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화: 서로 안 좋아 보이다
주 추밀부사가 허둥지둥 일어나서 조 노부인을 부축했다.
“어머님, 어머님 정말 가시려거든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핍박이니 마니 하는 말은 하지 마세요. 듣기 거북한 말로, 그렇게 말하면 원망하는 게 됩니다. 그저 황상 앞에서 하소연만 하세요. 황상은 마음 약한 사람이고 어머님을 존경합니다. 몸이 이리 안 좋은데 아들을 멀리 보내는 법이 어디 있냐고만 하세요.”
“알았다. 걱정하지 말아라.”
조 노부인은 아들의 손을 토닥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귀비마마가 세상을 떠나고 나니 확실히 다르구나. 그런데 나까지 떠나면……. 난 정말 걱정이다.”
“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좋은 소식도 있답니다.”
주 추밀부사는 얼른 조 노부인을 앉히고 소육이 황성사를 맡은 일을 이야기했다.
“제가 촉중에 가지 않으려는 것도 다 소육 때문입니다. 어머님도 아시다시피 소육이 근래 번듯해지긴 했어도 아직 어립니다. 제대로 된 일거리도 맡지 못했고요. 갑자기 이렇게 중요한 일거리를 맡았는데, 제가 곁에서 단속하지 않고 어찌 안심하겠습니까.”
“아미타불!”
소육이 황성사를 맡았다는 말에 조 부인은 순간 정신이 나서 합장하고 아미타불을 읊었다. 정신이 나니 기운도 돌아오고, 조 노부인은 어서 단장, 환복 준비하고 궁에 알현을 청하는 첩자를 넣으라고 분부했다.
노쇠한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들어오는 조 노부인을 보면서, 황상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흘렀다.
주씨의 장례 이래 처음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기운 넘치던 조 노부인과 비교하면 눈앞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세월을 막을 수 없다고, 조 노부인도 나이가 들었구나…….
그 생각에 황상은 더 서글퍼졌다.
황상의 표정을 살핀 상 태감은 조 노부인이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 내시에게 물러가라고 눈짓하고 얼른 다가가서 직접 조 노부인을 부축해서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황상.”
조 노부인은 황상보다 더 감회가 많은 듯했다. 눈앞에 보이는 황상은 눈두덩이가 붓고 눈 밑이 거뭇거뭇했다. 그새 어찌 이리 나이가 드셨을까.
황상은 무릎을 꿇으려는 조 노부인을 얼른 저지했다.
“어서 부축해라. 연로한 분이 이리 예를 갖출 것 없습니다. 자리를 내어드려라.”
내시가 서둘러 의자를 내오자 상 태감은 조 노부인을 부축해서 앉히고 차를 건네받아 직접 올리고서야 황상 곁으로 돌아가 공손히 서 있었다.
“노부인, 요즘…… 잘 지내시는 것 같습니다.”
황상은 안부를 묻고 싶었지만 조 노부인의 모습을 보니……. 휴, 물을 것도 없겠구나.
“오늘내일합니다.”
슬픔을 드러내서 황상의 연민을 얻으려고 온 조 노부인은 억지로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황상, 황상도 어찌 안색이 이리 안 좋아 보입니까. 잘 못 주무십니까? 전에 마마가 계실 때도 황상이 밤에 푹 주무시지 못하는 것을 가장 걱정했습니다.”
“짐은 아주 좋습니다.”
조 노부인이 주 귀비를 입에 올리자 황상은 더 서글퍼졌다. 눈 깜짝할 사이, 주씨가 떠난 지 벌써 반년이 되었다.
“짐은 몸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안심하세요.”
“그럼 다행입니다.”
조 노부인은 눈앞이 흐릿하긴 해도 황상의 안색이 예전보다 훨씬 못한 건 잘 보였다. 그러나 황상의 몸이 예전보다 좋은지 안 좋은지 논쟁할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다.
“황상이 강녕한 것은 나라의 큰 복, 만민의 큰 복입니다. 주가와 이 늙은이에겐 더 큰 복이고요.”
“노부인도 몸조심하세요. 복 받으신 분이니 앞으로도 장수를 누리셔야지요.”
황상은 조 노부인을 바라보며 위로했다.
길게 한숨을 내쉬는 조 노부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이 늙은이, 은혜를 베풀어 주십사 간청드리러 왔습니다.”
“무슨 일입니다? 어려운 일이라도 있습니까?”
황상은 다소 놀랐다. 주가에 무슨 일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얼마 전에 소육이 황성사 일거리를 받았는데 무슨 일이 있을 것이 있어?
“황상, 이 늙은이 좀 보십시오. 몸이 허약해져서 이 꼴입니다.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다른 건 바라는 것도 없고 그저 눈 감을 때 두 아들이 곁에 있기만을 바랍니다.”
조 노부인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황상은 얼떨떨해졌다. 이게 무슨 말인가. 두 아들 모두 멀쩡히 곁에 있지 않은가.
“국사가 중요한 건 이 늙은이도 압니다. 승상들이 둘째를 촉중으로 보내려는 건 높이 사주는 것이니, 이 늙은이도 마땅히 대국을 고려하고 국사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지요. 하나…….”
조 노부인은 정말로 마음이 아팠다. 귀비가 아직 있다면 누가 감히 이런 생각을 품겠나.
황상은 멍해졌다.
“음? 주택헌이 촉중으로? 그게…….”
촉중엔 무엇 하러 가지?
조정 일을 처리하지 않은 지 오래였다. 어찌 된 일인지 전혀 몰라서 무심결에 상 태감을 바라봤더니 상 태감이 허리를 숙이며 나직이 고했다.
“아룁니다, 황상. 성도부 안무사 유사현이 풍을 맞아 정무를 처리할 수 없습니다.”
황상은 즉시 알아듣고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어째서 주택헌을 낙점한 것이냐? 알고 있느냐?”
황상은 모호하게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반평생 그를 모신 상 태감은 곧바로 알아듣고 공손하게 돌려 말했다.
“압니다. 주 이야가 지방 현 직을 역임할 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황상은 곧바로 깨닫고 웃으며 조 노부인을 바라봤다.
“노부인, 괜찮습니다. 주택헌에게 성도부 안무사를 맡긴 건 다 주택헌을 위해서입니다. 현 관직을 맡아야 앞으로 더 올라가지요.”
“하지만 촉중처럼 먼 곳으로 갈 건 없잖습니까. 정말로 둘째를 위한 일이라면 회남, 강남으로 보내면 되지요. 회남, 강남은 지방이 아니랍니까?
상황이 달라진 걸 이 늙은이도 압니다. 지금은 너도나도 속셈을 품지요. 황상…….”
조 노부인은 결국 푸념을 늘어놓으며 눈물을 흘렸다.
“어차피 이 늙으니 오래 못 삽니다. 눈 감으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깔끔해지겠지요.”
“노부인,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짐이 있는데 누가 감히 주가를 어쩌겠습니까. 짐이 떠나면 태자가 있는 것을요.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안무사의 임기는 5년이라 회남, 강남은 2, 3년 안에 빈자리가 없을 겁니다. 알았습니다. 이따 상 태감을 보내 이야기하겠습니다. 주택헌은 아직 젊어서 당장 급할 것 없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황상의 말에 조 노부인은 안심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황상, 내가 이런다고 웃지 마세요. 난 이제 늙어서 부귀영화 같은 건 다 필요 없습니다. 내게 제일 기쁜 일은 아들, 손자가 곁에서 잘 사는 걸 보는 겁니다.”
조 노부인의 말에 황상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자신은 두 아들 중 하나가 위리안치되어서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는 것을.
“황상,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눈 밑이 다 거뭇거뭇합니다. 밤에 잘 못 주무시는 것 아닙니까? 태의는 뭐라고 합니까?”
큰일을 마무리한 조 노부인은 황상의 옥체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병풍 뒤에 숨어서 엿듣던 하빈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저 늙은이가!
“짐은 아주 좋습니다.”
밤에 잘 못 자냐는 조 노부인의 말에 황상은 조금 거북해졌다. 갈수록 사내의 위풍이 되살아나는 것이 매우 흡족하지만, 지금처럼 밤마다 원하고 또 원하는 것은 아무래도 욕정에 사로잡힌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화제로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노부인, 다른 일 없으면 이만 돌아가서 쉬세요. 요즘 태의가 며칠에 한 번 들릅니까? 맥 상태는 좋습니까?”
황상은 손님을 돌려보내면서 다정하게 물었다.
“매일 옵니다. 그럭저럭 괜찮다고 합니다. 황상은 신경 쓰지 말고 옥체만 잘 돌보세요. 이 늙은이 곁엔 첫째, 둘째가 있는걸요. 마마가 안 계시니 스스로 잘 돌보셔야 합니다.”
조 노부인은 아쉬운 듯 일어섰다. 정말로 황상이 걱정스러웠다. 그녀는 아들, 딸을 통틀어 황상을 제일 가깝게 여겼다.
“걱정하지 마세요. 짐이 모시고 나가겠습니다.”
황상이 상 태감을 붙잡고 일어섰다.
“가당치 않습니다. 황상, 안색이 안 좋아 보입니다. 이 늙은이 이만 물러갑니다. 황상, 옥체 보전하셔야 합니다.”
조 노부인은 부들부들 떨리는 몸으로 예를 갖추고 두 내시의 부축을 받으며 밖으로 나갔다. 황상은 상 태감을 붙잡고 잠시 서 있다가 다시 앉아서 탑상에 누우면서 피로한 듯 눈을 감고 분부했다.
“보록궁에 가서 이야기하거라.”
“예.”
상 태감은 하빈이 다급한 걸음으로 병풍 뒤에서 나와 황상 곁에 앉는 걸 보고 조용히 나가서 보록궁으로 향했다.
복안 장공주는 상 태감이 조심스럽게 전하는 황상의 전언을 얼굴을 구긴 채 들었다. 상 태감이 막 허리를 숙이고 물러가자마자 복안 장공주의 손에 들린 찻잔이 벽에 부딪혀 나뒹굴었다.
이동은 찻물과 차 찌꺼기가 튄 벽을 힐끔 보고는 새 잔을 꺼내 다시 차를 내려주었다.
“이미 최선을 다하셨잖아요.”
복안 장공주는 이번엔 정말로 화가 난 얼굴로 꼿꼿이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이동을 힐끔 보고 분부했다.
“일단 돌아가, 난 할 일이 있어.”
“네.”
이동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동이 탑상에서 내려가 밖으로 나간 뒤, 장공주는 한참 동안 꼿꼿이 앉아 있다가 요 상궁을 불러들였다. 요 상궁이 들어왔을 때 장공주의 안색은 다시 평온해졌고, 목소리도 안색처럼 평온했다.
“태의원에 가서 조 노부인의 진맥 기록을 보고 와. 오늘내일한다던데, 황상은 노부인을 손윗사람처럼 여기니까, 한번 주가에 다녀오시라고 귀띔하라고도 말하고.”
요 상궁의 눈에 놀란 기색이 스쳤지만, 얼굴엔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그녀는 공손하게 물러나서 태의원으로 향했다.
주 추밀부사는 추밀부사 자리에 남았고 촉중에 가는 일은 흐지부지되었다. 이 관문을 넘은 주 추밀부사는 다행스러워하는 가운데 매우 뿌듯해했다. 소육이 황성사를 이끌게 되었으니까. 게다가 태자가 친히 지명한 것이고 황상도 매우 적합하다고 여기지 않나. 이런 신임만 봐도 주가의 2대째 부귀영화는 확보된 셈이구나!
병 중에 있으면서도 조정의 만사를 손바닥 꿰듯이 아는 고서강은 이 사실을 알게 된 다음 날 일상복을 입고 조금 병약하고 창백한 모습으로 보록궁에 들었다.
고서강이 뵙길 청한다는 기별에 복안 장공주는 콧방귀를 뀌면서 이동을 바라봤다.
“안에 가서 듣고 있으렴.”
이동이 일어서 안으로 들어간 다음 복안 장공주는 고서강을 들이라고 분부했다.
복안 장공주는 빠르진 않지만 안정적인 발걸음으로 들어오는 고서강을 양손으로 찻잔을 쥔 채 바라봤다.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고개 조아려 예를 갖추는 걸 빤히 보다가, 그가 고개를 조아린 후에야 느릿느릿 말했다.
“고 사사, 그리 예를 갖출 것 없습니다.”
“지켜야 할 예는 지켜야지요.”
고서강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조아린 다음에 일어서서 공손하게 옆으로 가서 섰다. 복안 장공주가 그런 그를 올려다봤다.
“고 사사, 앉아서 이야기하세요. 올려다보는 것,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
고서강은 사양하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얼른 앉았다. 그 역시 장공주를 내려다보고 말하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말하세요.”
복안 장공주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고서강도 말을 돌리지 않고 허리를 숙이며 웃음 띠었다.
“성도부 안무사에 빈자리가 났다고 들었습니다. 소신 예전부터 촉중을 동경하여 수십 년 동안 촉중에 한 번 가 볼 수 있길 내내 바라왔습니다.”
“촉중으로 가는 길은 하늘에 오르는 것만큼 험난하고, 촉중은 풍토병도 심한 곳입니다. 이리 몸도 안 좋은데 몸이 버티겠습니까? 원래 있던 사람이 병이 났기에 새로 사람을 보내는 것인데 새 사람이 가는 길에 병이 들어서야 쓰겠습니까? 고 사사는 병약한 상태이니 경성에서 조용히 요양하는 게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