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55화 (455/463)

455화: 안쓰러워서

문 이야는 서안 가득 종이를 늘어놓으면서 이리저리 짜 맞추고 있었다. 태자 심복 내시 황금아가 돌연 죽었다. 희한한 죽음이었다. 직감적으로 큰 일임을 깨달았다. 그것도 아주 큰 일.

“이야, 큰일 났어요!”

추미의 모습이 보이기 전에 목소리부터 들렸다.

“무슨 일이냐?”

문 이야는 순간 벌떡 일어나면서 서안 가득하던 종이를 움켜쥐었다.

“난리 났어요!”

대뜸 안으로 들어온 추미는 양손을 함께 휘두르며 옥묵이 찾아온 일, 한 말을 이야기하고 염낭을 문 이야 앞으로 내밀었다.

“이야, 이상해요. 후사를 부탁하는 것 같았어요. 죽으려는 걸까요? 멀쩡히 왜…….”

“그 아이 성격을 보면 죽으려는 게 아니라……. 하긴, 이것도 죽는 것이지!”

문 이야는 발을 동동 굴렀다. 고사현이 죽을 때가 된 듯했다. 모두 자신의 탓 같았다. 옥묵은 모질고 강한 성격인데, 고사현이 아이를 끌고 나왔을 때 짐작했어야 하는 것을……. 황금아 일 때문에…….

후, 멍청이 같으니라고. 쥐 잡자고 옥 화병을 깨뜨리는 짓을 하다니!

“어디로 갔느냐? 너는 모르겠구나. 환가아 있느냐? 어서 가서 영해를 불러라. 이리 올 것 없고 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해라. 서둘러라, 서둘러! 말을 준비해라. 말 탈 줄 아느냐……. 모르겠지. 여긴 경성이니 마차 준비해라, 마차!”

문 이야는 줄줄이 분부하고는 추미의 등을 떠밀면서 밖으로 나가서 대문으로 달려갔다.

“이야, 옥묵…… 살 수 있을까요?”

추미가 뒤를 따르며 물었다. 차마 못 봐줄 정도로 쩔뚝거리며 빠르게 걷는 문 이야의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서두르면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 이야는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두 사람이 중문으로 달려갔을 때 영해가 이미 도착해 있었고 문 이야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손가락질하며 분부했다.

“얼른 가서 고사현을 찾아라. 어서 찾아야 한다. 서둘러야 해!”

“고 대야요? 알겠습니다!”

영해는 놀라서 묻고는 즉시 대답하며 자기를 불러온 사환에게 분부했다.

“고 대야는 왜요?”

추미는 망연해졌다. 문 이야는 설명하지 않고 이어서 영해에게 분부했다.

“고사현을 찾으면 네가 즉시 가라. 고사현이 살아있으면 붙잡고, 행여…… 죽었거든 잘 지켜라.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만일 들켰거든……. 후, 어찌 됐든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

“알아들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야.”

영해는 단번에 알아들었고 문 이야는 길게 말하지 않고 어서 가 보라고 손사래 치고 자기는 마차에 올라탔다. 추미도 따라 타려고 하는데 문 이야가 가로막았다.

“넌 갈 것 없다. 여기서 기다려라.”

“어머! 아이고!”

추미는 뒤로 물러나서 문 이야의 마차가 밖으로 나가는 걸 보다가 적당한 곳을 찾아서 자리를 잡고 턱을 괸 채 문 이야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고 대야가 소도홍을 찾아간 것까지는 쉽게 알아낼 수 있었고 소도홍의 입을 통해 웬 으스스한 여인이 고 대야를 데리고 간 사실까지 알아냈다. 영해는 그 여인이 옥묵임을 바로 깨닫고는 문 이야가 내리 명령의 의미도 깨달았다.

휴, 고 대야가 아이를 안고 나타났을 때 화를 자초했음을 알았지!

소도홍을 만난 후에 손가네 각점까지 찾아가는 덴 조금 시간이 걸렸다. 다행히 고 대야도 경성 유명인인 셈이라 아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씩 수소문한 끝에 옥묵과 고 대야가 각점으로 들어간 사실을 알아냈다. 영해는 다급히 문 이야에게 보고하라고 사람을 보내고 자기는 일꾼이 가르쳐준 대로 구석 방으로 향했다.

구석 방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영해는 우선 사환에게 근처 방부터 살피라고 지시했다. 한가할 시간이라 옆 방은 다 비어있었다. 영해는 살짝 안도하며 주변을 잘 지키라고 사환에게 지시하고 살금살금 다가가 창문에 붙어서서 기척을 살폈다.

끽소리 없이 조용한 실내의 기척에 영해는 눈살을 찌푸리며 침을 묻혀 종이를 뚫고 안을 들여다봤다. 온 구멍에서 피를 흘리는 고 대야의 얼굴부터 보였다.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역시 놀라서 화들짝 구멍에서 눈을 뗐다가 잠시 후 다시 가져다 대고 살폈다. 방 정중앙 대들보에 길디긴 오색 끈이 걸려 있었다. 끈 아래 의자가 놓여 있고, 옥묵은 의자 옆에 웅크리고 앉아서 조용히 밥을 말아 먹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영해는 문득 울컥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옥묵, 나 영해다. 추미가 보내서 왔다. 들어간다.”

영해는 문 옆에 서서 문을 톡톡 두드리며 나직이 말하고는 안에서 대답하기 전에 문을 밀고 들어갔다. 옥묵은 웅크리고 앉아서 그릇을 끌어안은 채 얼떨떨하게 영해를 바라봤다.

“겁먹지 말아라. 추미가 보냈다. 안심해. 두려워하지 마라.”

영해는 그렇게 말하면서 우선 끈부터 당기고 두봉을 벗어 고 대야를 덮었다. 옥묵은 천천히 일어서서 그릇을 상 위에 내려놓았다.

“내가 했어요. 목숨으로 갚을게요. 밥만 먹고 가요.”

“나도 안다. 이야가 곧 오실 것이다. 추미가 이야에게 부탁했고, 이야가 나부터 보내셨다. 이야가 오시면 이야의 말씀을 듣자.”

사람을 죽였으니 목숨을 갚아야 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영해는 그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벌레 같은 고사현 때문에 목숨을 걸다니. 너무 가치 없는 일이었다.

문 이야는 매우 빨리 도착했고,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일단 성큼 다가가 두봉을 걷고 고 대야부터 살폈다. 혐오스럽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두봉을 내려놓고 문밖을 향해 나직이 말했다.

“들어와라.”

얼굴을 가린 키 작은 사내가 보따리 하나를 안고 들어왔다. 사내는 옥묵은 쳐다보지 않고 영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단숨에 고 대야의 시신 곁으로 다가가더니 두봉을 벗기고 보따리를 풀어서 고 대야의 핏자국을 닦기 시작했다.

문 이야는 잠시 바라보다가 영해에게 분부했다.

“몇 가지를 처리해라. 첫째, 사람을 보내 고유덕을 불렀다. 고유덕이 오거든.”

문 이야는 탁자 위를 힐끔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탕이 있군. 잘 되었다. 이거면 됐다. 네가 수를 써서 고사현이 죽은 걸 내일 발견하도록 해라.”

“관아 쪽은요?”

영해가 바라보며 묻자 문 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리해 두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야.”

영해가 즉시 대답하자 문 이야는 돌아서서 옥묵을 불렀다.

“우린 가자.”

옥묵은 눈앞에 벌어진 일에 눈앞이 어른어른해서 한순간 반응하지 못했다. 문 이야가 부르자 걸음을 내딛다가 문득 다시 멈추고 돌아서서 고 대야를 가리켰다. 입술을 달싹여 봐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신경 쓸 것 없다. 넌 나와 가면 된다.”

문 이야가 부드럽게 하는 말에 옥묵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마차는 바로 문 앞에 서 있었고 옥묵은 문 이야를 따라 밖으로 나가 마차에 올라탔다.

손가네 각점의 객방엔 뜰이 따로 없어서 마차는 곧장 객방 뒤를 돌아 밖으로 나갔다. 줄곧 휘장 틈으로 밖을 내다보던 문 이야는 살며시 한숨을 내쉬며 휘장을 내려놓았다.

옥묵은 문 이야의 시선에 정신을 차린 듯이 마차 바닥에 엎드려서 연거푸 고개를 조아렸다.

“휴, 되었다. 잘 들어라. 내가 널 찾아온 이유는 첫째, 추미가 부탁했기 때문이고, 둘째, 네 팔자가 안쓰러워서였다. 이 일은 내 수습하겠지만, 넌 경성을 떠나야 한다.”

옥묵은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키는 대로 할게요. 이 천한 목숨도 마다하지 않으신다면…….”

문 이야는 옥묵의 말을 잘랐다.

“나도 다른 사람 밑에 의탁하는 신세다. 여인의 몸으로 경성을 떠나면 어딜 가든 낯선 곳이겠지. 사는 게 쉽지 않을 것이야. 구해준 이상 끝까지 도와야지. 이렇게 하자.”

자신이 한마디 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는 옥묵의 모습에 문 이야는 헛웃음이 나왔다.

“그만 끄덕여라. 머리가 다 어지럽다. 보아하니 너도 배포가 있는 것 같으니 이렇게 하자. 내가 남쪽으로 보내주마. 이가의 배가 몇 척 그쪽에 있다. 거기 가게 되며 적당한 일거리가 있는지부터 둘러보아라. 적당한 일거리가 없으면, 요즘 남쪽은 매우 활발히 일어나고 있고 법도며 풍습이며, 다 경성과 다르다. 여인이 장사를 일으키는 일도 꽤 있다…….”

그 말에 옥묵이 다급하게 문 이야의 말을 잘랐다.

“있을 겁니다! 분명 적당한 일거리가 있을 겁니다! 제 목숨은 이야와 이가의 것입니다. 분명 적당한 것이 있을 겁니다!”

“그럼 됐다. 지금 바로 가거라.”

문 이야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만나고 갈 사람이 있느냐? 이번에 떠나면 다시는 경성에 돌아오지 못한다.”

“없습니다!”

옥묵은 문 이야의 속뜻을 곧바로 알아들었다. 그녀의 대답은 결연한 가운데 모질기까지 했다. 문 이야는 아무런 말 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마차는 곧장 성문 밖으로 달렸다. 성문 밖, 어둠 속에 누군가가 말을 타고 길가에서 기다리다가 옥묵을 데리고 곧장 남쪽으로 달려갔다.

문 이야는 어둠 속에 한참 서서 지켜보다가 돌아서서 마차에 올랐다.

추미가 문 이야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 이야는 돌아오지 않고 환가아가 돌아와서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추미 누님, 이야가 보내셨습니다. 구했고, 멀리 보냈다고 돌아가시랍니다. 그리고 한마디 더 당부하셨습니다. 내일 낭자와 고야가 저택으로 돌아가실 거라고, 오늘 있었던 일을 살짝 말씀드리랍니다. 그리고 또, 오늘 일은 싹 잊으랍니다.”

추미는 구했다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알아들었어. 기억도 했고. 감사하다고 전해줘!”

이가 저택으로 돌아가 측문으로 들어간 문 이야는 곧장 중문 앞으로 달려가 문지기 어멈에게 물었다.

“태태께서 누우셨는지 여쭤보고, 아직이면 지금 바로 고해야 할 급한 일이 있다고 전하게.”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야.”

문 이야는 저택 종복들 사이에서 위신이 매우 높아서 말 한마디에 문지기 어멈은 얼른 대답하고 잰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금세 다시 돌아와서 웃으며 예를 갖췄다.

“제가 모시고 들어가겠습니다. 진주 낭자에게 이야기했더니 금방 다시 나와서 모시고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태태께서 화청으로 모시라고 했답니다.”

문 이야는 어멈에게 인사하고 화청에 들어가서 장 태태를 기다렸다.

잠깐 사이에 장 태태가 진주를 데리고 화청으로 들어왔다. 진주는 입구를 지켰고, 장 태태가 안으로 들어가자 문 이야가 예를 갖추고 바로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급한 일이라 이 시간에 찾아뵀습니다.”

“별말씀을요.”

장 태태가 다소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자 문 이야는 얼른 웃으며 말을 꺼냈다.

“큰일은 아닙니다. 옥묵 일입니다. 태태, 옥묵을 기억하십니까? 수녕백부 고씨 시녀입니다.”

“압니다. 강가 장자를 낳았지요.”

“며칠 전에 고사현이 그 아이를 데리고 약방에 찾아갔습니다. 그때도 일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소홀한 사이, 오늘 밤에 옥묵이 고사현을 독살했습니다.”

문 이야는 매우 간략하게 이야기했고 장 태태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화를 자초했군요. 아무리 그래도 옥묵이 배 아파 낳은 아이이거늘. 고가, 강가가 원망스러워서 아이를 버렸다고 해도 아무리 그래도 제 핏줄인데, 고사현이 그렇게 나오니…….”

장 태태는 또 한숨을 내쉬었고 문 이야도 한숨을 쉬었다.

“역시 현명하십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옥묵에게 그 아이는 잊을 수 없는 아픔입니다. 안 보일 땐 몰라도…… 그래서 저도 옥묵이 안쓰럽습니다.”

문 이야는 장 태태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오늘 일을 마무리 지어줄 생각입니다. 태태를 뵈러 온 이유는, 제 생각엔 옥묵이 쓸 만한 사람 같습니다. 사리 분별하는 아이예요. 모질기도 하고요. 영해에게 들어 보니, 고사현을 독살하고 목맬 끈을 준비해서 의자까지 놓고 조용히 고사현의 시신 옆에 앉아서 밥을 먹더랍니다. 그렇게 모질게 마음먹을 수 있다니, 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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