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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383화 (383/463)

383화: 며칠 뒤엔 생긴다

너무나 이상한 느낌을 풍기는 그 노승을 강환장이 만났을까? 그렇다면 모든 것이 다시 예전과 똑같이 흘러갈까?

이동은 온몸이 꽁꽁 묶인 것처럼 괴로워서 숨도 쉬어지지 않았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일이 그녀는 망연하기만 한데, 강환장은 아닌 듯했다. 죽음이 임박했던 그때, 주위에 놀란 고함이 들리고 고 이낭이 나타났던 것 같다. 고 이낭이 미친 듯이 뛰어 들어오려고 했었다. 언제나 신선처럼 느긋하던 그 얼굴이 공포로 뒤틀려 있었다. 그런 얼굴로 ‘부인, 어떻게 해요? 부인,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하고 외쳤던 걸 똑똑히 들었었다.

환각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어쩌면 환각이 아니라 실제로 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죽기 전에 강가에 큰 어려움이 닥쳤던 것이다.

한 번은 강환장이 악몽을 꿨는지 ‘내 아들!’ 하고 외치며 깨어난 적이 있다고 추미가 말했었다. 그때 놀라서 피가 다 식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렇게까지 괴롭게 아들을 불렀다면, 아들이 죽은 것이겠지. 강환장은 모든 걸 알고 돌아온 것일까? 누가 그럴 재주가 있어서? 그 노승?

이동이 넋이 나간 듯하자 영원은 가슴이 파르르 떨렸다.

“어이! 어이! 어이! 들립니까? 안 들려요? 동……. 아이고!”

영원은 연달아 불러도 이동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더 두려워졌다. 손을 내밀어 이동 앞에서 흔들었다.

“이봐요, 낭자!”

이동이 재빨리 대답했다.

“괜찮아요. 괜찮아. 생각에 빠져서 그랬어요.”

영원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짐짓 이마를 훔쳤다.

“이 봐요, 낭자. 다음엔 이렇게 생각에 잠기기 전에 미리 말 좀 해주면 안 됩니까? 놀라서 죽을 뻔했습니다. 압니까? 당신 눈이, 이렇게, 멍하게……. 요즘 이상한 일이 많아서 간이 작아졌단 말입니다. 아이고, 가련한 내 심장아. 하마터면, 놀라서 죽을 뻔했습니다.”

“고작 이 정도로 당신이 놀란다고요?”

이동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강환장이 기연을 만난 것 같다고 했죠? 무슨 기연이요?”

“그건 말하자면 좀 깁니다. 우리 아버지가 젊었을 때, 지금 내 나이쯤 되었을 때인데 전쟁에서 돌아오는 길에 숨이 겨우 붙은 사람을 구해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고집이 보통이 아니라서 사람을 구해온 이상 반드시 살려야 한다고, 온 세상의 명의를 거의 다 불러왔습니다. 삼이니 녹용을 있는 대로 먹이고, 돈을 얼마나 썼는지 모릅니다. 결국 살려냈지요.”

영원은 이야기하면서 스르륵 내려가 뼈가 없는 사람처럼 의자에 널브러졌다. 이동은 꼿꼿이 앉아서 집중해서 들었다.

“내가 어렸을 때 소 사야는, 그 사람이 소 사야입니다. 소 사야 몸이 완전히 낫지 않아서 매일 침상에 누워있었어요. 산송장 같았지. 아버지 말고 누구도 만나지 않았어요. 짓궂은 어릴 때라, 몰래 숨어 들어갔었습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보려고요.

그랬더니 그 소 사야가 몸을 일으키더니 빤히 보는데, 조금 무서워져서 뭘 보냐고 고함쳤지요. 그랬더니 ‘생기(生機)’라고 딱 한마디 했습니다. 발음이 그랬는데 어떤 단어인지는 모르겠어요.”

영원이 양손을 배 위에 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말을 하는 걸 보고는 그렇게 무섭지 않아져서 다가가서 물었지요. 죽은 사람이냐, 산 사람이냐? 그랬더니 또 한마디, 죽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때 배를 잡고 웃었어요. 거짓말도 제대로 못하냐고, 죽은 사람이 어떻게 말하냐고 하면서요.”

“그 소 사야, 아직 살아 있나요?”

이동이 나직이 물었다.

“음. 그 후로 몸이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뜨락에서 움직이기도 하고. 그런데 뜨락 밖으론 나가지 않았어요. 낮엔 자고, 밤엔 별을 보고. 밤새 봤습니다. 흐린 날, 비 오는 날에도 별을 봤습니다. 영가의 운명을 점쳐주었지요. 문 이야가 말한 점쟁이와 달리 매우 명확히 말했습니다. 틀린 적이 없었고요.”

영원이 몸을 조금 일으켰다.

“큰누님의 괘를 봤는데, 서른여섯에 독으로 죽는다고 했습니다.”

이동은 입을 가리고 나지막이 소리쳤다. 예전에 영 황후의 향년이 서른여섯, 양 태후의 독주에 죽었다.

영원은 일부러 태연한 척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너무 놀랐습니다. 무서워하지 말아요. 뒷이야기도 있습니다. 나중에, 그러니까 작년에. 2월 말, 3월 초쯤 소 사야가 갑자기 입을 열었습니다. 누군가 운명을 바꿔서 천도가 변했다고요. 그러면서 아버지에게 마음먹은 게 있으면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나를 경성으로 보내라고. 천도가 정해지지 않았으니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러니까 당신 이야기는, 강환장이 그 사람이라는 건가요?”

이동의 목소리가 조금 가라앉았다. 강환장일까, 아니면 나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내 생각엔 그런 것 같습니다.”

영원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소식을 보냈더니 소 사야가 벌써 경성으로 출발했답니다.”

이동의 안색이 살짝 창백해졌다. 그 소 사야가 경성으로 온다. 그가 경성에 온 다음엔 일이 어떻게 될까?

“두려워하지 말아요. 강환장이 설령 운명을 바꾼다고 해도 나를 만났으니, 재수 옴 붙은 거지. 걱정하지 말아요. 그놈이 아무리 바꿔도 내가 다 다시 돌려놓을 겁니다!”

영원이 호언장담했다. 그 말을 하지 않을 땐 괜찮았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동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이동의 안색이 줄곧 돌아오지 않자 영원은 쉴 새 없이 그녀를 힐끔거렸다. 뭔가 말을 잘못했거나 잘못한 일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이 잘못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떻게 넌지시 떠볼지 궁리하고 있는데 이동이 일어섰다.

“피곤해요. 내일부턴 모레 장원에 갈 일을 준비해야 하고요. 그만 일어날게요, 칠야.”

“그렇지, 그렇지! 피곤하지. 나도 참. 이야기만 하면 정신을 잃는다니까. 푹 쉬어요.”

영원은 이번엔 단숨에 벌떡 일어나서 뒷걸음질 쳤다. 이동이 자기를 지나쳐서 상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돌아서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다가 또 멈칫하고는 다시 걸음을 내디뎌서 갈수록 빠른 걸음으로 곁채에서 나갔다. 그런 다음 걸음을 늦추고 평소처럼 느긋하게 회랑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수련이 상방에서 휘장을 걷고 나와서 성의 없이 예를 갖추고 매우 냉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모시고 나갈게요.”

“됐다, 됐다. 나는…… 자주 들락거리지 않으냐. 배웅할 것 없다.”

영원은 좀 답답한 마음으로 수련을 살폈다. 오늘 요 아이 태도가 별로였다. 내가 뭘 잘못해서 눈 밖에 난 거지? 내가 너희들 눈치를 얼마나 보는데!

수련은 말을 마치고 허리 숙여 보이고는 벌써 앞장서서 걸어갔다. 영원은 뒤를 따르면서 그녀가 이야기하길 기다리며 힐끔거렸다.

월동문 앞에 당도하자 수련이 걸음을 멈추고 얼굴을 굳히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칠야, 외람되지만 반드시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해라, 해라. 편안하게 해라.”

영원은 매우 겸허히 대답했다.

“칠야, 앞으로는 찾아오지 마세요. 매일 이렇게 새벽에 담을 넘어 다니는 걸 행여 누가 알게 되면 우리 낭자의 명성은 끝장납니다. 게다가 우리 낭자도 언젠간 혼인할 텐데, 칠야가 이렇게 드나들면 우리 고야가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영원은 하마터면 꽥 고함칠 뻔했다.

“너희 고야? 뭔 고야? 고야가 어디 있어서?”

“칠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수련이 눈을 부릅떴다. 무슨 말이 이래? 우리 낭자가 다시는 혼인하지 못한다는 거야?

“지금 고야가 없다고 앞으로도 없겠어요? 어쩌면 며칠 뒤에 바로 생길 수도 있죠! 흥!”

수련은 화가 나서 소매를 휘두르며 돌아갔다. 영원은 한참 동안 월동문 아래 넋을 놓고 있었다.

“아? 며칠 뒤에 바로 생겨?”

영원은 안으로 돌아가려고 뒤돌아서서 몇 걸음 걷다가 다시 급히 돌아섰다. 성큼성큼 월동문 밖으로 나가서 곧장 각문 앞으로 가서 문을 밀려다가 별안간 다시 돌아서서 몇 걸음 만에 월동문으로 돌아갔다.

월동문 앞에서 서서 후하후하, 숨을 고르면서 중얼중얼했다.

“진정해라. 진정해라. 태산이 무너져도…… 급할 때 결정하는 거 아니다. 일단 돌아가자!”

영원은 다시 돌아서서 각문 밖으로 뛰어나갔다.

주 귀비는 자식을 매우 아끼는 사람이었고, 대황자와 사황자는 어릴 때부터 울음만 터트려도 유모든 시녀가 후다닥 달려갔다. 바로 가지 않으면 큰 벌이 떨어졌다. 장성해서는 필요한 건 입만 열면 그만, 조금만 늦어도 난리가 났다. 수국공과 주 추밀부사는 그런 두 황자를 시중드는 데 이골 난 사람이고 성질을 잘 알아서, 하나는 태자에게 걷어차여 나온 뒤 저택으로 돌아가 물 한 모금 마시고는 바로 사람 고르는 일에 돌입했고, 또 하나는 태자의 분부를 받고 돌아오자마자 즉시 아라에게 사람을 보냈다.

아라가 연향루로 돌아가서 숨을 고른 뒤 떠들썩하게 구경한 걸 다다에게 제대로 이야기하기도 전에 데리러 온 사람이 아래층에 도착했다.

두 행수가 단숨에 올라가서 창백한 얼굴로 아라를 붙잡았다. 목소리가 다 변했다.

“또 어디에 다녀온 거냐? 또 무슨 사고를 치고 왔어? 무얼 하고 온 거냐?”

“아무것도 안 했어요. 행수 어르신, 왜 이러는 거예요?”

아라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두 행수를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바라봤다. 두 행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리 났다! 아직도 날 속여! 수국공부에서 사람이 왔다! 어르신의 명을 받고 너를 저택으로 들이러 왔다더라! 이 멍청한 것아. 넌 이제 죽었다!”

“수국공부요? 어르신이 날 저택으로 부르는 거지, 두들겨 패서 죽이는 것도 아닌데, 행수 어르신…….”

아라가 어리벙벙하게 말했다.

“이 멍청한 것아! 저택으로 데리고 간다는 건 핑계지! 네가 저택에 들어가야 손을 쓰지! 저택에 들어가면, 이 멍청한 것아. 그 큰 저택에서는 시녀, 첩을 죽이려고 작정하면 소리 소문도 없이 죽인다! 생각해 봐라. 뭐하러 널 저택에 들이겠느냐? 널 죽이려는 거다!”

두 행수가 비통하고 무기력하게 아라를 바라봤다.

“아.”

아라는 양손을 치켜들었다가 내려놓고 내려놓았다가 다시 치켜들었다.

“잠시만요. 생각 좀 할게요. 어르신, 말하지 말아요. 생각 좀 하게. 다다, 너도 이야기하지 마.”

“전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다다가 달달 떨면서 꿍얼거렸다.

“어쩌면 날 궁에 들여보내려는 건지도 몰라요. 저택에 들어갔다가 궁에 보내려고요!”

아라가 손을 휘저었다.

“조금 전에 육소야가 절 데리고 태자를 만났어요. 밤에 보러 오신댔어요. 나중엔……. 나왔죠. 어쩌면 궁으로 부르려는 건지도 몰라요. 행수 어르신,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요. 큰스님이 제 사주를 본 적 있는데, 복과 장수 모두 갖춘 사주랬어요. 복, 장수! 모두요!”

아라가 한 손가락을 치켜들고 두 행수의 얼굴에 바짝 가져다 댔다.

“태자를 만나?”

두 행수는 아라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쉬고 또 쉬고 또 쉬었다.

“아라야, 칠야가 뭐라고 분부하셨냐! 너 이게 대체……. 너…….”

“됐어요. 죽으러 가는 게 아니더라도, 입궁하면 죽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알아요. 다 내가 자초한 거죠. 칠야를 찾아갈까요?”

아라는 눈물을 훔치다가 또 희망이 피어났다.

“바로 데려간다고 저 밖에 있다. 칠야를 어떻게 찾아간단 말이냐? 설령 칠야가 너를 황후마마로 여기고 감싸고 싶어도, 칠야에게 날개가 있대도 늦었어! 이렇게 된 이상!”

두 행수는 옷자락을 당기면서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넌 기다려라. 내가 가서 무슨 일인지 떠보마.”

“올라오라고 해요! 같이 떠봐요.”

아라가 하는 말에 두 행수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것도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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