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3화: 은혜는 위에서 베푸는 것
곡 대내내가 진 부인을 해친 사실은 강가 종복들 사이에선 이미 비밀도 아니었고 조금이라도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이렇게 줄줄이 끌려 온 일에 대해서도 대부분 매우 담담했다. 일단 두려움은 진작 가셨고, 또 하나, 이런 천륜을 거스른 사건의 죄는 아무리 물어도 자기들 종복들에게 떨어질 일이 없었다. 기껏해야 팔려 갈 뿐인데 운이 좋으면 새 주인은 강가보다 더 좋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어딜 가든 노비 신세 아닌가.
상전과 상전이 아닌 자들 중에 아무것도 모르고 망연한 것은 수녕백, 그리고 강완, 강녕뿐이었다.
수녕백은 끌려 나오면서도 핏대를 세우며 버럭 화를 냈다.
분명 대리시에서 잘못 안 것이다! 수녕백부는 격조 높고 우아한 곳인데, 아도물이 조금 부족한 것 외에 다른 점에서 부족한 곳이 어디에 있어서?
이런 기세에 질겁한 강완과 강녕은 둘이 꼭 끌어안고 구석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곡 대내내는 안색이 창백했지만, 추태를 보이진 않았다. 그녀는 묵란이 낳은 강가 장자가 면죄부라도 되는 듯이 품에 꼭 끌어안고서 강환장의 맞은편 구석에 꼿꼿이 서 있었다.
고 이낭은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울고 있었다. 그러나 울음소리를 낼 엄두는 나지 않아서 눈물을 훔치고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너무 슬프게 울어대서 머리가 어질어질한 바람에 아들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만 한 살이 되지 않는 아이는 춘연 품에 안겨서 목이 찢어져라 울면서 제 어미에게 안기려고 버둥거렸다.
춘연은 심신이 불안해서 아이를 고 이낭에게 넘겨주고 싶었지만 넘겨줄 수가 없었다. 고 이낭은 너무 두렵고 너무 당황하고 너무 슬퍼해서 아이를 받을 수가 없었다. 일개 부녀자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데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랴.
청서는 아이를 토닥이고 어르면서 강환장을 힐끔거릴 뿐, 꽤 침착했다. 진작 알고 있었고, 마음의 준비도 했었다. 이러나저러나 죽으면 끝이었다. 뭘 더 어쩔 수 있으랴.
마지막으로 끌려온 수녕백 강화원이 옥으로 떠밀려 들어오자마자 옥문이 뒤에서 쾅 하고 닫혔다. 강화원은 제일 안쪽에 있는 아들에게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는 발에 뭐가 밟히는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짓밟고 들어가서 아들 앞에 섰다.
“이 고얀 놈! 감히 어미를 시해해? 불효로 고발할 것이다! 이 불효자식!”
강환장은 담담하게 부친을 바라봤다.
“늦었습니다. 독주로 받을 것인지 백릉으로 받을 것인지나 잘 생각해 두세요.”
“이런 고얀 놈! 이놈이…….”
강화원의 호통 소리는 두려움에 가득 차서 파르르 떨렸다. 강환장은 상대하지 않고 벽에 기댄 채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져서 무릎에 머리를 박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화원은 멍하니 한참 서 있다가 조금씩 주변을 둘러봤다. 놀라고 두렵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강완과 강녕을 넋 나간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두 사람이 누군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엔 오로지 시, 그리고 저 먼 곳밖에 없었다.
곡 대내내는 병아리처럼 허약해서 울지도 못하는 대소야를 끌어안고 강환장처럼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졌다.
어머니의 병은 나았나 모르겠다. 그녀는 경성으로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어머니를 떠올렸다.
강가의 이 천륜을 거스른 큰 사건은 증인, 물증 모두 다 있고 명확하고 확실했다. 묵 승상이 총괄하고 대리시, 형부, 어사대와 함께 반나절도 되지 않아 모든 과정을 심리했다. 곡씨가 진 부인의 혼수를 가로챌 마음이 들었을 때부터, 봉운을 모함해서 죽인 일, 비상을 사 오라는 명령을 받은 왕 어멈이 파두로 바꿔치기한 일, 그리고 곡씨가 어떻게 진 부인을 죽였는지, 반월이 어떻게 강환장에게 보고했는지, 강환장은 어떻게 반월을 몰아세워 죽였는지, 낱낱이 심리했다.
너무 명확하고 너무 확실한 사안이라 이야기할 거리도 없었다. 묵 승상과 사람들은 율법에 따라 주범 곡씨를 책살형(磔殺刑: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에, 곡씨의 악행을 알면서도 반월을 죽여 입막음한 강환장을 곡씨와 같은 죄로 보고 능지형에, 집안을 다스리지 못하고 아들의 흉악한 행동을 방임한 강화원을 교살형에 처하고 강녕과 강녕은 노비로 팔고 어린 세 아들은 처리하지 않고 나머지는 저지른 죄에 따라 벌한다는 상주서를 작성했다.
상주서는 장공주 손으로 들어갔고 장공주는 슬쩍 훑어보고 바로 상 태감에게 넘겼다. 은혜는 위에서 베푸는 것이라고, 이 일은 황상 스스로 해결하게 했다.
마음 약한 황상은 책살형이라는 말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서 은혜를 베풀어 곡씨를 교살형, 강환장을 참수형, 강환장은 자진하라고 내용을 고쳤다. 강완, 강녕은 변함없이 노비로 팔고 세 아들이 어린 것을 참작하여 아이의 생모도 죄를 면하고 벌주지 않기로 했다. 충성으로 주인을 섬긴 봉운과 반월은 예부에서 표창하고, 비상을 파두로 바꿔치기한 왕 어멈은 양심이 남아있고 자수한 공을 참작하여 죄를 묻지 않기로 했다. 나머지는 관 거간꾼에게 넘겨 팔도록 했다.
이동은 베껴온 성지를 읽고 또 읽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를 기분이었다.
“황상은 자비롭기로 따지면 정말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문 이야는 불만스러운 듯 쥘부채를 흔들었다.
“다 같은 죽음이에요. 차이 없어요.”
“그건 그렇군요. 허허허. 하지만 차이가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지요. 곱게 죽지 못할 거란 말을 욕으로 쓰는 것 보세요.”
“그렇네요.”
이동은 마음이 붕 뜬 듯이 대답했다.
“춘연은 제가 사람을 시켜 사들였습니다. 강남으로 가고 싶다고 해서, 옛 친우에게 부탁해서 혼수를 장만해주고 좋은 상대를 찾아주었습니다. 몇 년 동안은 그가 돌봐 줄 겁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낭자.”
문 이야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옥묵이 낳은 아이는 강가 사당으로 보냈습니다. 몰래 돌봐 주라고 태태께서 분부도 했고요. 어떻게든 장성할 때까지는 돌보라고요. 고씨도 아들을 강가 사당에 보냈습니다. 전 장방의 누이인 전 매파를 몰래 만나 자기를 적당한 사람에게 팔아달라고 부탁했답니다. 무슨 일이든 괜찮다고요. 저당도 괜찮고, 팔아도 된다고요.”
이동은 말없이 들었다. 뜻밖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고씨는 그런 사람이었다. 감당할 일은 조금도 하지 않고 정과 의리가 없었다.
“청서가 놀랍게도 물건을 많이 꿍쳐뒀더군요. 나오자마자 물건을 찾아서 아들을 데리고 우리 상단 중 한 곳에 의탁해 소주로 갔습니다. 그 상단을 따라갔으니 앞으로 장래가 있을 겁니다.”
문 이야는 감탄하는 표정이었다.
“나, 그 사람 한 번 만나고 싶어요.”
이동은 고개를 숙인 채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정신이 딴 데 팔린 듯이 이야기를 듣다가 별안간 그렇게 말했다. 문 이야는 얼떨떨해졌다. 이동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이미 결심한 일이었다.
“죽기 전에 한 번 만나야겠어요. 내가 강환장 한 번 보고 싶어 한다고 칠야에게 기별해 주세요. 그렇게 준비해달라고요. 그리고, 같이 가달라고요.”
문 이야는 잠시 이동을 바라보다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다른 건 하나도 묻지 않았다.
강환장이 저지른 놀라운 일들을 그도 조금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날, 밤새 뒤척이며 잠들지 못하고 곰곰이 곱씹으며 몇 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강환장이 유일한 사람이 아닐 것이다.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낭자는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기별을 들은 영원은 그날 저녁 몰래 효풍원으로 숨어들었다. 우선 이동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펴보고는 매우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정말로 만날 겁니까?”
“네.”
이동은 매우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럽시다. 지금 바로 갑시다. 안 그래도 비참할 텐데, 당신을 만나면, 거기에 나까지 만나면 정말로 비참해지겠군요.”
이동은 영원을 흘겨봤다.
“그런 것 때문이 아니에요.”
“나도 압니다. 우리가 그런 시시한 사람입니까? 강환장이 그렇게 생각할까 싶은 것이지요. 소인배 아닙니까.”
영원이 얼른 대답했다.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해요.”
이동은 어느새 단정하게 차려입고 멱리 중에 하나를 고르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영원이 싱긋 웃었다.
“그렇지요. 뭐라고 생각하든 우리가 알 바 아니지요. 후각문에 마차를 세워뒀습니다. 지금 바로 갈까요? 갑시다. 왜 직접 들고 갑니까. 시녀는요?”
영원은 이동을 따라 밖으로 나가면서 쉴 새 없이 주절거렸다.
“아! 참, 내가 있지! 내가 있는데 시녀를 뭐 하러 데리고 가나. 시중드는 걸 따지면 나 한 사람이 당신 뜨락 시녀 모두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 뭐 하는 겁니까?”
영원의 장담이 끝나기도 전에 이동이 돌아서서 멱리를 영원 앞에 내밀었다.
“들라고요. 내 시녀들보다 낫다면서요.”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습니다……. 당연히 내가 들어야지요.”
영원은 멱리를 들고서 이동과 함께 회랑을 따라 월동문을 나가서 후각문으로 향했다.
청국, 녹매와 시녀들이 창가에 엎드려서 창문 틈, 문 틈으로 구경하고 있었다. 상방에서 두 사람을 배웅하고 들어온 수련이 화난 얼굴로 모두를 둘러봤다.
“너희들, 이게 무슨 꼴이야? 내가 이러는 거 본 적 있어?”
모두가 그녀를 향해 눈을 흘겼다.
후각문 밖에는 경성에서 가장 흔한 오동나무 마차가 서 있었다. 이동과 영원이 나오자 대영이 재빨리 각탑을 놓았다. 영원은 휘장을 쳐들어 이동을 마차에 태우고 마차 문을 잡고 있던 힘을 이용해 멋지게 마차에 올라탔다. 대영은 각탑을 치우고 채찍을 휘둘러 형부 대옥으로 마차를 몰았다. 강환장을 비롯한 사람들은 지금 벌써 형부 대옥으로 옮겨져 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동은 마음이 붕 뜬 듯해 보이지만 그래도 단정하게 마차 안에 앉아 있었다. 영원은 그녀의 표정을 힐끔힐끔 살피면서 “멱리가 매우 예쁘네요.”부터 시작해서 “오늘 아침에 소횡교에서 먹은 훈둔탕이 정말 맛있었네.”까지 쉴 새 없이 말을 멈추지 않았다.
형부 대옥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마차가 멈추자 영원은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역시 오늘 만나지 말고 내일 만납시다. 당신 안색이 좋지 않아요.”
이동은 마음이 따스해졌다.
“괜찮아요. 그냥……. 이따 뭐라고 말할지 생각하느라 그래요.”
“뭘 생각할 게 있습니까. 떠오르는 대로 합시다. 당신 속이 후련해지면 됩니다. 강가 놈은 알게 뭡니까.”
영원도 길게 설득하지 않았다. 오늘 만나나 내일 만나나 사실 차이는 없었다.
“네, 알겠어요.”
이동은 나직이 대답하고 멱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영원이 높이 들어 올려 씌워주고 이리저리 바라보며 정리해주고 먼저 마차에서 내려 휘장을 치켜올렸다. 이동이 마차에서 내리자 길고 깊은 골목으로 나란히 걸어 들어갔다.
골목 끝 어느 철문이 끼익하고 열리고, 대웅이 공손히 서 있다가 영원을 바라보며 모든 준비가 되었다고 나직이 고했다.
이동은 작은 철문 안으로 들어가서 주변을 살폈다.
이곳이 형부 대옥에서 가장 깊은 옥일 듯했다. 주변에 나무가 많아서 어둡고 습했다. 낮은 돌집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그 흉악한 분위기에 이동은 무심결에 어깨를 움츠렸다.
영원은 주저하다가 이동의 손을 잡았다. 이동은 안도하며 걸음을 옮겨서 영원 곁으로 다가갔다.
“으스스하네요.”
“음기가 센 곳입니다. 저쪽이 다 형방입니다. 지금은 괜찮지만 진술받아야 할 사람이 있을 땐 울고불고, 인간 지옥이 따로 없어요.”
무겁고 심각한 내용인데 영원의 입에서 나오니 발랄하기 짝이 없이 느껴졌다. 이동은 참지 못하고 그를 흘겨봤다.
영원은 이동의 손을 잡은 채 햇볕이 들지 않는 음습한 숲을 지나 모퉁이 몇 개를 돌아서 걸음을 멈추고 앞을 가리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