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화: 가련한 금붕어
두 사람은 금세 묵 승상부에 도착했다. 역시나 사환의 말대로 문지기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 잰걸음으로 달려왔다. 앞에까지 오기도 전에 소리를 낮추라는 듯 손가락부터 세워서 입가에 가져다 대고는 앞에 다가와서는 수상쩍을 정도로 목소리를 낮춰서 속삭였다.
“우리 칠소야는 지금 글공부 중이십니다. 두 분 나리, 조용조용히 말씀해주십시오.”
“너희 칠소야는 문간방에서 글공부 중이냐?”
영원이 가차 없이 묻자, 문지기의 목소리가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건 아닙니다. 성의를 보이는 것이지요. 어르신의 분부니까요.”
“어찌, 너희 칠소야가 정말로 글공부한단 말이냐? 할 줄은 알고? 서책에 있는 글자를 다 알기는 한다더냐?”
주육이 배를 잡고 웃자, 식견 넓은 문지기도 따라 웃으며 알랑거렸다.
“우리 이야도 계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주육은 웃으면서 영원을 지나쳐서 문지기가 길 안내할 것도 없이 성큼성큼 묵칠의 거처로 달려갔다.
뜨락 문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획 높아졌다가 다시 작아지는 묵칠의 책 읽는 소리가 들렸다.
뜨락 안으로 들어갔더니 수화문 아래 앉은 묵 이야가 보였다. 묵 이야가 두 사람을 돌아보고 바로 일어서자 영원이 깊이 장읍했다.
“자넬 마중하는 게 아닐세. 소칠과 놀러 가려고? 가게. 나도 돌아가야지.”
묵 이야의 말은 가차 없었지만, 말투는 꽤 온화했다.
묵 이야는 말을 마치고 휘적휘적 돌아갔다. 영원은 몸을 틀어 비켜주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바라봤다. 무슨 뜻이지? 소칠의 끈기를 시험하려고?
주육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고, 뜨락 문밖에서 묵칠의 글공부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놀라서 그야말로 눈썹이 떨어질 정도로 눈썹을 까딱였다. 그러고는 묵칠의 서재로 성큼성큼 다가가서 양손으로 문을 밀고 대뜸 들어가더니 서안 뒤에 앉아서 두꺼운 형통을 끼고 외우고 또 외우는 묵칠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고, 세상에! 정말로 글공부하고 있었잖아? 희한한 일이군!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주육은 넋이 나가서 빤히 쳐다보다가 꽥 고함치고는 뒷걸음쳐서 밖으로 나와서 눈썹 위에 손갓을 만들어서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다시 안으로 뛰쳐 들어갔다.
“아닌데. 분명 동쪽에서 떴는데. 소칠아, 너 뭐에 씌었냐?”
어느새 어슬렁어슬렁 안으로 들어온 영원은 서안 앞까지 다가가서 서안에 놓인 책을 들어 올려 힐끔 보고는 묵칠의 손에 들린 서책을 쥘부채로 들추며 흘깃 보았다.
“형통이라. 실무를 배워서 뭐 하게?”
묵칠은 머리통을 흔들어대면서 책을 외우다가 중간에 한마디 대답했다.
“……잠깐만. 이 문단만 외우고. 방해하지 마라…….”
책을 뺏으려고 달려들던 주육은 영원이 저지하자 툴툴거리며 손을 거두고는 온몸이 거북한 듯이 서안 앞을 서성거렸다. 글공부하는 소리만 들으면 온몸이 거북했다.
영원은 서안에 걸터앉아서 얼굴을 앞으로 내밀고는, 책을 외우느라 목소리가 조금 쉰 묵칠을 자세히 살폈다.
“말발이 서는 사람이 되려고 이러는 것이냐? 계 탐화처럼 되려고?”
영원이 묻는 말에 묵칠은 책을 외우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은 길게 아하, 하더니 서안에서 내려와 손가락으로 서안을 튕겼다.
“그럼 천천히 외워라. 하루 이틀에 될 일이 아니지. 난 간다.”
주육은 의아해졌다.
“응? 이대로 간다고? 형님, 아까 그게 무슨 말이오? 말발이 서는 사람이라니? 계소영은 말발이 선단 말이오? 누가? 누구한테? 아이고! 어딜 가! 원 형님, 내 말 좀 들어봐요. 소칠이 어디 글공부할 사람이요? 내기합시다. 일각도 못 넘길 거요. 길어야 이각!”
“나가서 이야기하자.”
영원이 말하자 주육은 영원을 바짝 쫓아 밖으로 나가서 서쪽 곁채 문 앞에서 멈춰 섰다. 영원이 그를 돌아봤다.
“네 말도 맞다. 어쩌면 일각, 이각이겠지.”
영원은 수화문 아래 주인 없는 의자 둘을 바라봤다. 묵 이야가 안심하고 시원스럽게 가버렸는데 묵 이야 대신 묵칠의 결심을 시험해주지 않으면 조금 미안하지 않은가.
“여봐라! 의자를 이쪽으로 옮겨 와라. 소우 있느냐? 여기 칠야와 육야에게 차를 내와라. 칠야와 육야가 여기서 너희 칠소야의 글공부가 끝나길 기다려야겠다.”
“그래, 그래. 어서 가라! 너희 칠소야의 차 중에 제일 좋은 차로 가지고 와라!”
영원이 고함치자 주육이 얼른 한마디 보탰다.
소우와 사환들이 의자를 옮겨 오고 차를 내리자 영원과 주육은 앉아서 차를 홀짝였다.
“아까 그 말, 무슨 뜻이냐니까? 계소영이 뭐가 말발이 서서?”
주육은 자리에 앉자마자 오금이 저린 듯 물었다.
“계소영의 혼사 말이다. 계가와 명가가 정혼 한 일, 모르느냐?”
영원은 의자를 옮겨서 그물창을 꾹꾹 누르다가 힘을 주어 구멍을 내서 그 구멍 사이로 묵칠을 지켜봤다. 주육도 손가락으로 눌렀으나 그의 힘으로 구멍이 뚫릴 리가 있나. 몇 번 시도해도 구멍이 뚫리지 않자 아예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다.
“그야 물론 알지. 혼사와 말발이 서는 것이 무슨 상관인데?”
주육이 창틀에 엎어져서 묵칠을 바라보며 물었다. 영원은 열린 창문 앞으로 의자를 옮겨왔다.
“그 혼사, 계 탐화의 말 한마디에 백 노부인이 나서서 성사했다. 너는 말 한마디로 네 혼사를 성사할 수 있겠냐?”
주육은 조금 김샌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 어렵겠지. 그 일 말이었군. 이런 일에 우리 말이 통할 리가 있나. 왜? 소칠이 혼사 때문에 이렇게 글공부한단 말이오? 글공부하는 게 무슨 소용 있어서? 소용 있다면 나도 돌아가서 글공부해야겠군.”
“소칠은 형통을 읽고 있다. 정진할 생각으로 읽는 것이다. 계 탐화가 집에서 말발이 서는 것도 다 탐화가 되어서 출세했기 때문 아니냐.”
영원이 고개를 흔들며 책을 외우는 묵칠을 바라보며 대답하자, 주육이 무시하듯 웃었다.
“출세하면 그런 일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다고? 다른 건 몰라도 고 사사네 소오만 봐도 그렇지. 소오도 이번에 진사가 되었잖소. 꼴등이긴 해도 어찌 됐든 진정한 진사 출신이오. 처음에 고 사사는 소오가 이번 과에 급제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지. 동진사(同進事: 전시에서 삼갑 출신을 부르는 말)만 붙어도 대단하다고. 그런데 웬걸, 진사로 급제해서 온 집안이 얼마나 좋아했게? 그런데 혼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줄 아시오?”
“왜? 마음대로 못 한다더냐?”
영원은 두 사람의 대화가 안 들리는 듯이 매우 집중해서 책을 외우는 묵칠을 바라봤다. 보아하니 정말로 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당연히 안 되지. 어제 소오가 날 찾아와 새벽까지 술을 마셨소. 만취해서 울고 노래 부르고. 그게 다 고 사사가 재가할 여인을 정해주려 해서 그런 것 아니오. 정말 불쌍하지.”
주육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로 고자의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도우려야 도울 수가 없었다.
“재가? 경성에 재가하는 여인이 어디에 있어서. 응?”
영원은 심장이 철렁해서 주육을 돌아보며 물었다.
“재가라니? 무슨 말이냐? 자세히 말해라. 얼른!”
“왜 형님이 안달이오. 형님에게 재가할 여인을 정해준 것도 아니고.”
주육은 혀를 차며 팔꿈치를 창턱에 받쳐놓았다.
“점괘를 봤다던가? 그런 여인과 혼인해야 한다고 나왔다지 뭐요. 점쟁이가 그랬다는 것 같았소. 고가 생사존망에 관여된 일이라고 말이오. 내 생각엔 분명 점쟁이가 사기 친 것이오. 이런 일이 어디에 있…….”
“본론을 이야기해라!”
영원이 주육의 주저리를 잘랐다.
“이것도 본론이오. 정말로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것 같더라고. 어찌 됐든 고 사사가 반드시 그 여인과 혼인해야 한다고 했다는군. 좋아도 혼인해야 하고 싫어도 해야 한다고. 혼담을 넣어달라고 이미 해 상서에게 부탁했다는걸? 혼인하기 싫은 기색을 남에게 들키는 것도 큰 불효라고, 그런 일이 생겼다간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했다는군. 소오도 참 불쌍하지…….”
주육은 불쌍하다고 하면서 호사가의 눈빛이 되어 눈을 반짝였다. 요즘 구경거리가 많아서 기분이 매우 좋았다.
“어느 댁 낭자인데?”
해 상서에게 중신을 부탁했다는 말에 영원은 마음이 다시 가라앉아서 참지 못하고 캐물었다.
“어느 댁이긴 어느 댁이야. 경성에 재가할 여인이 또 있소? 이 전려의 누이지. 수녕백 강가…….”
주육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원이 벌써 벌떡 일어섰다. 너무 갑자기 펄쩍 튀어 오른 바람에 회랑에 걸린 등롱에 부딪혀서 우당탕 떨어졌다.
“원 형님!”
주육도 깜짝 놀라 화들짝 일어나서 등을 벽에 딱 붙인 채 당황한 눈빛으로 영원을 바라봤다. 영원의 얼굴이 퍼렇게 질려 있었다.
방 안에 있던 묵칠도 놀라서 책을 안은 채 벌떡 일어나서 후다닥 창가로 다가왔다.
영원은 땅에 떨어진 등롱을 높이 걷어찼다. 뜨락 안으로 날아간 등롱이 수련 항아리에 빠지자 수련 항아리 안에 있던 금붕어 몇 마리가 물과 함께 튀어나와서 청석 바닥에 떨어져 펄떡펄떡 튀었다.
주육과 묵칠은 입을 벌리고 하나는 멍하니 영원을, 또 하나는 멍하니 바닥의 금붕어를 바라봤다.
영원은 눈앞의 의자를 힘껏 걷어차고는 찬 바람이 쌩쌩 부는 기세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주육은 영원이 수화문 밖으로 나간 지 한참 만에야 숨을 내쉬었다.
“원 형님이 살기가 등등한걸. 왜 저러는 거지?”
“내가 어찌 알아. 너도 모르고?”
“내가 어찌 알아. 난 네가 아는 줄 알았지!”
주육은 어깨를 으쓱이며 묵칠과 얼굴만 바라봤다.
“큰일인 것 같은데, 우리가 가 봐야 하지 않을까? 원 형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잠시 후 주육이 밖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묵칠은 잠시 주저했다.
“난 아직 책을 외워야 하는데……. 생각 좀 해 보고.”
“이게 생각할 일이냐! 원 형님 일이다, 내 원 형님, 네 칠 형님! 무슨 생각을 더 한다는 거냐?”
주육이 버럭 화를 냈다.
“내 생각엔 우리 둘이 원 형님 일에 도움도 되지 못한다. 휴. 난 책을 외워야 한다. 이것도 큰일이다. 잘 들어라.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이다. 이렇게 하자. 네가 먼저 가 봐라. 내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으면 됐고, 혹시 필요할 것 같으면 사람을 보내라. 걱정하지 말고. 칠 형님이 필요하다면 글공부는 둘째치고 칼 비가 내린대도 달려가마.”
“이렇게 나와야지. 됐다. 넌 네 책이나 외워라. 하나같이 다들 뭐에 씐 듯이 구는구나. 내가 가 보고 무슨 일 있으면 부르마.”
주육이 영원을 뒤쫓아 나간 뒤 묵칠은 양손으로 창틀을 붙잡고 고개를 내밀고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책을 안은 채 뒷걸음질 쳤다. 의자로 돌아가서 앉지도 않고 책을 든 채 서성거리며 중얼중얼 책을 외웠다.
묵칠의 거처에서 나온 묵 이야는 모퉁이를 돌아 높은 곳에 있는 정자 안으로 들어가서 간절한 눈으로 묵칠의 거처를 지켜봤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영 칠야와 주가 소육의 말 한마디에 소칠이 버티지 못할까 걱정이었다.
휴. 글공부는 어렵고 정진하기는 더 어렵지. 내 기대가 너무 크구나…….
차 한 잔 마실 동안 뜨락 문 쪽에선 아무런 기척도 없었고 묵 이야의 가슴은 타들어 가는 듯했다. 차 한 잔 더 마셨는데도 여전히 기척이 없자 묵 이야의 마음이 식기 시작했다.
됐다, 됐다. 한평생 평안하게 사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지. 너무 많은 걸 바라선 안 되지.
그렇게 차 반 잔을 더 마셨을 때 영원이 선풍 같은 속도로 뜨락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묵 이야는 저도 모르게 상체를 뒤로 젖히며 뒷걸음질 쳤다.
영 칠야, 기세가 실로 놀랍군! 무슨 일인지 가 봐야겠구나.
막 계단을 내려가는데 주육이 장삼 자락을 쥐고 잰걸음으로 달려 나오는 게 보였다. 묵 이야가 걸음을 멈추고 뜨락 안쪽을 한참 지켜보는 동안에도 묵칠은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