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46화 (446/463)

446화: 혼인

영 칠야와 이가 대낭자의 혼사는 거의 온 경성 사람이 영친 행렬이 지나가는 거리에 나와서 길 끝에서 끝으로 이어져 구경할 일이었다. 수십 년을 한량으로 산 고가 대야도 당연히 이런 즐거움을 놓칠 수가 없었다. 놓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남들보다 더 많이 봐둘 생각으로 인파 뒤에서 꽃가마에 드리운 진주 유소를 침을 흘리며 바라보던 고가 대야는 유소가 바람에 흔들리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옥묵을 발견했다.

고 대야의 눈이 순간 휘둥그레졌다. 옥묵이다! 전보다 훨씬 예뻐졌어. 누굴 잡았기에? 저건 내 시녀인데!

고 대야는 흥분해서 어쩔 줄 몰랐다. 예전보다 훨씬 예뻐졌으니 적어도 백 냥엔 팔 수 있다! 아니, 팔면 안 되지. 저당 잡히자! 저당이야말로 오래가는 남는 장사다!

고 대야는 닭이 달걀을 낳고, 달걀에서 닭이 태어나고, 닭과 달걀이 끝도 없이 생겨 큰돈을 벌 아름다운 꿈을 꾸었다. 돌연 기운이 생겨서 밀고 비집고 나가느라 사람들에게 호통 당하고 걷어차이면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맞은편으로 다가갔다.

영 칠야의 큰 경사인 혼례가 떠들썩하면서도 무사하게 끝날 수 있도록, 경부 관아는 딱히 명이 떨어지지 않아도 전부 출동했다. 영 칠야는 자기 사람 아닌가. 경부 관아 전체가 어전시위, 그리고 황성사 사람들과 함께 길 양쪽을 단단히 막고 있어서 영친 행렬이 완전히 지나가기 전엔 아무도 반 발짝도 비집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고 대야가 관아나 시위들과 힘겨루기를 할 리가 있나. 그 정도 눈치는 있어서 영친 행렬이 지나갈 땐 뒤로 물러섰다. 그런데 그렇게 하느라 거리 맞은편까지 비집고 갔을 때 옥묵은 진작 사라지고 없었다.

고 대야는 화가 나서 발을 굴렀다. 아이고, 내 돈!

하지만 오늘 못 찾으면 내일이 있고, 내일도 못 찾으면 모레가 있다. 경성 면적은 빤했고, 찾지 못할 리가 없다고 믿었다. 자기 사람, 자기 물건은 무슨 일이 있어도 되찾아와야 했다.

고 대야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을 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눈에 띄지 않는 방물장수 하나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방물장수는 고 대야가 툴툴거리며 거리 하나를 걸어서 담장 낮은 사창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줄곧 지켜보다가 딸랑이를 흔들며 길을 둘러서 자리를 떴다.

정북후부에 상전은 영원 하나였고, 영원의 사촌 형님 영 사야는 경성에 긴 시간 머무르고 있지만 여식솔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 이동이 신방으로 들어와 앉자마자 밖으로 나갔던 수련이 금세 돌아와서 울지도 웃지도 못할 얼굴로 고했다.

“낭자, 이 저택에…….”

“우리 저택!”

청국이 얼른 고쳐주자 수련이 눈을 흘겼다.

“이 저택 총괄 관사 조 어멈이 찾아왔어요. 다들 어제 이른 아침부터 지금까지 눈을 잠시도 붙이지 못하고 동동거렸다고요. 얼른 몇 명 골라서 잠깐 눈 붙이고 오라고 하고 새벽에 손님들이 돌아간 후에 다시 와서 당직서라고 해야 할 것 같다고요. 잠깐 자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어야 아침에 계속 일하지 않겠냐고요.”

“그런 일을 왜 지금 이런 때에 낭자께 고하는 거야?”

청국이 꿍얼거리자 녹매가 이동을 바라보며 말했다.

“칠야께서 보낸 거 아닐까요?”

녹매의 말에 수련이 조금 어이없는 듯 대답했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오늘 밤부터 저택 일은 모두 낭자께 말씀 올리라고 하셨대요. 칠야는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겠다고.”

“만 어멈 오라고 해서 조 어멈이랑 같이 상의하라고 해.”

이동은 그렇게 분부하고 공손한 모습으로 방 안 가득 서 있는 희낭(喜娘: 신부 들러리)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혼인하자마자 안주인이 되어 집안일을 맡아야 한다고 하더니, 정말 딱 그대로였다. 발을 디디고 들어와서 아직 제대로 앉지도 않았는데 집안일을 맡아야 하다니.

“뜨거운 물 준비하라고 분부해. 소유는 부엌에 가 보라고 하고. 녹매는 조 어멈에게 가서 평소에 칠야의 음식, 기거는 어떻게 돌보는지 물어보고. 혹시 조 어멈이 모르면 대영을 불러서 물어봐.”

이동은 생각나는 대로 일단 분부했다. 수련을 비롯한 이동의 시녀들은 이동 밑에서 집안일을 맡아 본 사람들이고 정북후부가 지체 높은 집안이긴 해도 어차피 이 경성 저택엔 사람이 적고 상전은 더 적어서 금세 노련하게 움직였다.

위봉낭은 소리소문없이 창밖에 비스듬히 기대서 잠시 듣다가 자세를 바로 하고 신방 입구로 걸어갔다. 걸음을 멈추고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매무새를 가다듬은 다음에 입을 벌리다가, 순간 뭐라고 불러야 할지 턱 걸려서 잠시 멍하니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서 고민되는 얼굴로 문을 두드렸다.

문에서 가장 가깝게 서 있던 녹매가 쏜살처럼 다가가 문을 열고는 위봉낭인 걸 보고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누군 줄 안 거야?”

녹매와 시녀들과 이미 친숙한 위봉낭은 녹매를 놀리기부터 했다. 녹매는 대답하지 않고 눈을 흘겼다. 뻔히 알면서 묻기는, 누구긴 누구겠어.

“그 뭐냐…… 부인을 뵈러 왔어. 부인이라고 하면 되겠지? 고명도 곧 내려올 거고.”

“들어와서 이야기하렴.”

위봉낭의 목소리를 들은 이동이 분부했다. 위봉낭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가서 이동을 향해 공수했다.

“축하드립니다.”

이동은 축하한다는 말에 어색해서 어쩔 줄 몰랐고 수련이 풉 웃음을 터트렸다. 위봉낭은 이동보다 더 어색해했다.

“부인, 양해해주세요. 전 예법을 잘 모르고 말주변도 좋지 않습니다. 앞으로 부인을 모시라는 칠야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위봉낭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고개를 숙이고 말을 이었다.

“시녀로요.”

“응?”

이동은 얼떨떨해하다가 금세 물었다.

“뭘 잘못했어?”

위봉낭은 이동의 물음에 안도한 듯이 아까보단 덜 어색하고 난감한 듯이 대답했다.

“그게…… 큰일은 아닙니다.”

이동이 희낭들을 둘러보자, 수련은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듣고 웃는 얼굴로 뒤뜰에 가서 다과 먹으면서 잠시 쉬라고 희낭들을 데리고 신방에서 나갔다.

“무슨 일이야.”

희낭들이 모두 물러가자 이동이 위봉낭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멋대로 대황자부에 있는 아라에게 물건을 두어 번 보냈습니다.”

위봉낭은 이동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아라는 어떻게 지내?”

“그럭저럭 지냅니다. 잔머리는 있어서 들어가자마자 꾀병을 피웠습니다. 지난번에 같이 들어간 사람이 많아서, 지금까지 꾀병으로 누워있어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고요.”

위봉낭은 매우 간결하게 설명했다.

“물건을 보냈다는 게, 부탁한 사람이 있었어?”

“두 행수요. 두 행수가 아라를 걱정하기에 처음엔 제가 들어가서 보고 나왔고, 두 번째는 은자랑 약을 좀 보내주라고 해서 가지고 갔다가 돌아왔을 때 칠야께서 아셨습니다.”

위봉낭은 묻는 대로 대답했다.

“칠야가 어떻게 아셨는데.”

“두 행수가 저택에 찾아와 아라를 보살펴 주셔서 감사하다고 절을 올렸거든요. 그래서 아셨습니다.”

위봉낭이 고개를 숙이고 하는 말에 이동이 피식 웃었다.

“그래서 너더러 시녀가 되라고 하셨고?”

위봉낭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내 시녀 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은데? 하지만 너희 칠야의 말씀이니 그냥…….”

이동은 주변을 둘러보고 웃으며 녹매를 가리켰다.

“녹매 밑에서 시키는 대로 하렴.”

위봉낭은 공수하고 감사 인사한 다음 녹매 곁으로 가서 섰다. 녹매는 웃으며 반 발짝 물러났다.

“이럴 것 없어. 낭자가 일거리를 주지 않으시는데 내가 어떻게 일을 시키겠어. 네 볼일 보러 가. 할 일 없으면 쉬고.”

위봉낭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음 지으며 녹매를 향해 공수하고 돌아서서 나갔다.

수련과 시녀들이 이동의 대례복을 벗기고 목욕 단장한 후 옷을 갈아입힌 다음 담백한 찬 몇 가지와 죽을 올렸을 때 영원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식사하려고 막 자리에 앉은 이동은 영원이 들어오는 걸 보고 순간 긴장하고 어색해졌다.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고 차를 마신 적은 많지만 부부로서 마주 앉은 건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영원은 고개를 내밀고 상 위의 찬과 죽을 바라봤다.

“찬이 참 좋군! 죽도 좋고. 나도 출출했는데. 일단 씻고 와야겠어. 땀 냄새가 폴폴 납니다. 잠시만 기다려줘요. 잠깐이면 됩니다! 같이 먹읍시다!”

영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정방으로 들어갔다. 수련과 청국도 이동과 비슷하게 긴장했다. 칠야 거처에 시중드는 사람은 시녀는 없고 대영을 비롯한 사환밖에 없다는 걸 들었었다. 낭자가 혼인해서 들어왔으니 상방에 사환들은 당연히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럼 칠야의 일상생활을 그녀들이 돌봐야 하는데?

수련이 눈짓하자 청국과 녹매가 서둘러 따라갔다. 영원은 돌아서다가 두 사람이 따라오는 걸 보고 손사래 쳤다.

“물이 준비되었는지 보고 준비되었거든 물러가라. 필요 없다.”

청국은 머뭇거렸고 녹매가 그런 그녀를 살짝 잡아당기고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물은 준비되었어요. 온도를 보시고…….”

“그럼 됐다. 물러가라.”

녹매의 말이 끝나기 전에 영원이 성큼 정방 안으로 들어갔다.

녹매와 청국은 문을 닫아주고 안에서 들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귀를 기울이고 부르길 기다렸다.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영원이 하얀 장옷을 걸치고 머리카락이 젖은 채 맨발로 걸어 나왔다.

“머리카락 좀 말려다오.”

두 사람이 함께 금세 물기를 말려서 살짝 말아 올리자 영원은 하얀 장옷도 입지 않고 백주 웃옷과 바지를 입고 몇 걸음 만에 상방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이동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나른하게 기지개를 켰다.

“종일 힘들었는데 드디어 쉴 수 있겠어요. 죽도 좋고, 찬도 좋네요. 소유의 솜씨인가?”

영원은 이동과 몇십 년 함께 한 노부부처럼 편안하게 굴었고 그런 그의 모습에 이동은 어이없어 웃음이 났다. 덕분에 긴장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싹 사라졌다.

영원은 맛있고 빠르게 음식을 먹었고 이동은 먹으면서 그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가 다 먹고 나자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수련이 물을 내와서 입을 헹군 뒤에 차가 올라왔다. 이동은 다시 조금 조마조마해져서 찻잔을 천천히 들어 올려 입가에 댔다. 맞은편에 앉은 영원은 옅게 내린 차를 벌써 한 잔 다 비우고 잔을 내려놓고 이동을 바라봤다.

찻잔을 든 이동의 손이 멈칫했다. 흘겨보려다가 아예 시선을 내리깔고 영원이 빤히 바라보고 있는 걸 모르는 척했다.

“비녀 빠지겠어요.”

영원이 갑자기 손을 쑥 뻗어서 이동이 꽂은 적금 보석 비녀 하나를 빼냈다. 이동이 흠칫 놀라서 옆으로 피하려는데 영원이 어느새 비녀를 빼서 손에 쥐고 있었다.

“참 예쁘군.”

영원은 비녀를 들고 붉게 불타는 촛불 아래 비추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을 바라봤다. 정말로 매우 진지하게, 정말 진지하게 아름다운 비녀를 감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비녀를 뽑자 머리카락이 이동의 귓가, 볼 쪽으로 흘러내렸다. 이동은 화가 나서 얼굴을 돌렸다. 멀쩡히 꽂힌 비녀가 빠질 일이 뭐가 있어서.

영원은 비녀를 조심스럽게 탁자에 내려놓고 상체를 좌우로 기울이면서 열심히 감상하다가 이어서 이동의 머리모양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말리지 않고 그냥 올렸었나?”

영원은 상체를 쑥 내민 채 이동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유심히 살폈다.

“말렸어요.”

이동은 무심결에 상체를 뒤로 젖혔다.

“안 마른 것 같은데. 가만히 있어요, 좀 보게.”

영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민첩하게 이동의 옆으로 옮겨 앉아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다 말랐다니까요.”

이동이 후다닥 몸을 틀었다. 급하게 움직인 바람에 손에 찻물이 튀었다.

“데지 않았어요? 다행이군, 다행이야.”

영원은 한 손은 이동의 등을 두르고 다른 손으로 이동의 손에 들린 찻잔을 잡아서 탁자에 내려놓고는 이동의 손을 유심히 살폈다.

“조금 붉어지긴 했는데 덴 건 아닌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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