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85화 (385/463)

385화: 적절한 준비

궁에서 나온 두 행수는 정북후부로 직행하다가 순간 깨달은 것이 있는 듯이 묵 승상부로 방향을 틀었다. 묵 칠야가 저택에 없는 걸 듣고 연향루로 돌아가서 보따리를 내려놓은 다음 이번엔 바로 정북후부로 달려갔다. 영 칠야도 없었다. 두 행수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지척지척 연향루로 돌아갔다.

영원과 묵칠, 주육은 세견을 데리고 사냥하러 나갔다. 영원은 선두에서 단숨에 몇십 리를 달려 이동이 말한 장원과 그리 멀지 않은 곳까지 내달려 바람같이 장원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방향을 틀어 근처에 있는 묵칠 모친의 배가 장원으로 달려가 점심을 먹은 후에 경성으로 돌아왔다.

정북후부로 돌아오자 유월이 아라의 일을 보고했다. 수국공부 조 노부인이 사람을 시켜 아라를 데리고 가서 수국공부 측문으로 들어가서 후문으로 나와서 궁으로 들어간 일, 반 시진 뒤에 아라가 어린 낭자 무리와 함께 위리안치된 대황자부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영원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다급하게 물었다.

“고서강 쪽은 움직임이 있느냐”

“마침 고하려던 참입니다. 고 사사가 저택에 돌아간 후에 태의 서너 명이 저택으로 들어갔습니다. 황상께서 친히 보낸 사람이랍니다. 상 태감도 고가 저택에 들렀고, 복안 장공주 대시녀 녹운도 들렀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태자가 미복하고 고가 저택으로 들어갔습니다.”

영원이 살며시 숨을 내쉬었다. 태자가 친히 고가 저택에 갔다니. 그럼 그 일은 설마 고육지책이었나? 하나는 충신이라는 명성을 얻고, 또 하나는 간언을 받아들인다는 명성을 얻고?

복안 장공주도 사람을 보냈다니, 태자를 위해 뒤처리해 줄 생각인가.

휴, 같은 임씨라는 사실이 모든 걸 이기는군.

“아라가 대황자부에 들어갔다니, 당분간 안에 있으라고 해라. 괜히 밖에서 일 일으키지 말고. 고서강 쪽은 계속해서 지켜봐라. 난 내일 아침에 성 밖으로 나간다. 하루 묵고 모레 저녁에 돌아온다.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이상 방해하지 말아라.”

영원의 분부에 유월은 재빨리 대답했다. 몹시 의문이었다. 무슨 큰일을 하시려고? 이런 분부는 좀처럼 없는 일이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이동의 초대를 받은 탕 오낭자가 이가 대문 앞에 도착했다. 이동이 나오자 탕 오낭자가 휘장을 젖히고 겸연쩍은 얼굴로 같은 마차로 가면 안 되는지 물었다. 아니면 가는 내내 너무 심심하다고, 이야기 나누면서 가면 좋겠다고.

이동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이야기하며 근심과 울적한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신이 나서 이동의 마차에 오른 탕 오낭자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칭찬부터 했다. 이동은 어이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골목을 벗어난 마차가 벌써 사람이 오가는 큰 거리를 지나쳤다. 탕 오낭자는 휘장 틈으로 번화한 거리 풍경을 구경했다.

“언니, 난 경성이 참 좋아요. 태원부는 명절 때도 이렇게 떠들썩하지 않아요. 그리고 경성엔 없는 게 없어요. 뭐, 내가 부족한 게 있어서는 아니고요. 나는 경성의 떠들썩함이 좋은 게 아니라 경성의 법도가 좋아요!”

경성 법도 이야기가 나오자 탕 오낭자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주가 팔 언니가 그러는데, 작년 상원절에 십일낭이랑 여기저기 영 칠야를 찾아다녔대요. 그런데 아쉽게도 못 만났대요. 주가 언니 말이, 만났으면 방생지에 등 구경 데리고 가달라고 할 생각이었대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내가 그러니까 주가 언니가 배꼽 잡고 웃었어요. 언니, 상원절엔 정말 그래도 돼요?”

“영 칠야?”

이동은 올해 상원절에 영원과 줄곧 같이 있었던 걸 떠올렸다.

“그래. 상원절은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날이야. 상원절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다 같이 모여서 그런 이야기할 때가 많아. 지금도 성 안에 금명지, 방생지 일대에 경치가 좋은 때고, 성 밖의 절경은 더 많아. 공자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경치 구경하러 편안하게 가도 돼. 갔다가 혹시 마주치면 인사하고 몇 마디 나누고 같이 구경해도 되고. 흔한 일이야. 다만 공자들이 기녀를 데리고 있을 때는 피해 줘야 하지.”

이동은 탕 오낭자의 물음에 잘 됐다 싶어서 경성 분위기를 설명해주었다. 미리 이야기해두면 이따 영원과 묵 칠소야를 만나도 놀라지 않을 테니까.

탕 오낭자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럼, 언니, 내가 이런 이야기 한다고 웃지 말아요.”

“웃지 않을 테니 말해봐.”

이동이 생긋 미소 지었다.

“주가 언니가 그러는데, 주가 언니의 혼사는 자기가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고를 수 있대요. 그렇게 하기로 언니 어머니와 약속했대요. 얼굴만 보는 게 아니라 꼭 이야기도 해 볼 거래요. 정말로 그럴 수 있어요?”

탕 오낭자는 조금 긴장한 듯 이동을 바라봤다.

“그건 가문에 따라 달라. 주 팔낭자 부모님은 모두 자식을 매우 아끼는 분이라서, 너무 큰 문제만 없으면 주 팔낭자 뜻대로 해주실 거야. 주가뿐만 아니라, 초가 삼낭자, 해가 두 낭자, 그리고 조 시랑 댁도 비슷해.”

탕 오낭자는 표정이 밝아져서 무언가 말하려다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언니, 난 경성이 너무 좋아요!”

이동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가 장원은 경성과 그리 멀지 않았고 평탄한 역로(驛路)로 이어져서 대교가 수시로 채찍을 휘두르는 가운데 안정적이고 빠르게 달린 마차는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가 되어 장원에 도착했다.

장원까지 1리 정도 남았을 때 이동은 수시로 휘장을 젖히고 밖을 내다봤다. 영원이 그녀가 언제 도착하든 그보다 먼저 와 있을 거라고, 그리고 반드시 모든 걸 완벽하게 준비해두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오는 내내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동이 휘장을 걷고 밖을 내다보자 탕 오낭자는 아예 창문을 열고 밖의 경치와 행인을 구경했다. 늦봄, 초여름의 따듯한 바람이 불고 잎이 푸른 시기에 꽃도 어여쁘게 피었다. 탕 오낭자가 한쪽 얼굴을 다 내밀고 구경하는 걸 보고 이동이 웃으며 살짝 잡아당겼다.

“내가 또 체신 없이 굴었네요. 어머니가 자주 잔소리하시는데…….”

탕 오낭자가 머쓱한 듯 혀를 날름하며 잘못했다고 말하려는데 이동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체신 없이 굴었다는 게 아니라, 얼굴에 먼지 뒤집어쓸까 봐 그런 거야.”

이동이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마차 곁을 지나치는 말들을 가리켰다. 탕 오낭자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전혀 몰랐어요. 얼굴뿐만 아니라 머리카락도 다 먼지를 뒤집어썼네.”

마차가 장원 안으로 들어가고 이동과 탕 오낭자가 마차에서 내리자 장두가 모두를 거느리고 나와서 멀리서 고개를 조아리고는 곧 일하러 갔다. 먼저 와 있던 만 어멈이 장두 처를 비롯한 아낙들을 데리고 나와 인사하고는 모두를 지휘해서 물건을 내리고 옮겼다.

“들어가서 차 마시고 잠시 쉴까, 아니면 구경부터 할래?”

이동이 주변을 둘러보는 탕 오낭자를 돌아보며 물었다.

탕 오낭자는 망설여지는 모양이었다. 조금도 피곤하지 않아서 먼저 둘러보고 싶지만…….

“난 장원에 올 때마다 먼저 구경부터 하고 들어가서 밥 먹고 차 마셔. 그리고 낮잠도 자고.”

탕 오낭자가 갈등하며 망설이는 것 같자 이동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구경부터 해요! 하나도 피곤하지 않아요! 멀지도 않았고, 언니네 마차는 편해서 잠깐 자고 일어난 것 같고 하나도 힘들지 않아! 언니, 경성 장원에 오는 건 처음이에요. 저거 밭이에요? 산이 푸른 것 좀 봐요. 언니, 경성 참 좋아요. 겨울에도 어딜 둘러봐도 다 푸르르고. 봄에는 더 푸르르고. 낡은 솜옷을 벗고 석류색 치마로 갈아입은 미인 같아. 보기만 해도 마음이 간질간질해.”

탕 오낭자는 쉴 새 없이 재잘재잘하는데 이동은 마음이 좀 붕 떠 있었다. 영원이 자기보다 먼저 도착해서 모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겠다고 한 이상 분명히 모든 준비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 있는 걸까?

이동은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니겠지?

그 생각이 들자마자 가슴이 철렁했다. 해가 바뀐 이래, 경성은 겉으로 보기에 파동 없이 평온해 보여도 사실 암류가 요동치고 있었다. 위기가 얼마나 많이 숨어있을지 모른다. 설마 정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그 생각이 들자마자 저주에 걸린 듯이 마음이 계속해서 요동쳤다. 초조함을 감출 수 없을 정도였다.

안 되겠어. 얼른 성으로 사람을 보내 이야에게 알아봐야겠어.

위기를 의식한 순간,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이동이 걸음을 멈추고 녹매를 불러 분부하려는데 저쪽 도화림에서 놀라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이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명엽, 어서 가 봐!”

녹매가 이동과 탕 오낭자 앞을 가로막으며 명엽에게 분부하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천자의 발치, 밝은 대낮이에요. 아무런 일도 없을 거예요!”

탕 오낭자는 감탄한 얼굴로 녹매를 바라봤다. 그녀에겐 이렇게 뛰어난 시녀가 없었다.

명엽은 빠른 걸음, 민첩한 동작이 장점으로, 역시나 재빠르게 달려갔다가 재빠르게 돌아왔다. 단숨에 이동과 탕 오낭자 앞으로 돌아온 명엽은 팔을 뻗어 저 뒤를 가리키고는 헉헉대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큰일 났어요! 영 칠야가 우리 돼지를 쏘아 죽였어요! 도둑인 줄 알았대요!”

이동은 얼떨떨해하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준비라는 게 이런 거였어?

탕 오낭자는 아연실색해서 웃느라 말도 제대로 못 했다.

“도둑? 돼지를? 대체 누가 도둑이야?”

“가 보자.”

이동은 못 말린다는 표정이었다. 좀 그럴싸한 이유를 찾으면 안 돼요?

“응, 응!”

탕 오낭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잰걸음으로 사건 현장을 향해 달려갔다. 돼지를 도둑인 줄 알다니. 너무 재미있는 일이었다.

두 사람이 도화림을 가로질러 도착했을 때, 대교가 팔을 펼치고 묵칠을 가로막고 있었다. 장두는 펄쩍펄쩍 뛰며 대교를 잡아당기고 영원은 묵칠을 향해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이동은 다가가기 전에 목소리부터 높여 물었다. 대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지 장두를 뿌리치며 큰소리로 고함쳤다.

“낭자 오셨습니까. 잡아당기지 말아요. 이게 돈만 물어 주면 될 일인지, 낭자에게 여쭤봐요. 여기가 장원이지 들도 아닌데 여기서 사냥하면 어떡합니까?”

“아이고! 끝장났다!”

영원은 고개를 돌리다가 이동을 보고는 정말 끝장났다는 표정으로 묵칠을 대뜸 잡았다.

“저게 누군지 보아라. 아이고, 재수 없기는. 보아하니 여기가 이가 장원인가보다. 소칠 너 그게 무슨 눈빛이냐? 이렇게 큰 사고를 쳐놓고!”

묵칠은 억울해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칠 형님, 분명 칠 형님이…….”

“됐다. 변명은 아무런 소용 없다. 주인이 왔잖느냐. 서둘러라 서둘러. 내가 같이 가주마. 어서 사과하고 잘못을 제대로 빌어라.”

영원은 묵칠을 잡아끌고 앞으로 다가왔다. 가장 먼저 탕 오낭자를 발견한 묵칠은 어째서인지 몰라도 이번엔 절대로 억울하게 뒤집어쓰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 때문이 아니라고 제대로 해명해야겠다!

“칠 형님, 분명 형님이…….”

묵칠은 제대로 설명하려고 버둥거렸다. 그런데 막 입을 떼자마자 영원이 다시 입을 막았다.

“아까 올 때 뭐라고 했느냐? 잘 들어라. 성심성의껏 사과해라. 도와주지 않는다고 내 탓하지 마라.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나 이만 갈까?”

묵칠이 울상을 지었다.

“알았다, 알았어! 잡아당기지 마! 꼴사납잖아. 내가 알아서 간다니까.”

영원이 힘을 풀자 묵칠은 옷자락을 당기고 옷을 툭툭 턴 다음에 앞으로 나가다가 무의식적으로 영원을 돌아봤다. 영원은 뒤따라가면서 한숨을 내쉬고는 앞으로 가라고 손짓했다.

“대낭자, 오낭자. 내가…….”

묵칠이 억울한 얼굴로 깊이 장읍하는데, 영원이 묵칠의 말을 이었다.

“소칠이 보는 눈이 없어서, 저 돼지를 보더니 한사코 노루라고 우기면서 활을 쏘아서 말이지요. 그게 또 얼마나 정확하던지요.”

영원이 저쪽에 죽은 돼지를 돌아보며 가리키자, 묵칠은 영원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팔자라는 듯 고개를 숙였다.

분명 자기가 멧돼지라고 했으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