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38화 (438/463)

438화: 일곱 근 무게 아이

수국공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장 선생도 참. 아무리 네 할머님 연세가……. 말을 그렇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되었다. 안에 갇힌 사람이라 산송장과 다름없다. 따질 것 없어.”

“아버지, 제가 넷째 숙부의 일을 이야기해서 장 선생이 그런 말을 한 겁니다. 넷째 숙부가 촉중에 가는 일로 할머님이 입궁해서 황상에게 부탁했다고 했더니 할머님이 오래 못 사실 거라고 했습니다.”

주유해는 다소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이제는 속으로 똑똑히 깨달았지만, 깨달을수록 마음이 더 혼란하고 두려워졌다. 그러니 말도 두서없을 수밖에.

“그게 무슨 말이냐?”

수국공도 이상한 걸 알아들었지만, 이유는 깨닫지 못했다. 주유해는 심호흡하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 들어 보세요. 승상들이 넷째 숙부를 촉중으로 보내려고 했었다고 했더니 장 선생은 그건 장공주가 승상들과 함께 숙부를 보호하려고 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수국공은 더 망연해져서 눈살을 찌푸린 채 주유해를 바라봤다. 주유해는 초조해져서 이마를 탁탁 쳤다.

“아버지,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장 선생 말은, 태자가 보위에 오르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허튼소리! 허허, 잠깐 갇혀 있었는데 그새 미친 것이냐?”

“아버지, 그런 게 아닙니다.”

주유해는 눈물을 흘렸다.

“전에 고모님이 세상을 떠나고 담장을 쌓았을 때 장 선생을 만나러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장 선생이, 태자는 빙산(冰山)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고모님이 떠났으니 대왕야, 태자, 그리고 주가, 모두 끝났다고요. 아버지, 고모님이 떠난 후로 황상을 몇 번이나 뵈셨습니까. 할머님은 몇 번이나 입궁했고요?”

“할머님이야 편찮으시니…….”

수국공이 강변하려 하지만, 주유해가 고개를 들고 부친을 바라봤다.

“저는 벌써 반년 동안 황상을 못 뵀습니다. 황상이 조회에 나오는 일이 나날이 줄어드는데 태자가 아니라 장공주가 감국합니다. 장공주는 지기가 하나밖에 없다는 걸 온 경성이 압니다. 그 지기가 영원과 정혼했고요. 듣자 하니 장공주는 영 황후와 자주 바둑을 둔답니다. 그리고 고서강 일도 있어요. 아버지, 고서강은 영리한 사람이지요? 사직했을 뿐만 아니라, 온 집안이 떠났습니다. 셋째를 남겨두고요. 셋째는 가장 변변찮은 자식입니다. 왜 가장 변변찮은 자식을 남겨두었을까요? 셋째 며느리의 여동생이 묵칠과 정혼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주유해의 말은 매우 빨랐고 고서강의 이름을 들은 수국공의 안색이 변했다.

“그래. 고서강 그놈이 왜 그런 미친 짓을 한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더라니…….”

“아버지, 미친 짓이 아닙니다. 깨달은 겁니다. 그는 똑똑한 사람입니다. 태자가 즉위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겁니다. 어쩌면 언젠가 대왕야처럼 될지 모른다는 것을요. 어쩌면 대왕야만도 못한 처지가 될 것을요. 그래서 두려웠던 겁니다. 그래서 발 빼고 목숨을 보전한 겁니다.”

주유해의 목소리가 먹먹해졌다. 수국공은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아들의 말이니 어느 정도는 믿어졌다.

“장 선생 말이, 넷째 숙부를 촉중에 보내려는 건 분명 장공주의 뜻이랍니다. 주가는 어찌 됐든 장공주와 혈연으로 이어졌으니까요. 장공주는 주가의 핏줄 하나를 남기려고 한다고요. 넷째 숙부는 우리 주가에서 가장 장래가 밝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숙부를 도와준 겁니다. 숙부를 저 멀리 촉중으로 보내고, 임기 한 번 끝날 때쯤엔 조정 모든 것이 정해졌을 때니 숙부는 겁을 면하겠지요. 소육은 영원을 매우 따릅니다. 장 선생 말이, 영원은 도적 같은 놈이라 형제 의리를 매우 따진답니다. 적어도 소육의 목숨을 해치진 않을 거라고요. 넷째 숙부와 소육 부자가 무사하면 주가의 대는 이어집니다.”

주유해는 말하면 할수록 혼란스러운 마음이 차츰 갈피가 잡혔다.

“장 선생 말이, 우리가 운이 좋답니다. 넷째 숙부가 할머니 쪽으로 머리를 굴려서 대신 입궁해서 황상에게 부탁하라고 했다고. 할머님은…… 할머님은…….”

식음을 전폐하고 죽어간 할머님을 떠올린 주유해는 흐느끼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할머님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는 상을 치러야 하니, 그렇게 되면……. 그렇게 되면…….”

주유해는 바닥에 주저앉아 부친의 두 무릎에 머리를 묻고 흐느껴 울었다. 수국공도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울지 말아라. 그럼 우리는 어찌해야 하느냐? 장 선생이 뭐라고 말하더냐? 우린 어찌해야 하느냐?”

수국공은 아직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닫진 못했지만, 아들이 하는 말을 믿기 시작했다.

주유해는 한참 통곡하다가 서글픔을 억누르고 고개를 들고 부친을 바라봤다.

“장 선생이 우리 일가 모두 할머님 묘를 지키고 3년상을 치르랍니다. 3년 동안 아무 데도 가지 말고, 한 발짝도 떠나지 말고요.”

수국공이 기가 막힌 듯 소리쳤다.

“초가를 짓고 묘를 지키란 말이냐? 그게 얼마나 힘든……. 내 말은 네 어미는 몸이 약하다. 네 누이들도 그렇고. 그리고 대가아도…….”

“아버지, 목숨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유해의 마지막 말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수국공은 넋이 나갔다.

“아해야, 이 일이 그렇게까지…….”

주유해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영 황후를 생각해 보세요. 오황자는 별궁에서 여덟 살까지 살았습니다. 뜨락을 벗어나지도 않고요.”

수국공은 그게 왜 주가 탓이냐고 말하려고 입을 뻐끔하다가 결국 말을 내뱉지 못했다. 잠시 후, 기운 없이 고개를 떨궜다.

“알았다. 이 아비, 알아들었다. 효를 지키려면 당연한 일이다. 아비가……. 네가 아비 대신 상주서를 써다오. 3년, 3년상을 치르겠다고. 그것이 효도다.”

수국공의 상주서는 그날로 올라갔고, 황상은 수국공의 효심을 크게 칭찬했다. 묵 승상, 여 승상과 초 승상은 사람들 앞에서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칭찬했다. 이렇게 되니 주 추밀부사는 난처해졌다. 하루 차이로 주 추밀부사의 불효를 탄핵하는 상주가 올라갔다. 언사가 매우 격렬한 상주였다.

주 추밀부사는 기가 차서 콧김을 내뿜을 지경이었다. 촉중 행을 막 피하자마자 모친에게 그런 일이 생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 형님이 상주까지? 그야말로 자신을 화로에 올려 굽는 것 아닌가. 같이 초가 짓고 묘를 지키자고 핍박하는 것인가?

주 추밀부사는 너무 화가 나서 수국공과 크게 한판 했다. 수국공은 그가 뭐라고 하든 오로지 한마디, ‘이것이 효도’라고만 했다. 입씨름이 끝난 후, 주 추밀부사는 관자놀이가 펄떡펄떡 뛰는 것이 그 자리에서 풍이 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싸워도 소용없었고, 그를 탄핵하는 상주가 나날이 많아졌다. 언사도 갈수록 듣기 거북해졌다. 주 추밀부사는 화가 나서 길길이 뛰었지만, 결국 수국공처럼 묘를 지키며 상을 치르겠다는 상주서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등 떠밀려서 상을 치러야 한다지만, 소육은 부모상이 아니라서 그럴 필요가 없지 않나. 주유해가 3년상을 치르겠다고 나섰지만, 그건 그놈이 제대로 된 임무가 아예 없어서 가능한 것이지 않나. 어디, 소육과 같을 수가 있나?

조 노부인의 거창한 장례가 끝난 후 수국공부와 형국공부 사람들은 주육을 제외하고 모두 조 노부인의 묘 앞에 남았다. 다행히 주가의 사당을 화려하게 보수해 두었고, 사실 그다지 힘들 것도 없었다. 그렇게 수국공부 사람들은 동쪽에, 형국공부 사람들은 서쪽에 묵으며 사당을 지켰다.

주가의 화려한 장례의 떠들썩함이 슬슬 마무리되어갈 때쯤, 온 경성은 적어도 표면적으로 평온해지고 어느새 10월에 접어들었다.

10월에 접어든 이래, 강환장은 나날이 날짜를 셈하다가 10월 13일이 되자, 오후에 긴히 할 말이 있으니 진왕부로 와달라고 계 천관에게 사람을 보냈다.

모친상을 치르는 몸이라 진왕부를 제외한 다른 곳은 너무나 눈에 띄었다.

강환장이 문간방과 가까운 작은 의사청에서 한참 기다린 후에야 진왕이 나타났다. 진왕은 꽤 껄끄럽고 내키지 않는 얼굴로 강환장을 바라봤다.

“소화였군. 집에서 효심을 다할 것이지, 무슨 볼일이 있다고 왔나. 효심이 중요하다. 여기 일은 신경 쓸 것 없어.”

강환장은 깊이 장읍하고는 진왕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오로지 그의 안색을 살폈다.

“왕야를 뵙습니다. 몇 달 못 뵌 사이 많이 마르셨습니다.”

강환장은 진심에서 우러난 관심을 드러냈고, 진왕은 울컥해서 순간 표정도 온화해졌다.

“나는 괜찮다. 오히려 소화가……. 일단 앉아라. 계 천관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사환의 기별이 들렸다.

“왕야, 계 천관 오셨습니다.”

진왕은 서둘러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고 강환장은 뒤를 따랐다. 계 천관은 지극히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환장을 살피다가 나지막이 콧방귀를 뀌었다.

세 사람은 안으로 들어와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계 천관이 강환장을 빤히 보며 대놓고 물었다.

“집에서 조용히 상을 치를 것이지, 여기엔 왜 온 것인가. 체통을 생각해야지!”

“계 천관의 가르침이 옳습니다.”

강환장은 평온하게 우선 고개 숙여 잘못부터 인정했다.

“실로 너무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온 것입니다. 반드시 와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무슨 긴한 일이 집에서 모친의 상을 치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단 말인가?”

계 천관이 싸늘하게 코웃음 쳤다. 강환장은 계 천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우선 구석에 있는 물시계부터 보고 진왕을 바라봤다.

“왕야, 양 구야 저택에 식구가 늘었습니다. 사내입니다. 미시 일각에 태어났습니다. 무게는 일곱 근 한 냥입니다.”

진왕과 계 천관이 일제히 물시계를 바라봤다. 물시계의 선명하기 짝이 없는 붉은 지침은 미시 일각과 미시 이각 사이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겨우……. 그런데 그걸 어찌 알았지?”

진왕은 너무나 놀랐다.

“왕야, 맞는 말인지 아닌지, 양 구야 댁에 사람을 보내 보십시오.”

계 천관은 진왕보다 훨씬 침착했다. 진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환을 불러 분부했다.

“서둘러라, 빠를수록 좋다!”

사환이 허둥지둥 달려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지기가 중년 어멈을 데리고 성큼성큼 들어왔다. 중년 어멈이 안으로 들어와서 진왕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소인, 노태태의 분부를 받고 왕야와 왕비께 희소식을 전하러 왔습니다. 태태가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뭐라고?”

진왕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졌다.

“출생한 시진은? 태어났을 때 무게는? 몇 근 몇 냥인가?”

계 천관의 다급한 물음에 어멈은 다소 어리둥절해져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룁니다, 노야. 미시 일각에 태어났고 일곱 근 한 냥입니다.”

“세상에!”

진왕이 놀라서 말도 하지 못하자, 계 천관이 심호흡하면서 어멈에게 분부했다.

“가서 왕비께 고해라.”

어멈은 놀란 듯이 쉴 새 없이 팔걸이를 내리치는 진왕과 계 천관을 번갈아 보며 주저하다가 일어서서 공손히 물러갔다.

“소화, 어떻게 알았나? 시진을, 미래를 본 건가?”

진왕이 조금 두서없이 물었다.

“이것이 서론이겠군. 자, 말머리는 열었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말하게. 나와 왕야, 귀 기울여 듣겠네.”

계 천관이 경계 가득한 모습으로 강환장을 빤히 바라봤다. 강환장은 매우 담담해 보였다.

“천관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건 서론입니다. 두 분, 양해 바랍니다. 앞으로 할 말이 실로 너무나 놀라운 일이라서 이런 서론이 없었다면, 왕야와 천관 모두 제가 미쳐서 미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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