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06화 (406/463)

406화: 죽네 사네

주변에서 온통 놀라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 살아서는 못 꺼내는데!

영원이 주육을 데리고 혼란한 틈을 타 저택 안으로 뛰쳐 들어왔을 때, 거의 모든 묵가 사람이 그 우물가를 에워싸고 있었다. 묵 구내내와 주 대내내는 놀라서 얼굴이 퍼렇게 질린 전 노부인을 양쪽에서 부축하고 있고 전 노부인은 묵칠을 향해 고함치고 있었다.

“일단 내려와라! 내려와서 이야기하자. 일단 내려와라…….”

묵칠은 우물 턱에 앉아서 두 팔로 우물 가장자리를 지탱하고 버티면서 수시로 탁탁 두드리며 딱 두 마디를 반복했다.

“그만 살랍니다!”

“다가오지 마세요! 꿈쩍만 해도 뛰어내릴 겁니다.”

영원은 무시하는 마음밖에 안 들었다. 이 무지렁이, 소동을 일으키는 것도 제대로 못 하냐!

“아이고야! 소칠, 정말로 뛰진 말아라. 제대로 앉아! 우물 위는 아주 미끄럽다. 아이코!”

주육은 묵칠이 우물 턱에 앉은 걸 보고 얼른 충고했다. 그 소리를 못 들었으면 모를까, 그 말에 긴장한 묵칠은 손이 미끄러져서 하마터면 몸도 미끄러져 내려갈 뻔했다. 주변에서 놀라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고 전 노부인은 휘청거렸다.

영원은 벌써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싹 훑어봤다. 묵 육낭자가 없었다. 아마 안에 명가 낭자도 있어서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영원은 다시 둘러보다가 소우를 발견하고 빠르게 다가가 잡아끌고 허리를 숙여 속삭이며 물었다.

“명가 낭자도 지금 저택에 있느냐?”

“아마, 계실 겁니다.”

속사정을 다 아는 소우는 매우 담담했다. 다만 자기네 칠소야의 손이 미끄러질까 봐 걱정이었다.

“네가 다녀오너라. 명가 낭자도 소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전해라.”

“예? 아!”

영원이 분부하자 소우는 후다닥 달려갔다.

명 삼낭자는 고개를 숙인 채 멍하니 의자에 앉아 있고 묵 육낭자는 삼낭자 곁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언니, 이러지 마. 할머님은 칠 오라버니를 제일 아끼셔. 칠 오라버니가 소동을 부린 거니까 분명 효과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다른 건 다 들어주겠지만, 이 일은 안 될 거야.”

명 삼낭자가 무감각한 듯 대답하자 묵 육낭자가 울음을 터트렸다.

“이러지 마. 언니, 좋게 생각해. 칠 오라버니가…… 칠 오라버니는…….”

묵 육낭자는 자기도 슬퍼서 죽고 싶은 지경이라 명 삼낭자를 설득할 말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발을 구르다가 명 삼낭자 옆에 털썩 앉아서 얼굴을 가리고 울기 시작했다.

그때 곡우가 뛰쳐 들어왔다.

“낭자, 낭자! 어서요! 소우가 소식을 전하러 왔어요. 낭자도 소동을 부리시래요. 낭자 말고 삼낭자요. 삼낭자도 소동을 부리시래요!”

“아? 누가? 누가 그러래?”

묵 육낭자는 얼떨떨해졌는데 명 삼낭자는 그 말에 순간 살아난 듯이 양손으로 팔걸이를 단단히 잡고서 급박하게 곡우를 쳐다봤다.

곡우가 헐떡거리면서 대답했다.

“그게…… 영 칠야래요.”

“영 칠야만 나서주면 아무 걱정 없다고 오라버니가 그랬었어! 어떻게 난리 부리란 말은 없었어? 어떻게…….”

묵 육낭자는 다급해서 조금 횡설수설했고, 곡우는 고개를 저었다.

“딱 한마디 했어요. ‘영 칠야가 삼낭자도 난리를 부리라고 하셨다.’ 이게 다예요.”

“그럼 언니, 어서 난리를 부려 봐!”

묵 육낭자는 어떻게 난리를 부려야 하는지 하는 난제를 명 삼낭자에게 넘겼다. 명 삼낭자는 넋이 나갔다. 다급해서 콧등에 땀이 다 나왔다.

“어떻게? 나도 우물 턱에 올라가?”

“그건 좀 아니지 않아?”

묵 육낭자가 긴가민가하며 대답하자 곡우가 참지 못하고 나섰다.

“칠소야가 우물 턱에 앉았는데 삼낭자도 우물 턱에 마주앉으면 얼마나 우습겠어요. 아니면…… 맞다! 접자희에서 보면, 낭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다들 머리 자르고 비구니가 될 거라고 하잖아요. 삼낭자, 삼낭자도 머리 자르고 비구니가 될 거라고 하세요.”

묵 육낭자가 손뼉 치며 감탄했다.

“좋은 방법이야! 어서 가위 찾아와. 아, 여기 있다. 곡우, 백로, 사람들을 다 불러오고 가서 삼낭자가 머리카락 자르고 비구니가 되겠다고 한다고 할머님께 알려. 내가 도저히 말리지 못한다고. 여럿이 가. 달려가고. 달려가면서 소리도 질러. 목청 좋은 애들로 골라!”

백로는 대답하고 얼른 사람 찾으러 나갔다. 목청 좋고 울고불고 잘하는 시녀들로 골라서 다 같이 데리고 “큰일 났어요! 삼낭자가 머리카락 자르고 비구니가 되겠대요!” 하고 외치며 우물가로 달려갔다.

묵 이야가 허둥지둥 우물가에 도착했을 때 백로와 시녀들이 울며불며 달려왔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 대내내는 딸이 머리 밀고 비구니가 되겠다고 한다는 말에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어서 부축해다오. 내 새끼가…….”

묵 구내내가 후다닥 전 노부인의 팔을 놓고 허리 숙여 주 대내내를 부축했더니 기댈 곳을 잃은 전 노부인이 비틀거렸다. 얼른 다시 전 노부인을 부축하며 허둥지둥하던 묵 구내내도 울음을 터트렸다.

“소칠, 그만해라. 이러다가 할머님 쓰러지시겠다!”

영원은 저 멀리 묵 이야가 달려오는 걸 보고 주육을 끌고 나가려고 했는데 주육은 한창 신나고 재미있게 보느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영원은 할 수 없이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서 몸을 숨기고 열심히 구경했다.

달려온 묵 이야는 성큼 다가가 우선 전 노부인을 부축하고 묵 구내내에게 분부했다.

“여긴 내가 있으니 넌 어서 주 대내내를 모시고 가 보아라.”

“아이고!”

묵 이야가 나타나자 의지할 곳이 생긴 묵 구내내는 주 대내내를 부축해서 일으키고는 가마를 부를 겨를도 없이 묵 육낭자의 거처로 달려갔다.

“어머님, 진정하세요. 괜찮습니다. 제가 가서 저 고얀 놈을 끌어내겠습니다.”

묵 이야가 위로하자 전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칠이 이번엔……. 휴, 들어주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일단 내려오라고 해라.”

묵 이야가 다가가자 묵칠은 무심결에 영원을 힐끔 보고는 우물 턱을 힘껏 지탱하면서 긴장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버지도 가까이 오지 마세요! 한 걸음만 더 다가오면 뛰어내릴 겁니다!”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또 영원을 힐끔 봤다. 영원은 그 자리에서 저놈을 우물 안으로 걷어차지 못함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묵 이야는 걸음을 멈추고 묵칠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사람들 사이로 숨으려고 애쓰는 영원, 그리고 신이 나서 손발을 휘두르며 구경하는 주육을 발견했다.

묵 이야는 뒷걸음질 쳐서 인파를 파고들어 영원에게 다가갔다.

“영 칠야, 도와주게. 내 아들을 살려주게.”

영원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주육이 먼저 나섰다.

“그건 간단합니다! 원 형님 한마디면 됩니다. 그렇지? 소칠이 어찌 감히 원 형님의 말을 거역하겠습니까.”

주육의 뿌듯해 보이는 자랑질에 영원은 이가 부득부득 갈리는 마음으로 허허 웃으며 묵 이야를 향해 공수했다.

“오늘 일은 제가 나서도 소용없습니다. 소용 있을 것 같으면 진작 이야기했지요.”

“이야기해 보지도 않고 소용 있는지 없는지 어찌 아나. 형님이 하는 말이 소용없을 리가 없지.”

주육이 다시 먼저 나섰다. 표정이 얼마나 엄숙한지, 제 원 형님의 위엄에 버금갈 정도였다.

“이야, 소칠이 오늘 난리를 부린 이유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오늘 일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일이 아닙니다. 설령 제 민첩한 솜씨로 소칠을 저기에서 끌어내린다고 해도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장담하지 못합니다. 소칠의 성격이 어떤지, 이야께서 가장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억지로 딴 열매는 달지 않습니다. 평생이 걸린 일입니다. 소가 물을 마시지 않겠다는데 억지로 머리를 눌러 먹일 필요 있겠습니까.”

더는 어리석은 척할 수 없어진 영원은 아예 명확하게 이야기하며 설득했다. 묵 이야는 어두운 얼굴로 영원을 빤히 봤다.

“이야도 다 경험하신 일 아닙니까. 숙고하십시오.”

영원은 묵 이야의 과거를 슬쩍 언급했다. 그 당시 무슨 일이 있어도 도씨를 아내로 맞으려고 했었던 과거를 떠올린 묵 이야는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치켜들고 영원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영원은 담담하게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잠시 후, 묵 이야가 눈을 내리깔고 돌아섰다.

전 노부인 곁으로 돌아간 묵 이야는 전 노부인을 부축해서 사람들을 벗어난 곳으로 향했다.

“어머님, 이쯤에서 그만두시지요.”

“소칠이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서 그런다. 나중에 알게 될 것이다.”

전 노부인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 혼사를 포기해야 한다니. 삼저아가 얼마나 뛰어난 낭자인가. 정말이지 가슴을 할퀴는 것만 같았다.

“이쯤 하시지요.”

잠시 침묵하던 묵 이야가 다시 나직이 말했다. 전 노부인은 온몸에 기운이 빠지는 듯했다. 한참 만에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들이니 네 뜻대로 해라. 네 뜻대로 해!”

전 노부인은 힘껏 묵 이야를 밀치고는 뒤로 비틀비틀 물러나다가 다급히 달려오는 시녀의 손을 붙잡고 기운 없이 자리를 떴다.

묵 이야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서 있다가 돌아서서 묵칠을 향해 냉랭하게 말했다.

“혼사는 없던 일로 했다. 네 꼴을 보니 명가 낭자와 어울리지 않는다. 사당으로 가서 무릎 꿇어라!”

묵칠은 안심이 되자 순간 온몸에 힘이 풀렸다. 양손으로 지탱하고 일어서려는데, 순간 팔이 후들거려서…….

“소칠!!”

묵 이야는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영원이 활시위를 떠난 활처럼 날 듯이 달려가서, 묵칠이 우물 안으로 빠지기 전에 머리채를 잡고 우물에서 끌어냈다.

묵칠은 벌써 혼비백산해서, 영원이 손을 놓자마자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져서 엎드린 채 쉴 새 없이 기침해댔다. 묵 이야는 바닥에서 기어 일어나서는 덥석 묵칠을 잡고 이를 갈고 노려보다가 한참 만에 겨우 분부했다.

“태의를 모셔라!”

여 승상부로 들어간 백 노부인은 명 삼낭자를 손자며느리로 삼는 일에 원 부인이 중매 서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고는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전 노부인이 애지중지하는 것에 손을 대려는 일일세. 말은 해두었지만, 자네가 중신 서려면 자네도 크게 얽힐 걸세. 자네 시아버지에게 여쭤보고 결정해야 할 일이네. 난 이만 돌아갈 테니 여 승상이 돌아온 후에 대답하시면 사람을 보내 알려주게.”

원 부인은 서둘러 일어나 백 노부인을 부축하고 밖으로 나갔다.

“노부인 참으로 시원시원하십니다. 이 일이 참…….”

“다 아이를 위한 일일세. 나도 그렇고, 전 노부인도 그렇고.”

“그러게요. 다 아이 때문이지요.”

정말이지 뭐라고 하면 좋을지 모르던 원 부인이 얼른 대답했다.

“명가 삼저아가 확실히 보기 드문 좋은 아이지요. 저도 매우 좋아한답니다. 아니, 전 그냥 그 아이가 좋다고요. 점찍은 게 아닙니다!”

백 노부인이 웃음 지었다.

“점찍었으면 또 어때서. 원래 좋은 규수는 모든 가문이 탐내는걸!”

“말은 그렇게들 하지만…….”

원 부인이 허허 웃었다. 백 노부인이 억지 쓸 때가 있다고 다들 이야기했을 때 줄곧 믿지 않았었는데…….

“휴. 그렇지. 말이 그렇지, 뜻이 그런 게 아니라서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이 집 저 집 뛰어다니면서 부탁하는 것 아닌가. 여기에서 나가면 보록궁에도 들러서 장공주께도 이 일을 이야기해야 하네.”

“영가아는 뛰어난 아이잖아요. 고생하셔도 그럴 가치가 있지요.”

원 부인은 담담하게 대답하며 직접 백 노부인을 부축해서 마차에 태우고 마차가 멀어지는 걸 잠시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갔다.

염가아의 혼사를 서둘러야 할 것 같았다. 마지막 중요한 순간에 불쑥 계가가 튀어나오는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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