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32화 (432/463)

432화: 관문을 넘다

장공주가 영 황후를 흘겨봤다.

“주택헌 그 무지렁이가 영칠 그 녀석 손에 들어갔다간, 흥. 주가를 통틀어도 조금 영리한 사람은 그자 하나입니다. 너그럽게 봐주세요.”

“그건 내가 아니라 장공주께 달렸지요.”

영 황후가 되받아쳤다. 장공주가 오늘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막 황상을 만나고 온 것인데, 황상 쪽에 무슨 일이……. 하빈인가?

“주택헌이 추밀원에 오래 있었으니 움직일 때도 되었지요. 성도부(成都府) 안무사(安撫使)가 병으로 사직해서 공석입니다. 성도부로 보내서 몇 해 동안 그 자리를 맡길 생각입니다.”

“받아들일까요?”

“받아들이고 말고는 주택헌이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복안 장공주는 모질게 말하면서도 표정은 다소 고민하는 듯했다. 안 그래도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이었다.

“성도부까지 가는 데 순조로워도 반년 걸립니다.”

영 황후는 주택헌이 성도부로 가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장공주가 정말로 그자를 제압해서 좋든 싫든 가게 할 수 있으리라고도 여기지도 않았고. 어찌 됐든 태자가 있고 황상도 있으니까.

“됐어요. 난 갑니다.”

복안 장공주도 그걸 떠올렸는지 일어서서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영 황후는 장공주가 초조한 듯 밖으로 나간 뒤에 깊은 생각에 잠겼다.

주택헌을 성도부 안무사로 보내라는 복안 장공주의 임무를 받은 묵 승상은 곰곰이 생각해 보곤 장공주의 의견에 매우 찬성했다.

주 태후는 어질다고 평판 받은 태후였고, 주가는 어찌 됐든 황상의 외가였다. 정말 주씨 일가까지 완전히 몰락하는 일이 생긴다면 사서에 보기 좋지 않은 내용이 적힐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위협해서 보내야 할까…….

주 추밀부사가 잔머리는 조금 있지만, 사리 밝은 사람이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었다. 지금은 또 태자가 태산처럼 든든히 자리 잡았다고 여길 것이고, 이런 때에 촉중(蜀中: 삼국시대 촉나라 지역, 현재 사천성, 운남성의 중심. 성도부 부근)으로 가라고 하는 건 죽으러 가라는 것과 별 차이 없는 일이라 생각할 것이다.

묵 승상은 매우 골치 아픈 일이라고 생각하며 실내를 서성였다.

주 추밀부사는 분명 가려 하지 않겠지. 그자에겐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어. 주가 다른 사람은…… 주 추밀부사보다 분별없으니 거론할 것도 없고. 주 추밀부사 같은 사람은 강압할 수밖에 없는데 강압하면 분명 태자를 찾아가 부탁할 것이고.

음, 그렇군. 태자가 나서서 거론하게 하면 되겠군.

묵 승상은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갈수록 성격이 고약해지는 태자는 묵 승상이 들어갔을 때 손 학사를 상대로 삿대질하며 욕을 퍼붓고 있었다.

“이 개돼지만도 못한 노인네 같으니! 기녀를 끼고 노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뭡니까? 무슨 낯짝으로 숨을 쉽니까? 이 얼굴만 보면 속이 역겹단 말입니다!”

황상이 조회를 열지 않으니 태자도 덩달아 한가해졌다. 한가한 건 원래 좋은 일이나, 근래 천하를 쥐락펴락하는 권력을 쥔 느낌이 갈수록 멀어지는 걸 명확하게 느낀 태자는 갈수록 불안해서 포악해졌다.

묵 승상은 손 학사가 올린 것이 틀림없는 성지들을 힐끔 봤다. 보아하니, 상주서의 주비(朱批: 황제가 상주서에 붉은 먹을 묻힌 붓으로 평을 쓰는 일)를 바탕으로 성지를 작성한 모양이었다. 태자의 성질을 건들 내용이었고. 성지가 완성되었는데 이제야 알게 됐으니,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묵 승상은 살짝 허리를 숙이고 곁에 서 있었다. 태자가 통쾌하게 욕을 다 퍼붓고 호통쳐서 손 학사를 물린 후에야 나서서 예를 갖췄다.

“태자 전하.”

“묵 승상은 왜 온 겁니까.”

태자는 이미 묵 승상이 온 걸 봤지만 기분이 언짢아서 상대하지 않았다. 묵 승상이 공손하게 고했다.

“아룁니다, 태자 전하. 성도부 안무사 유사현이 석 달 전에 풍을 맞아서 직무에 임할 수 없습니다. 새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태자가 묵 승상을 흘겨봤다.

“이부에서 논의할 것이지, 고를 찾아와 이야기하는 의도가 뭡니까? 승상 대신 고가 나서서 처리하라는 겁니까?”

묵 승상은 얼른 무릎을 꿇었다. 태자가 저렇게 이야기하니 무릎 꿇을 수밖에.

“가당치 않습니다. 태자 전하도 아시다시피, 유사현은 재주(梓州) 일대도 겸임하고 있습니다. 촉중은 매우 질 좋은 산초가 나는 지역으로…….”

산초라는 말에 태자는 즉시 경계했다. 산초는 첫째의 금고인데?

“유사현의 지난 임기가 끝났을 때, 이부에선 원래 강남 일대로 보내려고 했으나, 촉중엔 자기가 있어야 한다고 상주를 올렸고 황상도 윤허하셨습니다. 그렇게 계속 촉중에 있었는데 갑자기 풍을 맞았습니다. 유사현은 촉중에 근 10년 있었습니다. 촉중은 천부지국(天府之國: 땅이 비옥하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이라고 불리는 지역입니다. 신중해야만 합니다.”

묵 승상의 말은 이미 명확한 편이었고, 태자도 역시나 알아들었다. 촉중, 첫째의 구역이었고 유사현은 첫째의 사람이었다. 지금 유사현이 병으로 직무에 임할 수 없다니, 얼른 이 틈에 촉중을 거둬와야만 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태자는 이제야 묵 승상이 거슬리지 않았다. 그렇지, 이런 것이 태자의 본분이지. 역시 수상답게 진퇴를 아는군. 분별 있는 자였군.

“유사현이 석 달 전에 풍을 맞아놓고 이제야 고하다니, 의도가 뭡니까? 목을 쳐야 마땅하겠군요!”

태자는 일단 유사현 일로 화를 냈고 묵 승상은 얼른 해명했다.

“유사현이 풍을 맞은 다음 날, 아들이 바로 상주를 올렸습니다. 급보로 보냈으나 촉중이 너무 멀어 중원으로 서신을 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소위 ‘촉도난’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주가 올라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촉도난蜀道亂: 이백李白의 시 제목. 촉도로 가는 길이 험난하다는 의미)

“그렇지.”

태자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됐다. 어차피 풍을 맞았다니 오래 살지도 못하겠지.

“촉중은 매우 중요한 곳인데, 묵 승상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촉중은 매우 중요한 곳이니 서둘러 믿을 만한 사람을 골라서 보내야 합니다.”

묵 승상은 의뭉을 떨었다. 태자 스스로 주택헌을 떠올리는 게 가장 좋았다.

“승상 아들이 호부를 임시로 맡았었지요? 아직 지방직에 임한 적 없으니 정식으로 육부를 맡기는 어려울 것이고, 촉중엔 묵 상서를 보내세요.”

태자는 대리 상서인 묵 이야부터 떠올렸다. 묵 승상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묵 이야를 보내버리면 마침 육부의 상서 자리 하나를 비울 수 있게 된다.

“아룁니다, 전하. 소신 부자 셋 모두 1품 관리가 되었습니다. 너무나 큰 일이라, 소신과 둘째 묵언은 상의 끝에 묵언이 올가을에 사직하고 귀향하기로 결정 내렸습니다.”

묵 승상이 공손하게 하는 말에 태자의 눈썹이 까딱 올라갔다. 놀란 가운데 감추지 못한 기쁜 기색이 흘렀다.

“고도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촉중은 매우 중요한 곳이니 반드시 안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내야 합니다. 일 처리가 깔끔해야 하고요.”

“묵 승상의 의중은?”

태자의 마음속엔 후보가 하나도 없었다. 아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너무 많아서, 엉망으로 뒤엉켰다고 해야 옳았다.

“주 추밀부사는 줄곧 경성 육부를 전전하고 지방직을 맡은 적 없습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지방직에 임한 적 없으면 한 부서의 수장 직책을 맡지 못합니다. 다음 임용 때 불리합니다.”

묵 승상은 할 수 없이 제 입으로 이야기해야 했다.

“음!”

태자는 진지하게 사고하고 가늠했음을 드러내기 위해 잠시 숙고하다가 대답했다.

“그렇지! 매우 옳아! 확실히 적합하군.”

주택헌을 촉중에 보내 첫째가 박은 못을 빼게 하면 그보다 마음 놓을 수가 없겠지!

“다만 촉중은 먼 곳이고 사무가 번다하고 고생스러운 곳이라, 주 추밀부사가 견딜지 모르겠습니다.”

묵 승상이 매우 근심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자, 태자의 눈썹이 올라갔다. 언짢아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라와 백성, 주군을 위한 일인데 목숨도 기꺼이 내놓아야지요. 조금 고된 것이 무엇이라고. 조정이 한가히 복을 누리라고 대신을 먹여 살리는 줄 압니까?”

묵 승상은 얼른 허리 숙여 잘못을 인정했다.

“예! 소신의 잘못입니다. 매우 옳은 가르침이십니다. 나라와 백성, 주군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기꺼이 내놓아야지요. 하물며 고된 일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

태자는 흡족한 듯 대답하고는 서성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럼 그렇게 결정합시다. 호부 상서 인선도 미리 고민해두세요. 호부는 천하의 전량을 담당하는 곳이니 소홀히 해선 안 됩니다! 물러가세요.”

“예.”

묵 승상은 공손히 대답하고 물러났다.

묵 승상 방에서 나와 태양을 올려다본 주 추밀부사는 눈앞이 아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두 눈이 욱신욱신 쑤시더니 눈물이 흘러나왔다.

이런 때 촉중에 가라는 것이 태자의 의중이라고 했다. 태자의 의중이라.

고개를 숙이자 눈앞에 별이 보였다. 지척지척 밖으로 나온 주 추밀부사는 뙤약볕 아래서 반 각 정도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방향을 가늠하고는 태자궁을 향해 곧장 달려갔다.

촉중엔 못 간다! 이건 간계다! 태자에게 알려야 해! 그리고 설득해야 하고. 지금은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태자를 지켜야 한다. 진정한 큰일이 안전히 정해질 때까지.

주 추밀부사가 예를 갖추자, 태자가 붓을 잠시 멈추고 힐끔 그를 바라봤다.

“일 있습니까?”

“예. 신, 묵 승상을 만나고 왔습니다.”

주 추밀부사는 조심스럽게 태자의 안색을 살폈다. 근래 태자가 내내 성질을 고약하게 부렸는데 오늘은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촉중에 가는 일, 들었습니까?”

태자가 곧바로 묻자, 주 추밀부사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보아하니 정말 태자의 뜻인 듯했다.

“예. 신은…….”

“얼른 돌아가서 정리하고 서둘러 출발하세요. 촉중의 형세는 고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잘 알 테지요. 첫째가 촉중을 여러 해 운영해 왔습니다. 비록 지금은 이미…….”

대황자 이야기가 나오자 태자의 얼굴이 매서워졌다. 지금까지 그의 마음속의 유일한 경쟁 상대는 이미 위리안치된 첫째였다.

“그렇다고는 하나, 경계하지 않을 순 없습니다. 이런 건 다 선례가 있는 법니다. 촉중은 천부지국이라고 불리는 백성들이 용맹하고 자원이 풍부한 곳입니다. 행여……. 일단 얼른 출발하세요. 길에서도 서두르고요. 도착한 후엔 마음 약해지지 말고 서둘러 촉중을 깔끔히 정리하세요. 조정에 비지(飛地: 특정 나라에 속하면서 다른 나라 영토에 속하는 곳. 나라의 땅인데 조정에서 관리가 안 되는 곳을 비유)가 있으면 안 됩니다.”

태자는 마지막 말은 거의 이를 악물고 말했다. 주 추밀부사는 마음이 서늘해졌지만, 조금 더 노력해 보기로 했다.

“태자 전하, 신은 촉중에 가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전하 곁에 사람이 있어야…….”

“사람이 있어야 해?”

태자가 헛웃음 치며 일어나서 주 추밀부사 곁으로 다가가 재미있다는 듯 바라봤다.

“외숙 말고 고 곁에 사람이 없단 말입니까? 촉중으로 가는 길이 험난한 것 고도 압니다. 하나 이렇게 나라를 위해, 고를 위해 힘을 써야 할 때에 단지 길이 험난한 이유로 핑계 대고 회피할 생각입니까? 게다가 이건 모두 외숙을 위한 일입니다. 지방 관직을 역임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찌 더 높이 오르려고요.”

예전처럼 욕을 퍼부어대는 게 아니라 논리를 설명해주는 걸 보면 태자는 확실히 기분이 괜찮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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