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40화 (440/463)

440화: 인지

진경해가 어멈을 따라 안으로 들어오자, 진씨는 명염만 남기고 주위를 모두 물렸다.

“오라버니, 수고스럽지만, 무위현에 한 번 다녀오세요. 무위현에 조씨 현승이 있는지 알아보고, 혹시 있으면 조 현승 집에 가서 그 조 현승에게 막 두 살 된 어린 딸이 있는지 알아보세요. 매우 예쁘게 생겼다고 합니다.”

진씨가 나직이 분부하는 말에 진경해가 놀라다가 웃음 지었다.

“음? 무슨 일입니까? 조 현승에게 어린 딸이 있는지 아닌지는 어찌 알았습니까? 이제 두 살인데 예쁜지 아닌지 어찌 알고요. 무엇 때문입니까?”

“오라버니, 깊게 묻지 마세요. 큰일은 아닙니다. 그냥 한 번 보고 오세요. 명심하세요, 조용히 다녀와야 합니다. 아무에게도 이 일을 언급하지 말고요. 아무에게도! 한 글자도 이야기해선 안 됩니다. 안 그러면…….”

진씨의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내가 죽습니다.”

그 말에 진경해가 화들짝 놀랐다.

“무슨 일입니까? 예, 예. 묻지 않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부하신 일, 이 오라비가 언제 제대로 해내지 못한 적 있습니까. 안심하세요, 안심해.”

이 여동생을 가장 아끼는 진경해는 여동생의 안색이 좋지 않은 데다가 죽는다는 말을 하자 심장을 칼로 자르는 기분이었다.

“나도 알아요. 오라버니는 항상……. 그리고 작은 오라버니도…….”

진씨가 왈칵 눈물을 쏟았다.

“울지 마세요, 울지 말고. 대체 무슨……. 예, 예. 묻지 않겠습니다. 이 오라비가 세심하지 못한 사내라는 걸 아시잖습니까. 울지 마세요. 하라는 대로 다 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무위현은 그리 멀지 않아서 서두르면 모레면 돌아옵니다.”

진경해는 눈물 흘리는 여동생의 모습에 순간 어쩔 줄을 모르고 허둥댔다.

“난 괜찮아요. 급한 일은 아닙니다. 오라버니, 서두를 것 없어요. 천천히 갔다가 천천히 돌아오세요. 다만 비밀리에 움직여야 합니다. 오라버니를 제외하고 아무도 몰라야 합니다. 작은 오라버니도 안 됩니다.”

진씨가 다시 당부하자 진경해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비의 일 처리가 어떤지 모르십니까? 걱정 붙들어 매세요. 그럼 이만 갑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글피면 돌아옵니다. 그럼 갑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서두를 것 없어요. 급한 일은 아니에요.”

진씨가 다시 당부하자 진경해는 손사래 치고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한 저택으로 돌아온 계 천관은 강환장이 했던 말을 애써 억눌렀다. 일단 그 생각은 접어두자. 영가아의 혼사야말로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동은 계가 혼례에 참석하지 않았다. 청첩도 받고 백 노부인이 일부러 어멈 넷을 보내 초대도 했지만, 선물과 후한 혼수만 보내고 혼례 날엔 적당한 핑계를 대고 계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번 혼인했었고 친정으로 돌아온 여인이니, 백 노부인과 계가에서 그런 걸 연연하지 않는다고 해도 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계가 저택은 매우 넓지만, 이번 혼례 때 저택이 좁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속셈을 품고 매우 일찍 도착한 여 승상부 원 부인은 고 부인, 손 노부인 그리고 장 태태와 상 대내내를 비롯한 사람들 쪽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어린 낭자들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서 낭자들을 수시로 살폈다. 특히 초 삼낭자를.

소 구내내는 원래 눈치가 빤한 영리한 사람인데 근래 백 노부인 곁에서 이것저것 배우면서 거의 능구렁이가 되어서, 원 부인이 어린 낭자 곁을 맴돌며 지켜보는 것만 보고 그녀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어르신 보세요, 원 부인이 저쪽에서 며느릿감을 살피고 있어요. 보아하니…….”

소 구내내가 기회를 보고 백 노부인 곁으로 다가가 웃으면서 나직이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백 노부인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 원 부인을 바라보고 또 원 부인의 시선을 따라 어린 낭자들을 바라봤다.

“그런 소문이 도는 건 별일 아니지만, 사람이 어떤지 보는 건 큰일이지. 여 승상은 사리 밝은 사람이다. 저렇게 알아보는 게 제일 좋지.”

“그러니까요. 사실 이 일이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찌 됐든 계가와 얽힌 일인데 그것 때문에 초 삼낭자의 종신대사가 지체되면 좋은 일은 아니었다.

백 노부인이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일이 많을 테니 가 보아라. 여긴 내가 있으마.”

“그럼 저는 전원에 가 볼게요. 묵가 소칠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신랑을 골탕 먹이려고 난리가 났다는 기별이 왔어요. 신랑도 알고 있는지 가 보고, 준비하라고 해야겠어요.”

“준비할 게 뭐가 있어서. 마음껏 골리라고 해야지. 혼인날 그런 것도 없으면 무슨 재미냐.”

“그 말씀도 맞네요. 그럼 저는 끼어들지 않을게요.”

백 노부인이 웃음 지으며 하는 말에 소 구내내가 빙긋이 웃었다.

그런 뜬소문이 퍼진 후, 해 이낭자는 조모 손 노부인과 함께 제사를 지낸다고 고향에 한 번 다녀왔고 초 삼낭자도 좀처럼 출타하지 않았다.

여름엔 조 노부인이 세상을 떠난 일로 황상이 비통해해서 온 경성이 조용히 지냈다. 계가의 혼사가 그 고요함을 깨뜨린 첫 번째 떠들썩한 일이었고, 그런 뜬소문이 퍼진 후로 어린 낭자들이 가장 많이 모인 날이기도 했다.

초 삼낭자는 전보다 조금 말랐지만, 안색은 좋아 보이는 모습으로 탕 오낭자, 손 십이낭과 함께 앉아서 이야기 나누고 있었다. 예전보다 훨씬 진중해진 모습이었다.

해 이낭자는 해 삼낭자와 함께였다. 예전에는 어딜 가든 낭자들의 중심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오늘 해 이낭자는 유난히 외로워 보였다.

조 구낭자는 초 삼낭자와 대비해서 유난히 더 외로워 보이는 해 이낭자를 아주 통쾌해하며 바라봤다. 그동안 겪었던 냉대 때문에 슬펐던 마음이 다 보상될 만큼 통쾌했다.

해 삼낭자는 해 이낭자와 화청 구석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어서서 초 삼낭자와 탕 오낭자, 손 십이낭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웃으며 인사했다.

탕 오낭자가 가장 먼저 일어서서 반겼다.

해 삼낭자는 안원후 세자 소자람과 정혼했고, 소자람은 칠소야의 외사촌 형님이니, 우리는 인척인 셈이지.

손 십이낭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직 혼인하기도 전에 벌써 상견례부터 하는 거네.”

“진짜 인척이 맞으니까.”

초 삼낭자도 빙그레 웃는 얼굴로 옆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해 삼낭자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해 삼낭자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탕 오낭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두 사람, 무슨 그런 말을…….”

영안백 조 육낭자 조염은 해 삼낭자가 초 삼낭자와 탕 오낭자 쪽으로 다가가는 걸 보고는 얼른 다가가 끼어들었다. 해 삼낭자가 해 이낭자를 중재해주려는 건지도 모르니까. 놓쳐선 안 될 이야기니까.

“무슨 이야기 중이야?”

조 육낭자가 재빨리 다가갔을 때 마침 탕 오낭자가 푸념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손 십이낭은 거들먹거리는 조 육낭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원래도 손 십이낭을 안중에 둔 적 없는 조 육낭자는 퉁명스러운 그녀의 대답을 아랑곳하지도 않고, 탕 오낭자 곁에 앉아서 웃으며 탕 오낭자와 해 삼낭자를 가리켰다.

“이제 두 사람, 무슨 사이지? 두 사람도 동서인 셈인가?”

그래놓고 탕 오낭자와 해 삼낭자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웃으며 말을 이었다.

“소 세자가 형님인데, 듣자 하니 오낭자가 먼저 혼인한다며?”

“같은 집안도 아닌데 그렇게 순서를 따지는 게 어디 있니?”

손 십이낭이 다시 퉁명스럽게 조염의 말을 막았다.

“칠소야는 내년에 지방으로 나간다면서?”

초 삼낭자가 탕 오낭자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물었다. 원래 대범한 성격이던 탕 오낭자는 경성에서 식견을 넓힌 후엔 더 활달해졌다.

“응, 지방직을 청했어. 아마 그때쯤이면 가게 될 거야. 우리 오라버니 말이, 칠소야는 글공부보다 실무에 소질이 있으니 지방으로 가는 게 더 낫대.”

탕 오낭자가 오라비 탕호우 이야기를 꺼내자 조 육낭자의 눈이 순간 밝아졌다. 탕호우는 그녀와 그녀 어머니가 새로 점찍은 신랑감이었다.

“얼마 전에 오저아 오라버니가 고가 삼야를 거리에서 흠씬 두들겨 팼잖아. 힐수방 앞에서 말이야. 그 떠들썩한 곳에서. 그날 마침 어머니랑 힐수방에서 물건을 고르다가……. 정말이지. 왜 때린 거래?”

탕 오낭자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별일 아니야. 매형과 처남이 싸우는 거, 우리 산서에선 흔한 일이야. 일이 있어서 싸우고, 없을 땐 장난으로도 싸워.”

손 십이낭은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초 삼낭자도 빙그레 웃었다. 조 육낭자는 조금 머쓱해졌다.

“우리 새언니 말로는 쌓인 게 있어서 때린 거라던데…….”

해 삼낭자도 따라 웃으며 초 삼낭자 쪽으로 바짝 다가가서 살며시 그녀를 잡아당겼다. 초 삼낭자가 해 삼낭자를 바라봤다.

“할 말 있어? 그냥 여기서 해. 여기서 못 하는 말은 나도 듣고 싶지 않아.”

낭자들은 모두 웃음을 거두고 일제히 해 삼낭자를 바라봤다. 해 삼낭자의 얼굴이 순간 붉어졌다.

“그게, 못 할 말은 아니야. 언니가 모두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래. 그리고…… 구낭자가 말한 게 다 사실은 아니라고.”

초 삼낭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표정도 없었다. 조 육낭자는 저쪽에 있는 해 이낭자를 힐끔거리다가 이내 시선을 거뒀다. 탕 오낭자는 안쓰러운 듯 해 삼낭자를 바라봤다. 해 삼낭자 같은 처지인 사람을 너무 많이 봐 왔다. 해 삼낭자가 좋은 혼처가 정해져 곧 출가할 것이라 다행이었다. 손 십이낭은 쌀쌀맞게 해 이낭자를 흘겨보며 입을 비죽였다.

해 삼낭자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이 일, 그냥 내가 뻔뻔하게 이야기할게. 다들 웃지 말아 줘.

할아버님이 이 한림에게 내 혼사를 거론한 거, 언니 말로는 정말 우연이래. 할아버님이 혼사를 거론하기 전에 할머님하고 상의한 적 없대. 하필 그날 마 부인이 우리 저택에 할머님을 찾아와서 우리 할머님에게 이가 의중을 떠봐 달라고 부탁한 바람에……. 안팎으로 물어본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됐지. 언니가 그러는데, 다음 날 구낭자가 찾아와서 혼사를 가로챘다고 하길래, 혼내주고 싶어서 여기저기 이상한 이야기를 하게 된 거래.”

탕 오낭자는 초 삼낭자를 물끄러미 바라봤고, 손 십이낭은 무시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우연이라면 정말로 너무나 공교롭지. 사람을 다 바보로 아는 거야 뭐야.

조 육낭자는 흥분해서 눈빛이 반짝였다. 이런 일도 있었구나. 이 한림이야 묵가 같은 지체 높은 집안하고 혼인할 생각이었는데 저 두 집안이 눈에 찰 리가 있나. 하나같이 염치도 없네!

초 삼낭자는 자기와 조금도 상관없는 일인 듯이 담담했다.

“이낭자에게 전해. 이낭자 탓하지 않는다고. 헛소리는 내가 한 거니까, 내 탓을 해야지 왜 남 탓을 하겠어.”

해 삼낭자는 입을 다물었고 탕 오낭자가 살짝 그녀를 잡아당겼다.

“그 이야기는 그만해. 우리 혼수 구경 갈까? 명가에서 골동품을 아주 많이 보냈대. 우리 안목 넓히러 가 보자.”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손 십이낭이 일어서서 해 삼낭자를 잡아당겼다.

“가자. 오낭자랑 같이 가서 안목을 넓히자. 삼낭자, 모르지? 오낭자는 감정 고수야. 정말 대단해.”

“나도 갈래. 나도 골동품 좀 볼 줄 알아.”

조 육낭자도 얼른 일어나서 탕 오낭자를 따라갔다. 초 삼낭자도 일어섰다.

“진귀한 고서도 많다던데. 앞으로 찾아와서 읽어야겠어!”

해 삼낭자는 해 이낭자를 돌아봤다. 망설이는 사이에 어느새 탕 오낭자가 그녀를 저쪽으로 끌고 갔다.

낭자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시녀의 나지막한 보고를 들은 원 부인은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저 아이가 이제는 깨달은 모양이구나.

원 부인은 일어서다가 마침 손짓하는 백 노부인을 발견하고 서둘러 다가갔다. 백 노부인이 옆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내가 웃긴 이야기 해주고 있었다. 오늘 영친(迎親: 신랑 집에서 꽃가마 등을 보내 신부를 맞이하다.) 때 읊을 시 때문에 그 아이들이 밤새 고민하지 뭐냐. 그래서 그랬지. 너희 넷, 삼정갑에 전려 하나인데 뭐가 걱정이냐? 영친 시 하나 때문에 이렇게 겁에 질린 것이냐?”

그 말에 원 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르신, 그건 아니지요. 우리 염가아는 어제 꾀병 부릴 생각까지 하던걸요? 자기는 문장 실력보다 운이 좋아서 장원이 되었다고요. 안 좋은 문장 실력 중에 하필 시가 가장 떨어진다고요. 상대가 명씨 가문인데 잘못하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망신당할지도 모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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