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25화 (425/463)

425화: 효자

아직 잠들지 않고 있던 문 이야는 춘연이라는 이름에 어서 들이라고 분부했다. 추미가 춘연을 붙들고 뜨락 안으로 들어갔을 때 문 이야가 벌써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추미는 춘연을 끌고 바람처럼 문 이야 앞에 다가가서 바닥에 꿇리고 화급하게 재촉했다.

“어서 꿇어! 머리를 조아려! 어서! 소리 나게!”

“그럴 것 없다. 일어나라.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자.”

문 이야는 뒤로 물러나서 춘연을 일으키라고 추미에게 눈짓했다. 춘연은 어질거리는 상태로 추미에게 끌려 들어갔고 문 이야는 그 후에야 다급한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가 다짜고짜 물었다.

“진 부인이 어떻게 죽었느냐?”

“응? 알고 계셨어요?”

추미가 놀라서 묻자 문 이야가 조용히 하라고 손을 들어 저지했다.

“이런 때에 옛 주인을 떠올린 것도 네 복이다. 말해 보아라. 안심해라. 네 마음속에 이가가 네 옛 주인인 한, 네가 말만 잘 들으면 강가에서 억울하게 죽는 일은 없도록 내가 해주마.”

문 이야의 그 말에 춘연은 정심환을 먹은 듯이 심호흡하고는 처음부터 설명했다. 곡 대내내가 진 부인의 재물을 어쩌다가 노리게 됐는지, 봉운이 말을 듣지 않자 어떻게 해쳤는지, 어떻게 반월 손에서 열쇠를 얻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진 부인을 독살하고 이불을 뒤집어씌워 숨통을 끊어놓은 다음 관에 넣었는지까지 세세히 이야기했다.

문 이야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이야기를 들었다. 곡 낭자, 상상한 것보다 훨씬 흉악하군. 훨씬 멍청하고.

“강환장은 언제 돌아오느냐? 내일?”

춘연이 말을 끝내자마자 문 이야가 바로 물었다. 춘연은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월이 그러는데 내일 일찍 돌아오신다는 전갈이 왔대요. 세자야가 돌아오시면 부인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세자야에게 알리재요. 반월이…… 자기 가족은 어차피 다 죽는다고요.”

“잘 들어라.”

보아하니 문 이야는 벌써 계획을 세운 모양이었다.

“일단 돌아가라. 돌아가서 평소처럼 굴어라. 곡씨가 시키는 대로 해라. 내게 전할 말이 있으면 후각문 문틀 위에 돌멩이를 올려놓아라. 사람을 보내마.”

춘연은 돌아가라는 말에 순간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문 이야는 즉시 목소리를 누그러뜨리고 춘연을 위로했다.

“걱정할 것 없다. 안심해라. 곡씨는 너를 해치지 않는다. 적어도 당장은 어쩌지 않아. 안심하고 돌아가라.”

잠시 말을 멈춘 문 이야의 목소리가 조금 매서워졌다.

“애초에 너희 낭자가 돌아올 때 넌 강가에 남았으니 너희 낭자와 주종의 인연은 깔끔하게 끊어진 것이다. 지금 네가 여기까지 찾아왔으니 추미의 체면을 봐서 내가 나서는 것이다. 하지만 이가가 왜 널 도와야 한단 말이냐?”

춘연은 얼굴이 창백해져서 문 이야를 바라봤다. 입술만 뻐끔거릴 뿐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네게 주는 기회다. 돌아가서 내 분부대로만 하면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지켜주마. 기껏해야 반년, 1년이다. 그 반년, 1년으로 네 평생…… 평생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비슷하지 않겠느냐. 반평생은 안온하게 살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도 돕지 못한다.”

춘연은 바들바들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문 이야가 추미를 바라보며 분부했다.

“배웅해 주어라. 배웅한 다음에 낭자를 찾아가서 이 일을 알려라.”

추미는 대답하고 춘연을 일으켜서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갔다.

문 이야는 천천히 밖으로 나가서, 나란히 기대고 함께 나가는 추미와 춘연을 한참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뜨락에 한참 서 있던 문 이야는 다리가 쑤셔오자 발을 구르고 들어가려고 돌아섰다. 나뭇잎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들었더니 영원이 펄쩍 뛰어내렸다.

“칠야?”

문 이야는 영원을 가리키다가 말머리를 바로 돌렸다.

“들어가서 이야기하시지요.”

“강가에 일이 터진 것, 들었나?”

실내로 들어간 뒤 영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 알고 오신 모양입니다?”

문 이야가 위아래로 훑어보며 묻자 영원이 웃었다.

“곡씨의 심복, 왕 어멈 맞지? 그 왕 어멈이 새벽에 일가 노소를 끌고 성 밖으로 달아나다가 내게 딱 붙잡혔네. 그러니 당연히 알지. 자네도 알았는가? 누가? 춘연?”

“영명하십니다, 칠야.”

문 이야는 하하 웃으며 공수했다.

“영명은 아니고, 잔꾀가 있을 뿐이네.”

영원은 체면 차리지 않고 팔걸이의자에 앉아서 한 팔을 등받이에 걸쳤다.

“말해 보게.”

문 이야는 둥근 의자를 끌고 와서 영원 앞에 앉았다.

“일단 내버려 두지요. 강환장이 어쩌는지 봐야지요. 강환장이 가끔 어리석고 고얀 짓을 하지만, 그래도 바보는 아닙니다. 두고 보자고요.”

“구경할 생각인가? 하하하. 돼지머리 고기 반 근 걸고 내기하세. 강환장은 분명 무마할 걸세. 나중엔 탈정(奪情: 부모의 상기 안에 출사하는 일)을 청하겠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녕백부에 이렇게 흉악한 일이 일어나는데 무사할 수 있겠나.”

문 이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내버려 두세. 수녕백부, 그리고 강환장은 가치가 없어. 가치 있을 때 꺼내서 써야지.”

영원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문 이야는 슬쩍 고개를 틀어 그를 바라봤다.

“끝까지 쓸모없을지도 모릅니다.”

“쓸모가 생길 수도 있네. 어차피 지금은 까발릴 필요가 없으니 내버려 두는 게 낫지. 구경이나 하세.”

처음엔 엄숙하던 영원의 말이 뒤로 갈수록 장난스러워졌다.

“그럼 탈정은요?”

“하고 싶다면 당연히 하게 둬야지 아니면 무슨 재미가 있나.”

영원은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됐네. 그렇게 하세. 난 이만…….”

“낭자 거처엔 가지 마십시오, 가도 헛수고입니다.”

문 이야가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에 영원이 멈칫하더니 이내 팔을 휘휘 휘둘렀다.

“이야, 그게 무슨 말인가. 이렇게 늦었는데, 당연히 돌아가야지. 내일…… 조회는 없는 것 같군. 조회가 없어도 일찍 일어나야 하네. 이 몸은 무술 수련해야 하거든. 됐네. 그렇게 하세. 또 보세!”

영원이 손을 휘두르며 활개 치고 나가서 뜨락을 맴돌자 문 이야가 뒤에서 외쳤다.

“칠야, 담 넘어 다니지 마십시오. 품위를 지키셔야지요. 제가 배웅하겠습니다.”

“하하, 좋지, 좋아.”

영원은 하하 웃으며 앞장서라는 듯 손짓했다. 두 사람은 앞뒤로 나란히 서서 대문으로 향했다.

강환장이 온갖 고생을 다하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수녕백부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온통 새하얬다.

“세자야,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부인께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문지기가 눈물을 훔치며 다가와서 간절하게 외치는데, 목소리는 꽤 쩌렁쩌렁했다.

“뭐라고?”

강환장은 제 귀를 의심했다. 멀쩡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말도 안 된다. 적어도 십 년은 더 살았는데!

“어제 오후에 가셨습니다. 부인!”

문지기는 효대(孝帶: 초상 때 허리에 늘어뜨리는 하얀 띠)를 들어 올려서 눈물을 쥐어짜려고 눈두덩이를 꾹꾹 눌렀다.

강환장은 문지기를 밀치고 비틀비틀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정원으로 달려가다가 중간에 깨닫고 방향을 틀어 저택 대청으로 달려갔다.

곡 대내내는 내내 달려서 영당 앞까지 뛰어오는 강환장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바라봤다.

“어머니! 어머니!”

강환장은 영전에 달려들다가 별안간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관을 바라봤다. 시커먼 색이라 유난히 작아 보이는 관이었다. 그렇게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뎌 관 앞으로 다가갔다. 믿을 수 없고 또 매우 두려운 듯 손을 내밀어 관 위에 가져다 대고 잠시 있다가 관에 머리를 대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어머니!”

“어서 효복(孝服)으로 갈아입혀 드려라!”

강환장이 관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곡 대내내의 온몸이 거북했다. 몇 번 더 두드리면 진 부인이 관을 열고 나올 것만 같았다.

춘연이 상복을 안고서 달달 떨면서 다가갔다.

“세자야, 효, 효복을…….”

“어머니가 왜 돌아가신 것이냐?”

강환장이 획 돌아보며 눈을 부릅뜨고 고함치자 춘연은 겁에 질려 털썩 무릎을 꿇었다.

“아, 아니……. 아닙……. 아니…….”

곡 대내내가 쏜살처럼 앞으로 나가서 춘연을 옆으로 밀쳤다.

“어머니는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당신이 떠나신 후부터 안 좋아지셨는데 대상국사에 갔다가 돌아오신 후에 더 안 좋아졌어요. 의원을 부를 틈도 없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곡 대내내가 눈물을 훔치며 하는 말에 강환장은 조금씩 눈을 가늘게 뜨다가 강완과 강녕을 돌아보고 삿대질하며 호통쳤다.

“왜 돌아가신 것이냐? 무슨 병으로? 어쩌다가 의원을 부르지도 못한 것이야?”

“나, 나, 나는…….”

안 그래도 오라비를 두려워하는 강녕은 밤새 눈도 붙이지 못하고 영구를 지켜서 멍한 상황에 강환장이 호통치며 따져 묻자 자기를 혼내는 줄 알고 더듬더듬할 뿐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자 강완이 재빨리 나서서 책임을 미뤘다.

“올케가 돌보고 있어서 나와 아녕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요.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에요. 의원을 불러도 올케가 불러야지요. 우리 둘은 정말로 아무것도 몰라요.”

“어머니가 한번 크게 화를 내고는 기운이 다 빠진 것처럼 나른해지셨어요. 의원을 불러 진맥하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씀드렸더니 괜찮다고 하셨어요. 난 어리고 철이 없어서 어머니가 괜찮다고 하길래 정말로 괜찮은 줄 알았어요. 그러다가 어제, 어머니 병이 갑자기 심해져서, 의원을 부르기에도 늦었어요.”

곡 대내내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꾹꾹 누르는데, 그 모습이 몹시 괴로워 보이긴 했다.

그때 반월이 앞으로 반걸음씩 움직이는 모습을, 춘연은 강환장의 효복을 안고서 벌벌 떨면서 바라봤다.

어젯밤에 이야가 한 말을 이미 반월에게 당부했었다. 하지만 반월이…….

춘연은 반월을 눈도 떼지 않고 주시했다. 온 힘을 다해서 바라봤다. 눈빛으로 저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춘연의 시선에 반월도 주저하는 듯하더니 잠시 후 주위를 훑어보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춘연은 그제야 안도했다. 등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듯했다.

강환장은 샛눈을 뜨고 곡 대내내를 빤히 봤고 강환장의 시선에 곡 대내내는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 버티지 못하면 끝이었다.

강환장은 시선을 떼고 돌아서서 춘연을 걷어찼다.

“환복 시중들어라!”

강환장은 효복으로 갈아입고 효곤(孝棍: 상중에 드는 지팡이)를 들고나와서 부친 수녕백을 찾아오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예부와 진왕부, 계가 저택과 계 천관에게 소식을 전하라고 했으니, 이제 수녕백부는 본격적으로 상례(丧禮)가 시작된 셈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강가에도 여전히 몇몇 남은 친지와 벗들이 있었다. 상을 당한 상주 강환장은 우느라 일어나지도 못하고 효곤을 짚고 종일 접대한 후에 밤이 되자 옷을 입은 채 관 옆에서 눈을 붙였다. 열흘 넘게 집 떠나 있던 동안 잘 먹지도 자지도 못한 데다가 종일 울고 절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서 눈을 감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그새 누군가 흔들어서 깨웠다.

반월은 강환장이 깬 걸 보고 말도 하기 전에 눈물부터 흘렸다. 그리고 강환장이 묻기도 전에 입술을 달달 떨면서 봉운이 어떻게 죽었는지와 다수간에서 본 장면을 두서없이 모두 이야기했다.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킨 강환장은 반월의 이야기가 끝났을 땐 이미 꼿꼿하게 앉아 있었다.

“세자야, 봉운이……, 부인이 너무 불쌍해요. 대내내가……. 세자야, 부인의 복수를 하셔야 해요.”

반월은 목이 잠겨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강환장은 정좌한 채 거의 코앞에 있는 검은 관을 멍하니 바라봤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지금은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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