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화: 뒤집힌 우정의 작은 배
명 삼낭자는 엊저녁부터 마음이 천당에서 지옥, 지옥에서 다시 천당까지 오갔다. 이게 꿈이 아님을 확인하려고 꼬집는 바람에 두 팔이 여기저기 퍼렇게 멍이 들었다. 그러다가 또 너무나 달콤해서 세상을 떠난 후에 같은 관에 들어가야 할지 말지까지 고민했다. 또 그러다가 혼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떠올랐다. 그렇게 되면 살아야 하나, 죽어야 하나…….
애끓고 초조한 마음에 밤새 거의 눈도 붙이지 못하고 다음 날 이른 아침 묵 육낭자를 만나러 묵부로 달려왔다. 묵 육낭자는 그녀의 마음을 아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게 혼자 허튼 생각만 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백 노부인이 찾아온 일은 너무 희한한 일이라서 묵부를 관리하는 묵 육낭자에게 곧바로 기별이 들어왔다. 시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명 삼낭자가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묵 육낭자가 깜짝 놀라서 후다닥 달려가 그녀를 진정시키며 분부했다.
“여봐라. 곡우야! 어서 가! 가서 제대로 듣고 와. 백로, 너도 가. 무슨 일인지 반드시 듣고, 서둘러 돌아와서 고해.”
곡우와 백로 모두 묵 육낭자를 10년 가까이 모신 대시녀로, 명 삼낭자의 고민을 두 사람도 잘 알고 있었다. 묵 육낭자의 분부가 무슨 의미인지도 당연히 알아들었다. 두 사람은 긴장한 가운데 들뜬 마음으로 치맛자락을 들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명 삼낭자는 아까 일어서느라 기운을 다 썼는지 지금은 다리가 떨려서 일어서지도 못하고 그저 묵 육낭자의 손을 꽉 붙들고 있었다.
“육저아, 나…… 무서워……. ”
“무서워하지 마, 무서워할 것 없어. 할머님 생신 때 말고는 백 노부인은 우리 저택에 오신 적이 없어. 할아버님 생신 때도 안 오셔. 갑자기 오신 건 분명 언니와 계 공자 일 때문일 거야. 응? 그런데 왜 우리 집으로 오셨지? 혼담을 넣으려면 언니네로 가야지……. 진정해, 진정해. 곡우가 돌아오길 기다리자. 그럼 알게 될 거야.”
사실 육낭자도 삼낭자보다 나을 게 없었다. 긴장해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분명 좋은 일일 거야. 두 사람은 천생배필이니 하늘도 보우하실 거야. 긴장하지 마. 금세 좋은 소식이 들어올 거야. 왜 우리 집으로 오셨지?”
묵 육낭자가 명 삼낭자 주위를 빙글빙글 돌자 명 삼낭자가 덥석 잡았다.
“그만 돌아. 머리가 어지러워. 계속 돌면 나 토할 것 같아.”
“침착해, 침착해!”
묵 육낭자는 명 삼낭자 주위가 아니라 제자리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침착해야 해. 태산이 무너져도……. 그냥 우리도 가 볼까?”
명 삼낭자가 재빨리 고개를 젓자, 묵 육낭자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그렇긴 하지. 그건 안 좋아. 괜찮아, 괜찮아. 분명 성사될 거야. 백 노부인의 체면이 있는데, 할머님이 백 노부인의 체면을 깎으신 적이 없어.”
묵 육낭자는 계속해서 빙빙 돌면서 주절거렸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저 멀리서 다가왔다. 두 사람이 동시에 밖으로 달려나가다가 문 앞에서 부딪쳐서 비틀,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동시에 달려나갔다.
곡우는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도록 달려와서 헐떡이느라 말도 제대로 못 했다.
“크, 큰일 났어요! 백 노, 노부인이……. 혼담을……. 삼낭자를……. 잠시만요, 숨 좀…….”
“헐떡이지 말고 어서 말해! 답답해 죽겠네!”
묵 육낭자는 다급해서 발을 굴렀고, 명 삼낭자는 긴장해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어르신이…… 화를, 이미 정해졌다고. 오늘, 오늘 바로 정혼하시겠대요.”
곡우는 가슴을 두드리며 말을 한 번에 하려고 애썼다.
“누구랑 누가? 똑똑히 말해!”
“칠, 칠소야랑요.”
곡우는 명 삼낭자를 바라봤다. 명 삼낭자는 흔들거리더니 꼿꼿이 앞으로 쓰러졌다. 곡우와 묵 육낭자가 기겁해서 비명을 지르고는 함께 달려가서 명 삼낭자를 안았다. 곡우가 명 삼낭자의 인중을 꼬집었다.
명 삼낭자는 기절한 게 아니었다. 어제 꼬박 잠을 못 잤고 어제 점심부터 지금까지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는데 긴장하고 초조한 나머지 눈앞이 잠깐 흐려진 것일 뿐이었다.
명 삼낭자가 눈을 뜨자 묵 육낭자는 크게 안도하며 곡우에게 분부했다.
“어서 가 봐! 칠 오라버니가 집에 있는지 보고 가서 알려. 얼른!”
묵칠도 저택에 있었다. 남들보다 적어도 한 시진 늦게 관아로 가고 관아에 가서도 한 바퀴 돌면서 여기저기 인사하며 등청했음을 알릴 뿐이었다. 얼굴을 보이곤 곧바로 돌아왔다.
관아의 업무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막론하고 받지 않았다. 뭘 물어도 고개를 저으며 모른다고 하거나 아니면 한마디, ‘그렇게 해라’였다.
황상이 직접 지정해준 일거리가 아니었다면 필요도 없는 녹봉을 진작 내버리고 손 흔들고 그만뒀을 것이다.
그가 처음에 부임했을 때, 아버지 묵 상서는 한동안 들떠서 막료, 관사, 종복을 공들여 골라주고 서책 명단을 열거해 주었었다. 심지어 앞으로 벼슬길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까지 할아버지 묵 승상과 함께 자세하고 꼼꼼하게 상의했었다.
하지만 하도 보수 임무를 끝낸 후 묵칠은 뭐라고 설득해도 다른 일은 맡지 않았다. 아버지 묵 상서는 할 수 있는 말은 다 하고 쓸 수 있는 수는 다 쓴 다음 결국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게 탄식하고 포기했다.
묵칠은 어제 명 삼낭자와 계소영이 만나 이야기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백 노부인이 움직인 시간이 실로 너무 일러서 아직 관아에 나가기도 전이었다.
단숨에 묵칠 거처로 달려 들어간 곡우는 한참 팔부터 휘두르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칠소야, 큰일 났어요. 백 노부인이, 왔어요. 쫓겨났어요. 어르신이, 정혼, 소야와, 삼낭자, 오늘이요, 바로 오늘이요!”
묵칠은 넋이 나갔다가 잠시 후 펄쩍 뛰었다.
“가자! 소우는? 칠 형님을 찾아가라! 가서 나 이제 못 산다고 알려라.”
곡우는 입을 벌린 채 넋이 나갔다.
칠소야, 참으로 장래가 밝으십니다!
백 노부인을 내쫓은 전 노부인은 즉시 명 삼낭자의 모친 주 대내내를 모셔오라고 분부했다. 그리고 명가와 혼인한 막내딸 묵 구내내도 불렀다. 오늘 이 자리에서 혼사를 정할 생각이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묵 승상부에서 나온 백 노부인은 여 승상부로 가자고 분부했다. 전 노부인에게 이야기했고, 이제 원 부인에게 부탁해서 혼담을 넣을 생각이었다.
소우……는 바로 야우였다. 묵칠은 제 칠 형님의 사환이 대영, 대웅이라는 기개 넘치는 이름인데 자기 사환은 야우(夜雨: 밤비)니 신무(晨霧: 아침 안개)니 어쩌고, 작위적인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칠 형님에 대한 존중의 표시로 자기 사환의 이름엔 ‘소’자를 붙여 소우, 소무로 바꾸었다.
소우의 영리함과 민첩함은 말할 것이 없어서, 곧바로 정북후부로 달려갔다. 요즘 황상이 조회에 잘 나가지 않으니 이 시간에 영 칠야는 아마도 저택에 있을 것이다.
역시나, 정북후부 골목 입구에서 영원을 만났다. 소우는 몇 마디 만에 자기네 칠소야가 못살게 된 일을 설명했다. 영원은 하, 소리를 내며 소우를 손가락질했다.
“네 칠소야에게 말해라. 살고 싶지 않으면 살고 싶지 않다고 난리 부리라고 해라. 죽겠다고 난리를 부려야지. 이 일은 난리를 부려야 성사된다.”
“예? 아! 예!”
소우는 대답하고는 얼른 말머리를 돌려 저택으로 돌아갔다.
영원은 두 손가락으로 턱을 괴었다. 이건 큰일이었다. 현장에 가서 직접 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도와줄 사람이 하나 있어야겠는데…….
“어서 주 육소야에게 가서 큰 구경거리가 있다고 알리고 묵 승상부로 서둘러 오라고 해라. 빠를수록 좋다고.”
영원은 대영에게 분부하고 말머리를 돌려 먼저 묵 승상부로 향했다.
주육이 단숨에 말을 몰고 묵 승상부 앞 큰 거리에 나타나자 영원이 채찍으로 앞을 가로막았다.
주육이 다급해져서 말 위에서 일어섰다.
“원 형님! 큰 구경거리라니, 그게 뭐요? 소칠도 불렀나? 왜 안 나오는 거야.”
“죽네 사네 하고 있다. 못 나와. 가자, 구경하러 가자.”
영원이 채찍으로 주육의 말을 쿡쿡 찔렀다. 말 두 마리가 나란히 묵 승상부로 다가갔다.
“아? 죽네 사네? 소칠이? 왜? 아이고!”
잠시 얼떨떨해하던 주육은 묵 승상부에 들어가서 구경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순간 싱글벙글했다. 묵 승상부의 구경거리라니, 매우 귀한 기회지!
영원의 귀띔을 들은 묵칠은 잠시 의미를 가늠하고는 우선 허리띠를 풀고 복두를 벗어서 내던졌다. 신발도 벗으려고 다리를 들다가 멈칫했다. 됐다, 신발이 없으면 발이 아프다.
큰 동 거울을 마주 보며 장삼 자락을 힘껏 잡아당긴 다음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그러고 다시 거울을 보고 이만하면 됐다 싶어서 다리를 쿵 구르고는 어깨를 흔들면서 휘적휘적 전 노부인의 정원으로 달려갔다.
소우, 소무를 비롯한 모든 사환이 얼떨떨하게 그 모습을 바라봤다. 따라가자니 엄두가 나지 않고, 따라가지 않자니 그것도 엄두가 나지 않아서 전전긍긍하며 삼삼오오 뒤를 따랐다.
명가와 묵 승상부는 매우 가까웠고 묵칠이 눈을 부릅뜨고 전 노부인의 상방에 대뜸 들어갔을 때 명 삼낭자의 모친 주 대내내와 작은고모 묵 구내내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소칠, 이게 무슨 꼴이냐?”
막 예를 갖추고 앉기도 전에 들이닥친 묵칠을 본 묵 구내내가 놀라서 물었다. 전 노부인은 순간 짐작 가는 게 있어서 분노한 얼굴로 호통쳤다.
“난리 부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할머님!”
묵칠은 크게 고함치며 전 노부인 앞에서 무릎 꿇고 꼿꼿이 허리를 세웠다.
“말씀드렸지만,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명가 누이와 혼인하지 않을 겁니다! 죽어도 싫어요!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혼인 안 합니다!”
주 대내내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벌어졌다. 묵 구내내는 멍한 눈으로 묵칠을 빤히 봤다. 소칠 몸에 악귀가 붙었구나! 머릿속에 유일하게 드는 생각이었다.
“네 이놈! 이 고얀 놈! 이놈을…….”
전 노부인은 화가 나서 기절할 것 같았다.
“끌고 나갈 것 없습니다! 제가 나갑니다! 안 살랍니다! 잘 들으세요, 정말로 그만 살 겁니다! 살아서 무얼 합니까!”
묵칠이 벌떡 일어서더니 두 주먹을 꾹 쥐고 전 노부인을 향해 고함치고는 후다닥 밖으로 달려나갔다.
겁에 질린 묵 구내내와 전 노부인이 동시에 소리쳤다.
“잡아라!”
“나가라고 해라!”
“얼른 막아야지요. 소칠은 고지식한 아이예요. 행여, 행여…… 욱하는 마음에…….”
묵 구내내는 조바심 나고 놀라서 벌써 울먹이고 있었다. 전 노부인도 생각해 보니 옳은 말 같았다. 소칠은 경솔한 아이인데 행여 무슨 일이 났다가는 목숨 하나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붙잡아라! 어서! 잡아서 묶어라. 제 아비가……. 가서 저놈 아비를 불러와라! 제가 키운 고얀 놈이 무슨 짓을 하는지 와서 보라고 해라!”
전 노부인이 서둘러 분부했다.
주 대내내는 눈을 깜빡, 또 깜빡였다. 갑자기 칠소야의 이런 올곧은 성품이 매우 귀엽게 느껴졌다.
태도를 확실히 밝힌 묵칠은 전 노부인의 정원에서 활개 치며 뛰쳐나온 뒤 갑자기 망연해졌다. 이제 어떻게 난리를 피워야 하지? 죽네 사네 하는 건 어떻게 하는 건가. 죽으려면 어떻게? 목을 매? 어디에? 칼로? 그래, 부엌에 가서 칼을…….
묵칠이 부엌 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리는데 몇 걸음 떼기도 전에 어르신의 명을 받고 묵칠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사방팔방에서 몰려왔다.
다급해진 묵칠은 제자리에서 빙빙 돌다가 저쪽에 우물을 발견하고 두 눈을 반짝이며 후다닥 달려갔다. 우물 덮개를 단숨에 걷어차고 털썩 우물 턱에 앉더니 휙 돌아서 두 다리를 우물 안으로 늘어뜨렸다.
“죽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