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401화 (401/463)

401화: 맹수를 실내에서 내보내다

문 앞에 서 있던 청서는 봉운이 우물 안으로 빠지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고함치고 싶었지만 행여 삼가아가 놀랄까 봐 억지로 참았다. 삼가아를 안고서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얼른 자리를 떴다. 적어도 이번 겁을 넘긴 셈이었다.

강녕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질어질 정신이 없었고, 죽은 사람 보는 게 제일 무서운 강완은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강완은 정신을 차린 후엔 어리벙벙하게 아직 구경하겠다고 난리 치는 강녕을 끌고 얼른 자리를 떴다.

왕 어멈은 순식간에 죽은 사람이 된 봉운을 넋이 나간 눈빛으로 바라봤다. 오장육부를 누가 잡아 비트는 것 같았다. 봉운이 너무나 고집스럽고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죽긴 왜 죽나.

춘연은 우물에서 건져진 다음 대충 둘둘 말려서 모든 이가 못 마땅해하는 눈빛 속에 실려 나가는 봉운을 멍하니 바라봤다. 다음은 누굴까. 그때 무엇에 씌어서 여기에 남았을까.

곡 대내내는 봉운이 들려 나가고 유재를 내쫓아 돌려보낸 뒤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곡 대내내는 진 부인을 따라 상방으로 들어갔다.

“부인, 봉운 같은 천것 때문에 화내실 것 없어요. 부인의 대시녀는 반월이 맡으면 되겠어요. 부인 거처에 사람이 없으면 안 되니 나중에 몇 사람 더 뽑아서 보낼게요.”

“반월로 하자. 머리가 너무 아프다, 너도 돌아가라.”

진 부인은 지친 표정이었다. 봉운이 이런 천한 짓을 하는 물건이었다니. 사람을 너무나 잘못 봤다. 자기 안목에 자부심을 느끼는 진 부인에게 너무나 슬픈 일이었다.

“그럼 부인, 푹 쉬세요. 반월, 이리 오렴. 당부할 말이 있다. 부인을 모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란다. 부인 시중을 잘 드는 일은 우리 저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곡 대내내는 방실방실 웃으며 경고 가득한 눈빛으로 반월을 바라봤다.

반월은 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고개 숙여 대답하고는, 진 부인은 쳐다보지도 않고 곡 대내내를 따라 정원 밖으로 나갔다.

뜨락 문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멈춰선 곡 대내내는 한참 주변을 둘러보며 경치 감상하다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봉운이 어찌 됐는지 너도 봤지? 주제를 몰랐어.”

반월은 부르르 떨며 나직이 ‘예.’ 하고 대답했다.

“말해 보렴. 부인 곳간의 은자, 어떻게 됐지?”

곡 대내내가 거리낄 것 없이 물었다. 화들짝 고개를 들던 반월은 매섭고 독한 곡 대내내의 눈빛에 움찔하고 고개를 숙였다.

“대내내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소인은, 소인은 모르…….”

“모르는 척할 생각하지 마! 봉운을 생각하라니까!”

“예.”

대내내의 목소리가 금세 매서워지자 반월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곡 대내내가 부들부들 떠는 반월을 흘겨봤다.

“일어나! 봉운과 좋은 자매 놀이를 하고 싶으면 바로 그 뜻을 이뤄주마.”

“아니에요, 아니에요!”

반월은 얼른 고개를 들고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말할게요, 할게요. 부인의 곳간은, 상방 동쪽 곁채, 서쪽 곁채에 모두 내실이 있어요. 하나뿐인 열쇠는 부인이 가지고 계세요. 봉운이 그러는데, 곳간엔 부인만 들어가신대요. 부인은 자주 들어가시는데, 저는 내실 안에 뭐가 있는지 몰라요. 봉운이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어요. 아마 봉운도 몰랐을 거예요. 매번 부인 혼자 들어가신다고 했어요.”

“후원에 있는 곳간 다섯 채는?”

“거기 열쇠도 부인만 가지고 계세요. 부인 혼자 드나드시고요. 저는 들어간 적 없어요. 봉운은 들어간 적 있을 텐데 아마 딱 한 번일 거예요. 곳간 안에 있는 비단이 못 쓰게 됐다고, 버리는 것보다 하인 옷을 지어주는 게 나았을 거라고 봉운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곡 대내내가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나, 봉운도 알긴 알았네.”

“예.”

단숨에 모든 걸 털어놓은 반월은 이제 그렇게 겁이 나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도 조금 들었다.

“잘 들어. 부인이 가진 열쇠, 아무리 그래도 주무실 땐 풀 것 아니야. 그때 꺼내 와. 오늘 밤에 열쇠를 내게 가지고 와.”

곡 대내내의 명령은 지극히 명확했다. 반월이 얼굴이 시퍼레지자 곡 대내내는 그런 그녀를 흘겨보며 그녀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까르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꼴 좀 보라지. 걱정하지 마. 오늘 밤에 가지고 오면 해가 밝기 전에 돌려줄 테니. 다시 돌려놓으면 돼. 쥐도 새도 모를 거란다.”

“부인이 자다가 깨시면요?”

반월이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자주 깨시니?”

곡 대내내가 되묻는 말에 반월이 고개를 저었다.

“잠이 깊으세요.”

“그럼 됐지. 밤에 춘연이 여기에서 기다릴 거다. 이 일을 잘 끝내면 내게 충성을 보이는 거란다.”

곡 대내내는 분부를 마치고 손수건을 휘두르며 사라졌다. 반월은 뜨락 문 앞에 서서 곡 대내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서서히 돌아서서 고개를 떨구고 돌아갔다.

봉운이 죽었는데 부인은 우물을 더럽혔다고 욕할 뿐이다. 죽고 싶지 않았다. 부인의 우물을 더럽히긴 더욱 싫었다.

다음 날, 곡 대내내가 다시 진 부인의 거처에 들렀다. 이번엔 효도하러 온 것이었다. 대상국사에서 해마다 열리는 대자비 법회가 가장 영험하다고 들었다고, 진 부인의 장수와 강완, 강녕의 좋은 인연을 위해서 혼수 은자를 꺼내 세 자리를 사두었다고, 내일 아침 일찍 강완과 강녕을 데리고 대상국사에 다녀오라고 했다.

대상국사의 대자비 법회는 까놓고 말하면 은자를 내고 들어가는 법회였다. 최소 인당 백 냥을 내야 대웅보전 앞에 앉아 반나절 동안 경을 들을 수 있는 방석을 얻었다. 은자가 많을수록 앞으로 가고, 최소 백 냥이었다. 대상국사는 그렇게 모은 은자로 햇곡식을 사서 다음 해 봄 기근 때 경성 주위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대상국사의 법회는 벌써 몇십 년 동안 이어졌고, 진 부인도 낭자 시절엔 할머님을 따라 대웅보전 앞자리에서 경을 몇 년 들었었다. 나중에 할머님이 세상을 떠나고 수녕백부에 들어온 이후로 다시는 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은자 백 냥은 적은 돈이 아니니 말이다.

곡 대내내의 말이 끝나자 진 부인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 집에 들어온 이래 드디어 철이 들었구나.”

곡 대내내는 공손하게 웃었고 태도는 희한할 정도로 온순했다.

“다 부인의 가르침 덕이에요. 부인, 아가씨 둘을 데리고 다녀오세요. 반드시 종일 경을 들으시고 아가씨 둘을 위한 좋은 인연을 얻어오세요.”

강완과 강녕은 더더욱 흥분했다. 두 사람은 법회고 뭐고 전혀 모른다. 다만 저택에서 나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들떴다.

다음 날 이른 아침, 몸소 진 부인과 강완, 강녕을 배웅한 곡 대내내는 돌아서자마자 이미 점찍어둔 사람을 불러 모아서 물건이 가득한 내실을 찾으러 진 부인 정원으로 직행했다.

대상국사 산문 밖, 사람들은 땅바닥에 깔아놓은 돗자리 쪽에서 적당한 자리를 찾아 앉아서 합장하고 경을 외우고 있었다. 진 부인은 강완과 강녕을 거느리고 가슴을 활짝 편 채 그 앞을 지나갔다. 산문을 지난 세 사람은 지객승의 안내를 받아 회랑 가까운 쪽 구석에 놓인 방석 쪽으로 다가갔다. 이 정도면 매우 좋은 자리였다.

아무리 그래도 수녕백부도 백부 가문이고, 진 부인과 강완, 강녕 세 사람이 이쪽 대웅보전 앞에서는 신분이 가장 높았다. 지객승도 당연히 신경 써서 챙겼다.

세 사람이 일찍 도착한지라 처음엔 신기해하며 여기저기 돌아볼 수 있었지만, 곧 사람이 많아져서 여기저기서 떠밀렸다. 진짜로 어깨가 닿을 정도로 비좁아지자 진 부인은 방석이 놓인 자리로 가서 앉았고, 강완과 강녕은 계속해서 선 채 사방을 둘러봤다.

이동이 장 태태의 팔짱을 끼고 산문으로 들어와 회랑을 따라 걷기 시작해서 몇 걸음 들어왔을 때 무지가 청공 큰스님과 함께 안에서 허둥지둥 마중 나왔다.

다리를 틀고 바닥에 앉은 신도들 사이에 서 있던 강완과 강녕은 지극히 좋은 시력으로 두 사람이 회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발견했다. 강녕이 먼저 발견하고 강완을 쿡쿡 찌르고는 얼른 허리를 숙여 진 부인에게 알렸다.

“어머니, 우리 집에서 버림받은 그 여인도 왔어요. 어서 보세요. 잘도 차려입었네요! 버림받은 여인네가 저렇게 화려하게 입다니, 염치도 없지!”

강녕은 혀를 찼고 강완은 죽어라 이동을 노려보고 또 노려봤다. 아녕의 말이 맞다. 염치도 없는 망할 것. 버림받은 여인이 저렇게 화려하게 차려입어?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저렇게 큰 진주를 달고, 저런 옥 장식을 걸다니. 누구에게 보이려고? 부녀자의 덕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걸 보면 역시 상인 가문 여식답지. 쯧! 창피하지도 않나!

진 부인은 일어서다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청공 큰스님과 이야기 나누면서 안으로 들어가는 이동과 장 태태를 보고 있으니 속이 터졌다.

이젠 대상국사까지 오로지 은자만 밝히는구나. 세상이 참. 민심이 예전 같지 않고 갈수록 사회 기풍이 떨어지니, 원!

강완과 강녕이 덩그러니 서 있으니 이동과 장 태태도 물론 두 사람을 발견했다. 이동은 두 사람을 아주 잠깐 쳐다보고는 곧 시선을 돌렸다. 이제 두 사람을 봐도 모르는 사람을 본 것처럼 조금도 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힐끔 딸의 얼굴을 살핀 장 태태는 그녀의 태연한 모습에 내심 안도했다.

동저아의 마음가짐이 이러면 걱정할 것이 전혀 없을 듯했다.

진지하게 따지자면 장 태태는 이 대자비 법회의 가장 큰 전주였다. 드러난 명단에는 장 태태가 시주한 은자는 중간에서 조금 많은 액수였지만, 장 태태는 해마다 따로 시주해왔다. 이가가 경성으로 옮겨온 그해, 이동의 외조모 때부터 시작한 규칙이었다. 그때 이가는 지금처럼 부유하지 않았고, 갈수록 부유해지면서 시줏돈도 늘었다.

과묵한 청공 큰스님은 장 태태와 이동을 맞이한 후에 고개를 끄덕여 주고 곧 합장하고 물러났다.

맨 뒤의 장경루(藏經樓) 앞에 이미 많은 가문 여인들이 모여있었다. 이동이 주변을 둘러보는데 백 노부인과 이야기 나누던 여 승상부의 원 부인이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손짓하며 불렀다.

“장 태태, 동저아도 왔군요. 이쪽으로 오세요.”

백 노부인도 웃으며 두 사람을 향해 손짓했다. 장 태태는 이동을 데리고 가벼운 걸음으로 두 사람 곁으로 다가가 예를 갖췄다. 원 부인은 장 태태의 손을 잡아 앉히면서 장 태태가 자리 잡고 안기도 전에 머리를 내밀며 물었다.

“마침 노부인과 걱정되는 이야기 중이었어요. 그댁 대랑의 혼사는…… 마음에 든 혼처가 있나요?”

장 태태는 얼떨떨해했고 이동은 피식 웃었다. 얼마나 급했으면 보자마자 대뜸 그것부터 물을까.

“동저아 좀 보세요. 이 아이가 지금 날 비웃네요.”

원 부인은 시아버지와 장 태태 외가의 옛일을 들은 후로 이가 모녀를 가족으로 여겼다.

“요 계집애, 네 오라비 혼사가 정해져야 네 혼사도 시작하지. 너 때문에 급한 거란다. 그런데 웃기는. 됐다. 동생들에게 가 보렴. 네가 없어야 편안하게 이야기하지.”

이동은 일어서서 웃으며 모두를 향해 예를 갖추고는, 인사하고 싶은데 소리 내서 부르지는 못하고 간절하게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탕 오낭자 곁으로 다가갔다.

막 몇 마디 나누고 있는데, 전 노부인이 묵 육낭자와 명 삼낭자를 데리고 나타났다. 모두를 향해 인사치레한 다음, 전 노부인, 백 노부인, 원 부인과 장 태태는 자녀 혼사부터 시작해서 선한 끝에 좋은 일 온다는 둥 이야기를 나눴고, 이동은 탕 오낭자, 묵 육낭자, 그리고 명 삼낭자와 함께 조용한 구석을 찾아 경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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