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8화: 살저채와 청증어
녹나무 아래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면서, 이동의 뒤를 따라온 영원이 혀를 끌끌 찼다.
“소칠 저놈, 너무 하는걸. 얼마 쓸지도 않고 나무 그늘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어? 정말이지 말 같지 않군. 나중에 혼쭐낼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한다더니, 그 완벽한 준비라는 게 우리 장원의 돼지를 죽이는 거였나요?”
이동이 영원을 노려보며 싸늘한 얼굴로 물었다.
“살저채(殺猪菜: 사주차이. 동북 지역에서 연말에 돼지 잡은 뒤 만드는 요리. 동북 지역 특색 미식) 먹으려고 잡은 겁니다. 묵칠 저 머저리가 한 발에 쏴죽일 수 있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압니까? 대신 쏴주지 않았을 뿐이지, 비슷했어요. 운이 좋아서 어찌 됐든 돼지를 맞혀서 다행이지, 얼마나 난처했는지.”
영원이 하소연했다.
“돼지 피를 제대로 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먹어요. 살저채를 먹고 싶으면 한 마리 다시 잡아요.”
이동은 잠시 저쪽을 지켜보다가 돌아서서 평대 아래로 내려갔다.
“그럼 더 좋고요. 안 그래도 아까 그 돼지는 소칠의 화살에 맞아서 피를 많이 흘려서 걱정이었는데. 잘 됐습니다, 잘 됐어. 혈장을 만들려면 새로 잡는 게 낫지. 혈장이 없으면 제대로 된 살저채라고 할 수 없지!”
영원이 신이 나서 말했다.
고개를 틀고 영원을 바라보던 이동은 신이 난 그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댁에서는 돼지를 잡을 능력이 없나요? 아니면 남의 집 돼지로 잡아야 살저채가 더 맛있나요?”
“오늘이라서 맛있는 거지!”
영원이 손을 휘휘 저었다.
“보세요. 이 장원, 봄볕, 꽃, 나무, 사람, 그리고 이 초막. 부족한 건 딱 하나, 살저채입니다!”
이동은 영원이 휘휘 가리키는 대로 한 바퀴 둘러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장원은 어디에나 있고 봄볕은 해마다 똑같은걸요. 이 꽃이 뭐가 좋아요. 나무는 백 년 넘었으니 그래도 봐줄 만하고. 사람은……. 우리 장원 사람들이 그럭저럭 괜찮긴 해도 귀댁의 종복들처럼 뛰어난 건 아니잖아요. 이 초막은…… 뭐, 살저채와 어울릴 만한 건 이 초막뿐이네요. 이따 장원 사람들이 연회 열 때 꺼내는 붉은 탁자를 옮겨 오라고 할 테니, 그럼 이 초막 아래에서 살저채 한 끼 제대로 드세요, 영 칠야.”
“한마디, 한마디 다 마음에 쏙 듭니다!”
영원이 이동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혼자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살저채의 묘미는 첫째가 바로 시끌벅적한 겁니다. 우리 둘이 같이 먹어야 해요.”
“둘이 먹는 것도 시끌벅적한 건가요?”
이동은 어이없는 듯하지만 영원은 진지하기만 했다.
“그럼요. 당신과 내가 있으면 시끌벅적한 거지. 갑시다. 돼지 잡았나 보러 가요. 이 장원 사람들은 살저채에 쓸 돼지 잡는 법을 모를 수도 있어요. 내 사환들이 전문가입니다. 물론 나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고. 자자, 갑시다. 가서 봅시다. 실수하면 안 되거든.”
이동은 생각해 보니 별다른 일도 없고, 자기가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고 할 정도로 뻔뻔한 소리를 하는 전문가의 솜씨가 어떤지 지켜보기로 했다.
장원 입구에 도착했더니 그 잠깐 사이에 이미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큰 솥도 걸어 놓았다. 영원이 데리고 온 종복, 사환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몇몇 종복, 사환 무리는 서서 구경하거나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골치만 보태고 있었다. 물을 것도 없이 묵칠이 데리고 온 사람들이리라.
장두는 칼을 쥐고 반으로 갈라서 걸어 놓은 돼지에서 살을 베어 내면서 일일이 지시했다.
“이 덩어리는 황 어멈에게 줘라. 그 집엔 식구가 둘뿐이라서 살코기가 많으면 다 먹지 못하니까 비게 부분을 많이 섞었다. 이건 심육네 것이다. 그 집엔 아이가 많으니 오화육(五花肉: 삼겹살)으로 하자. 속에 기름칠만 좀 하면 된다.”
“장두가 꽤 괜찮은 사람이군.”
영원이 이동과 잠시 바라보다가 장두를 가리키며 칭찬했다.
“네, 어머니가 장두를 고르는 첫 번째 조건이 바로 공정하고 후덕한 거예요.”
이동은 그렇게 말하고 청국을 돌아보며 분부했다.
“어차피 잡은 거, 몇 마리 더 잡으라고 분부해. 한창 농사일로 바쁠 시기니까 다들 배불리 고기를 먹을 수 있게 해줘.”
청국은 후다닥 다가가서 장두 처에게 말했고, 여인네들과 바쁘게 채소를 씻던 장두 처는 앞치마에 손을 슥슥 닦고는 재빨리 장두에게 다가가 전했다. 장두는 고민인 듯 ‘아이고’ 소리를 내고는 칼을 내려놓고 이동에게 다가갔다.
“대낭자, 더 잡으면 안 됩니다. 두어 달이면 다 크는데 지금 잡기엔 아깝습니다.”
“걱정할 것 없지. 공으로 잡으란 소리가 아니다. 은자를 낼 사람이 있으니 돼지 한 마리 팔면 은자를 얼마 버는지 제대로 셈해라. 가장 크고 비싼 돼짓값으로 셈해라. 셈해서 두 배로 쳐서 저기 묵 칠소야에게 은자를 받으면 된다.”
영원이 이동 대신 대답하자 장두의 시선이 영원 쪽으로 향하다가 데구르르 다시 굴러왔다. 이 나리, 물건을 볼 줄 모르는군!
장두가 조금이라도 티는 내지 못하더라도, 툴툴거리는 속마음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장원의 돼지를 잡지 않으려면 밖에 가서 사 와야 하는데 그러면 더 타산이 안 맞아. 여기 있는 돼지를 잡고 얼른 새끼 돼지를 잡아서 기르면 되지.”
이동이 웃으며 말하자 장두가 잠시 생각하다가 웃어 보였다.
“대낭자의 말씀이 옳습니다. 그럼 얼른 두 마리 더 잡겠습니다.”
“큰 놈은 우리가 잡는다. 너희들이 잡을 것 없다.”
영원이 장두에게 분부하고는 목소리 높여 대영을 불렀다. 대영이 다가오자 영원이 깔끔하고 간결하게 분부했다.
“돼지 잡고 혈장 만들 거다. 살저채 준비해라.”
대영이 사라지고 장두가 사람을 거느리고 돼지 잡으러 가자 영원이 이동을 바라봤다.
“돼지 잡는 건 보지 말아요. 피 철철 흐르는 거 볼 것 없습니다. 나랑 장원을 거닐다가 준비가 되면 내 솜씨는 그때 보여줄게요.”
이동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서서 장원 반대편으로 걸었다. 영원이 말하지 않아도 여기 서서 돼지 잡는 걸 볼 생각이 없었다. 전생부터 이어진 습관이 있었다. 예를 들면 피를 보는 게 싫은 것.
“이 장원, 참 좋군. 정리가 참 잘 되어 있어. 저쪽은 뭡니까?”
영원은 구경하며 걸어가면서 내내 칭찬했다. 영원이 가리킨 쪽은 장원을 에워싸고 흐르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맑은 강물과 이어진 작은 연못이었다.
“외할머니의 생각이었어요.”
이동은 작은 연못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참 이상하지. 아주 옛일이 갈수록 또렷해졌다. 예를 들면 외할머니 기억이 그랬다.
“외할머니는 거의 평생을 강남에서 사셨어요. 생선은 청증(淸蒸: 조미료를 넣지 않은 찜, 맑은 찜)이 최고라고 여기셨죠. 찜 외에 다른 방법은 다 생선을 망치는 거라고요. 새우도 창하(熗蝦: 삶거나 데친 새우. 간장 등 조미료로 버무려서 먹는 음식)를 제일 좋아하셨어요. 살짝 데친 걸 좋아하셨어요. 소서(小暑: 양력 7월 7일 경)엔 반드시 황선(黃鱔: 드렁허리. 논장어)을 드셨어요. 소서에 먹는 황선은 삼보다 더 좋다는 말씀도 꼭 하시고요. 어렸을 때, 외할머니는 내가 안 됐다고 늘 푸념하셨어요. 가련한 동저아야, 남쪽의 활어와 신선한 새우를 먹지 못하는구나, 경성의 비린내 나는 생선과 새우를 좋은 물건으로 여기다니, 쯧쯧, 하시면서요.”
이동은 푸념하는 외할머니 흉내를 내며 이야기했고 영원은 고개를 틀고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이 장원 안, 이 햇살 아래 서 있는 이동은 방 안 촛불 아래 있는 그녀와 비교하면 활기찬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등불 아래 미인이라는 말은, 다 헛소리였다.
“나중에 외할머니가 저 강을 발견했어요. 저 강은 저쪽 산에서 시작돼요. 샘물에서 솟아 나온 물이 장원을 둘러서 사하(沙河)로 흘러가죠. 사하는 또 변하로 흘러가고요. 외할머니가 이 강은 산샘에서 나온 물이라서 강에 사는 물고기, 새우 모두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고, 강남의 물고기, 새우와 비교할 순 없어도 비슷은 하다고요. 8년 정도 시간 들여서 저 강 근처의 밭을 속속 사들였죠. 그리고 장원을 수리해서 저 연못을 팠어요. 그리고 양쪽에 그물을 쳤죠. 물은 연못에서 저쪽으로 흘러가고 저쪽에서도 연못으로 들어와요. 물은 움직이지만 물고기와 새우는 나가지 못하죠. 강물과 연못은 거의 해마다 진흙을 정리해서 이 연못에서 나는 물고기와 새우는 비린내가 거의 나지 않아요.”
이동은 영원과 천천히 연못가로 다가가서 연못과 강물을 잇는 돌다리를 가리켰다.
“그물은 바로 저 다리 아래에 있어요.”
영원이 혀를 내둘렀다.
“참 격식을 따지는 분이군요. 경성에 오는 길에 황하잉어(※잉어의 비늘이 금빛으로 빛나고, 각 지느러미 끝부분은 선홍색이며, 등줄기에 살이 두껍고, 내장과 뼈가 작으며, 육질이 연하며, 향이 좋은 것으로 유명) 청증을 먹은 적 있는데, 다들 좋다고만 하는데 나는 그저 그랬습니다. 가시가 많고 맛도 별로고.”
“황하잉어는 찌기 전에 기름을 둘러요. 그건 청증이 아니에요.”
이동이 손짓하자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리에 올랐다.
“양절에서 말하는 청증은 생선 비늘을 깨끗이 긁고 생선 아래 파와 생강을 깐 다음에 물을 끓여서 찌는 거예요. 반각 정도만 찌면 돼요. 불에서 내린 다음에 전분물을 뿌리고요. 외할머니는 그 전분물도 느끼해서 싫다고 하셨어요. 간장 위주의 조미료를 살짝 뿌리기만 했죠. 신선하고 연해서 맛있어요.”
“사람을 불러 물고기 잡읍시다! 넉넉하게 찝시다.”
행동파인 영원은 바로 손을 치켜들고 사람을 부르려 했다. 이동이 얼른 그를 말렸다.
“칠야까지 나설 것 없어요. 진작 준비했어요. 그나저나 칠야는 살저채 먹겠다면서요.”
“살저채도 먹고, 이것도 먹어야지요. 준비가 다 됐겠군. 슬슬 가 봅시다. 살저채 중에 다른 건 몰라도 혈장은 꼭 먹어 봐야 합니다.”
두 사람은 호수 반대쪽에서 장원 입구로 돌아갔다.
“사실 살저채는 떠들썩한 재미에 먹는 요리입니다. 북부는 춥고 고생스러운 곳이라, 명절이나 전쟁에 이겼을 때 돼지를 잡아 살저채를 먹습니다. 돼지 피로 혈장을 만들고, 돼지머리는 졸여내고 살코기는 크게 썰어서 찌고. 아주 떠들썩하답니다.”
영원의 목소리에 은근히 그리운 기색이 느껴졌다. 이동은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고향이 그리워요?”
“조금. 하지만 다 그리운 건 아닙니다. 북부에 그리운 점도 있지만, 생각만 해도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점도 있거든요. 경성도 마찬가집니다. 죽어도 떠나기 싫은 사람과 물건도 있고, 떠나고 나면 다시 떠올리기 싫은 것도 있고.”
영원의 말에 깊은 속뜻이 있었다. 이동은 문득 슬픈 느낌이 들었다. 그 큰일이 끝나면 경성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던 걸 기억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이동은 고개를 숙였다. 아마 그날이 곧 다가오리라.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날이…….
“……경성에 머무르기로 생각을 끝냈습니다.”
순간, 이동은 갑작스러운 영원의 선포를 이해하지 못했다.
“응? 궁 안에 그 일이 끝나면 경성을 떠나서 다신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내가?”
영원은 놀라고 의아한 표정이었다.
“낭자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상 분명 내가 이야기했겠지. 내가 왜 그렇게 이야기했지?”
이동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여 승상하고 이야기했다면서요. 외척이 집권하는 걸 피하려고 큰일이 끝난 후에 바로 경성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고 했다고요. 영씨 가문 사람도 다시는 경성에 오지 않을 거라고.”
“아!”
영원은 큰 깨달음을 얻은 듯 쉴 새 없이 이마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