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24화 (424/463)

424화: 지옥

그릇을 받았을 때 탕이 이미 적당히 식어서, 진 부인은 거의 단숨에 탕을 비우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곡 대내내는 그릇을 받아들고 진 부인을 빤히 바라봤다. 춘연은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듯이 긴장해서 겁에 질린 얼굴로 진 부인을 바라봤다.

고개를 들다가 춘연의 얼굴을 본 진 부인은 순간 싫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왜 그런 표정으로 보는 것이냐? 대내내가 평소에 그렇게 가르치더냐?”

진 부인을 빤히 살피던 곡 대내내는 돌아서자마자 춘연의 뺨을 때렸다.

“부인, 식견 없는 천것 상대하지 마시고 한 그릇 더 드세요.”

곡 대내내는 이번엔 춘연에게 분부하지도 않고 직접 그릇을 채워 진 부인에게 건넸다. 막 탕 한 그릇을 비운 진 부인은 오히려 아까보다 더 배가 고파져서 또 한 그릇 뚝딱 비웠다.

곡 대내내는 그릇을 받아서 상에 내려놓고는 뒤로 물러나서 진 부인을 빤히 바라봤다. 너무 빤히 바라보는 눈빛에 진 부인도 뭔가 이상함을 깨닫고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곡 대내내를 바라봤다. 그리고 뺨을 맞은 후 더 두려운 표정을 짓는 춘연을 보다가 입을 떼려는데 갑자기 배가 찌르듯 아파서 무심결에 배를 눌렀다.

“배가 왜…….”

진 부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곡 대내내가 굶주린 호랑이처럼 달려가 옆에 있는 얇은 이불을 들어 올려 진 부인의 머리부터 뒤집어씌우고 온 힘을 다해서 단단히 눌렀다.

진 부인이 본능적으로 버둥거리자 곡 대내내는 아예 진 부인의 몸에 타고 올라서 이불을 죽어라 눌렀다.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입술이 다 찢어질 정도였다.

춘연은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입을 벌린 채, 힘을 쓰느라 손과 얼굴이 다 무시무시하게 뒤틀린 곡 대내내와 밑에 깔려서 미친 듯이 버둥거리다가 이내 경련하는 진 부인을 바라봤다.

곡 대내내에게 깔린 진 부인은 파르르 경련하다가 몸이 축 늘어졌다. 이어서 악취가 풍겼다. 곡 대내내는 냄새를 맡지 못하는 듯 한참 동안 더 누르고 있다가 조금 힘을 빼고, 또 힘을 조금 빼면서 서서히 이불을 거뒀다. 절규하듯이 입을 벌리고 눈을 부릅뜬 진 부인의 얼굴을 보더니, 서둘러 고개를 비틀고 허둥대며 탑상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와서 뒷걸음질 쳤다. 뒷걸음질 치다가 춘연과 부딪치자 춘연을 붙잡아 당기면서 이를 갈며 분부했다.

“어서 가서 눈을 감겨!”

하반신이 축축하게 젖은 춘연은 다리를 꿈쩍하지도 못했다. 목에서 그렁그렁 소리만 내면서, 걸음을 내딛지도, 말도 하지 못했다. 겁에 질려 죽기 직전이었다.

그때 다수간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다수간에 숨어서 지켜보던 반월이 엉덩방아를 찧은 것이다. 후다닥 달려간 곡 대내내는 반월이 다수간에 숨어서 지켜봤음을 깨닫고 일단 뺨부터 때리고서 침상 쪽으로 등을 떠밀었다.

“죽는 게 두렵지도 않지? 잘 됐다. 네가 가라! 네 부인 시중들려고 있던 것 아니냐? 가서 모셔라! 어서! 아니면…….”

곡 대내내의 음산한 목소리가 반월과 춘연의 귀엔 지옥에서 온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양손을 꾹 쥔 채 눈을 부릅뜨고 고함이라고 치고 싶은 듯 죽어 있는 진 부인의 모습도 지금 곡 대내내의 모습과 비교하면 하나도 두렵지 않을 정도였다.

두 사람 모두 혼비백산해서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진 부인의 눈꺼풀을 덮고 또 덮고, 입을 다물어 주고, 옷을 갈아입힌 다음 이불로 둘둘 감았다.

진 부인의 정원에서 시작된 울음소리는 수녕백부 구석구석으로 퍼졌고, 불안한 마음으로 요리하던 왕 어멈은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뒤집개를 솥 안으로 풍덩 떨어뜨리고 말았다.

분명 파두를 사 왔어! 파두였어!

수녕백은 집에 없었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누가 알까. 강완과 강녕은 바보처럼 울어댔다. 어머니가 갑자기 죽다니. 상을 3년이나 치러야 하는데, 그럼 둘 다 몇 살이 되나. 그러고도 혼인할 수 있을까?

곡 대내내는 침착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녀는 진 부인 곁을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키면서 왕 어멈, 반월, 춘연 등 시녀들이 어디에서 났을지 모를 관에 얼렁뚱땅 시신을 넣는 걸 눈도 떼지 않고 지켜봤다. 뚝딱뚝딱, 관 뚜껑을 못 박는 소리가 울렸다.

저녁이 되자 영당이 그럴싸하게 꾸려졌다. 강완과 강녕은 서로 기댄 채 관 옆에 꿇어앉아 곡을 했다. 소복으로 갈아입은 곡 대내내는 접이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화로에 지전을 한 장씩 내던졌다. 은자 한 냥을 주고 지전을 샀다. 돈을 그렇게 원하니, 다 태워드리지요!

왕 어멈은 곡 대내내 곁에서 슬금슬금 물러나서 영당 가장자리로, 영당 가장자리에서 영당 밖 회랑으로 나갔다. 두 손가락으로 지전을 한 장, 한 장 집어서 화로에 태우는 곡 대내내를 회랑에서 그물 창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을수록 두려워졌다. 청수한 용모의 곡 대내내가 지금 그녀의 눈엔 서서히 흉측하게 송곳니를 드러낸 야차로 변해갔다.

왕 어멈은 온몸이 으슬으슬 떨려서 무릎을 꿇은 채 조금씩 밖으로 움직였다. 계단을 내려가서 음습한 등불 아래까지 멀어진 다음에 두 손으로 바닥을 짚어 일어나서 무턱대고 집으로 달려갔다.

춘연은 무감각한 상태로 영당 구석에 무릎을 꿇고서 멍한 눈으로 무서울 정도로 시커먼 관을 바라봤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눈만 감으면 눈을 부릅뜬 채 소리를 지르는 일그러진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나 눈을 뜨고 있으면 시커먼 관 옆에 앉아서 지전을 태우는 끔찍한 저 얼굴이 보였다.

옆에 있던 반월이 잡아당겨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다시 당겨도 춘연이 여전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자 반월은 그녀를 힘껏 꼬집고 어깨를 흔들었다. 춘연은 그제야 느낀 듯이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반월을 바라봤다.

“세자야의 전갈이 들어왔어요. 내일 아침 일찍 돌아오신대요.”

반월이 춘연의 귓가에 대고 손으로 가린 채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춘연은 들은 것도 같고 못 들은 것도 같고, 무감각한 듯 망연한 눈빛이었다.

반월은 다급해져서 곡 대내내를 힐끔 살펴보고는 춘연을 끌고 영당 밖으로 나갔다. 어두운 구석까지 춘연을 끌고 간 다음 다시 나직이 속삭였다.

“세자야가 내일 아침이면 돌아와요. 그때 세자야에게 고해요!”

“뭐라고?”

춘연이 드디어 조금 되살아나서 묻자, 반월이 다시 설명했다.

“내일 세자야가 돌아오신다고요. 부인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세자야에게 알려야 해요! 세자야는 똑똑한 분이에요. 감출 수 없어요. 우리가 말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반월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나중에, 우린…… 온 가족이 죽어요. 내일 세자야가 돌아오자마자 말해도 살진 못할 거예요. 세자야는…….”

반월은 예전에 세자야가 내린 처분을 떠올리고 서글퍼졌다. 세자야는 자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 그리고 춘연 모두 죽은 목숨이었다.

“우린 죽었어요.”

반월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감싼 두 손에서 새어 나오는 흐느낌은 어둠 속에서 마치 지옥의 절규처럼 들렸다.

무감각했던 춘연은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죽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는 낭자의 사람이야! 그 생각이 춘연의 마음속에서 불꽃처럼 터졌다.

나는…….

그 생각이 들자 누군가 가슴을 난도질 하는 것 같았다. 추미가 부르러 왔었다. 이 저택은 사람 살 곳이 아니라고. 그런데 세자야에게 빠져서…….

춘연은 얼굴을 가렸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반월이 춘연을 살며시 흔들었다.

“가세요. 도망가요. 나랑 다르잖아요. 난 온 가족이 이 저택 노비예요. 이낭은 혼자니까 도망가요.”

춘연이 고개를 들어 반월을 바라봤다.

“내가 어디로…….”

어쩌면, 낭자에게 빌어보면…….

“어쩌면 살길이 하나 있을지 몰라. 지금 바로 가 볼게. 기다려!”

춘연은 지금 그녀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활로가 과연 진짜 활로가 맞는지 깊이 생각할 수도 없었다. 깊이 생각하면 용기가 사라질 것이다.

“금방 돌아올게.”

춘연이 당부하자 반월이 비처럼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돌아오지 말고 가세요.”

춘연은 반월에게 등을 떠밀려 비틀거리며 돌아섰다. 칠흑 같은 잡초가 무성한 좁은 길을 통해 비틀비틀 후각문 쪽으로 달렸다.

잠이 얕은 추미는 단잠을 자다가도 침상 머리맡에 있는 창을 살며시 두드리는 소리에 바로 눈을 떴다.

“무슨 일이야?”

추미가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누가 추미 낭자를 찾아왔어요. 급한 일이래요, 추미 낭자 좀 나와 보세요.”

“알았어요. 옷 좀 갈아입고요.”

당직 어멈이 나지막이 하는 말에 추미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일어났다.

집에 있는데, 뭐…….

그녀 마음속에 이가는 그녀의 집이었다. 집에 있는데 무슨 일이 있으랴. 이 집은 그녀 마음속에 매우 안전한 곳이었다.

“추미 낭자, 후각문에 웬 아주머니가 낭자를 만나야 한다고 찾아왔어요. 매우 다급해 보였어요. 누구냐고 물어도 입을 꾹 다물고 말하지 않네요. 낭자가 만나 보면 알 거래요.”

어멈은 추미가 밖으로 나가자 옆으로 잡아당겨서 이 밤에 깨운 이유를 설명했다.

“얼굴이 귀신처럼 창백하고 발발 떠는 게, 큰일 같아서 와 봤어요.”

“아주머니? 날?”

추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경성에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웬 아주머니가 찾아왔을까?

“가 볼게요.”

추미는 어멈에게 눈짓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둘러 후각문 쪽으로 달려갔다.

어멈이 문을 열어 춘연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추미는 뒤통수에 소똥머리를 말아 올리고 쪽빛 무명옷을 입은 춘연을 빤히 바라봤다. 눈에 익긴 한데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누구……. ”

“추미야, 나야.”

춘연은 구세주를 본 듯이 눈을 빛내다가 나라고 말하자마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추미야, 부탁이야. 날 좀 살려줘. 제발 살려줘.”

“춘연!”

추미가 꽥 고함쳤다. 눈앞에 있는 이 아주머니가 춘연이라니! 처음에 만났을 때 얼마나 예쁜지, 샘이 다 나던 그 춘연?

“너, 너, 너…….”

추미는 너무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나 못 살 것 같아. 추미야, 옛정을 생각해서 부탁이야, 날 좀 살려줘.”

춘연은 추미의 다리를 붙들고 애간장이 끊어지게 울었다.

“일어나. 일단 일어나. 조 어멈, 미안하지만 수건 하나만 적셔와 줘요.”

추미는 얼른 춘연을 일으켰고 각문 당직 두 어멈은 수건을 적시고 또 뜨거운 차를 따라 주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이야기해. 무슨 일이야? 이 새벽에, 왜…….”

추미는 춘연을 의자에 앉히고 젖은 수건을 쥐여주면서 물었다.

“죽을 것 같아.”

춘연은 의자에 앉아서 추미를 올려다보며 서글프고 처참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못 산다고만 하지 말고 무슨 일로 이러는지, 말을 해!”

다급해진 추미의 목소리가 올라가자 춘연은 무심결에 몸을 웅크렸다.

“나는…….”

춘연은 추미를 잡아당겨 추미의 귓가에 바짝 다가가서 모기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내내가 부인을 죽였어.”

“뭐라고? 누가 누굴 죽여?”

추미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춘연이 추미의 입을 막는 걸 보고, 당직 어멈 두 사람은 눈빛을 주고받고는 등롱을 들고 나섰다.

“한 바퀴 돌아볼 시간이네요. 추미 낭자, 이따 갈 때 문 꼭 닫고 가세요.”

두 어멈이 밖으로 나가자 춘연이 대뜸 추미를 끌어당겨서 재빨리 말했다.

“대내내 말이야. 강가 대내내. 곡 대내내가 부인을 죽였어. 죽였다고! 내가 보는 앞에서. 부인 눈을 내가 감겼어. 감기라고 해서. 내가 다 봤어. 추미야, 나 이제 죽었어. 죽고 싶지 않아. 나는…….”

추미의 눈이 소 눈망울보다 더 커다래졌다.

“아이고! 맙소사! 세상에! 어머니! 아이고머니나!”

“추미야, 네가…… 낭자에게 부탁 좀 해주면 안 되겠니? 날 좀 살려줘.”

춘연은 의자에서 미끄러져서 추미 앞에 무릎 꿇었다.

“세상에! 맙소사! 이게……. 아이고, 어머니! 기다려……. 아니, 같이 가. 얼른!”

추미는 춘연을 잡아 일으켜서 단단히 붙들고 휘몰아치듯 문 이야의 거처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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