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36화 (436/463)

436화: 서로 영향 주는 화와 복

장 선생은 묘하게 웃으며 주유해를 바라보다가 자세를 바꿔 편안하게 앉으며 물었다.

“말해 보게. 뭐가 궁금해서 날 찾아온 겐가.”

“별일은 없습니다. 고 사사 이 일이 이상해서요. 이렇게 좋은 국면에 왜 미련 없이 떠났을까요? 그리고 또 하나, 이상하게 마음이 내내 조마조마하고 계속 두렵습니다.”

장 선생을 바라보며 말하는 주유해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정말로 두려웠다. 비록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좋은 국면이라고?”

장 선생은 하하 웃었다. 가슴을 두드리며 웃다가 한참 만에 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고? 두려운 줄 아는 걸 보니 그래도 괜찮군.”

“선생!”

장 선생의 웃음에 주유해는 매우 난감해졌다. 장 선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장공주가 주 태후의 친딸이니, 주가는……. 장공주가 주가 생각은 해주는군.”

“소육이 황성사를 맡은 일 말입니까?”

주유해가 확실하지 않은 듯 물었다. 장 선생은 비웃는 얼굴로 주유해를 삐딱하게 바라봤다.

“안심하게. 주가엔 큰일 없을 걸세. 온 주가에 영리한 사람은 자네 하나뿐이군. 이유는 몰라도 적어도 두려운 걸 알고 불안해하니 다행이야. 하지만 자네…….”

장 선생은 무시하는 듯 코웃음 쳤다.

“후, 정말이지 화와 복은 연달아 오고 서로 영향 준다더니. 멍청한 것도 멍청한 장점이 있군.”

“선생!”

장 선생의 말을 알아들은 주유해는 부끄럽고 화가 나서 얼굴이 시뻘게졌다.

“장공주가 주가를 챙길 거라고 하지 않았나. 자네 넷째 숙부를 촉중으로 보낸 건, 관직을 잃지 않고 이 위기에서 꺼내주려던 걸세. 아깝군.”

장 선생은 이제 주유해가 언짢든가 말든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누구의 비위도 맞출 필요가 없었다.

주유해는 멍해졌다.

“그럼……. 선생의 말씀을 모르겠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장 선생은 명백하게 말해주었다.

“장공주, 혹은 영씨가 태자를 사지로 몰 물건을 분명 손에 넣었을 걸세. 무엇인지 나는 모르겠네. 다만 태자의 됨됨이로 보아 한둘이 아니겠지. 그러니 태자는 즉위하지 못하네. 어쩌면 황상이 눈 감기 전, 아니면 황상이 눈 감은 후에 그 물건을 던질 걸세. 태자가 위리안치된다면…….”

장 선생은 창밖을 가리켰다.

“그렇게 되면 큰 복을 받은 거지.”

“말도 안 됩니다!”

주유해가 놀라서 고함쳤다. 장 선생은 상대도 하지 않고 멍하게 창밖을 바라봤다. 잠시 후, 장 선생이 주유해를 바라보며 살며시 한숨을 내쉬었다.

“장공주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아는 게 많지 않네. 다만 다들 제왕의 재능이 있다고들 하지. 제왕의 재능을 갖춘 사람이라면 마음이 약하진 않을 걸세. 자네 조모, 며칠을 넘기지 못하네.”

주유해는 어리둥절해졌다.

“선생? 선생,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할머님 몸이 내내 편치 않긴 했어도 그렇게 안 좋은 건 아닙니까. 저와 아버지가 태의에게 확인했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에요. 큰일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4, 5년 안엔 큰일이 없을 거라고…….”

“하지만 죽음을 자초한 걸 어쩌겠나. 잘 듣게.”

장 선생은 진저리난다는 듯 주유해의 해명과 호소를 저지했다. 휴. 어쩌면 이렇게 어리석을 수가 있나. 전에는 내가 이런 자를 어찌 견뎠었지.

“마침 날 찾아왔고, 마침 내가 한가하니 해주는 말일세. 잘 듣게, 자네 조모는 며칠 살지 못하시네. 조모가 떠난 후에, 다른 건 자네 넷째 숙부 일과 마찬가지로 자네가 관여할 수 없네. 관여할 수 없는 건 상관하지도 말고, 자네, 그리고 자네 장방은……. 주가가 이미 분종(分宗: 종친에서 독립함)해서 돌아갈 본적이 없는 것이 아쉽군. 자네 조상묘가 바로 경성에 있지? 경성에서 하루거리였던가?”

“하루 반나절입니다.”

주유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장 선생을 존경하고 신임했다. 장 선생이 헛짚은 일이란 없었다.

“하루 반나절이라, 그럭저럭 나쁘지 않군. 자네 장방은 모두 그곳으로 가서 조모님 상을 치르게. 3년을 채우게. 3년이 흐른 후엔, 아마 모든 것이 다 깔끔해졌을걸세.”

“선생!”

주유해가 파르르 입술을 떨며 외쳤다. 장 선생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손사래 쳤다.

“따르든 말든, 자네 뜻대로 하게. 그 이야긴 여기까지 하세. 시간 있으면 이야기나 하고 가고. 여기에 있으면 사람 구경을 못 하니 말일세.”

주유해는 웃어 보이고 싶었지만 웃음이 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선생은 잘 지내십니까? 대왕야는요?”

“나는 잘 지내네. 이 벽을 쌓기 시작한 그 날, 바로 이 침상에 누웠네. 꼬박 이틀을 누워있었지. 나는 이 대황자부처럼 무너졌다가 조금씩 쌓아 올라간 저 담장처럼 되었네.”

주유해는 장 선생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열심히 들었다. 장 선생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때가 원래 너무나 많았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네. 그러니, 나는 아주 잘 지내네. 한 치의 공간이 바로 대천세계라고, 나의 이 방이 바로 대천세계일세.”

장 선생은 확실히 예전과 달라 보였다. 주유해는 저도 모르게 장 선생을 훑어봤다. 예전과 비교하면 느긋해졌고 깔끔해졌다. 깔끔하다라, 왜 깔끔해졌다는 생각이 든 걸까?

주유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황자는 잘 지내지 못하네.”

대황자의 이야기를 꺼낸 장 선생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안 좋아도 그만이지. 잘 지낸 적도 없고. 하지만…….”

장 선생은 목이 잠긴 듯 말을 이었다.

“다 내 죄일세. 애초에 내가 허튼소리만 하지 않았더라도 그 여자들이 들어올 일도 없었겠지. 이 모든 게 내 죄업일세. 휴!”

장 선생의 탄식에 후회가 가득했다.

“아버지가 들여보낸 여자들이요? 아, 전에 대왕야를 모시라고 들여온 여자들이요? 선생,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대왕야가 위리안치되었다고 하여도 황손입니다. 곁에 시중들 사람은 있어야지요. 이건…….”

주유해는 이해할 수 없고,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장 선생이 손을 휘휘 저었다.

“자네는 모르네. 후, 황손? 하! 쯧!”

장 선생은 코웃음 치더니 이내 혀를 찼다.

“인간도 아닐세. 휴. 됐네. 내 죄업이니 내가 감당해야지. 내세가 있다면 평생에 걸쳐 갚아가야지.”

“선생, 대왕야가 여인들을 거칠게 대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대황자의 고질병을 주유해도 알고 있었다. 알기만 하는 게 아니라 매우 자세히 알았다. 하지만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죄업? 그런 식으로 말하면 우습지. 여인이 사내를 모시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주가의 시운이 다한 것의 근본이 바로 여기에 있네.”

장 선생은 잠시 굳었다가 주유해를 직시하며 말했다. 진지하고 엄숙한 그 말에 주유해는 심장이 철렁했다. 입을 달싹여봐도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장 선생은 일어서서 문을 가리켰다.

“돌아가게. 성가시군. 앞으로 다시 오지 말게. 와도 만나지 않을 걸세. 나와 자네, 나와 주가의 인연은 여기까지 하세.”

“선생!”

주유해는 낭패스럽기도 하고 뜬금없기도 했다. 장 선생, 1년 동안 갇혀 있더니 미친 건가!

장 선생은 주유해를 상대하지 않고 돌아서서 서쪽 방으로 들어가서 그쪽에서 나가서 후원으로 향했다.

주유해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고개를 숙인 채 휘장을 열고 나갔다. 사환과 함께 높은 담장 구석의 좁은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후 말에 올라타서 얼이 빠진 채 돌아갔다.

여기에 들른 후로 걱정과 무서움에 마음이 무거워지고 슬퍼졌다.

황성사를 인솔하라는 성지를 받은 주육은 영원의 이름이 자신의 이름 아래에 있는 걸 보고 한참 동안 실실 웃다가 성지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원 형님을 만나러 말을 타고 달려갔다.

한 바퀴 찾아다니다가 경부 관아 뜨락 안 녹나무 아래 흔들의자에 누워 단잠에 빠진 영원을 발견했다.

“원 형님! 왜 여기 있소? 성지 못 받았나? 성지를 전하는 자가 형님을 못 찾은 모양이군!”

주유은 의자 옆에 웅크리고 앉아서 품에서 성지를 꺼내 영원에게 건넸다. 영원은 눈꺼풀도 치켜들지 않았다.

“밤새 시달리다가 겨우 눈 붙였다. 잠시 조용히 내버려 두면 안 되냐? 황성사가 뭐? 뭐 좋은 곳이라고? 그럼 여기는? 여기 일은 어쩌라고? 그것에 대해 한마디도 없지 않으냐. 여기 일거리에 새로운 일거리가 늘었다. 내가 머리 셋, 팔 여섯이냐? 참, 전전사 일도 있지. 내 앞에서 황성사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아라. 성가셔죽겠다!”

영원이 버럭 화를 내자 주육은 얼떨떨해졌다. 흥분으로 떨던 몸도 굳어서 성지를 내밀던 손도 허공에서 멈칫했다. 한참 만에 허허 웃고 또 허허 웃으며 조심스럽게 손을 거둬 성지를 다시 품에 넣었다.

“알고 있었군. 나는 또……. 그 뭐냐. 아무리 그래도 황성사는 다르지. 천자 측근 아니오.”

영원은 무시하는 듯 주육을 흘겨봤다.

“전에는 황상과 멀었던 것처럼 말하는구나. 잘 들어라. 나는 바쁘다. 관아에 해결 못 한 안건이 쌓여 있다. 봐라, 종일 얼마나 바쁘면 잠잘 시간도 없었겠느냐. 황성사 일로 날 찾아오지 마라, 시간 없다!”

“원 형님, 황성사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하지. 나는…….”

주육은 다급해졌다. 원 형님이 상관하지 않으면 나는 앞으로 어쩌라고!

“내 앞에서 상관이라고 거들먹거릴 생각 말아라. 중요해? 중요하지 않은 일이 있고? 난 바쁘다.”

영원은 다시 눈을 감았다. 자야 해서 바쁜걸.

“원 형님, 이러지 말고.”

주육은 팔걸이를 붙들고 잘 보이려는 표정을 지었다.

“황성사는 우리 형제 두 사람의 일이오. 원 형님, 들어 봐요. 형님은 지금 어전시위지. 시위라는 건 우리 형제 둘이 결정할 수 없는 일이오. 경부 관아엔 위에 추관(推官), 주부, 부윤, 잔뜩 있다고. 우리 형제 둘이 결정할 수 없지. 하지만 황성사는 다르오. 위에 상관이라곤 딱 둘, 하나는 형님, 하나는 나. 앞으로 우리 형제의 구역이 되오. 우리 형제 두 사람이 정하는 대로 굴러간다고.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

영원은 눈꺼풀을 들어 올려 샛눈으로 주육을 바라봤다. 주육이 알랑거리며 웃었다.

“원 형님, 나는 형님처럼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하지만 내 뒤엔 태자 형님이 있소. 태자의 위세는 형님보다 세잖아. 앞으로 우리 둘, 형님은 머리를 쓰고 나는 힘을 쓰는 거지. 얼마나 좋아!”

영원은 눈을 부릅뜨고 주육을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뒤로 휙 기대어 의자를 흔들었다. 거칠게 흔들어대는 바람에 끼익끼익,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났다. 장공주가 했던 말, 정말이지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영원의 태도가 변하자, 주육은 자기가 뛰어난 말주변으로 설득한 덕분이라고 확신했다. 뿌듯해서 어깨를 절로 으쓱하며 영원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나란히 황성사의 작은 뜰로 들어갔다. 가경은 병이 깊어 사무를 볼 수 없으니 당연히 직접 나와 인계하지 못했고, 모든 물건을 사람을 보내 주육에게 넘겼다. 주육은 받자마자 그대로 영원에게 바쳤다. 하지만 영원은 받지 않았다. 지금은 영원이 반걸음 앞에 서 있었고 주육은 크기가 다른 보따리를 몇 개 들고서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황성사의 원래 주사(主事)인 가경 외 모든 크고 작은 우두머리들이 관직의 높고 낮음, 경력순으로 두 줄로 서서, 나란히 들어오는 두 사람을 착잡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영원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육 먼저 들어가라는 듯 몸을 틀었다. 주육은 얼른 손사래 쳤다.

“우리 둘이 그런 게 뭐가 중요하나. 가자고, 가!”

그러고는 뒤에서 영원을 쿵 밀자, 영원이 자연스럽게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실내 상석엔 좌우로 의자 둘이 놓여 있었다. 영원은 주육에게 왼쪽을 가리키고 자기가 아랫자리에 먼저 앉았다.

“원 형님도 참.”

주육은 체면치레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자신이 주관(主官)이니 당연히 상석에 앉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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