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82화 (382/463)

382화: 종잡을 수 없는 상황

“하긴 그래. 전에는 그래도 열흘, 보름에 한 번씩 오니까 괜찮았지. 그땐 또 성 밖에 살아서 사람도 별로 없었고. 이제 경성으로 옮겨 왔는데 너무 자주 들락거리셔. 행여 누가 알기라도 하면…….”

녹매도 근심되는 듯 말했다.

“내 말이. 매일 이렇게 새벽에 찾아오는 걸 누가 알기라도 하면 낭자의 명성이……. 낭자는 안 그래도 한 번 혼인한 몸이라 소문에 휘말리기 쉽다고! 대체 무슨 생각이래? 우리 낭자에게 마음이 있으면 정정당당하게 혼담을 넣어야지. 이게 뭐냐고!”

수련은 씩씩거렸고, 녹매는 화항에 앉아서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칠야와 우리 집안, 우리 낭자……. 난 감히 깊게 생각도 할 수 없더라. 그런데 낭자를 보면 어차피 재가할 생각이 없으신 것 같아.”

수련이 녹매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

“있잖아. 오늘 아침에 만 어멈과 손 어멈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 낭자에게 혼담 넣으려는 사람이 있대.”

“정말?”

녹매는 놀라서 물은 다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네. 우리 낭자에게 찾아와 혼담 넣는 사람 중에 제대로 된 사람을 찾기 힘들 거야. 내 보기엔 소유 언니 말이 맞아. 우리 낭자처럼 다 가진 사람이 뭐 하러 혼인을 위해서 혼인해. 사실…… 영 칠야는 우리 낭자에게 어울리긴 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아니야. 나는…….”

수련은 입을 다물었다. 영 칠야가 자기네 낭자에게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봐 두려웠다.

녹매가 눈동자를 굴리면서 입을 열었다.

“수련 언니, 아니면, 대체 무슨 생각인지 우리가 영 칠야를 떠볼까??”

“어떻게?”

수련의 눈이 반짝였다. 녹매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눈살을 찌푸린 채 생각했다.

“흠, 아니면 이따 언니가 영 칠야를 모시고 나갈 때 모르는 척하고……. 음, 이러는 게 좋겠다. 자연스럽게 나온 말인 것처럼, 우리 낭자가 혼인하고 나면 이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

수련은 얼굴에 주름이 지도록 고민에 빠졌다.

“자연스럽게 나온 말인 것처럼? 곁채에서 월동문까지 얼마나 걸린다고. 낭자에게 들릴 테니 나가자마자 말을 꺼낼 수도 없어. 두어 마디 하면 금세 월동문에 도착할걸. 내 생각엔 그냥 대놓고 말하는 게 좋겠어. 우리 낭자의 혼담이 오가니까, 명성을 해치지 않도록 다시는 오지 말라고.”

“그래도 되고!”

녹매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어차피 칠야도 투박한 사람이니까.

곁채 안, 영원은 상반신을 살짝 수그리고 눈살을 찌푸린 채 이동을 바라봤다. 이동은 탕 그릇을 들고 눈을 살짝 내리깐 채 조금 마시다가 그릇을 내려놓더니 영원을 향해 쓴웃음 지었다.

“괜찮다고 했잖아요. 그냥 한순간 생각이 많아져서 그래요.”

어제 꽃 연회가 끝나자마자 예전에 그녀 배방으로 강가에 함께 들어가서 연지 점포 두 곳을 담당했던 주 장궤의 부고를 들었다.

주 장궤가 성 밖에서 돌아오는데 길가 다포 앞에서 새총을 가지고 놀던 어린아이들이 쏜 돌이 마침 말 눈에 맞았고 놀란 말이 날뛰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진 주 장궤는 길가 물웅덩이에 놓인 큰 돌에 머리를 박고 머리가 깨져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전생 그때도 주 장궤는 어제, 같은 시각에 죽었다. 기별을 들은 시각까지 똑같았다.

그때는 고 이낭이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주 장궤의 부고를 들었었다. 그날 그녀는 따스한 봄볕 아래 앉아서 생사와 희비가 교차하는 두 소식을 들었다. 그때 느낀 허무함이 바로 어제처럼 생생했다.

모든 것이 다 변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다 변하길 바랐다. 혹은 많이 변할수록 좋았다. 이틀 전에, 특별히 사람을 보내 주 장궤에게 당부했다. 보름 동안 첫째, 술을 마시지 말 것, 둘째, 호숫가 심지어 우물 곁에도 가지 말 것.

지난번에 술에 취해서 다리를 건너다가 실족해서 빠져 죽었으니까.

그는 그녀의 당부를 따랐는데 결국 이번에도 죽었다.

이동은 거대한 공포에 휩싸였다. 수련과 아이들, 장공주, 어머니. 어느 것이 변하고 어느 것이 변하지 않는 걸까. 어쩌면 다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두려운 가운데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바로 불조 앞에 꿇어서 간곡하게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대체 뭐라고 빌어야 할지 정리되지 않았다.

“당신 모습을 보면 분명 괜찮지 않아. 나한테 말 못 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영원은 아예 의자를 앞으로 당기고는 이동을 올려다봤다.

“괜찮아요.”

이동은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영원은 또 바짝 다가가다가 거부감이 느껴지는 이동의 눈빛에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웃어 보였다.

“당신이 할 말 없으면 내가 하지. 중요한 일이 있어요.”

영원이 물러나자 이동은 안도하며 탕을 들고 다시 마시며 말하라는 듯 영원을 바라봤다.

“계 대랑에게 초 삼낭자, 해 삼낭자 일을 물어보라고 한 거,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까?”

영원이 말문을 떼자 이동이 간단하게 그날 일을 이야기했다.

“제 생각엔, 그저 어린 낭자들이 계 공자를 마음에 두고 시기하는 것 같아서, 우선 계 공자의 생각을 알아보려고 한 거예요. 두 사람 다 같은 마음이어야 진정한 좋은 짝이죠.”

“쯧쯧, 여자애들은 겉모습만 본다니까.”

“겉모습만 본다면 다들 칠야를 점찍었겠죠.”

이동이 하는 말에 영원은 신이 나서 눈썹을 까딱였다.

“낭자도 내가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거지? 적어도 계 대랑보다는 잘생겼다는 거지?”

이동이 희미하게 웃음 짓자 영원은 조금 안도하고 스스륵 내려가 조금 흐트러진 자세로 앉았다.

“그날 계 대랑을 떠보기도 전에 좋은 혼담을 발견했어요. 명가 삼낭자, 낭자도 알지요? 계 대랑과 천생배필 아닙니까? 가문도 걸맞고, 인품도 걸맞고, 모든 게 걸맞아요. 그야말로 천생연분이지. 사돈 맺지 않은 게 말이 안 될 정도지 않습니까!”

영원이 팔걸이를 두드리며 하는 말에 이동이 멈칫했다.

“그럼 묵가는요? 전 노부인은?”

“묵칠이야 당연히 좋아하지. 그날 묵칠도 그 자리에 있었거든요. 평소엔 묵칠하고 비교하면 돼지도 천재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리석은데, 이번 일에선 매우 똑똑하게 굴지 뭡니까. 명가와 계가를 이어주고 자기를 구해달라고 몇 번이나 부탁하더군요. 평생 술을 사겠다고.”

“그럼 어떻게 이어줄 생각인데요?”

이동은 명 삼낭자를 떠올리며 물었다. 적어도 그녀에겐 계소영이 묵칠보단 훨씬 나았다. 이동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

“계 공자는 명 삼낭자가 어떻대요?”

“계 대랑 같은 성격에 싫다고 하지 않으면 좋은 겁니다. 우린 그냥 이어만 주면 됩니다. 그가 어떻게 할지는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소를 물가에 끌고 갈 순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순 없잖습니까?”

영원은 계소영의 태도에 대해서는 그냥 얼버무렸다. 뒷부분은 그의 진심이었다. 그는 그냥 이어줄 생각이었다. 이 사람이 안 되면 저 사람, 계속 찾다 보면 언젠간 성사되겠지.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탕가 낭자 일, 서둘러야 합니다. 묵가 소칠 일이 정해지면 명가 쪽은 계가보다 더 좋은 혼처를 못 찾아요. 아니면 전 노부인이 죽어라 물고 늘어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일이 성사되지 않아요. 그래서 이렇게 급히 찾아온 거랍니다.”

모든 일이 예전과 달라지길 바라는 이동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내일은 늦었으니, 모레로 해요. 성 밖 장원에 나들이 가자고 탕 오낭자를 초대할게요. 하룻밤 묵어요.”

“알았습니다! 낭자는 탕가 낭자를 성 밖 장원에 데리고만 와요. 다른 건 모두 내가 준비하겠습니다!”

영원이 호언장담하자 이동은 힐끔 보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다른 건 원래 당신이 준비할 수밖에 없거든요.

“큰일은 정했군!”

영원은 드디어 큰일을 결정지었다는 얼굴로 팔걸이를 짚고 일어서기 전에 또 무언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또 하나 있는데,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럼 하지 말아요.”

이동도 일어서려 하자 영원이 다시 털썩 앉았다.

“말하는 게 좋겠군. 강환장의 일이라 며칠 고민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강환장의 일이라서 꼭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이동이 살짝 매서운 표정으로 다시 앉았다. 영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괴이한 일입니다. 바로 어제 일이에요. 계 대랑이 이상한 이야기를 하더군요. 얼마 전에 진왕비가 회임했는데 진맥해서 알게 된 지 며칠 만에 잃었답니다. 강환장은 진왕비 본인이 회임한 걸 알기도 전에 알았답니다. 알았을뿐더러, 아이를 지키지 못할 것도 알았답니다. 유산하고 두 달 후에 다시 회임한다고, 그땐 순조롭게 진왕의 장자를 낳을 거라고까지 했답니다.”

강환장이 진왕비가 회임한 걸 알았다고 이야기하는 부분부터 이동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강환장이 어떻게…….”

이동은 강환장이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냐는 뒷말을 삼켰다. 영원은 강환장이 어떻게 그걸 아느냐고 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얼마 전에 장공주가 강환장을 지방으로 보내려고 했었습니다. 강환장은 경성, 진왕부를 떠나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남으려고 계 천관에게 부탁하려고 그런 말을 했답니다. 계 대랑 말이, 강환장은 천명이 진왕에게 있으므로 자기가 이런 것을 아는 거라고 말했지만, 계 천관은 강환장이 그런 걸 아는 것 자체가 요사스럽다고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계 대랑이 내게 이야기해 주었고요.”

영원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고 이동은 집중해서 들었다. 어쩐지, 강환장이 자신을 지키려고 이런 행동을 했구나. 이동은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또 하나. 이 일이 있기 전에, 수행하는 노승을 반드시 만나야 한다고 강환장이 대상국사 빈 뜨락에 며칠 동안 무릎 꿇고 있었던 일, 이건 이야기했었지요.”

이동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낭자가 이상하다고 했고,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사람을 보내 줄곧 지켜봤습니다. 하루는 비가 온 뒤에 새벽엔 갰어요. 온 하늘에 별빛이 가득할 정도로 맑아졌지요. 대상국사, 심지어 온 경성에 비구름이라고는 조금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 뜨락 문 앞에 별안간 큰 안개가 끼었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안개가. 급하게 나타난 안개는 또 그만큼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안개가 사라진 후에 강환장이 일어서서 돌아갔습니다. 내 생각엔, 만나려던 사람을 만난 것 같습니다. 다만…….”

영원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 뜨락에 정말로 누가 폐관하고 수행 중이었다면 무지가 몰랐을까요? 무지는 모른다고 쳐도 방장 스님은요? 방장 스님도 몰랐을까요? 말이 안 되지.”

“청공 큰스님이 아는지 모르는지, 당신이 어떻게 알아요?”

이동은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아서 냉랭하게 물었다.

“그건 또 그렇군.”

영원이 이마를 내리쳤다. 이동은 굳은 얼굴로 온몸에 힘을 주고 앉아 있었다. 아이를 빌러 갔던 날 나이를 알 수 없는 노승을 우연히 만난 일을 나중에 무지와 청공 큰스님에게 물었었다. 무지는 당연히 모른다고 했고 청공 큰스님은 명확히 대답하지 않았다.

십수 년 후, 바로 그 뜨락에, 어느 고승이 삼십 년간 폐관하다가 드디어 무사히 출관한다는 이야기가 퍼졌다. 그 당시 황상까지 친히 대상국사에 왕림해서 고승의 출관을 지켜봤다. 그런데 그때 출관한 고승은 그날 그녀가 만난 노승처럼 늙지 않았다. 출관한 고승이 그날 그녀가 만났던 노승이 맞는지 아닌지 끝까지 알지 못했다.

출관한 고승이 줄곧 강환장을 남달리 생각했고, 그 바람에 황상도 강환장을 더 중시했었다.

강환장이 정말로 그를 만난 걸까.

“큰 안개가 낀 날, 의문이 들었는데 계 대랑의 이야기까지 들으니 알겠더군요. 강환장 그자, 아무래도 기연을 겪은 것 같습니다.”

영원은 소 사야가 소식을 듣자마자 경성으로 달려온 걸 떠올리고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어제도 진왕이 보위에 오르는 꿈을 꾸었다. 눈을 뜬 뒤에 다시는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며 생각했다. 정말로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정말로 거병하여 온 세상에 피를 뿌려야 하나.

이동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래로 늘어뜨린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지나친 생각이라고 생각합니까?”

영원은 이동의 움켜쥔 주먹을 보지 못했다. 그녀 앞에 있으면 원래 긴장을 확 푸는 데다가 지금은 마음이 매우 복잡한 상태라 통찰력이 평소보다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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