을 돌려 그를 마주 보고 그의 배에 자기 무릎이 

올라오도록 그의 무릎에 다리를 걸었다.

  

  "안녕."

  

  그녀의 속삭임에 그는 눈을 떴다.

  

  "안녕."

  

  그는 빈 물통이 콘크리트 바닥에 질질 끌리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날 존중해요?"

  

  그는 눈을 감았다.

  

  "으음."

  

  "아직도 나와 결혼하고 싶어요?"

  

  "으음."

  

  "아직도 내 회계 일을 맡고 싶어요?"

  

  "지금 이 순간은 아니오."

  

  그녀는 낄낄거리며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눈꺼풀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그의 입 속에 집어넣었다.

  

  "룸서비스로 네 사람 아침 식사를 주문해요. 그런 다음 엄마하고 케이지에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해서 우리 생각을 알리도록 해요."

  

  그는 그녀의 손톱을 깨물었지만 눈은 뜨지 않았다.

  

  "으음, 그렇게 해요. 하지만 아침마다 이렇게 내 잠을 방해하면 어쩌지?"

  

  그는 이렇게 중얼거린 다음에야 그녀의 손가락을 놓아주었다.

  

  "그렇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눈떴을 때 내가 없을 수도 있어요. 아주 먼 

도시로 노래하러 가야 하니까. 누가 알겠어요? 어쩌면 중국같이 먼 곳으로 

가 버렸을지? 그럼 당신은 차라리 귀찮게 굴던 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또 얼마나 외롭겠어요."

  

  그는 웃음 짓고 자기 배에 올라온 그녀의 다리를 내린 뒤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 사랑."

  

  그는 그녀의 손에 깍지를 힘껏 긴 채 베개 밑으로 집어넣었다.

  

  "아무 때나, 어떤 장소에서나 무슨 방법으로든지 날 귀찮게 해도 돼요."

  

  그녀는 당장 그 자리에서 그의 말대로 해주었다.

  

  잠시 후 그녀가 제안했던 대로 그들이 정말로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테스의 

객실에서 아침을 먹자고 전화를 걸었다. 그런 다음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10시 정각에 초인종이 울리자 케니가 대답했다.

  

  "룸 서비스입니다."

  

  하얀 정복을 입은 웨이터가 이동식 식탁을 소파까지 밀고 왔다.

  

  "샴페인을 드시겠습니까?"

  

  "그래요."

  

  아시아 출신의 젊은 남자는 '아 샤르보 에 필' 술병을 하얀 냅킨으로 싼 

다음 코르크 마개를 뽑았다.

  

  "따를까요, 손님?"

  

  "아니, 괜찮아요. 다른 손님들이 오기로 했으니까."

  

  웨이터는 샴페인 병을 은으로 만든 냉각기 속에 집어넣은 다음자리를 떴다. 

웨이터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막 초인종을 누르려던 메어리와 케이지의 

얼굴이 문틈으로 보였다.

  

  "안녀엉……. 편안히 주무셨어요?"

  

  케니는 안으로 들어오는 두 여인의 뺨에 키스를 하며 반갑게 맞았다.

  

  케이지는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던졌다.

  

  "치, 아빠가 아침부터 이 방에 웬일이실까."

  

  "잘 알면서."

  

  그는 손바닥을 한 번 탁 치고 문을 닫았다.

  

  테스도 그들과 아침 인사를 나누었고, 메어리는 소파에 앉혔다.

  

  케이지의 눈은 얼음 통에 박혔다.

  

  "샴페인이네? 아침 I0시에 웬 술?그럴 만한 일이 있어요?"

  

  "우선 앉아라, 케이지."

  

  케니가 말했다.

  

  "테스, 이리로."

  

  그는 그녀를 위해 의자를 뽑아 준 다음 자기도 자리에 앉았다.

  

  케이지는 연방 두 사람을 의혹의 눈초리로 쳐다보았고 메어리는 은접시를 

들고 음식 냄새를 맡았다.

  

  "이게 뭐냐, 먹음직스러운데."

  

  "햄과 치즈를 넣은 오물렛이에요."

  

  테스는 케니가 제대로 주문했기를 바라며 대답했다.

  

  "샴페인 마실 사람?"

  

  케니는 얼음 통에 잠긴 초록색 병을 꺼냈다.

  

  "전 안 마시겠어요. 그런 종류는 싫어."

  

  케이지가 말했다.

  

  "나도 안 마시련다. 괜히 속 쓰리고 싶진 않아. 대신 커피를 마시지."

  

  메어리가 대답했다.

  

  케니는 잔을 채우기 시작했고, 케이지는 자기 잔 차례가 되자 아버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아빠, 무슨 일이죠? 제가 커피 마시지 않는 거 잘 아시잖아요."

  

  "오!"

  

  그는 커피를 따르다 말고 은주전자를 내려놓았다.

  

  "그래, 그럼 넌 오렌지 주스를 마시렴. 하지만 테스와 난 건배할 일이 있단다."

  

  그는 테스에게 말하라는 눈치를 주었다.

  

  그녀는 자기 잔을 높이 들었다.

  

  "엄마, 그리고 케이지……."

  

  다른 잔이 올라왔고 여기에 커피잔과 주스잔이 합세했다.

  

  "우리 모두를 위한 축배예요. 우리 모두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축배해요. 

두 분을 여기까지 부른 건 케니와 제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알려 드리기 위해서예요."

  

  메어리는 금방이라도 잔을 떨어뜨릴 것 같았다.

  

  케이지는 탄성을 질렀다.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어떻게 알았지?"

  

  케니가 물었다. 

  

  "왜긴요, 아빠는 아직도 택시도 바지를 입으셨잖아요."

  

  그녀는 다리로 아빠를 건드렸다. 

  

  "아, 참 그렇지."

  

  "아빠가 어젯밤 아빠 방에 오래 계시지 않은 게 한눈에 보여요. 아…… 할머니, 

죄송해요."

  

  "결혼을 한다고?"

  

  메어리가 끼여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터 일이 이렇게 되었지? ……난 두 사람이……. 오, 세상에…… 

맙소사."

  

  그녀는 울기 시작했다.

  

  "엄마, 왜 그러세요?"

  

  "아, 아무 것도 아니다. 그냥 너무 행복해서 우는 게지."

  

  그녀는 리넨 냅킨으로 코를 가렸다.

  

  "정말 케니와 결혼할 참이냐?"

  

  "네."

  

  테스는 어머니의 손을 쓰다듬었고, 늙은 여인은 안경 밑으로 눈두덩을 꾹꾹 

눌렀다. 그런 다음 두 여인은 식탁 한쪽에서 서로의 몸을 끌어안았다.

  

  "오, 이런 경사가 있나. 아주 기쁘구나."

  

  그 다음에는 케이지가 테스 품으로 달려들었다. 두 여자 모두눈물로 목이 

메었다.

  

  "두 분은……."

  

  케이지는 점점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두 분은 어린여자 아이를 행복하게 할 줄 아는 분들이 세요."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았는지 소녀는 금세 농담조로 말했다.

  

  "그러면 제가 엄마라고 불러야 하나요, 맥?"

  

  "맥 엄마라고? 오,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말아다오."

  

  모두가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다음 메어리가 말했다.

  

  "케니, 이리 와 보게."

  

  그녀는 팔을 올렸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메어리 옆에 한쪽무릎을 꿇고 

애정이 넘치는 그녀의 팔에 안겼다.

  

  "오, 케니."

  

  그녀는 이 말만 할뿐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를 안고서 뺨이 눈물로 뒤범벅되었음을 

느낄 뿐이었다.

  

  "테스를 많이 사랑합니다."

  

  그가 속삭였다.

  

  "아주머니를 사랑하는 만큼이 나요."

  

  그는 고개를 빼고 그녀의 손에 힘을 주면서 메어리를 올려다보았다.

  

  "믿기지가 않아."

  

  "그러시겠죠. 알아요."

  

  메어리는 한 손을 들어 테스의 손을 잡았다.

  

  "너와 케니가……."

  

  "하지만 힘든 일이 남았어요, 엄마. 전 엄마에게서 케니를 빼앗아 가야 해요."

  

  "오, 그런 실없는 소리 마라."

  

  메어리는 냅킨을 흔들었다.

  

  "케니 없이도 난 혼자 잘 살 수 있어. 사위도 둘 있고 장성한 손주들도 많구 

말이야. 일이 있으면 그애들이 도와 줄 거야."

  

  "그래도 케니 생각이 나실 텐데요."

  

  케이지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오, 맙소사!"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메어리 할머니가 진짜 제 할머니가 되시잖아요!"

  

  "그래, 나도 그 사실이 아주 기쁘구나!"

  

  잠시 후 그들은 둘러앉아 아침을 먹었다. 마음속에 모든 것을 담은 이런 

행복감을 느끼는데 아침을 먹을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누군가 음식이 식어 간다고 말했고 그들은 아침을 들기 시작했다. 2분 정도 

지나자 케이지가 음식을 먹다가 말고 모든 사람을 위해 한 마디 했다.

  

  "저, 이거 아세요? 모든 것이 완벽하게 되어 가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족이 

된다는 뜻이죠. 마치 이렇게 되도록 예정되었던 것 같지 않아요?"

  

  그랬다. 그들은 웃음으로 이것을 인정했다.

  

  예정된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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