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화: 즐거운 모임
네 사람은 가장 가까운 다포에 들어갔다. 소유는 차, 탕, 갖가지 간식과 계탕은사면(鷄湯銀絲面: 닭국수)을 시키고 면부터 옥묵 앞에 밀어주었다.
“일단 좀 먹어.”
“네.”
옥묵도 사양하지 않고 고개를 숙이고 빠르게 먹기 시작했다.
“아까 그 아주머니, 왜 그러는 거야? 같은 방에 산다면서?”
하섬은 툴툴거리며 물었고, 소유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뜨락에 사는 사람은 대부분 다 그래. 전에 어머니랑 살 때 어떤 모자와 같은 방에 살았는데, 어머니는 주루에서 부엌일을 도우니까 가끔 먹을 걸 가지고 왔어. 아이가 둘이니까 두 개씩. 한번은 내가 병이 났는데, 어머니가 나가자마자 그 애 어미가 날 마당에 끌고 가서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어. 자기 아들에게 병이 옮는다고. 사람은 말이야, 그런 대잡원에 전락하는 신세가 되면 거의 짐승이 돼. 좋은 사람도 있지만, 드물어. 아주 드물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추미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고개를 들어 소유를 힐끔 보는 옥묵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녀는 금세 다시 고개를 숙이고 계속 면을 먹었다.
“그러니까 문 이야가 우리더러 어떻게든 이가를 떠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지. 너희들도 다 고생했지만, 나처럼 어머니와 함께 저런 더럽고 구린 곳에서 올라온 건 아니잖아. 너희들, 흘려듣지 말고 반드시 살길을 찾아야 해. 아니면……. 아이고!”
소유는 단번에 본론으로 돌아와서 추미와 하섬을 가리키며 모질게 경고했다.
“소유 언니, 고마워요.”
옥묵이 면을 다 먹고 그릇을 밀어내면서 살며시 숨을 내쉬었다. 훨씬 생기가 도는 모습이었다.
“소유 언니는 네 이야기 한 거 아니야……. 그건 됐고, 너 의원은 찾아갔어? 몸은 어떻대? 어쩌다가 몸이 그렇게 된 거야?”
옥묵이 다 먹은 걸 보고 추미가 얼른 다가가서 물었다. 옥묵이 어쩌다가 거지꼴이 된 건지 내내 궁금했었다. 더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옥묵은 눈을 내리깔고 있다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아이를 낳고, 바로 도망쳤어요. 갈 곳이 없어서……. 고가에서 배운 것도 없어서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사람 많은 곳에선 살 엄두도 나지 않았어요. 나중에 생선 가게에서 생선 손질했는데 손이 굼뜨고 기운도 없어서 손을 다쳤어요. 처음엔 손이 팅팅 부어서 일을 할 수 없었고, 나중엔 다리도 부었고요. 실로 방법이 없었어요.”
옥묵은 고개를 돌리고 다포 밖에 북적이는 인파를 바라봤다. 소유는 한숨을 내쉬고 추미는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섬은 눈물을 훔쳤다.
“도망은 왜 나온 거냐? 아이가 있었잖아.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 아이가 아니에요!”
옥묵이 매서운 눈빛으로 돌아봤다.
“업장(業障)이에요. 고가의 업장. 강제로 그랬어요. 그 업장을 내 배 속에 쑤셔 넣은 거예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며 자랐어요. 그건 악마지, 내 아이가 아니에요!”
하섬은 놀라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고 추미는 넋이 나가서 눈을 깜빡이고 깜빡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하긴. 그럼 너……. 휴! 고가는 정말…… 온 집구석이 짐승이야.”
“앞으로 어쩔 생각이야? 몸이 다 나았으면 얼른 대잡원에서 나오는 게 좋아.”
소유는 현실 문제를 가장 신경 썼다. 옥묵은 고마운 듯 그녀를 바라봤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류 아주머니가 밤에 내 물건을 뒤져요. 몇 번이나 그랬어. 몸은 괜찮아요.”
옥묵이 손을 내밀어 보였다.
“아직 다 나은 건 아닌데, 거의 나아가요. 일거리 찾아야죠.”
“무슨 일? 계획은 있어?”
“계획이 어디 있겠어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힘도 세지 않고. 일할 수만 있으면 뭐든 상관없어요.”
옥묵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지금은 사는 것도 힘든데 뭘 배울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동대가 제일 서쪽 골목에 제세당(濟世堂)이라는 약방이 있어. 잡일 할 어멈을 구한대. 먹여주고 재워주고, 어려운 일은 아니야. 넌 글을 알잖아. 한번 가 볼래?”
소유의 말에 옥묵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라고 기쁜 눈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갈게요! 가서 언니가 보냈다고…….”
“내 이야기는 할 것 없어. 나도 지나가다가 본 거야.”
소유가 손사래 쳤다. 추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언제 동대가를 지나왔다고.
옥묵은 급히 제세당에 가 볼 생각에 소유 두 사람과 인사하고 나와서 곧장 동대가로 달려갔다.
소유와 추미, 하섬 세 사람은 다포에 앉아서 무미건조하게 잠시 차를 마셨다. 추미가 턱을 괴고 기운 빠진 듯 말했다.
“소유 언니가 참 부럽다. 손재주가 있잖아. 내가 옥묵 같은 일을 겪었다면 분명 옥묵처럼 되었을 거야. 나도 아무것도 못 하잖아. 언니, 나 어떡하면 좋지? 정말 답답해 죽겠어.”
“나도.”
하섬은 추미보다 더 근심스러운 얼굴이었다.
“내가 어떻게 아니.”
소유도 걱정됐다. 세 사람은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추미가 팔을 내려놓고 말했다.
“우리 셋이 머리를 맞대봐야 아무 결론도 없어. 그러지 말고 이야를 찾아가 볼까?”
“그래, 그것도 방법이지.”
소유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돌아가서 음식 몇 개 차려서 밤에 이야를 모셔서 너희 둘을 위해서 방법을 생각해 달라고 부탁드려 보자.”
요 며칠 한가하던 문 이야는 소유의 초대에 저녁도 먹지 않고 있다가 큰 부엌 정리가 끝나기도 전에 어슬렁어슬렁 부엌 뜨락으로 들어갔다. 회랑에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바쁘게 움직이는 어멈들과 수다 떨다가 어멈들이 정리를 마치고 인사하고 돌아가자 손짓해서 추미를 불렀다.
“밖에 차려라. 뜨락이 넓고 정갈해서 모기가 별로 없다. 쑥잎을 좀 태우면 된다. 마당에 바람도 좋고, 꽃도 좋고, 고개를 들면 별도 있고 달도 있어서 더 좋다.”
“예! 이야 말씀대로 해요.”
추미는 대번 대답하고 하섬 등 시녀들과 함께 탁자를 들고나오고 몇 개 더 꺼내서 붙인 다음 문 이야가 앉을 대나무 흔들의자도 들고나왔다. 다른 사람은 의자든 접이의자든 아무 데나 앉으면 된다.
소유는 초마계사(椒麻鷄絲: 고추 닭채), 양족, 창청하, 술게, 방금 구운 노루 육포 등 문 이야가 좋아하는 요리 열 몇 가지를 한 상 가득 차렸다.
조금 늦게 온 녹매는 뜨락으로 들어와서 서둘러 손을 씻고 과일을 썰어 은 꼬챙이를 꽂아 옆에 놓았다.
곧 청국, 문죽, 진주도 왔다. 문 이야는 추미와 하섬이 황주를 가지고 나오는 걸 보고 서둘러 손사래 쳤다.
“그거 별로다. 추미야, 내 거처에 다녀오너라. 환가아와 서가아더러 내 포도주를 들고 오라고 해라. 조심해서 들라고 하고. 마구 흔들면 안 된다. 흔들면 맛이 변하는 술이다. 청국은? 얼음 좀 가지고 오너라. 요즘 날씨에 포도주에 얼음을 넣으면 아주 맛이 좋다!”
“‘포도미주야광배(葡萄美酒夜光杯: 좋은 포도주로 밤빛에 잔을 기울이다. - 왕한王翰)’라! 제가 가서 유리잔 가지고 올게요.”
진주가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포도주를 옮겨 와서 유리잔에 따르고 얼음을 넣는 등 또 한참 동안 바쁘게 움직였다. 추미는 좋은 술이라는 말에 먼저 따라서 한 모금 마시고는 배시시 웃었다.
“맛이 참 좋네요! 마음에 들어요! 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제 살길을 궁리해주셔야 해요. 난 여기를 떠나고, 이런 삶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면 못 살겠어요.”
“뭘 그렇게 서둘러? 술도 아직 마시지 않았는데, 이따 이야기해!”
소유가 추미의 말을 잘랐다. 문 이야는 술을 머금고 추미, 하섬을 힐끔거리다가 마지막에 소유를 바라봤다.
“너희들은 말이다, 나날을 너무 편안하게 보내는구나. 내가 다 부럽다!”
하섬이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재미있게 지내니까 혼인하고 싶지 않은 거예요. 휴. 옛날에는 우리 어머니가 복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참 힘들어 보이는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처럼은 못살 것 같아요. 휴. 하지만 아직도 살길을 찾지 못했으니 어째요!”
“일단 술 마셔! 이야, 한잔하세요.”
진주가 술잔을 들어 올렸다.
“저도요! 그리고 소유 언니도!”
“난 진주 언니한테 한잔 올릴게. 그리고 청국도. 됐다, 됐다, 다 같이 마시자!”
다들 떠들썩하게 마구 술을 권하면서 모두가 두어 잔 마셨을 때 문 이야가 느긋하게 경고했다.
“뒤끝 센 술이다. 다들 천천히 마셔라.”
“일찍 말씀하셨어야죠. 어쩐지 어지럽더라.”
술 마시는 건 좋아하는데 주량은 별로인 추미는 벌써 볼이 발그레해지고 조금 취한 듯했다.
“이야, 낭자가 곧 혼인하잖아요. 방법을 생각해 주셔야 해요. 어쩌면 좋아요.”
안 그래도 돌려 말하는 법이 없는 추미는 다급한 데다가 술기운까지 오르니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추미는 의자를 옮겨서 문 이야 곁으로 바짝 다가가서 간절하게 바라봤다.
“낭자의 배가 시녀는? 정했고?”
문 이야가 진주를 돌아보며 묻자 술게를 먹던 진주가 고개를 저었다.
“아직이요. 하지만 태태 말씀이, 이번엔 지난번과 다르니 모두 새로 고르실 거랬어요.”
“그야 그렇지. 이번엔 지난번과 비교할 수가 없지.”
“이야, 저는 어쩌면 좋아요.”
추미는 곧 울음을 터트릴 듯했다.
“진정해라, 진정해. 서둘러서 될 일도 아니지 않으냐. 며칠 동안 거리 구경하지 않았어. 무슨 구경을 했느냐? 말해 보아라.”
문 이야는 추미부터 위로하고 물었다.
“쓸 만한 게 없어서 급한 거잖아요.”
추미가 풀이 죽어서 말했다.
“옥묵을 만난 것도 구경거리를 찾은 셈인가?”
하섬도 주량이 많지 않아서 어질어질한 상태로 물었다.
“옥묵을 만나? 고씨의 시녀? 어찌 된 일이냐? 자세히 말해 보아라!”
문 이야는 놀라서 상체를 꼿꼿이 세웠다. 세 사람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면서 옥묵을 어떻게 만났는지, 은자를 어떻게 줬는지, 또 어떻게 다시 만나러 갔는지 그리고 소유가 옥묵에게 해준 말, 옥묵이 한 말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이야, 있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낳은 아이인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까요? 독한 호랑이도 제 새끼는 잡아먹지 않는다잖아요. 아이가 무슨 죄에요? 얼마나 가련해요.”
하섬은 옥묵이 제 아기까지 원망하던 모습이 내내 마음에 남은 모양이었다.
문 이야가 고개를 젖혀 술잔을 비우자 녹매가 서둘러 잔을 채워주었다.
“고가 같은 진흙탕에 이렇게 달리 볼 만한 시녀가 있을 줄은 몰랐구나. 옥묵이라는 아이, 태생적으로 사리 밝은 아이인 모양이구나.”
“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하섬은 얼떨떨해졌다. 추미가 그녀를 슬쩍 밀었다.
“이야의 말씀은, 옥묵의 말이 맞다는 거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옥묵의 말이 맞아!”
“너는 그냥 똥고집 부리는 것이고, 옥묵과 다르지. 그런데 옥묵을 어떻게 알아본 것이냐?”
이 우연한 만남에 문 이야는 두 가지 관심사가 있었다. 하나는 옥묵이 아이에 대해 했다는 그 말, 또 하나는 추미가 어떻게 옥묵을 알아봤는지.
“나도 몰라요. 그냥 알아봤어요.”
추미도 딱히 이유를 꼬집어 말하지 못했다.
“곰곰이 생각해 봐라. 뭘 보고 알아본 것이냐? 얼굴? 눈매? 눈빛? 행동?”
문 이야가 깨우쳐주듯이 물었다.
“아니에요. 그냥 느낌? 그 모습이요. 예를 들면 이야도요. 어느 날 다리를 절지 않고, 젊어지고 잘생겨진다고 해도 이야는 이야잖아요. 그건 안 변해요.”
추미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문 이야는 수염 몇 가닥을 쓰다듬다가 웃음 지었다.
“됐다! 네가 할 만한 일거리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