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1화: 가장 어려운 문제
“신가아도 난감해서 어쩔 줄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앞에 장원, 방안, 탐화가 있는데 네가 뭘 걱정하냐고. 그랬더니 그제야 신가아도 걱정하지 않더라고요. 앞에서 무너지면 셋이 무너지는 건데 자기 하나 더 늘어도 별일 아니라고요.”
장 태태도 웃으며 하는 말에 백 노부인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말이 그러나. 다들 보게, 영친이 이래서 어려운 걸세. 이런 변변치 않은 것들. 내 체면까지 그 녀석들 때문에 다 떨어지게 생겼어.”
모두 웃음을 터트리는데, 초 승상부의 고 부인은 웃으면서도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원 부인을 힐끔거렸다.
멀쩡한 좋은 혼사였는데, 휴.
원 부인은 웃기도 잘하고 말을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라 그녀가 온 후로 분위기가 순간 훨씬 떠들썩해졌다. 그렇게 한참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데 길시(吉時)가 되었다고 어멈이 기별했다. 백 노부인은 모두와 함께 일어나 영친 무리가 출발하는 떠들썩한 구경을 하러 전원으로 향했다.
원 부인은 백 노부인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은근슬쩍 고 부인 곁으로 다가가서 한담을 나눴다.
안팎을 화려하게 꾸민 명가의 예스럽고 소박하고 넓은 저택은 평소보다 떠들썩해서 조금은 예스러운 느낌이 덜하긴 했다.
계소영과 여염 일행이 긴장하고 걱정하는 것도 당연했다. 명 삼낭자와 계 탐화가 정혼했다는 경사스러운 소식이 명가에 전해진 후, 명가의 학자들과 후대 서생들은 친영례 때 계가를 만나서 제대로 겨뤄보겠다고 단단히 벼르면서 다들 문회니 학습이니 같은 다양한 핑계를 대고 경성으로 모여들었다.
명가 어른들은 모르는 체했다. 어차피 문회 아닌가. 치고받고 싸울 것도 아니고, 나쁠 것도 없었다.
삼정갑에 전려를 더하고, 게다가 진사 무리를 비롯한 계가 친영 행렬의 난관은 명가와 아직 반 리나 떨어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쩔 수 있나. 계 탐화를 골리겠다고 손을 비비며 기대하는 명가 사람이 너무 많은걸. 저택이 크고 문도 줄줄이 있었지만, 그래도 사람이 더 많아서 할 수 없이 반 리 밖부터 붉은 비단을 걸고 친영 행렬을 막아섰다.
시사(詩詞) 대련(對聯)이니, 파제(破题)니, 삼분오전(三墳五典: 상고 시대 삼황오제에 관한 서적. 고대 서적), 팔색(八索: 상고의 팔괘를 논한 책), 구구(九丘: 구주[九州]에 대한 지리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서적) 등등, 예상한 것, 예상하지 못한 것을 모두 들고나와 겨룰 준비를 하고 온 사람들뿐 아니라, 온갖 구경꾼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나무에까지 기어 올라간 사람도 있었다.
구경꾼 중 절반은 알아듣지 못했고, 알아듣는 사람은 신분을 고려해서 나무엔 올라가지 못하고 그저 누군가 내용을 적으면 돈 주고 사려고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까지 온 계소영과 여염, 진안방, 이신 일행은 하나같이 옷이 흠뻑 젖어서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이번 친영례와 비교하면 부시, 향시, 전시가 훨씬 더 쉬울 정도였다.
묵 육낭자는 어젯밤부터 와서 명 삼낭자와 함께 있다가, 신랑이 중문에 들어왔다고 곡우가 달려와 전하는 기별을 듣고는 합장하며 아미타불을 읊었다. 간신히 길시에 늦지 않고 당도한 셈이었다.
곡우는 주저하며 묵 육낭자를 바라봤다.
“육낭자, 다른 일 없으면 저는 이만 나가서 구경해도 되지요?”
묵 육낭자는 곡우의 말에 순간 생각나서 더는 앉아 있지 못하고 자신도 일어섰다.
“언니, 혼자 있어요. 난 나가서 좀 보고 올게요.”
“응? 네가 뭘 보려고? 설마 너도 신랑을 골리려는 거냐?”
묵 육낭자의 고모, 묵 구내내가 의아한 듯 묻자 곡우는 킥킥 웃었고, 묵 육낭자는 혀를 날름했다.
“칠 오라버니 단속하러 가야 해요. 영 칠야에게 꾀를 얻었다고 반드시 어려운 문제로 신랑을 난처하게 하겠다고 벼르던걸요.”
“영칠, 정말 쓸데없는 궁리가 많구나! 그럼 얼른 가 봐라. 혹시…… 길시에 너무 늦지 않도록 네가 가서 잘 달래서 들여보내렴.”
“그럼 전 가요.”
묵 육낭자는 투덜거리는 묵 구내내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잘 달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칠 오라버니가 신랑을 난처하게 하는 모습을 그녀도 보고 싶었다.
묵 육낭자는 곡우를 데리고 단숨에 내택 후문으로 달려갔다. 내택엔 다들 여식솔들만, 정확히는 참견 좋아하는 낭자들뿐이었다. 낭자들은 친정 사람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똑똑히 알려주려고 다들 주단으로 감싼 막대를 들고 신랑을 호되게 때려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문밖엔 묵칠이 위풍당당하게 허리춤에 손을 대고 서 있고 소우, 소무가 좌우에서 대영, 대웅의 흉내를 내며 서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꽤 그럴싸했다.
영원이야 구경거리가 있는 곳은 어디든 한발 끼는 사람이라서, 지금은 친영 행렬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묵칠이 난제를 내길 기다리며 신이 나 있었다.
묵칠의 모습을 본 계소영은 순간 골치가 아파서 돌아보다가 탕호우를 보고는 침착해졌다. 묵칠은 탕호우가 제압하면 되니까, 두렵지 않아졌다.
수석 빈상(儐相: 신랑 들러리)인 여염이 막 축사를 읊는데 묵칠이 손사래 쳤다.
“신랑은 글재주 부리는 재주밖에 없는 사람인데 다른 문제를 내면 일부러 괴롭히는 것이니, 그럴 순 없지. 그러니 시 짓기로 하지. 신랑이 직접 시를, 그러니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시를 지으면 되네.”
모두 얼떨떨해하는데 여염이 먼저 웃음을 터트리며 계소영의 등을 떠밀었다.
“갈수록 어려워질 거라고 내 그랬지? 오늘 가장 난제가 바로 칠소야의 관문이군!”
탕호우는 고개를 치켜든 묵칠을 울지도 웃지도 못할 얼굴로 바라봤다. 이신은 웃다가 저쪽에서 뿌듯한 얼굴로 쥘부채를 돌리는 영원을 바라봤다. 영원이 아니면 이렇게 교활한 난제를 내놓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내내 관문을 잘 통과한 계소영과 재기 넘치는 영친 행렬은 묵칠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큰 그릇으로 벌주 석 잔을 마셨다. 어쩔 수가 없었다. 묵 칠소야의 시제가 너무나 어려웠다.
계가의 화려하고 떠들썩한 혼례를 매우 흡족하게 구경하고 저택으로 돌아간 원 부인은 시부가 벌써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다가 서재로 향했다.
여 승상은 기분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집중해서 원 부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초 삼낭자의 모습이 어땠는지, 행동은 어쨌는지, 그리고 무슨 말을 했는지를 듣고서 여 승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분별 있는 말이군. 네가 보기에도 괜찮다면 염가아에게 물어보고, 염가아도 좋다고 하면 이가에 가서 장 태태에게 부탁해서 초가에 혼담을 넣어라.”
“예, 염가아는 오늘 술을 많이 마셨을 테니 내일 물어볼게요. 좋다고 하면, 염가아 나이도 있으니 얼른 성혼해야겠어요. 두어 해 지나면 4대가 함께 살겠네요.”
원 부인의 목소리에 기쁜 기색이 느껴졌다. 기쁘긴 해도 여 승상 앞에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는 없어서 몇 마디만 하고 물러갔다.
진경해는 길을 매우 서두르지 않았어도 꽤 빨리 돌아왔다. 오랜 세월 무술 수련하고 말을 탄 사람이라 이번 여정은 매우 수월하게 다녀왔다.
오라버니가 돌아왔다는 기별에 진 왕비는 얼른 모시라고 청하고는 입을 달싹이며 오라버니를 바라봤다. 어쩐지 물을 수가 없었다.
“조 현승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서생 집안이라고는 하는데, 수소문해 봤더니 조상이 돼지 잡는 백정이었답니다. 조 현승의 증조부 대에서 어떻게 큰 재물을 얻었는지 몰라도 백정 질을 접고 논밭을 잔뜩 샀답니다. 그때부터 글공부하여 조 현승의 조부는 거인이 되었고, 조 현승은 수재로 급제해 현승이 되었고요.”
진경해는 진씨가 물을 것도 없이 차 몇 잔 마시고는 조 현승의 가족사를 줄줄이 읊었다. 누이가 조 현승을 왜 수소문하라고 한 건지는 몰라도 수소문해낼 수 있는 건 모두 수소문해냈다.
진씨는 집중해서 열심히 들었다.
“조 현승은 올해 마흔 정수가 되었는데 전임 현승의 여식 류씨와 혼인한 덕분에 현승이 된 것입니다. 류 현승은 딸 하나 아들 둘인데, 두 아들 모두 변변찮아서 할 수 없이 사위에게 현승 자리를 물려준 것이지요. 조 현승은 두 처남을 줄곧 잘 보살펴 왔고, 현에서도 명성이 좋답니다.”
진경해는 정말로 매우 상세히 알아내서 돌아왔다.
“조 현승과 류씨 사이에 아들 둘, 딸 둘, 자식이 넷입니다. 재작년에 조 현승이 고씨 첩을 들였는데 고씨의 조부도 수재였답니다. 하지만 주정뱅이라서 예전에 수재 자리를 박탈당했답니다. 술을 너무 밝혀서 서당에 앉아 있지도 못했고, 제 아들 글공부시키는 데도 전념하지 못했답니다. 가난해서 밥을 굶는 게 여사였고요. 재작년에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 상원절에 마주친 두 사람이 눈이 맞았답니다. 사찰에서 향을 올리다가 머리를 부딪혔다나. 고씨가 조 현승을 먼저 꾀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별별 이야기가 다 있습니다. 어찌 됐든 조 현승은 류씨와 한바탕하고 고씨를 첩으로 들였습니다.”
진씨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조 현승의 두 살배기 어린 딸이 바로 고씨 소생입니다. 만월 때 조 현승이 사흘 동안 유수연(流水宴: 자리를 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먹고 즐기는 연회)을 열었는데, 점쟁이를 여럿 불러 점을 봤더니 다들 이 딸의 운명이 말도 못 할 정도로 귀하다고 해서랍니다. 말도 못 할 정도로 귀하긴요. 내 보기엔 다 그 고씨에게 홀딱 빠져서 그런 겁니다.”
진경해는 자기 평가를 한마디 섞었다.
“그래서 몰래 조 현승 집으로 숨어 들어가서 말도 못 할 정도로 귀하다는 그 아이를 몰래 봤지요. 예쁘긴 하더라고요. 아직 어린애가 딱 보는데…… 요염하더라고요. 태생적으로 요염하다는 말이 정말로 있더군요. 잠시 더 숨어 있다가 들어간 김에 고씨도 봤습니다. 예쁘긴 한데, 딸하고 비교하면 차이가 크게 나더군요. 정말이지 꿩이 봉황을 낳은 겁니다.”
진경해는 탄식했고 진씨는 종잇장처럼 얼굴이 창백해졌다. 파리해진 그녀 모습에 진경해가 화들짝 놀랐다.
“왜 이러십니까? 무슨 일인데요. 조 현승이 왜요? 뭐가 잘못됐습니까? 그 딸이 왜요?”
진경해는 예민하게 문제의 요소를 콕 집었다. 진씨는 서둘러 아닌 척했다.
“아니에요. 아닙니다. 어제 잠을 설쳤더니 머리가 심하게 아파서요. 배도 조금 아프고. 난 괜찮아요. 고생했습니다, 오라버니. 난 좀 쉬어야겠어요. 오라버니, 이 일은 뱃속에 삼키고 잊으세요. 단 한 글자도 입에 올려선 안 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압니다, 알겠습니다. 어서 태의를 모셔서 진맥하세요. 여봐라!”
진경해는 누이의 말에 펄쩍 뛰며 손을 흔들었다. 이마에 땀이 다 스며 나왔다.
진경해를 배웅하고 태의를 불러 진맥하고, 한창 어수선하다가 실내가 드디어 조용해졌다.
진씨는 가물가물, 꽤 오래 잔 듯한 느낌으로 침상에 누워있었다.
햇볕이 따듯하게 비추고 주변에 새싹이 자라고 꽃이 피어난 느낌이 어렴풋이 들었다. 듣기 좋은 피리, 퉁소 소리도 들리고 사람이 아주 많은 듯했다. 그런데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소자,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어머니, 만수무강하시길 바랍니다.’
훤칠한 소년이 잔을 들고 경사스러운 모습으로 축하주를 올렸다. 그녀의 아들이었다. 진씨는 순간 들뜨고 애틋하고 자랑스럽고, 온갖 감정이 몰려왔다. 이 아이는 나의 모든 것이야!
고개를 젖히고 술을 마신 소년의 술잔이 바닥에 떨어졌다. 조금 전까지 햇살처럼 빛나던 소년의 눈, 코, 입에서 검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녀 앞에서, 그녀 품에서 경련하며 몸을 웅크렸다.
진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경련하며 몸을 움츠린 아들을 안고서, 선혈을 밟고 사람 머리를 밟으면서 피바다와 불빛 사이를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뎠다. 그녀가 걸을 때마다 그녀의 뒤가 우르르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