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1화: 마늘 맛이 싫어서
큰 솥을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온 묵칠이 얼굴을 내밀며 탕 오낭자의 말을 받았다. 일단 칭찬부터 하고는 금세 또 물었다.
“칠 형님이 뭘 했는데?”
탕 오낭자가 배를 잡고 웃었다.
“뭔지도 모르면서 못 하는 게 없다고 장담부터 해요? 못 하는 게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내 말은 영 칠야가 혈장이랑 음식을 만들 줄 알 줄은 몰랐다는 거죠!”
“혈장? 혈장이 뭐지? 이거?”
묵칠은 물으면서 벌써 빙글 둘러보고는 접시에 담긴 혈장을 가리키며 물었다.
“맞아요. 정말 맛있어요. 맛보세요.”
탕 오낭자가 젓가락을 들어 묵칠에게 건넸다. 묵칠은 젓가락을 받아서 일단 허리를 숙이고 접시에 담긴 혈장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젓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이 시커먼 거, 뭐지? 먹을 수 있는 건가? 보기에……. 칠 형님, 이거 형님이 만든 거요?”
“음. 먹기 싫으면 억지로 먹지 마라. 많지도 않은데 낭비하지 말고.”
영원이 진지하게 말했고, 탕 오낭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혈장은 좋아하는 사람은 아주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쳐다보지도 않아요. 싫으면 그냥 산채 백육 먹어요. 그것도 맛있어요.”
“칠 형님이 손수 만든 건데 당연히 좋은 거겠지. 낭자는 드셨습니까?”
아닌 게 아니라 묵칠은 진짜 망설여졌다. 시커먼 것이 어쩐지 거북했다. 위에 마늘은 또 얼마나 부었는지. 마늘 냄새가 코를 찔렀다.
탕 오낭자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정말 아주 잘 만들었어요. 우리 집에서 먹는 것보다 더 맛있어요!”
“그럼 꼭 먹어 봐야지!”
묵칠은 용기 내서 심호흡하고 젓가락을 내밀다가 혈장 위에서 멈칫했다. 다른 손으로 소맷자락을 잡고서 젓가락을 쿡 찌르는데 혈장이 사라졌다.
“그냥 먹지 마라. 괜히 좋은 음식 낭비하지 말고.”
영원은 마음이 아팠다. 직접 찌고 직접 자른 혈장이었다. 동동이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아까 탕 오낭자가 먹을 때부터 속이 불편했다. 묵칠의 젓가락질에 바로 터진 조각을 보고는 얼른 묵칠의 젓가락을 빼앗으려 손을 내밀었다.
묵칠이 젓가락을 껴안고 획 돌아섰다.
“처음 보는 거라 말랑할지 몰랐지. 맛봐야겠어!”
탕 오낭자가 젓가락과 접시를 들고 와서 혈장 두 조각을 집어서 묵칠에게 건넸다.
“젓가락으로 밀어서 입에 넣으세요. 혈장은 소룡포 먹는 것보다 힘들답니다. 나중에 연습해요.”
“소룡포 먹는 게 뭐가 어렵다고.”
묵칠이 접시를 받고 꿍얼거리고는 접시를 입가에 대고 혈장을 입으로 넣었다. 살짝 깨물어 보고는 순간 얼굴을 구겼다. 바로 뱉고 싶지만, 탕 오낭자의 기대하는 얼굴, 벌써 샛눈을 뜨고 쳐다보는 영원의 모습에 꾹 참고 삼키고는 젓가락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 뭐냐…….”
묵칠은 두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는 탕 오낭자를 힐끔 보고는 얼른 눈을 피했다.
“이 혈장이 맛이 없는 게 아니라, 마늘 맛이 너무 강해서.”
“마늘 냄새 싫어해요?”
탕 오낭자가 다정하게 묻자 묵칠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은 청국이 건넨 차를 들고서 느긋하게 탕 오낭자를 바라봤다. 영원은 혈장 때문에 마음이 아팠다. 몇 개 되지도 않는데!
“대낭자, 식사 준비됐습니다. 여기에 차릴까요, 아니면 실내에 차릴까요?”
만 어멈이 틈을 보고 묻자 이동이 탕 오낭자를 바라봤다. 탕 오낭자는 손사래 쳤다.
“난 어디든 상관없어요. 언니 좋은 대로 해요.”
“여기에 차리게. 바람도 살랑살랑 불고 경치가 아름다워서 떠들썩하면서도 고상하니 좋군.”
영원이 대답하자 묵칠도 얼른 한마디 얹었다.
“맞다, 맞다. 나와 칠 형님은 여기에서 먹고 낭자들은…….”
영원이 묵칠을 툭 때려서 나머지 말을 막았다.
“살저채는 다 같이 모여서 먹는 재미다. 다 같이 여기서 먹어야지, 대낭자와 오낭자를 따로 먹으라고 하면 되겠냐?”
영원이 얼른 말을 돌리자 묵칠도 이번엔 재빨리 반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맞다. 다 같이 먹어야 떠들썩하지.”
“여기에 차려.”
이동이 잠시 생각하다가 분부하자 만 어멈은 무슨 표정인지 모를 얼굴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잠시 후, 청국을 비롯한 시녀들이 천막 아래 탁자와 의자를 새로 정리하고 만 어멈이 어멈 몇을 데리고 혈장, 산채 백육, 막 솥에서 꺼낸 돼지머리와 살코기, 청증어, 창하 그리고 갖가지 정교한 고기와 채소 요리를 상에 올렸다.
묵칠은 길게 안도했다.
“대낭자, 감사합니다. 난 또 혈장밖에……, 크흠!”
묵칠은 말하다 말고 혈장과 살저채 모두 제 칠 형님의 역작인 걸 떠올리고 하려던 말을 삼켰다. 그러나 영원은 그 말을 못 듣고 성큼 걸어가서 청국이 이미 치운 몇 개 남지 않은 직접 만든 혈장이 담긴 접시를 가지고 왔다.
바로 발견한 이동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웃으면서 청국을 가볍게 나무랐다.
“칠야가 손수 찌고 손수 자른 혈장인데 치우면 어쩌니.”
청국은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무릎을 구부려 사죄했다.
네 사람이 자리에 앉은 후, 영원은 청증어부터 맛보고는 연달아 먹으면서 혀를 내둘러 칭찬했다.
“신선하고 야들야들하고, 맛있군! 비린내는 하나도 없고 신선하기만 한걸. 이렇게 맛있는 생선은 처음입니다!”
묵칠은 반신반의하며 생선 머리를 집어서 맛보고는 덩달아 칭찬했다.
“정말 맛있군. 남쪽에서 옮겨온 활어입니까? 남쪽에서 옮겨온 활어는 매우 귀하지. 훌륭합니다! 청증했는데도 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군요.”
탕 오낭자는 청증어에 관심이 전혀 없고 오로지 혈장에만 시선이 향해 있었다. 태원부를 떠난 이래 내내 먹고 싶어 하다가 드디어 먹게 된 음식이었다. 태원부에서 만든 것보다 훨씬 맛있는 혈장이 눈앞에 있는데 당연히 많이 먹어야지!
묵칠은 앉은 자리 때문인지, 탕 오낭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똑똑히 보였다. 생선 몇 조각 먹고는 탕 오낭자가 혈장을 연달아 집어 먹는 걸 보고 저도 모르게 젓가락을 뻗었다. 접시도 내밀어서 혈장을 접시로 옮겨와서 막 입에 넣으려는데 영원이 이마를 툭 때렸다.
“마늘 냄새 싫다고 하지 않았더냐.”
“싫지. 하지만 다들 먹고 또 먹는데, 나는 먹지도 않으면서 냄새만 맡아야 해. 그럼 차라리 내가 먹는 게 낫지. 아니면 괜히 냄새만 맡게!”
묵칠이 접시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혈장을 먹으면서 웅얼웅얼 말했다. 탕 오낭자는 너무 웃은 게 민망해져서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영원이 그런 탕 오낭자를 힐끔 흘겨봤다. 참 웃음 많은 여자애군.
이동은 탕 오낭자와 묵칠을 번갈아 보면서 아무런 말 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이제 남은 혈장은 모두 탕 오낭자의 입으로 들어갔다.
네 사람이 식사를 마친 후, 이동과 탕 오낭자는 각자 거처로 돌아가서 씻고 쉬었다. 만 어멈이 진작 사람을 시켜 영원과 묵칠이 소세할 거처를 정리해두었다.
이동이 막 옷을 갈아입었을 때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우르릉거렸다. 다급하게 창가로 다가가서 창을 열고 내다봤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어쩐지 오늘 날씨가 다소 무덥더라니. 여름이 되기도 전에 벌써 이렇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려 했다.
다른 거처 안, 영원은 곧 폭우가 내릴 것 같은 날씨를 보고 이미 쿨쿨 잠든 묵칠을 잡아끌어 일으켰다.
“곧 비가 올 것이다. 얼른 돌아가야 한다.”
묵칠이 가물가물 일어났다.
“비? 날씨가 좋았는데 비는 무슨…….”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둥소리가 들리자 묵칠이 어이쿠, 하고 외쳤다.
묵칠은 벌써 창가로 다가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말 천둥이 치네. 비가 오는데, 가긴 어딜 가. 우리 장원은 여기에서 몇십 리나 떨어진걸. 하늘 좀 보라고요.
금방 내릴 것 같은데 지금 가면 가는 길에 비를 다 맞게? 비 멈추고 가면 되지. 마침 푹 자고 일어나서 가면 되겠네. 이런 걸 하늘의 뜻이라고 하는 거지.”
영원이 묵칠을 잡아당겨 일으키면서 물건을 정리하라고 사환을 불러들이는데, 묵칠은 하품하면서 다시 누우려 했다. 영원이 다시 잡아당겼다.
“어서 가자. 하늘 좀 보아라. 밤늦게까지 비가 올 것이다. 지금 가지 않으면 여기서 밤을 보내야 한다.”
“그게 뭐 어때서. 이 장원에 우리 둘 먹을 밥 몇 끼가 없겠어?”
묵칠은 다시 자려고 누우려 했다.
“장원엔 이 대낭자와 탕가 오낭자뿐인데 사내 둘이 어찌 묵는단 말이냐? 장원에 사람이 가득하다. 소문나면 어쩌려고? 잘 들어라, 이런 일은 별별 뜬소문으로 퍼질 수 있다!”
영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 이상 이야기하진 않았다. 만약 나중에 이가와 혼인을 맺게 되면 오늘 일이 어떤 말로 퍼질지 알 수 없었다. 자기는 상관없지만 동동의 명성을 다치게 할 순 없었다.
“그렇지!”
묵칠은 순간 정신이 들었다. 오낭자는 출가하지 않은 황화(黄花) 낭자인데! 뜬소문은 당연하고, 싫은 말 하나라도 듣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얼른 가!”
탕 오낭자의 명성을 해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 묵칠은 영원보다 더 다급하게 굴었다.
“형님, 서둘러. 우의도 필요 없어. 분명 큰 비가 내릴 거라 비옷도 필요 없다. 단숨에 달려가면 되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영이 벌써 비옷을 끌어안고 들어왔다. 사환 몇 명이 다가와 두 사람에게 매우 조악하지만 그만큼 실용적인 비옷을 입혔다. 뜨락 문을 나서자 묵칠이 영원을 잡아당겼다.
“그래도 인사는 해야지.”
“사람을 보내면 된다. 어서 가자. 오늘 날이 좀 서늘하다. 정말로 비 맞으면 너도 버티지 못한다.”
영원은 묵칠을 잡아끌고 뜨락 문 앞에서 말에 올랐다. 두 사람은 종복과 사환의 호위하에 다급히 말을 몰고 달려갔다.
만 어멈은 영원 일행을 배웅하고 길게 한숨을 내쉬고 합장한 채 한참 중얼거리다가 이동에게 보고하려 돌아섰다.
이동은 탕 오낭자에게 녹매를 보냈고, 녹매가 돌아올 즈음부터 큰 빗방울이 후드득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동은 녹매에게 옷부터 갈아입으라고 분부했다. 녹매는 옷을 갈아입고 와서 웃으며 고했다.
“오낭자가 대낭자 거처에 오겠다고 했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조금 주저하시는 것 같길래, 대낭자도 조금 피곤해하시는 것 같으니 조금 쉬다가 오시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드렸어요. 오낭자는 알았다고 제대로 말씀하시기 전에 하품하시더라고요. 피곤해 보였어요.”
그 말에 청국 옆에서 낙자(絡子: 자루 모양으로 매듭을 짠 것) 짜는 걸 지켜보던 만 어멈이 웃음 지었다.
“오낭자도 참 천진난만하네요. 저는 오낭자가 마음에 듭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만 어멈은 마음에 든다고 말해놓고는 근심되는 듯 말을 이었다.
“저는 아무래도 이 인연이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탕가와 묵가는 가문이 너무 차이 납니다. 가문 차이가 나면 여인이 고생하지 않겠어요. 오낭자가 속셈 깊은 사람도 아니고요. 하지만 이것조차 제가 지레 걱정하는 것이지 싶어요. 고생하고 싶어도 오낭자는 그 집 문턱도 못 넘을 겁니다. 전 노부인은 서생 가문만 고르는데 탕가 같은 가문이 눈에 찰 리가 있겠어요.”
“영 칠야의 생각이었어.”
이동은 잠시 침묵하다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어째서인지 영 칠야라는 세 글자를 입에 올리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그 세 글자에 무수한 다른 의미가 있어서 입에 올리는 것만 해도 얼굴이 붉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