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26화 (426/463)

426화: 큰일엔 하찮은 목숨일 뿐

강환장은 뻑뻑하고 시린 눈꺼풀을 깜빡였다.

그래, 때가 아니다. 자신과 진왕, 아니 진왕과 자신이 지금 곤경에 빠져 있는데 천륜을 거스른 이런 일까지 밝혀지면 자신은 끝장난다. 강가는 끝장난다. 이 수녕백부는…… 수녕백부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일을 망치는 법. 앞날이 길다. 경중, 선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슬프지 않아서가 아니다. 복수할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다. 불효한 것이 아니다. 그럴 때가 아닌 것이다. 지금은, 참아야 한다.

“너처럼 충성스러운 시녀가 있다니, 어머니가 분명 매우 기뻐하시겠구나.”

강환장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반월은 얼른 고개를 흔들다가 후다닥 고개를 조아렸다. 가당치 않은 말이었다. 봉운처럼 하지 못했다. 열쇠를 자기가 훔쳤다는 걸 말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 곁에 네가 있어야겠구나. 네가 따라가서 어머니를 모셔라.”

더 가라앉아 귀에 거슬리던 강환장의 목소리에, 고개를 조아리던 반월의 몸이 굳었다. 서서히 고개를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내가 분명, 잘못 들은 거지?

“어머니를 모시려고 따라가는 건 큰 충성이자, 효심이다. 강가 여식의 법도로 네 장례를 치르고 어머니 곁에 묻어주마. 네가 떠난 후에 네 가족은 내가 잘 돌볼 테니 안심해라.”

강환장의 목소리는 지옥에서 뛰쳐나온 악마처럼 음험했다. 그는 일어서서 옆에 걸린 가늘고 긴 휘장을 잡아당겨서 반월 앞에 내던졌다.

“지금이다. 어머니를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 어머니 곁엔 네가 있어야 한다.”

반월은 바닥에 주저앉아 멍한 눈으로 강환장을 바라봤다. 휘장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 반월은 양손을 뻗어 허공에 허우적거렸다. 그 휘장을 잡으려는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잡으려는 건지 허우적거리면서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 나는…… 춘연이……. 나는…….

“어머니 기다리신다. 가거라.”

강환장이 반월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온몸에서 풍기는 음침한 어둠이 반월의 몸을 짓눌렀다.

반월은 두 손으로 바닥을 밀면서 뒤로 물러나고 또 물러났다. 물러나다가 등 뒤에 관이 닿자 고개를 들고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강환장을 노려봤다.

“세자야, 부귀영화를 누리시고 공후 작위가 만대에 이어지길 바랍니다!”

강환장은 원망 가득한 반월의 눈빛에 무심결에 뒷걸음질 쳤다. 반월은 벌떡 일어서더니 휘장을 덥석 집어 들어 날렵하게 관 위로 기어 올라가서 대들보에 휘장을 걸고 목을 밀어 넣었다.

춘연은 영당 밖 어두운 구석에 숨어서 관 위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반월의 모습을 겁에 질린 얼굴로 바라봤다. 한참 넋을 놓고 있다가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빠른 속도로 기어 나갔다. 저 멀리까지 기어간 후에야 일어서서 미치광이처럼 후각문 쪽으로 달려갔다.

여 승상부, 원 부인은 요즘 매우 골치가 아팠다.

초 승상댁 삼낭자가 마음에 들었고 부탁해서 말을 떠보니 고 부인도 기꺼이 반겼다. 얼마나 좋은 혼사인가. 그런데 지금 밖에 초가 삼낭자 마음엔 계 탐화밖에 없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이런데 어떻게 혼인을 맺겠나.

원 부인은 뭘 봐도 눈에 거슬리고 앉아도 거북하고 서 있어도 거북해서 손수건을 비틀며 다리가 쑤실 정도로 서성거렸다. 아무래도 누군가와 상의해 봐야 할 듯했다.

원 부인은 별안간 걸음을 멈추고 이마를 두드렸다.

내가 정말 늙어서, 아니 늙은 것까진 아니지만, 어쨌든 생각이 흐려졌구나. 집에 조요경(照妖鏡: 마귀에게 비추면 정체를 드러내게 한다는 요술 거울. 사람을 잘 알아보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 같은 시아버지가 있는데 뭘 걱정한 건지.

원 부인은 순간 기분이 말끔해져서 주변 무엇을 봐도 전혀 거슬리지 않고 좋아 보였다.

여 승상이 돌아오길 기다린 원 부인은 공손하게 뵙길 청했다.

“무슨 일이냐?”

여 승상은 조금 피곤해 보이긴 해도 맑아 보이는 정신으로 원 부인을 향해 다정하게 물었다. 분별 있는 며느리라 작은 일로 성가시게 찾아올 리가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늦은 시간에 찾아온 걸 보면 분명 일이 생긴 것이다.

원 부인은 살짝 허리를 숙이고 웃음 지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염가아의 혼사 때문이에요. 초가와의 혼사 말이에요. 아버님도 좋다고 하셨고요. 그런데 지금 뜬소문이 도네요. 초가 삼낭자 마음에 든 사람은 계 탐화라고요. 뭐라더라……. 다 듣기 거북한 말이에요. 제 생각엔 바람 없이 파도가 일지 않는다고, 사실이라면 이 혼사, 안 될 것 같아요, 아버님. 염가아가 이런 혼인을 할 필요가 없어요.”

여 승상은 담담해 보였다.

“나도 들었다. 첫째, 진심으로 초가와 사돈 맺을 생각이라면 만사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 이런 소문을 듣고 의심이 들었다면, 초가를 찾아가서 직접 물어보거라. 초가도 당당한 사람들이니 물어봐도 상관없다. 둘째.”

여 승상은 차를 마시고 말을 이었다.

“설령…… 큰일도 아니다. 아름답고 뛰어난 사람을 흠모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셋째, 이런 소문은 작은 일이나, 초가 저아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는 큰일이다. 작은 일을 신경 쓰느라 큰일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원 부인은 곧바로 알아들었다. 알아듣자마자 부끄러워졌다.

“제 생각이 짧았네요. 가르침 감사합니다, 아버님. 아버님 말씀이 옳아요. 이런 거북한 일을 초가 저아가 어떻게 응대하는지야말로 큰일이지요. 깨달았습니다.”

빙설량수를 만족할 만큼 먹은 복안 장공주는 이날 기분이 좋아서 이신을 보록궁으로 불러 영원의 사주와 이미 써둔 사주첩을 함께 건넸다. 이로써 영원의 중매를 선 셈이었다.

사주와 사주첩을 들고나온 이신은 도무지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중매인이 사주를 이렇게 던져 주는 게 어디 있나. 진행해야 할 예법이 수도 없이 많은데. 하지만 장공주 같은 거물에게 끽소리 하나 할 수 없었다. 그는 첩자 두 개를 끌어안고 고민하다가 묵 이야를 만나러 묵 승상부로 향했다.

묵 이야는 이신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배를 잡고 웃은 후에야 가르쳐 주었다.

“장공주도 출가하지 않은 낭자인데, 중매에 대해서 뭘 알겠나. 우리 어르신을 찾아가서 말씀드리게. 아무래도 어르신이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네. 아니면 우리 어르신에게 부탁해서 계가 어르신에게 나서달라고 청하던가. 장공주 대신 중매인의 예를 감당해줄 사람은 온 경성을 통틀어도…… 몇 분 안 계시네.”

묵 이야는 자기 집과 계가 두 어르신밖에 없다고 하려다가 수국공부에 한 분 더 있는 걸 떠올리고 얼른 말을 바꿨다. 수국공부 그분도 예전엔 위엄이 대단했었다. 지금은 거의 잊혔다지만.

이신은 묵 이야에게 감사하고 곧바로 전 노부인을 찾아뵀다. 첩자를 받은 전 노부인은 관사 어멈 둘을 불러 백 노부인에게 보냈다.

“장공주 심부름은 백 노부인이 제격이다. 존귀한 신분을 따지면 백 노부인을 이길 사람이 없지. 계 황후의 모친이기도 하니, 예로 보나 정으로 보나 백 노부인이 가장 적합하다. 얼른 돌아가서 준비해라. 백 노부인은 득달같은 성격이라 첩자를 받은 순간 너희 집으로 달려갈 것이다. 어서 돌아가라.”

전 노부인의 분부에 이신은 다급히 감사 인사 올리고 물러나서 얼른 집으로 돌아가 장 태태와 함께 대리 중매인인 백 노부인을 기다렸다.

장공주가 이신을 불러 첩자를 넘겨주는 것으로 중매인 역할을 끝냈다는 이야기를 들은 영원은 후회로 장이 다 꼬일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첫날 이신을 끌고 갔지, 그렇게 매일매일 빙설량수를 받칠 필요가 있었겠나.

이신이 묵 육낭자와 정혼하고, 이동은 더 좋은 혼사가 정해지자 장 태태는 바빠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며느리도 들여야 하고, 딸도 다시 출가시켜야 하고. 며느리를 들이는 일은 바쁘긴 해도 걱정할 것이 없지만, 딸이 재가하는 일은 기쁜 가운데 걱정도 되었다. 오늘은 마음이 놓였다가 내일은 또 걱정되고, 이리 생각하고 저리 고민하면서 점괘를 얼마나 뽑고 다녔는지 모른다. 좋은 점괘가 나오면 기쁘면서도 믿어지지 않고, 나쁜 점괘가 나오면 재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누군가 이 점괘는 반대라고 했던 걸 떠올렸다.

다행히 장 태태는 달관한 사람이라, 며칠 갈등하다가 더 갈등해 봐야 소용없음을 깨닫고 차라리 딸의 혼수를 신경 쓰기로 했다. 특히 배가해서 같이 들어갈 사람들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엔 만 어멈, 그리고 뛰어난 시녀 몇 명이 있어서 동저아가 큰 서러움을 겪지 않았다. 이번 시가인 영가는 강가하고 비교할 수 없으니 더 잘 골라야 했다.

이동이 정혼한 후로 추미는 근심이 생겼다. 너무 근심되어 밤에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날이 밝자마자 큰 부엌의 소유를 찾아갔다. 소유는 발을 땅에 붙이지도 못하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고, 추미는 다른 말할 엄두도 나지 않아서 얼른 소매를 걷어붙이고 도왔다. 아침을 올리고 점심 준비를 마치고 저녁에 탕 끓일 거리까지 다 마련한 후에야 소유는 겨우 숨을 돌리며 깨끗이 씻고 나와서 차를 마시며 추미와 함께 회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소유 언니, 대낭자의 이번 출가에, 언니도 따라가요?”

추미는 솔직한 성격이라, 일단 이렇게 물어보는 것만 해도 꽤 공들여 돌려 말한 셈이었다.

“말하는 것 좀 봐. 이번 출가라니, 말 참 못한다.”

소유는 우선 혼부터 내고 말했다.

“당연히 가야지. 이야가 말씀하셨었잖아. 나 같은 사람은 첫째, 이가를 떠나지 말 것, 둘째, 낭자를 떠나지 말 것. 게다가 낭자가 내가 만든 음식과 간식을 제일 좋아하는데, 당연히 따라가야지.”

“그럼 나는 어쩌지?”

추미의 에둘러 묻기는 거기서 이미 끝났다.

“너?”

소유는 놀란 듯이 뒤로 몸을 젖히며 추미를 위아래로 훑었다.

“어쩜 감히 그런 생각을! 이번엔 지난번과 달라! 칠야는 낭자에게 진심이야! 쓸데없는 궁리는 하지도 마!”

“뭐라는 거야. 언니, 지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진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나는 잠자리 시중 시녀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이야기했었죠! 그런 건 한 번이면 족해요! 혼인도 하고 싶지 않은데, 그걸 또 하고 싶겠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떻게 나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소유가 의자를 끌고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마마님, 내가 잘못했어요! 침 튄다, 얘! 이상한 생각하지 않았어. 그래, 그래, 내가 잘못했다. 중요한 이야기 하자. 이야가 예전부터 뭘 할지 생각해 보라고 했는데, 생각해 봤니? 찾았어?”

“찾았으면 이 아침부터 언닐 찾아왔겠어요. 아직 못 찾아서 이러는 거지.”

소유가 그 이야기를 꺼내자 추미는 순간 맥이 빠졌다. 소유는 다시 의자를 끌고 바짝 다가갔다.

“얘 좀 봐. 내 탓도 있다. 재촉했어야 하는데. 역시 옛말 그른 거 없어. 먼일을 계획해두지 않으면 코앞에 우환이 닥쳐. 지금 좀 봐. 그럼 어쩔 생각인데? 우리 저택엔 법도가 있어. 솔직히 따지면 네 경우는 이미 법도를 어긴 거야. 우리 저택은 공밥 주는 법은 없어. 태태가 배가 시녀를 고르는데 넌 제대로 할 줄 아는 일이 없고 또…….”

“그만 해요. 초조해서 밤새 못 잤어요. 쓸데없는 이야기하지 말고 방법 좀 생각해 봐요.”

추미는 다급해서 팔락팔락 소리 나게 부채를 부쳐댔다.

“저택에서 1년 넘게 있었는데, 할 만한 일이 없어?”

“없으니까 그러지! 잠이 얕은 장점 하나뿐인데 측근 시녀도 이제 안 되고. 다른 건 다 못 해요. 바느질도 못 해, 음식 솜씨도 없어. 조향은 냄새를 잘 못 맡아. 또 글도 모르고. 주판은 놓을 줄 아는데 이 저택에서 주판 솜씨를 따지면 백 팔십 번 돌아도 내 차례는 안 와. 언니, 언니가 말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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