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20화 (420/463)

420화: 연이은 경사

이동이 다시 이가로 돌아갔을 때 목을 빼고 기다리던 장 태태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찌 됐느냐?”

“장공주께서 좋은 혼담이라고, 백 노부인께 부탁해줘서 백 노부인이 묵부에 혼담 넣으러 갔어요. 빠르면 이틀 안에 답신이 올 거예요.”

이동은 장 태태의 말에 대답하면서 탑상 자락에 앉았다. 장 태태는 크게 안도하며 또 생각 많은 듯 탄식했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구나. 우리로서는 너무 올려다봐야 하는 혼사 아니냐.”

“그러니까요.”

이동은 정신이 딴 데 팔린 듯이 대답했다. 그녀는 지금 다른 생각 중이었다.

“어머니, 저는 해 삼낭자 생각 중이에요.”

“응?”

“어머니, 해 삼낭자의 할아버님은 해 상서의 형제예요. 삼낭자와 삼낭자의 어머니, 그리고 아우가 해가에 의탁한 세월 동안 해 상서는 형제와의 정을 생각해서 잘 대했지만, 손 노부인은 그 세 사람을 그리 잘 대하지 않았대요.”

이동이 나직이 하는 말에 장 태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보이더구나. 해 삼낭자가 매우 조심하더구나.”

“그러니 우리가 이 혼사를 거절하면 삼낭자가 어떻게 될지 몰라요. 여인 쪽에서 혼담을 넣은 건데 하필 성사되지 않았으니 체면상 보기 좋지 않아요. 삼낭자가 이번 일로…….”

장 태태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게 말이다. 삼낭자의 혼사는 안 그래도 쉽지 않을 텐데. 높이는 바라보지 못하고 그렇다고 너무 쳐지는 혼처를 고를 수도 없고. 이것 참…….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좋은 혼처가 하나 있어요. 안원후부요.”

이동은 조금 주저하며 말했다.

“좋은 혼처이긴 하구나. 다만 묵 부인이 눈이 높을 게다.”

“묵 부인은 자기가 성격이 강한 걸 알아서 유순한 며느리를 고르려고 할 거예요. 그 점에선 묵 부인도 분명 마음에 들어 할 거예요. 해 삼낭자의 아우가 글공부도 뛰어나고 인품도 좋아요. 사리도 밝고요. 그러지 말고 적당한 사람을 골라 슬쩍 떠볼까요?”

전생에 묵 부인이 고른 며느리는 어느 모로 봐도 해 삼낭자보다 못했다.

“원 부인에게 부탁할까?”

장 태태는 즉시 여염 모친 원 부인을 떠올렸고 이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바로 가 보마. 미뤄선 안 될 일이다.”

장 태내는 시원시원한 사람이고 이동도 동의하는 걸 보고 바로 탑상에서 내려와 마차를 준비하고 선물을 골라서 여 승상부로 향했다.

반나절 사이, 전 노부인은 매우 바빠졌다. 백 노부인을 맞이하고 배웅한 다음에 손녀 묵 육낭자를 불렀고, 막 돌려보낸 다음에 딸 묵 부인이 찾아왔다. 묵 부인이 말하길, 원 부인이 찾아와서 해 삼낭자의 혼사를 떠보더라고 하자 전 노부인은 얼떨떨해져서 바로 물었다.

“누가 원 부인에게 부탁했다더냐? 해 상서부에서?”

“아니에요. 원 부인 말로는 자기가 떠올라서 왔대요. 좋은 혼사라서 떠올랐다고. 그래서 제 의견부터 물으러 왔다고요. 나도 괜찮다고 생각하면 해 상서부에 가서 이야기해 보겠다고요.”

묵 부인의 상세한 설명에 전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렇다면 이가에서 생각한 모양이구나.”

“이가요?”

묵 부인은 얼떨떨해졌다. 갑자기 이가가 무슨 상관이라서? 이가에서 자람의 혼사를 왜 갑자기 신경 쓴다고?

“백 노부인이 왔었다.”

전 노부인은 백 노부인이 찾아와 혼담을 꺼낸 이야기를 이야기했다.

“장공주가 좋은 혼담이라고 말을 꺼낸 이상, 좋은 혼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해 상서가 이 대랑에게 삼낭자와의 혼사를 꺼냈는데, 이가에서 육저아에게 혼담을 넣었으니, 해가에도 그만한 답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겠지. 장 태태가 사려 깊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묵 부인은 눈을 깜빡였다.

“그럼 육저아의 생각은요? 좋은 혼담 같긴 하네요. 저도 이 대랑을 몇 번 보았는데, 자람 무리와 비교하면 훨씬 성숙하고 철이 들었어요. 다만 육저아가…….”

“육저아도 좋다고 하더구나.”

전 노부인은 육저아가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내심 한숨을 쉬었다. 백 노부인이 막 이야기 꺼냈을 때만 해도 장공주가 왜 갑자기 이 혼사 이야기를 꺼냈는지 의아했었다.

처음엔 명가 삼저아, 이어서 소칠, 이제 육저아까지. 다들 간이 이렇게 커서야, 원…….

“그럼 됐네요! 그럼 우리 집안도 이가와 인척인 거네요? 영 칠야가 이가에 구혼했다면서요? 그 혼사는 분명 성사될 거고, 그렇게 되면…… 앞으로 소칠을 단속할 사람이 있겠어요.”

한 바퀴 돌아가며 생각한 묵 부인은 신이 났다. 전 노부인도 미소 지었다. 그러나 금세 미소를 거두었다. 소칠이 아직 글공부에 한창이었다. 나날이 열심히 할수록 걱정도 깊어졌다. 대체 마음에 든 사람이 누구기에 이럴까.

“해 상서부와의 혼사, 어머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바탕 생각을 끝낸 묵 부인은 즐거운 기분으로 물었다.

“그야 네 생각에 달렸지. 해가 삼낭자는 성격이 유순하고 눈치도 있는 편이다. 사리에 밝은 편이고. 그 집 이낭자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네 뜻에 달린 것이다. 해 상서는 이제 나이가 많아. 해 상서가 떠나고 나면 해가는 제각각이 될 것이다. 사람은 좋다만 다른 건 바라지 못할 것이야.”

묵 부인은 안도하는 얼굴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해가 이낭자가 싫습니다. 지나치게 영리해요. 앞으로 제각각이 된다고 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람의 처는 사람만 좋으면 다른 건 하나도 따지지 않으려고요. 자람의 자질은, 아버지도 진작 말씀하셨듯이 있는 것만 지킬 정도면 됩니다. 안원후부를 지키는 덴 조력자가 그리 필요하지 않아요. 그 정도 조력은 우리 가문으로 충분해요.”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혼사는 좋은 혼사다.”

전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 딸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주제를 잘 알고 침착한 점.

해 상서부, 손 노부인이 백 노부인을 배웅하고 답답한 마음을 풀기도 전에 원 부인이 찾아와서 안원후부 세자 소자람의 짝으로 해 삼낭자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부인은 답답한 마음을 아직 정리하지 못한 와중이라 더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 해 상서가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상의할 생각도 없이 곧바로 승낙했다. 해 삼낭자로서는 하늘에서 떨어진 좋은 혼처인데, 상의할 것이 뭐가 있나.

원 부인은 소자람의 사주를 남겨 두고 해 삼낭자의 사주를 들고 기분 좋게 돌아갔다.

손 노부인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해 삼낭자 모녀에게 사람을 보내 안원후부와의 혼담을 이야기했다.

해 삼낭자는 기별을 전하러 온 어멈에게 상을 주어 돌려보냈고, 어멈이 뜨락에서 나가자마자 해 삼낭자 모친 유씨는 왈칵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어머니.”

해 삼낭자는 재빨리 손수건을 적셔 모친에게 건넸다. 유씨는 젖은 손수건을 받아 얼굴을 닦았다.

“괜찮다. 드디어…… 네 혼사가 드디어……. 휴. 근래 이 어미의 마음이 내내 여기에 걸려 있었다. 조마조마했다. 네 혼사엔 우리 모녀 아무도 끽소리할 수 없지 않냐. 노부인과 이낭자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지. 얼마 전엔 널 이가로 보낸다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어찌……. 노부인과 이낭자가 다 너를 위해서 생각한 걸 안다. 어미가 식견이 좁아서…….”

유씨는 계속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녀에겐 아들 하나 딸 하나뿐이었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둘 다 소중한 자식이었다. 딸의 혼사 때문에 노심초사해 왔는데 드디어 결정되었다.

“어머니, 이쪽이 더 좋은 혼처예요.”

해 삼낭자가 나긋하게 어머니를 위로했다.

“이가 태태와 대낭자는 모두 뛰어난 분이잖아요. 혼인해서 들어가면 전 부족한 게 너무 많아요. 역시 소가가 좋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네 아우도 몇 년 후엔 혼담을 논의해야 할 텐데.”

유씨는 또 걱정되기 시작했다.

“어머니, 걱정하지 말아요. 아우의 혼담이 오갈 때쯤엔 제가 있어요. 게다가 할아버님은 연세가 많으세요. 둘째 언니가 그러는데 할아버님이 올해 연말에 사직할 거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대요. 사직하고 나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노년을 보내실 거라고요. 우리는 아우가 글공부를 해야 하니 경성에 있겠다고 하면 돼요.”

해 삼낭자의 나직한 말에 유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혼수, 그리고 네 아버지가 남긴 재산, 많진 않지만, 우리 세 식구 먹고살기엔 충분하다.”

오황자의 무술 수련을 마친 영원은 연경궁에서 나와서 우로 돌아 보록궁으로 들어갔다.

보록궁 작은 뜨락 회랑에 복안 장공주와 영 황후가 마주 앉아 열심히 바둑을 두고 있었다.

영원은 살금살금 들어가서 바둑판과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발끝을 세우고 목을 길게 뜨고 바라봤다. 그리고는 다시 살금살금 다가가 바둑판과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고는 웅크리고 앉아 바둑판을 지켜봤다.

“왜 온 것이야?”

복안 장공주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장공주 누님께 문안 올리려고요.”

영원이 지극히 공손한 모습으로 싱긋 웃었다.

“매우 평안하니 물러가라.”

장공주가 쌀쌀맞게 대답했다.

집중해서 바둑판을 바라보는 영 황후의 얼굴이 어쩐지 희미하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장공주 누님, 드시고 싶은 것 있습니까? 첨과(甜瓜: 참외)? 마침 어제 파는 사람을 봤습니다. 신선하고 아삭아삭하고. 아니면 위주 백도? 커다란 금행(金杏: 살구)? 붉은 능각(稜角: 마름)도 제철입니다. 그리고 빙설량수(氷雪凉水: 얼음 음료, 빙수)도 있습니다. 동문 밖 그 집에서 벌써 팔기 시작했습니다. 온 경성에서 그 집 냉수가 가장 맛있습니다. 가서 한 그릇 사 올까요? 제가 말을 몰면 금방 다녀올 수 있습니다. 사서 바로 돌아오면 하나도 녹지 않을 겁니다. 누님도 한 그릇 드시겠습니까?”

“네 누님이 빙설량수 한 그릇 먹으려면 장공주 덕을 봐야 하는구나.”

영원은 물러가라는 말을 못 들은 체 주절주절 늘어놨고, 영 황후는 느긋하게 대답했다.

“누님도 참.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영원은 장공주의 대답도 듣지 않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달려 나갔다. 복안 장공주는 그의 뒷모습을 흘겨보며 코웃음 쳤고 영 황후는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고지식하고 큰 아우와 둘째 아우 모두 어릴 때부터 행동거지가 단정했는데 저 녀석만 저럽니다. 누구를 닮았는지.”

“지나치게 오냐오냐해서 그렇지요.”

복안 장공주가 돌을 내려놓으며 하는 말에 영 황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예전에 집에 있을 땐 나도 끼고돌았으니까요. 장공주, 이가엔 언제 가실 생각인가요?”

“좀 더 있다가요. 이가에서 이신의 정혼례가 끝난 후에 보고요. 동문 밖 냉수를 몇 번 더 먹고 싶은걸요.”

복안 장공주가 돌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혼담을 넣은 후에는 이 중매인이 찬밥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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