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화: 감독하다
“노루가 저렇게 크겠어요?”
탕 오낭자는 풀이 팍 죽은 묵칠을 눈빛을 빛내며 바라봤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장원 안인데 사냥하면 어떡해요. 대교 말이 맞아요. 이건 물어주고 사과해서 될 일이 아니랍니다. 사람이 다치면 어쩔 건가요?”
이동이 얼굴을 구기며 말하자 묵칠은 재빨리 영원을 바라봤다. 그러게 이런 방법으로는 안 된다니까요. 봐요. 화를 돋웠잖습니까!
“저와 소칠이 느닷없는 짓을 했습니다. 대낭자, 질타하셔도 됩니다. 벌을 주세요.”
영원이 공손하게 장읍한 채 숙이고 있자, 묵칠이 눈을 부릅뜨다가 곧 따라서 장읍한 채 숙이고 있었다.
“두 분 모두 진심으로 반성한다니, 그럼 우리 장원 앞뒤를 깨끗이 청소하세요.”
이동이 가차 없이 말했다. 작은 규모가 아니었고, 앞뒤를 깨끗이 청소하면 저녁까지 해야 한다. 그럼 저녁까지 자연스럽게 남게 된다.
“안심하세요, 대낭자. 나랑 소칠이 반드시 장원을 깨끗하게 청소하겠습니다. 장원 청소뿐만 아니라, 저 돼지도 깔끔히 처리하겠습니다. 점심때 나와 소칠이 두 분 낭자에게 제대로 대접하겠습니다. 마늘을 곁들인 수육에, 혈장, 거기에 돼지 다리 구이도요.”
영원이 매우 재빠르게 대답했다. 탕 오낭자는 놀랐는지 들떴는지 입을 가리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을 바라봤다.
경성, 정말 너무 재미있는 곳이잖아!
“빗자루 어디에 있습니까?”
대교가 장두에게 물었다. 장두는 대답하지 않고 팔짱을 낀 채 제자리에서 서성였다. 그는 장두였고, 또 이렇게 상전이 자주 들르는 장원의 장두라서 그만한 식견은 있었다. 두 칠야가 무슨 신분인지 당연히 알았다. 알면서 황후마마의 친아우와 수상 나리의 대단한 손자에게 빗자루를 들려서 땅을 쓸게 하면, 그러고도 살아남을까?
대교가 목소리를 높여 다시 물었다.
“조 장두! 빗자루 어디에 있냐고요!”
장두는 대교를 탁 쳐내고 이동에게 다가갔다. 이동에게 말해 보려는데 이동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벌써 달려온 만 어멈을 바라봤다.
“잘 쓸리는 빗자루 두 자루 골라서 두 분께 드려.”
만 어멈은 묵칠을 힐끔 보고는 영원을 위아래로 훑은 다음 뒤에 서 있는 장두 처를 향해 손짓하며 분부했다.
“서두르게. 잘 쓸리는 빗자루 두 자루 가져 오게.”
장두가 다시 나서려는데 대교가 덥석 잡아당겼다.
“얼른 적당한 곳을 골라 말을 묶어요. 1년 고생해서 이제 곧 수확인데 농작물 망치지 말고요.”
장두 처가 영원과 묵칠에게 큰 빗자루를 쥐여주자 이동이 그녀에게 분부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쓸면 되는지 알려주고, 자네가 먼저 시범 보이고 어떻게 쓸면 되는지 알려주게.”
장두 처가 아이고, 하며 대답하고는 돌아서서 안으로 달려가려 하자, 만 어멈이 잡아끌었다.
“어떻게 쓸면 되는지 알려주라니까, 어딜 가는 건가.”
“빗자루 가져와야지요.”
장두 처의 대답에 영원이 피식 웃었다.
“여기 있지 않나. 평소에 하는 대로 시범 보이면 될걸. 빗자루는 뭐 하러 또 가지러 가나.”
장두 처는 방실방실 미소 띠며 영원을 향해 힘껏 예를 갖추고는 뻣뻣한 동작으로 빗자루를 받아들었다. 어색하게 몇 번 쓱쓱 바닥을 쓸어 보인 것만으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됐어.”
이동은 웃음이 날 것도 같고 화도 났다. 됐다는 말에 장두 처는 큰 사면을 받은 듯이 두 손으로 빗자루를 다시 영원에게 돌려주었다. 그녀가 뒷걸음질 한 번 할 때마다 무릎을 구부려 예를 갖추고 있자, 만 어멈이 다가가 잡아끌고 돌아갔다.
영원은 목을 길게 빼고 좌로 보고 우로 보고는 묵칠을 잡아당겼다.
“이것 좀 봐라. 이 장원, 꽤 넓다.”
“이제야 알았어?!”
묵칠이 불퉁스럽게 고함쳤다. 오늘부터 신붓감 찾는 일을 도와주겠다고 분명 말해놓고. 신붓감 선본다더니, 어쩌다가 장원 청소하게 되었을까.
“아까부터 알았다. 그러기에 누가 멀쩡히 남의 집 돼지를 쏴 죽이라고 했느냐?”
“그건 형님이…….”
“됐다, 됐어. 네 탓을 한 건 아니다.”
영원이 묵칠의 변명을 무질렀다.
“이렇게 하자. 양쪽으로 나눠서, 내가 여기부터 쓸 테니 저는 저쪽부터 쓸어라. 그렇게 해야 빠르다.”
“알았어.”
묵칠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이 뙤약볕에 장원을 쓸다니. 이 나이 되도록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장두가 말을 정리하고 사람 몇 불러서 영원과 묵칠의 종복, 사환이 차를 마시고 쉴 곳을 마련해준 다음에 얼른 다시 돌아와 보니 영원과 묵칠이 한 사람은 동쪽, 한 사람은 서쪽으로, 정말로 바닥을 쓸고 있었다.
장두는 다급해서 발을 구르며 좌우를 보다가, 옆에서 구경하는 사내아이 둘을 손짓해서 불렀다.
“너희 둘, 얼른 가서 빗자루를 받아라. 저 귀한 나리 두 분이 정말로 빗자루를 들고 땅을 쓸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숙부, 대낭자가 절대로 도와주면 안 된다고 분부하셨습니다. 도와주는 사람은 장을 친다고 하셨어요. 전 못합니다.”
간도 크고 패기도 있을 나이의 아이들이었다. 구경거리가 있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장두는 기가 차서 빙빙 돌 지경이었다.
“그래, 그래. 요 녀석들. 두고 봐라. 너, 가서 네 숙모를 불러와라! 어서!”
사내아이들은 한숨을 내쉬고는 돌아서서 달려갔다.
장두는 빗자루를 위풍당당하게 휘두르는 영원과 벌써 지친 듯한 묵칠을 번갈아 보다가 묵칠 쪽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칠소야, 소인이 쓸겠습니다. 칠소야는 옆에서 보기만 하세요. 우리 대낭자도 그냥 하시는 말씀이지, 정말로 이 귀한 분에게 청소시킬 리가 있겠습니까. 칠소야, 신경 쓰지 마세요.”
묵칠은 주저하다가 빗자루를 장두에게 건네주었다. 영원은 빗자루를 높이 치켜들고 고개를 비틀어 두 사람을 바라봤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쓰는 장두와 장두 곁에 서서 팔을 돌리는 묵칠을 보고는 빙그레 웃음 지었다.
이동과 탕 오낭자는 장원 입구에 있는 초막(草幕)으로 들어갔다. 이동은 자리에 앉고 탕 오낭자는 초막 아래에 서서 까치발을 들고 저쪽을 내다봤다. 이곳에선 바닥을 쓰는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잖아!
사내아이가 바람처럼 달려 들어와서 몇 걸음 앞에 있는 장두 처를 향해 고함쳤다.
“숙모! 숙부가 오랍니다. 귀한 분 바닥 쓰는 거 도와주래요!”
만 어멈이 눈을 흘겼다. 저 녀석, 일부러 저렇게 말하는 것이지!
“제가 가 보겠습니다.”
만 어멈이 먼저 말하자 이동이 고개를 저었다.
“자넨 가노인데 그 두 사람이 신경이나 쓰겠어?”
“그럼 나는? 내가 가 볼까요?”
탕 오낭자가 용감하게 자진해서 나섰다. 만 어멈은 담담하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래도 고작 열몇 살 어린 낭자라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군.
“그것도 좋지.”
이동이 눈살을 찌푸리고 조용히 생각하다가 만 어멈에게 분부했다.
“어멈, 녹매랑 애들 몇 명 데리고 가. 큰 양산이랑 의자, 탁자를 가지고 가. 일각마다 차와 간식을 내가고.”
이어서 탕 오낭자가 데리고 온 관사 어멈에게 분부했다.
“만 어멈과 녹매가 오낭자를 시중들면 되니까, 자네는 다들 데리고 오낭자의 기거를 살피게. 만 어멈과 녹매 모두 내 곁에 오래 있던 노련한 사람이니까, 어멈처럼 마음에 쏙 들게 시중들진 못해도 그래도 믿음직하고 최선을 다할 걸세. 그 점은 다 갖췄으니까 안심하고.”
어멈은 연신 가당치 않다고 대답했다.
“대낭자도 참 무슨 그런 말씀을. 이 늙은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만 어멈은 태태를 모셨던 분인데, 그런 분도 마음이 안 놓인다면 이 세상에 마음 놓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이 오기 전에 상 대내내가 가서 모든 걸 이가 대낭자의 뜻을 따르라고 분부했었다. 그녀는 상 대내내의 심복 어멈이었다. 무슨 일인지 상 대내내가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의중을 대충 짐작했다. 아까부터 지금까지 지켜보면서 더더욱 감을 잡았다. 그러니 이동이 분부하는 대로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어멈이 사람들을 데리고 물러가자 이동은 이어서 탕 오낭자에게 당부했다.
“멀리서 보기만 하면 돼. 한여름 뙤약볕은 아니라지만, 오래 쬐면 안 돼. 그리고 먼지가 많이 날릴 테니 너무 가까이 가지 말고. 멀리서 차 마시고 간식 먹으면서 지켜보다가, 게으름 피우면 사람을 보내 내게 알리기만 하면 돼.”
탕 오낭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영 칠야와 묵 칠소야는 떨어져 있으니까 넌 묵 칠소야 쪽을 지켜보면 돼. 영 칠야 쪽엔 내가 알아서 사람을 보낼게.”
이동이 다시 분부하자 탕 오낭자는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만 어멈과 녹매가 눈빛을 주고받았다.
영 칠야 쪽은 낭자가 직접 보고 있을 수밖에 없겠네!
만 어멈과 녹매 등 모든 시녀, 어멈이 탕 오낭자와 오낭자의 시녀를 중간에 에워싸고 영원과 묵칠이 바닥을 쓸기 시작한 곳으로 도착했다. 녹매가 탕 오낭자에게 눈짓하자 다들 묵칠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커다란 녹나무 쪽으로 다가가서 큰 양산을 펼치고 탁자, 의자를 놓았다.
만 어멈은 자리를 떠서 장두와 묵칠 곁으로 다가갔다. 얼른 장두 손에서 빗자루를 뺏으려는 묵칠은 쳐다보지도 않고 굳은 얼굴로 장두에게 말했다.
“대낭자가 벌 받으러 오라고 하시네.”
장두는 앓는 표정을 지으며 빗자루를 쥔 채 묵칠을 바라봤다. 묵칠은 후다닥 빗자루를 빼앗고서는 만 어멈을 향해 웃음 지었다.
“어멈이 말 좀 잘해주게. 장두 탓이 아니네. 내가…….”
“감사합니다, 칠소야. 하지만 우리 저택엔 우리 저택의 법도가 있습니다. 어서 청소하세요. 대낭자 말씀이, 저 녹나무 앞까지 쓸어야 점심 식사할 수 있답니다.”
만 어멈은 봐줄 여지 하나 없이 뚱한 표정이었다. 묵칠은 목을 움츠렸다. 이 어멈은 할머님을 모시는 어멈과 마찬가지군. 차라리 할머님은 말이 통하는데 어멈들은 안 통해!
장두가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가자 묵칠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가 한마디 덧붙였다.
“어멈, 잘 좀 말해주게!”
만 어멈은 상대하지 않았다. 장두와 함께 돌아가지도 않고 손수건을 휘두르며 녹나무 아래로 향했다.
묵칠은 빗자루를 들고 몇 번 바닥을 쓸고는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스며 나왔다. 빗자루질을 멈추고 영원을 돌아봤더니 영원은 날 듯이 빗자루를 휘두르며 벌써 저 멀리까지 쓸고 있었다. 곧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것 같았다.
묵칠은 이가 시릴 때처럼 씁씁거리다가 갑자기 좋은 수가 떠올렸다. 저런 속도라면 곧 이쪽까지 쓸고 오겠어. 천천히 쓸면서 형님이 오길 기다리면 되겠는걸?
묵칠은 순간 즐거워져서 빗자루를 들고 좌로 기울이고 우로 기울이고, 천천히 비질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꿈틀, 또 꿈틀거렸다.
탕 오낭자는 엉덩이를 아주 조금만 의자에 걸치고 상반신과 목을 쭉 빼고 묵칠 쪽을 바라봤다.
그럴싸하게 비질하는 묵칠의 모습에 연신 감탄이 나왔다.
“묵가는 가풍이 훌륭하다더니 정말이었네. 저렇게 열심히 바닥을 쓸잖아. 정말 보기 드문 일이네.”
탕 오낭자의 시녀 문희가 쉴 새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그러니까요. 우리 대소야는 비질은 말할 것도 없고 먹도 직접 간 적 없는걸요.”
“그건 다르지. 이건 벌 받는 거니까.”
탕 오낭자 눈에 자기 오라버니는 완벽할 정도로 훌륭한 사내였다. 문희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요, 그러니까요. 대소야가 벌 받을 일이 생기면 분명 칠소야처럼 이렇게 열심히 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