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4화: 한마디 묻다
“사형받은 죄인은 모두 저 옥에 있어요. 따로 데리고 나오면 마음의 준비를 할까 봐, 그냥 두었습니다. 미리 옥에 들어가서 보았는데 깔끔한 편이라 들어갈 만합니다.”
“네.”
영원은 조금 힘을 주어 이동의 손을 잡고 그녀를 끌고서 이끼가 자란 돌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모퉁이를 두어 번 돌았을 때, 대웅이 앞에서 철문을 열었다. 철문 안에 등불이 없어서 문을 열자 밖을 밝히는 불빛이 비스듬히 안을 비췄다. 제일 바깥 칸 철장 안에 갇힌 강환장은 무심결에 손을 들어 시선을 가리며 밖을 바라봤다.
이동은 잠시 적응하고서야 철문 안쪽 상황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비좁은 공간 좌우에 철장, 아니 우리라고 불러야 좋을 곳이 있었고, 그 가장 바깥 우리에만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 강환장을 따로 끌어내진 않고 옥을 비우기만 했구나.
“혼자 들어갈게요.”
이동은 살며시 영원에게 잡힌 손을 빼냈다.
“알았어요. 밖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잘…….”
영원의 말이 끝나기 전에 이동이 말을 잘랐다.
“그럴 것 없어요. 여기서 기다려요.”
이동은 마지막 계단을 내려가서, 이미 철장살을 잡고 일어서서 그녀를 빤히 바라보는 강환장 앞으로 가서 섰다.
강환장은 철장살을 잡은 손을 풀고 더럽기 짝이 없는 옷깃을 무심결에 쓰다듬으며 매무새를 고쳤다. 이동은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물었다.
“우리 어머니, 어떻게 죽인 거지?”
강환장은 시선을 피하고 침묵했다. 이동은 빤히 바라보며 잠시 기다리다가 돌아서서 철문 밖으로 나갔다. 영원이 서둘러 계단 아래로 내려가 그녀를 맞이했다.
“가요.”
이동은 영원의 손을 잡았다. 영원은 그녀의 손을 잡고 계단 위로 올라갔다. 강환장은 천천히 닫히는 철문 너머로 두 사람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걸 멍하니 바라봤다. 지하 감옥 안은 다시 불빛 하나 없이 어두컴컴해졌다.
이동이 한마디도 하지 않으니 영원도 아무 소리 없이 그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형부 대옥에서 걸어 나갔다. 길고 어두운 골목을 지나 밝고 아름다운 등불 아래 서서 이동은 살며시 숨을 내뱉으며 영원을 잡아당겼다.
“아까 말한 소횡교의 훈둔탕, 나도 먹고 싶어요.”
영원이 금세 활짝 웃었다.
“정말 경성 제일이에요! 역시 뭘 좀 안다니까. 그럴 줄 알았지. 갑시다! 훈둔탕 먹고 개보사에 가서 석양 아래 만종 소리를 들읍시다. 종소리가 딩 울리면 속이 후련해지거든! 석양을 보고 북주교 야시장 구경 갑시다. 북교 쪽에 도깨비시장이 있는데 좋은 물건이 있어요! 당신은 안목이 좋으니까 어쩌면 헐값에 보물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 대박이 나는 거지. 모처럼 나왔는데 제대로 놀아야지요.”
“북교 쪽에만 있는 줄 알아요? 봉구문에서 동쪽으로 조금 가면 잡화를 파는 점포들에도 좋은 게 많아요. 전에 외할머니는 거기서 서예 대가가 쓴 물건 구매 단자도 구했어요. 작은 것도 아니에요. 손바닥 두 개만 했거든요. 서른일곱 글자 적힌 건데 겨우 동전 열 몇 푼에 샀어요.”
이동이 손가락을 흔들며 하는 말에 영원은 부러워서 발을 굴렀다.
“봉구문 동쪽에 나도 가 본 적 있는데, 난 또 잡동사니만 가득 있다고 생각했더니, 보물이었군! 정말이지! 역시 그쪽으로는 안목이 너무 짧아. 큰돈을 벌 기회를 얼마나 놓쳤을지 모르겠군. 우리 마차 타고 갈까요, 아니면 말을 타고 갈까요? 일단 봉구문까지 마차를 타고 가서 성 밖으로 나간 다음엔 말을 탑시다. 말을 못 타도 상관없어요. 우리 둘이 같이 타고…….”
“말 탈 줄 알아요.”
이동이 말을 자르며 하는 말에도 영원은 못 들은 체했다.
“말을 타고 산에 오르는 건 매우 위험하지.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내 기마 실력은 천하제일…….”
“뻔뻔하기로 천하제일이겠죠. 이건 장공주가 한 말이에요.”
“맞는 말입니다. 그것도 내 장점 중 하나지요.”
영원이 턱을 치켜들며 하는 말에 이동은 어이없어 헛웃음 쳤다.
두 사람은 마차를 타고 소횡교에서 개보사, 또 봉구문에서 내내 구경하며 돌아오느라 모두 잠든 시각이 되어서야 이가 저택으로 돌아왔다. 영원은 마차에서 내려 이동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까지 배웅하겠습니다.”
“괜찮아요. 어서 돌아가요.”
이동이 밖으로 영원을 떠밀었다.
“이 새벽에, 당연히 안까지 모셔드려야지, 아니면…….”
영원은 늦어서 위험하다고 하려는데 이동이 다시 등을 떠밀었다.
“우리 집이에요. 집 앞인데 뭘 걱정하는 거예요.”
“칠야, 어서 돌아가서 쉬세요. 낭자는 제가 모시고 들어가면 됩니다.”
만 어멈이 각문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그 사이 이동은 치맛자락을 들고 계단 위로 폴짝 올라가서 각문 안으로 조르르 들어갔다. 만 어멈이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어서 돌아가세요, 칠야.”
영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돌아가자, 돌아가.
다음 날 아침, 이동이 이를 닦고 있는데 녹매가 고개를 내밀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야가 낭자에게 기별하라고 해서요. 어젯밤에, 강환장이 옷을 엮어서 옥에서 목을 맸대요.”
이동은 잠시 멈칫하다가 계속 이를 닦았다. 옥졸들이 연루되겠구나.
“편하게도 갔네!”
수련이 꿍얼거리고는 곧바로 말을 돌렸다.
“마침 잘 왔어. 동쪽 곁채 가장 바깥 칸에 가서 소주(素綢) 상자들 침선방에 가져다줘. 낭자가 쓸 것들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만들라고 하고.”
녹매는 폴짝폴짝 밖으로 나가서 동쪽 곁채로 향했다.
이동과 장 태태가 함께 아침을 먹고 차를 받은 뒤에 장 태태가 입을 열었다.
“네 오라비가 오늘 한가하다기에 전답, 점포 이야기를 좀 하려고 불렀다.”
“네.”
이동은 상 위에 쌓인 두꺼운 장부를 훑어보았다.
이신은 두 사람이 차 한잔 다 마시기 전에 도착해서 이동의 안색부터 살폈다. 편안해 보이는 누이를 보니, 살짝 걱정하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이동이 직접 차를 내려준 후에 장 태태가 진주를 시켜 장부들을 이신에게 건넸다.
“네가 이런 걸 따지지 않을 것이고, 육저아도 그러지 않을 것을 안다. 다만 돈 문제는 친형제라고 해도 명확히 계산하는 게 좋다. 그러니 이야기해두는 게 좋을 것 같구나.”
“예.”
이신은 장 태태의 말에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우리 가문의 장사가, 모두 여기에 있다.”
장 태태는 이신이 든 두꺼운 장부를 가리켰다. 진주는 살금살금 물러나 문밖에서 지켰다. 태태가 나가라고 하진 않았지만, 듣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점포, 전답 같은 건 너무 세세하니 길게 말하지 않으마. 점포는 네 누이 혼수로 많이 보낼까 한다. 장사 관리하는 건 신경 쓸 일도 많고 고생스러운 데다가 장사하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너는 관리고 육저아는 승상부 출신 규수이니 아무래도 둘 다 그쪽으로는 서툴지 않겠니. 네 누이는 어릴 때부터 내 밑에서, 그리고 네 외조모 밑에서 장사를 배웠다. 대단히 뛰어나진 않지만 그래도 보통 사람보다는 낫단다.”
장 태태가 천천히 하는 말에 이신은 동의한다는 듯 허리를 숙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답 같은 건, 혼수로 가져가지 않기로 네 누이와 이야기 끝냈다. 칠가아가 앞으로 경성에 오래 살지 북부로 돌아갈지 아직 모르고, 설령 경성에 산다고 해도 두 사람이 알아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조금은 있는 게 좋지요.”
이신이 제안하자 이동이 웃으며 도리질했다.
“필요 없어요. 영씨 가문도 경성 일대에 큰 장원 몇 군데 있어요. 게다가 관리할 사람이 없는 곳이에요. 난 장원 관리는 싫어요.”
“성 밖의 자등 산장은 네 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니 혼수로 보낼 생각이다. 동쪽으로 있는 땅도 이미 거둬왔고…….”
“동쪽 땅이요?”
이신이 얼떨떨해하자 장 태태도 얼떨떨해했다.
“이야기하지 않았더냐? 이런, 내 기억 좀 보게. 네 외조모의 생각이셨다. 그때 돈을 좀 더 들여서 동쪽 저택도 같이 사들였다. 나중엔 임대해서 내놓았고. 휴, 네 외조모는 참으로 멀리도 보시는구나. 지금은 이미 거둬왔다. 한창 수리 중이란다. 수리가 끝나면 중간 담장만 밀어버리면 된다. 두 저택을 붙이면 앞으로 아이들이 많아져도 대충 살 만할 것이다.”
“외할머님이 정말 사려 깊으시군요.”
이신은 얼떨떨해하다가 감탄했다.
“휴, 그러니 대대로 내려갈수록 모자라진다고 말씀하시지.”
장 태태가 웃으며 하는 말에 이신은 웃으려다가 얼른 입을 다물었다. 외조모를 두 번 만난 적 있었다. 단 두 번이었지만 강한 기억이 남았다. 기세로 따지면 모친이 외조모보다 못하지만 동저아는 외조모와 비슷하니 대대로 못한 건 아니었다.
“경성의 저택은 세 곳 더 있는데, 네 누이에게 두 곳을 주고 네게 한 곳을 줄까 한다. 현은을 꽤 가지고 있어서 곳간을 나눠 두었는데, 누이는 점포가 많고 점포에서 나오는 돈이 꽤 있으니 현은은 6할은 네게, 4할은 네 누이의 혼수로 주기로 네 누이와 상의했다.”
“어머님, 이건…….”
이신은 조금 불안해졌다. 이 정도면 재산 분할 수준이었다. 이건 안 될 말이었다.
“내 말부터 들어라.”
불안해하는 이신을 보며 장 태태가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인지 안다. 네 누이가 출가하면 어차피 재산 분할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일은 일찍 준비해두는 게 좋다. 네 누이가 정혼한 후로 줄곧 생각했었다. 오늘에야 대충 생각 정리가 끝났단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는지 너도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예.”
이신은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양자로 들어온 날부터 동저아와 비교할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았다. 이 집안은 동저아의 것이고, 이 집안의 재산, 은자 모두 동저아의 것이다.
“집안일이든 재산 관리든, 네 누이 걱정은 하지 않는다만, 너는 어릴 때부터 글공부하느라 서무 쪽은 모르지 않으냐. 육저아는 영리한 아이 같고, 다행히 내가 아직은 늙은 건 아니니 그 아이가 들어온 후에 서무 쪽으로는 내가 몇 년 돌봐 줄 수 있다. 익숙해지면 제일 좋고, 이런 걸 관리하기 싫어도 상관없다. 혹시 그렇다면 내가 천천히 각지 재산들을 정리하고, 신경 써야 하는 것들은 다 팔아 버리면 된다. 수입은 많고 그리 신경 쓸 것 없는 장사들로 꾸려서 적어도 이삼 대 먹고살 만큼 마련해 주면 되지 않겠느냐. 그 후로는 알 수도 없고, 내가 관여할 수도 없다.”
그렇게 멀리까지 생각한 장 태태의 계획에 이신은 입을 달싹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장 태태는 계속해서 이신의 혼사에 관련된 세세한 이야기를 했고, 이신은 반 시진 후에야 물러났다. 뜨락으로 나가서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뒷짐을 진 채 문 이야의 뜨락으로 향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누군가와 차분히 이야기해야 할 것만 같았다.
수녕백 강가는 연기처럼 세상에서 사라지고 세상을 뒤흔들 악행만 남아 이야기꾼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진왕은 강환장의 탈정 상주를 올린 바람에 똥통에 빠진 꼴이 되어 아무리 씻으려야 씻을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황상은 별말 없었고 장공주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태자는 몹시 들떠서 진왕이 죄를 청하는 상주를 올리기도 전에 어사 몇 명을 부추겨서 강환장의 악행은 진왕의 방임과 보호 아래 벌어진 일이니, 진왕은 자진하진 않더라도 위리안치해야 한다고 질타하는 상주를 올리게 했다.
판에 찍은 듯한 상주서 몇 장을 받은 승상들은 골치가 아프고 이가 시리고 온몸이 쑤셨다. 이 태자 전하는 정말이지 10여 년을 한결같이 보내는구나!
겁에 질린 진왕이 후사까지 당부를 끝낸 가운데 작위를 박탈하고 성 밖 장원에서 3년 동안 글공부하라는 성지가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