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리스 인과 사랑을-8화 (8/10)

8

알렉시오는 오늘 저녁 내내 줄어들 줄 모르고 뻗치는 분노로 인해 아직도 어지러운 상태에서 헬기 밖으로 뛰어내렸다.

사무실 옆방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결정타를 맞은 듯한 기분에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오네가 기다린다고 해놓고 약속을 깬 것은 엄청난 배신이었다. 대부분의 미혼남들보다 여자 관계가 더 복잡한 남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자신은 바람둥이라는 반갑잖은 평판도 이를 갈며 인정했고, 그런 이유로 이오네가 파스칼에 대한 얘기를 곧바로 믿어 주지 않았던 거라고 한 발짝 물러나기까지 했다.

그러나 사태는 훨씬 더 악화되고 있었다. 행방을 알아내기 위해 경호원들을 불렀지만 그녀가 내쳤다는 걸 알고 아연실색했다. 이오네가 현금과 다이아몬드가 가득 든 우스꽝스런 서류 가방을 들고 보호자도 없이 돌아다닌다고? 만화 주인공보다도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이오네가?

파리에 있는 동안 그 가방을 문제 삼지 않았던 게 후회스러웠다. 하지만 그녀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무안을 주고 싶지 않았다. 자기만의 독특한 버릇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법이었다. 게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보석과 떨어질 수 없고 수중에 현금이 두둑해야 안심이 된다 해도 가는 곳마다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는데 무슨 일을 당하겠는가.

곧장 경찰에 신고하러 가려는데 그녀의 경호원이 이미 다른 경호원 둘을 미행시켜 놨지만 그녀에게 직접 받은 명령을 어겨도 되는지 몰라 처음엔 모른 척하고 있는 게 더 현명할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어찔한 안도감이 밀려와 지금까지 느껴본 어떤 감정보다 강력하고 깊은 분노와 만났다.

노크 소리를 기다리는 동안 이오네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턱을 반항적으로 쳐들었다. 알렉시오가 저 헬기를 타고 온 게 분명했다! 그의 회사 간부가 이 시골 호텔에 투숙한다는 우연은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 그녀의 마음은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알렉시오가 무슨 말을 하든 겁나지 않는다고 자신을 일깨우는 동안에도 두려움과 저급한 흥분이 그녀를 양쪽에서 끌어당기고 있었다.

노크 같은 건 없었다. 카드 키 넣는 소리가 찰칵 나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알렉시오는 성큼 들어서서는 등뒤로 문을 거칠게 닫았다. 금빛 눈은 불타는 듯하고 갸름하고 힘찬 얼굴은 무섭게 자제하느라 뻣뻣이 굳어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딱딱한 벽에 맞아 다시 튀어 오르는 공처럼 두근거렸다.

“어떻게 감히 가키스라는 성으로 숙박할 수 있소?” 알렉시오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쏘아붙였다. “어떻게 감히 내 성을 거부할 수 있는 거요?”

뜻밖의 일제 사격에 이오네는 입을 뗐다가 거기에 응할 만큼 신랄하게 돌려줄 말이 생각나지 않자 그나마 가장 매서운 효과를 낼 것 같아 다시 입을 다물고 품위를 지켰다.

“하긴 당신이야 원래 놀랄 만큼 도도한 사람이지!”

알렉시오가 분노에 찬 소리에 계속했다. “그 진주빛 나는 손톱까지 철저히 가키스 집안 사람이니까!”

그녀는 정말 놀라 초록빛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아요....”

“아니라고? 무슨 권리로 내게 우리 결혼이 끝났다고 말한 거요? 당신만 관계돼 있는 거요? 당신만 항상 옳고 틀림이 없는 거요? 아주 사소한 증거를 갖고 남을 판단하는 버릇이 있소? 처음으로 부부싸움을 했다고 그렇게 재빨리 짐을 싸 연기처럼 사라진 걸 알게 돼 퍽도 좋았소!” 알렉시오가 신랄하게 비아냥거리며 말을 맺었다.

이오네는 이를 악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하긴 가키스 집안 사람이니 무슨 일이건 잘못할 리가 없겠지?” 알렉시오는 창문 옆 테이블 위에 소형 녹음기를 내려 놓는 것으로 그 냉소적인 독백을 마쳤다. “이제 곧 알겠지만 이번 한 번은 당신이 지독한 바보짓을 한 것 같소!”

“그래요?” 이오네의 광대뼈 위로 발끈하는 열기가 번졌다. “그 기계로 어쩔 작정인데요? 날 바보처럼 멍하게 만들 건가 보죠?”

“내 사무실의 모든 전화 통화는 자동으로 녹음되지” 알렉시오가 응징하듯 집게손가락으로 버튼을 꾹 눌렀다.

이오네는 녹음기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알렉시오가 파스칼의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고 상대 여자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금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파스칼이 유창한 그리스어로 알렉시오에게 말하는 걸 듣고 그녀는 깜짝 놀랐다. 파스칼은 런던에 하룻밤 묵어 가게 됐는데 알렉시오도 시내에 와 있는 걸 아니까 둘이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오네는 서서히 노여움이 가라앉는 얼굴로 여전히 대리석 조각상처럼 꼼짝도 않고 이어지는 짧은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파스칼이 벌써 그 아파트에 들어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알렉시오의 냉담한 목소리는 이미 확고했지만 그 끈질긴 미녀는 계속 말으 시키려고 애쓰다 다시 한 번 식사하러 오라는 제의를 했다.

<잠깐> 알렉시오가 냉정하게 못을 박는 소리가 들렸다. <꼭 그래야겠으면 오늘밤은 그 아파트에서 묵어요. 하지만 나갈 때는 열쇠를 두고 가도록 해요. 난 찾아가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마음일 바뀌면 날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알죠?> 파스칼은 도발적으로 가르랑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끔찍한 침묵이 흘렀다. 이오네는 안절부절못하는 손으로 계속해서 실내복 허리끈을 앞뒤로 넣었다 뺐다 했다. 기쁨과 안도감에 소리를 지르고 싶은 엄청난 충동 때문에 속으로는 무너져 내릴 지경이었다. 그녀가 아주 크게 실수 한 것인데 남편을 오해했다는 게 밝혀지자 이렇게 황홀하고 기쁠 수가 없었다. 부단히 물리치려 했던 무겁게 짓누르는 참담한 기분이 순식간에 떨어져 나갔다.

“알렉시오...” 이오네는 두 눈을 반짝이며 그를 바라보고는 감정에 겨워 잠긴 소리로 나직하게 불렀다. “미...”

“잠깐” 알렉시오는 희미하게 번득이는 금빛 눈으로 멸시하듯 그녀를 노려보며 갸름한 손을 번쩍 쳐들었다. “미안하다는 말이 이번에도 통할 거라고는 한순간도 생각지 말아요!”

이오네는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작게 말했다. “그렇지만 미안해요...”

“당신은 그 방에서 기다리겠다고 해놓고 내게 거짓말을 한거요. 난 믿을 수 없는 여자와는 관계를 지속해 본 적이 없소. 또한 내 아내가 높은 수준의 충절과 정직성을 지녔으면 하오. 그런데 당신은 둘 다 갖고 있지 않는 것 같단 말이오!”

“하지만 난....” 이오네는 목이 울컥해 말을 할 수 없었고 너무 긴장한 나머지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런 비난에 망연자실한 것이다.

“하지만은 없소” 알렉시오는 지극히 단호한 얼굴로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그녀를 훑어본 뒤 부족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최소한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데 당신은 날 버리고 떠난 거요. 문제가 보이자마자 우리가 가진 모든 걸 쓰레기처럼 버리고 그냥 떠나 버렸단 말이오!”

“당신 아파트에서 파스칼을 발견했는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이오네는 팽팽하게 당긴 얼굴로 호소하듯 자신을 변호했다.

“나를 믿었어야지. 남아서 어른처럼 그 상황을 논의해 볼만큼 우리 결혼을 소중히 여겼어야 했단 말이오. 그런데 당신이 생각한 거라곤 우선 강경한 태도부터 취하고 체면을 세우는 거였지” 알렉시오가 비웃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던 거요. 내가 하는 말을 한 마디도 안 듣고...”

“파스칼이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고 해서...”

“이었다는 말이 중요하지. 그 여자를 마지막으로 본 지 두 달이 지났고 결혼 전에 이미 완전히 끝난 관계요”

“좋아요, 내가 지나쳤어요” 이오네는 절박해지기 시작했다. “당신에게 좀더 해명할 기회를 줬어야 했는데...”

알렉시오는 준엄한 눈길로 그녀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안되지, 안그렇소? 파스칼이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더라면 그녀와 만날 계획이 없었다는 걸 입증할 방법이 없었을 거요. 하지만 내 최근 번호를 몰라서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야 했지. 내가 그 통화를 녹음해 두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이오네는 그가 그런 시나리오를 던져 놓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걸 녹음해 놓지 않았다면 지금쯤 엄청난 곤욕을 치르고 있겠지” 알렉시오는 지독한 분노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날 못 믿는다면 우린 결혼 생활을 해나갈 수 없소”

최종 결론을 내리는 듯한 잔인한 말에 이오네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힘을 잃은 자기 방어에서 기쁨과 어우러져 급상승하는 수치심이 고개를 들다 다시 밑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그를 비난하고 그의 말을 믿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사실 그가 잘못했다고 믿을 준비가 철저히 돼 있었다. 왜였지? 그녀는 이제 괴롭게 자책하듯 스스로에게 물었다. 파리에서 두 사람이 함께 했던 즐거운 몇 주와 오늘 일찍 런던에 도착했을 때 느꼇던 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떠올려 보았다. 어렴풋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게...” 긴장으로 갈라진 소리가 나왔다. “지금까지 그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어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것 같아요. 파스칼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당신이 앞으로 날 배신할 거라고 믿어 버린 것 같아요. 그냥 곧이곧대로 믿어 버렸죠. 그렇게 행복한 기분보다는 그게 훨씬 더 현실적이고 나한테 익숙했으니까요”

알렉시오는 얘기를 듣고 있는 동안 온뭄이 팽팽히 긴장되는 걸 느끼며 지푸린 눈썹 밑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내가 무척 냉소적이었던 것 같아요. 도도하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동안 상처만 받고 살아서 나 자신을 지키려고 하나봐요” 이오네는 긴장된 저음으로 인정했다. “내가 가진 힘이라곤 자존심밖에 없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안전해지기 위해서는 그마저도 희생해야 했어요.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누굴 믿는데 익숙지 않지만.... 배울 수는 있을 거예요”

그녀의 얘기를 듣고 알렉시오는 동요된 반응을 감추려고 해 보았지만 마치 불시에 복부에 강한 일격을 당한 듯했다. 만족스럽고 복잡할 것 없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다른 사람에 대한 기대와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던가를 깨달았다. 이오네는 결코 그런 적이 없었던 것을 그 자신은 늘 당연히 여겨 왔다는 것을 알았다. 충족되어야 할 안정감도, 안전도, 믿음도, 그리고 확실히 사랑도 그녀에겐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자 그런 깨달음이 그의 속을 도려냈다.

그는 큰 걸음으로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 이오네를 끌어안았다. 그녀가 흠칫 놀라 뻣뻣해졌지만 심장 박동은 급행열차처럼 빠르게 뛰었다. “당신 동정은 받고 싶지 않...”

“욕망은 괜찮겠소?” 알렉시오는 빛보다 빠르게 말을 가로챘다.

이오네의 입에서 거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녀는 갑자기 봉제인형처럼 얌전해져 그가 넓은 근육질의 가슴에 자신을 꼭 끌어안고 눈물에 젖어 축축한 얼굴을 그의 어깨에 누르게 내버려두었다. 그가 침착하지 않은 손길로 백금색 머리를 쓰다듬자 그녀는 그도 자신 못지않게 동요돼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요” 괴롭게 웅얼거렸다.

“잊어버려요. 내가 당신이 아직 가보지도 않은 곳에서 왔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오” 알렉시오는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잔뜩 비꼬는 듯한 저음으로 안심시켰다. “하지만 여자들을 맘껏 사귀려고 당신과 결혼한 건 아니오. 몇 년이고 그럴 자유가 있었고 또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젠 다르게 살아볼 준비가 돼 있소. 당신도 그 점을 받아들여야 할 거요”

“그래요...”

노크 소리가 나자 알렉시오가 끙 하고 신음 소리를 흘렸다. “도대체 누구야?”

“내가 주문한 음식일 거예요”

알렉시오는 그녀를 놓아주고 문을 열었다. 웨이터가 수레를 끌고 들어와 음식을 차려 놓은 뒤 두둑한 팁을 챙겨서 물러갔다. 이오네는 온몸으로 알렉시오를 음미했다. 그녀를 안 보이는 매듭으로 묶어 두고 있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눈, 육상선수처럼 활력이 넘치는 길고 나긋나긋한 몸, 애정 어린 부드러운 모습만큼이나 무뚝뚝하게 화를 내는 것도 자연스러워 보이는 뛰어난 자제심, 이렇게 대단한 남자를 자신은 가질 자격도 없어 보였고 그가 용서해 줄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용서해 달라고 부탁할 용기도 없었다.

알렉시오가 강렬한 눈길로 바라보자 방안 공기가 이글거렸다. “얼마나 배가 고프오?” 탁한 소리로 물었다.

“별로...” 너울거리는 욕망이 아름다운 눈을 매혹적인 금빛으로 밝히는 걸 본 순간 그녀는 말끝을 맺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서늘한 미소가 남자다운 구릿빛 얼굴에서 긴장을 걷어 가는 걸로 보아 알렉시오도 이해한 듯했다. “나도 당신을 원하오” 그가 침실 쪽으로 한 발짝씩 그녀를 뒷걸음치게 하며 고백했다. “얼마나 원하는지 당신은 짐작도 못할 거요”

그녀는 마음이 놓이면서 숨이 목에 걸렸다, “아직도요?”

“내내 사로잡힌 상태거든” 알렉시오가 잠긴 소리로 대답한 뒤 그녀를 붙잡고 격정적으로 입을 맞췄다.

그의 순수한 활력과 부끄러운 줄 모르는 욕구가 아드레날린처럼 이오네의 온몸을 흔들고 지나갔다. 그의 혀가 부드러운 입안을 노골적으로 드나드는 행위가 너무도 애로틱해 그녀는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게 흐느끼는 소리로 그를 부추기며 뒤꿈치를 들고 그의 어깨에 매달려 호응했다. 알렉시오가 욕구불만의 신음 소리를 토하며 그녀를 들어올리더니 폭이 넓은 소파 침대에 내려놓았다.

“아직도 당신에게 빠져 있는 게 틀림없다니까” 그가 신음섞인 소리로 말했다. “난 여자를 쫓아 온 나라를 헤매고 다니진 않거든. 그런 일은 하지 않는데...”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이오네가 약속했다.

“그런 각서를 세 통 쓸 수 있겠소?” 알렉시오가 그렇게 놀린 뒤 다시 입술을 포개 무아지경에 이르는 긴 키스로 온몸을 달구며 노련한 손길로 그녀의 실내복을 벗겼다.

그도 옷을 벗기 위해 잠시 떨어져서는 강렬하게 음미하는 눈길로 그녀를 굽어보았다. 이오네는 젖가슴이 단단해지는 걸 느끼고 자신이 그를 갈구한다는 걸 깨닫고는 얼굴을 붉히며 알몸으로 누워 있었다.

“정말 아름다워” 알렉시오가 조용히 속삭이며 남성적이고 섹시한 몸을 그녀 곁에 뉘었다.

그가 다시 그녀의 예쁜 입술을 덮쳤다. 격정적으로 강탈하듯 입술을 벌리고 들어오는 그를 그녀는 아무리 취해도 만족할 수 없었고 온몸을 뒤흔들어 놓는 미칠 듯한 갈망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와 다시는 이러지 못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녀는 손으로 힘줄이 불거진 그의 팔을 쓸며 등을 젖혀 본능적으로 그를 유혹했다.

“기다리지 말아요” 그녀는 매끄럽고 탄탄한 어깨를 가볍게 깨물며 재촉했다.

알렉시오가 욕구와 만족이 묻어나는 금빛 눈을 번득이며 헝클어진 머리를 들었다. “그 정도로 날 원한단 말이오?”

“언제나...” 그녀는 그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신음했다.

그가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밀고 들어오자 이오네는 너무도 강렬한 감각에 눈물이 핑 돌며 황홀경에 등이 활처럼 휘었다. 그녀는 그와 조화를 이룰 때까지 그를 향해 상체를 일으키며 애타게 흐느꼈다. 눈앞이 아뜩해지는 절정의 순간이 말할 수 없는 쾌락의 경련을 일으키며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이제 먹게 해줘야겠군” 알렉시오가 영 아쉽다는 듯이 탄식한 뒤 마지막으로 긴 키스를 훔쳤다. 이어 그녀를 자기 위로 끌어올리더니 축축하게 젖은 크고 건장한 몸에 그녀를 꼭 붙들어 두었다. “파리발 비행기에서 내린 후로 아무것도 못 먹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이오네는 미간을 찡그리고 나른하게 만족한 눈으로 깨어나 헝클어진 머리를 들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내 사무실을 나설 때부터 당신은 미행을 당했으니까. 내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찾아냈을 것 같소?” 놀리는 눈빛이 좀 더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 다시는 경호원들을 그런 식으로 따돌리지 말아요”

이오네는 얼굴을 붉혔다. “날 미행했다면 그들이 내 말을 안 들은 거네요”

알렉시오는 그녀의 밝은 머리카락 속에 손을 밀어 넣고 나무라는 눈길을 던졌다. “그들이 말을 듣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지. 당신이 파리에서부터 들고 다니던 서류 가방이 열려진 걸 본 적이 있소”

이오네는 얼굴에 핏기를 잃고 얼어붙었다. 한때 결혼 생활에서 벗어날 탈출 기금으로 마련했던 돈을 그가 실제로 봤단 말인가? 첫날밤의 탈출이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다는 걸 알렉시오에게 들키는 위험 없이 그 돈을 어떻게 처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만한 현금은 은행에 맡겨야 하고 그 다이아몬드들은 금고에 넣어 둬야 하오” 알렉시오가 조용히 충고했다.

이오네는 입이 바짝 탔다. 맞는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돈과 돌아가신 어머니의 보석이 가득 든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는 이유가 뭐냐는 빤한 질문이 돌아오길 속으로 벌벌 떨며 기다렸다. 그러나 알렉시오는 숨을 멎게 만드는 미소만 지어 여느 때처럼 그녀의 기력을 빼놓았다. 그 문제에 대해 더 이상 묻지 않자 한시름 놓였지만 양심에 찔려 곤혹스러운 얼굴을 그의 어깨에 묻었다. 결코 그런 사실을 고백할 수 없으리라. 결혼식 전에 그녀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어리석었는지 안다면 그가 절대로 용서해 주지 않을 테니까.

“그래... ” 알렉시오가 무심한 척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이 호텔에 들기 전에 어떤 집을 찾아갔던데, 무슨 일이었소?”

이오네는 쌍둥이 언니 생각에 양심의 가책이 뒷전으로 물러나자 빙그레 웃었다. “거긴 언니의 수양 가정이었어요. 내가 누군지 말해 주고 미스티 언니의 전화번호를 알아냈어요!”

알렉시오가 벌떡 일어나 앉는 바람에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전화하니까 언니가 뭐랍니까?”

“아직 안 해봤어요. 너무 늦은 시간 같아서...”

알렉시오가 끙 하고 신음을 토하더니 포세츠에서 누구와 얘기를 나누고 무슨 말을 했는지자세히 털어놓게 만들었다. “지금쯤 당신 언니가 전화기 옆에 붙어 앉아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소? 사람들이 그런 소식은 혼자만 알고 있지 않거든. 당신이 수양 어머니를 찾아가 전화번호를 알아냈다느 걸 언니도 이미 알고 있을 거요”

이오네는 얼굴을 붉혔다. “내일 아침 일직 전화해 볼래요”

알렉시오는 침대를 박차고 나가 커피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쪽지를 가지러 성큼성큼 거실로 돌아갔다. 그는 혼자 즐거웠다. 어쩌자고 그게 야니스이 전화번호일지도 모른다는 정신나간 생각을 했던 걸까? 그 어부의 아들은 이제 오래전에 잊혀진 인물인데.

몇 분 뒤 이오네는 손에 수화기를 들고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의 남편은 회색 사각팬티 한 장으로 그 장대한 몸을 가리고 곁에 앉아 있었다. “자정이 넘었어요” 그녀는 긴장된 목소리로 항의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전화를 거는 게 아닌데”

“당신은 두려운 거고 언니도 아마 그럴 거요. 빨리 걸어봐요” 알렉시오가 재촉했다.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숨가쁜 여자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전 이오네 크리스토우라키스예요” 그녀는 고르지 못한 소리로 자신을 밝혔다. “미스티 언니?”

“그래, 네가 내 쌍둥이 동생이니? ” 저편에서 불안하게 물어 왔다.

“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제야 언니를 찾...”

“나도 머리가 어지럽게 막 돌아. 사실 가슴이 떨려 죽겠어. 네가 전화를 안 걸까 봐 얼마나 마음을 졸였다고. 버디 부인의 시누이가 네 이름이나 주소도 안 받아놓고 그냥 보냈다는 얘기를 듣고 믿을 수가 없었어!” 미스티의 목소리에 힘과 속도가 붙어 점차 밝아지고 활기를 띠었다. “우리가 헬기를 보내면 오늘밤이라도 올 수 있겠니?”

이오네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알렉시오를 돌아보며 그리스어로 물었다.

“그건 안 되겠는데” 알렉시오가 단호히 말했다. “당신은 이미 쓰러지기 일보직전이거든. 언니에게 내일 아침 일찍 찾아가겠다고 해요”

“누구하고 말하는 거니?” 미스티가 몹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리고 그건 어느 나라 말이야?”

그때부터 모든 의식은 사라졌다. 알렉시오가 호텔 내부 전화로 2인분의 새 음식을 주문하는 동안 이오네는 무릎을 끼고 소파에 앉아 쌍둥이 언니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물어오는 질문에 부지런히 대답하다 마침내는 이쪽에서도 물어볼 자신을 얻었다. 알렉시오는 샤워부터 하기로 했다. 식사가 도착했을 때 이오네는 통화를 중단할 수 없어 한 손을 이용해 한번에 적은 양으로밖에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하는 말마다 하품을 참아야 할 때가 되어서야 쌍둥이 언니에게 작별을 고할 수 있었다.

그녀는 수화를 내려놓자마자 지친 입가에 멍하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쿵 쓰러졌다. “언니가 성에서 산대요” 알렉시오에게 알려 주었다.

알렉시오는 소파에서 아내를 들어 안고 침실로 돌아가 뉘었다. 커피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반지들을 갖고 돌아오는 동안 그녀는 이미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그는 축 늘어진 그녀의 손에 결혼반지를 다시 끼워 준 뒤 이렇게 하는 것이 왜 아주 중요하게 여겨지는지 의아해했다.

이튿날 헬기가 에어리 성의 활주로에 내려앉았을 때 이오네는 흥분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언니가 좋아할 거요” 알렉시오는 안심하라는 듯 이오네의 팽팽한 손을 꼭 쥐고 내리는 걸 도와주며 말했다. “어젯밤에 급속도로 친해졌잖소”

이오네는 그들 쪽으로 달려오는 여인과 그녀의 생기 넘치는 얼굴에 깃들은 따뜻한 미소에 모든 걸 집중했다.

“어디 좀 보자...” 적갈색 머리를 바람에 흩날리며 미스티가 긴 다리로 우아하게 뛰어와 밝은 은회색 눈으로 자기보가 작고, 자기보다 긴장해 있는 쌍둥이 여동생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어머나, 너 아주 조그마하고 정말 예쁘구나” 그녀는 천천히 악수를 나누며 숨찬 소리로 말했다. “우리 유전자 공급원이 진짜 복주머니였나 보다. 하지만 넌 친할머니를 쏙 빼닮았어. 아버지에게 그분 초상화가 있거든. 30년대에 전설적인 미인이셨대”

이오네는 언니의 감격한 눈에서 자신과 같은 눈물을 보며 생전 처음 다른 가족과 연결되는 말에 마치 안에서 풍선이 부풀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누가 먼저 움직였는지도 모르게 둘은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터뜨리며 서툰 포옹으로 서로를 얼싸안았다. 그러다 미스티가 한 팔로 이오네를 둘러안고 스포츠카로 이끌더니 조수석에 태운 뒤 직접 운정하여 성으로 내달렸다.

그동안 레오네와 알렉시오는  아내들이 20년도 지나서야 처음 만난 특별한 순간을 망치지 않기 위해 멀찍이 떨어져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이럴 수가...”스포츠카가 10미터쯤 달아나는 걸 보고 레오네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렷다. “우리 집사람이 우릴 버리고 가네”

두 남자는 말없이 그대로 서서 차가 속도를 늦추고 돌아오길 기다렸다. 알렉시오와 레오네는 남자들끼리 어이없다는 눈길을 짧게 주고받았지만 전반적으로 들뜬 분위기 속에서 둘다 짐짝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성까지 걸어 돌아가는 동안 레오네는 또 다른 자매 프레디가 있다는 사실을 알레시오에게 알려 주었다. 이오네의 생모가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의붓 언니로 콰마르의 황태자와 결혼했다고 했다. “처형도 엄청 말이 많은 분이지” 레오네가 의견을 달았다. “미스티가 오늘 새벽에 그쪽에도 전화를 했으니까 조만간에 프레디 처형도 만날 걸세”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알렉시오는 흔쾌하게 놀리듯이 말했다. “이오네는 가족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미노스 가키스?” 이오네가 누군지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시인한 레오네는 잠시 알렉시이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가 다신 약간 풀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우린 점심이나 하러 나가지”  “두 사람이 재회의 정을 나누도록 늦게까지 밖으로 돌자는 거군요” 알렉시오의 모양 좋은 넓은 입술에 알 만하다는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 아내들이 우릴 다시 찾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고상한 거실에 놓은 소파 양옆으로 무릎을 끼고 앉아 커피를 나눠 마시던 미스티와 이오네는 나이든 집사 머도가 들어와 점심 식사가 준비됐는데 주인님과 크리스토우라키스 씨는 제 시간에 돌아오느냐고 물어볼 때서야 남편들을 두고 왓다는 걸 깨달았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자기들이 한 짓이 양심에 찔려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전에 형부를 잊어버린 적이 있었어?” 이오네가 숨막이는 소리로 물었다.

“아니, 화가 많이 났을 텐데 어쩌나” 미스티가 신음했다. “알렉시오는 어때?”

“그이도 즐겁진 않았을 거야” 이오네가 털어놓았다. 그러나 두 남자가 성으로 돌아와 레오네의 사륜구동 차를 타고 다시 나깐다는 머도의 전갈에 자매는 다시 마음을 놓았다. 오전 시간은 미스티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해, 그리고 생부인 올비버 서전트와 어머니 캐리 칼턴의 불륜 관계에 대해 얘기하느라 번개처럼 지나갔다. 이오네는 프레디라는 언니가 또 있다는 얘기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오후 시간은 귀여운 조카 코너를 무릎에 앉혀 놓고 언니와 얘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 가는 즐거움 속에서 보냈다.

그날 저녁 이오네는 고딕식 침실 창가에 서서 희미하게 어른거리는 호수 위로 해가 지는 걸 바라보며 만족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주 유쾌했던 저녁 식사에 맞춰 레오네와 함께 돌아왔던 알렉시오가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더니 자기 쪽으로 돌려세웠다. “오늘 하루 즐거웠소?”

그녀는 멋진 눈을 올려다보고 그가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지 새삼 인정하며 그의 밖에서부터 녹아 내렸다. “더할 나위 없이요” “우리도 이곳에 집을 장만해야겠는걸”

이오네는 순간적으로 긴장하다 알렉시오에게 더 솔직해질 때라는 걸 깨닫고 심호흡을 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코스마스 오빠는 런던 저택을 물려줬고 어머니는 외가의 시골 별장인 카라도르 파크를 남기셨어요.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아빠는 런던에 오실 때마다 그 두 곳을 이용하세요”

알렉시오는 단단히 죈 얼굴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얘기를 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요?”

이오네는 믿을 수 없어하는 그의 시선을 피해 간신히 어깨를 으쓱했다. “중요한 얘기 같지 않았어요. 저기... 난 목욕하러 갈게요” 그녀는 긴장된 침묵 속에서 속삭이는 소리로 말한 뒤 쏜살같이 방에 딸린 욕실로 향했다.

알렉시오는 천천히 심호흡을 한 뒤 쿵 닫히기 직전에 욕실문을 붙잡았다. “더 있는 거지, 안 그렇소?”

이오네는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긴장하여 침을 꿀꺽 삼켰다. “어머니와 오빠가 모든 걸 내게 남기셨어요”

알렉시오의 뻣뻣한 얼굴만 보고도 남편이 그 의미를 파악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고 그가 뜻밖의 사실을 받아들이는 동안 끔찍한 침묵이 흘렀다.

“그래서...” 알렉시오는 무뚝뚝한 어조로 느릿하게 말했다. “당신은 그걸 모두 우리 아이들을 위해 신탁해 둘 테지” 다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뇨...” 이오네는 속삭이다시피 했다.

알렉시오의 강한 성격이 뒷받침해 주는 번뜩이는 금빛 눈이 그녀를 주시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내 견해를 밝힌 걸로 아는데”

지난 기억을 되살리는 공정하고 진실된 말에 이오네는 얼굴이 하얘져 고개를 숙였다.

“그리스 남자들은 아내를 먹여 살리는 걸 자신의 권리로 알고 있소” 알렉시오가 완강하게 확신에 차서 말했다.

대단한 자존심 때문에 그의 지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거야. 이오네는 이를 갈며 결론을 내렸다. 알렉시오와 아버지의 제휴가 언제 끝날지 몰랐으느로 두 사람을 지켜주려는 것이었다. 미노스 가키스는 조만간 알렉시오를 매장할 음모를 꾸밀 것이다. 알렉시오가 그 제휴 관계를 끊으려고 하면 아버지는 그를 파멸시키려 들 것이다. 알렉시오는 아이들을 위해 전 재산을 신탁 자금으로 묶어 둔 의존적인 아내를 두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할 날이 반드시 올 터였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을 거요” 무섭도록 조용한 경고에 그녀는 등골이 오싹했다. “이건 뭐가 옳은가에 대한 문제요”

그가 문을 쾅 닫자 움찔 하는 바람에 그녀는 접시에 담긴 향기 좋은 방향제를 욕조에 엎어 버렸다. 그것들이 요란한 불꽃처럼 쏴 소리를 내며 퍼져나가 난감해하는 그녀의 눈에 흐릿해 보이는 무지개빛 줄무늬를 만들어냈다.

그녀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알렉시오는 높이 쌓아 둔 베개에 기대 어지럽혀 놓은 이불 밖으로 길고 건장한 다리를 내놓고 있었다. 희미하게 빛나는 금빛 눈과 마주치자 그녀는 입이 마르고 심장이 쿵쾅거리고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내가 보기에는” 알렉시오가 차분히 중얼거렸다. “이 역시 신뢰의 문제인 것 같소.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내 능력을 믿는 거요, 못 믿는 거요?”

이오네는 그의 예리한 지성이 몹시 뒤틀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 “ 상스럽게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그런 물음에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겠어요?”

“예스요, 노요?” 알렉시오는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 문제에 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내색을 비치면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부부 관계에 문제가 생기겠다 싶어 이오네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했다. 그녀는 어느 때보다 유혹적으로 꿈틀거리며 잠옷을 벗었다. 봉긋하게 솟은 젖가슴과 호리호리한 허리에 꽂힌 알렉시오의 강렬한 시선에서 돌연 욕망의 불꽃이 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오네는 숨도 거의 못 쉬고 달아오른 얼굴로 유유히 침대로 걸어가 그의 곁으로 들어가서는 등을 젖히고  고개를 흔들어 은빛 나는 머리카락을 좁은 어깨 뒤로 늘어뜨렸다.

“그야 물론... 예스죠” 그녀는 간드러지게 속삭였다.

“못된 여자” 알렉시오는 한 손으로 그 황홀한 머리를 헤집으며 금빛 눈을 그녀의 얼굴에 고정한 채 으르렁거렸다. 이어 그녀를 난폭하게 자기 위로 끌어올리고 맹렬하게 입술을 포개어 열감지 미사일처럼 효과적으로 그녀의 떨리는 온몸을 관통하는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성에서 보낸 주말 내내 이오네는 의붓 언니 프레디와 장시간 통화를 나누고 다음에 다시 오면 올리버와 점심을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그녀와 알렉시오가 그리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쌍둥이 언니를 두고 떠나는 게 여간 가슴 아픈 일이 아닐 테지만 알렉시오와 떨어지는 걸 견디는 것보다는 나을 터였다. 둘은 아직 신혼이고 그녀는 열렬한 사랑에 빠져 알렉시오를 먼저 보내고 더 있다 가라는 언니의 초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알렉시오와 이오네가 아테네에서 그들의 비행기에 오르기 몇 분 전 알렉시오는 혼자 있는 곳에서 급한 전화를 받았다. 제트기가 이륙한 후에야 이오네는 그의 얼굴에 긴장이 역력하고 눈빛이 어두운 것을 알아차렸다.

“왜 그래요?" 그녀가 물었다.

알렉시오는 천천히 억눌린 숨으 내쉬었다. 아직도 온몸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는 방금 장인의 건강이 느닷없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던 것이다. 의사는 예정됐던 수술을 받는 건 지금으로선 불가능할뿐더러 더 이상 손쓸 방법도 없다고 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묻고 있는 이오네의 눈을 바라보며 그는 미노스와의 약속을 깨기 싫어하는 자신을 책망했다.

“이오네... 당신 아버지가 몹시 편찮으신 것 같소” 그가 눈앞에서 이오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언제... 언제부터요?”

알렉시오는 그녀의 손을 잡고 6주전 장인이 들려준 얘기를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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