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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373화 (373/463)

373화: 어린 낭자의 작은 심사

한 바퀴 돌고 돌아온 해 이낭자는 어딘가 정신이 팔린 듯이, 초 삼낭자와 소곤거리면서 수시로 화청 밖 금목서 쪽을 힐끔거렸다.

조 구낭자도 조금 정신이 팔린 듯이 잠시 앉아 있다가 해 삼낭자를 붙들고 일어섰다.

“앉아만 있으니까 답답해. 나랑 호숫가에 가자.”

해 삼낭자는 온화한 성격이라 답답하지도 않고 호숫가에 가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따듯하게 웃으며 조 구낭자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조 구낭자는 해 삼낭자의 팔짱을 낀 채 매우 느리게 걸으면서 무얼 보든 그보다 더 자세히 볼 수 없을 정도로 꼼꼼히 살펴봤다.

“이 화청, 새로 지은 거래. 정말 감쪽같아. 이 기둥 좀 봐, 이거 금사남목(金絲楠木: 금실 같은 광채를 띤 소엽정남목小葉楨楠木의 별칭. 보존성과 무늬, 굵기와 길이가 이상적이라 명나라에서 최고급 건축 재료로 사용되었다.)인가? 이렇게 화청을 새로 지으려면 은자가 얼마나 들까? 저기 지붕, 보이지? 봐봐, 다 유리 기와로 했어. 이렇게 지붕 짓는 건 처음 봐.”

조 구낭자는 해 삼낭자에게 설명한다기보다 사실 자기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접시 봤어? 다 금은을 두른 여요(汝窑) 자기였어. 작은 찻잔 하나에 십수 냥이야. 저기 다과 접시 좀 봐봐. 백자에 금사를 두른 꽃무늬가 있어. 마행가에서 한 번 봤는데, 백 냥은 돼. 너 그거 들었어? 여름에 이 저택 전체에 천붕을 친대. 정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돈이 산더미처럼 넘친다더니, 정말인가 봐…….”

해 삼낭자는 아무런 말 없이 듣다가 가끔 조 구낭자를 바라봤다. 조 구낭자는 오늘 조금 추태를 보이고 있었다. 조가가 줄곧 궁핍하다고 하더니, 이가의 부유함에 적잖게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조 구낭자는 온 이가 저택 곳곳에 드러난 부유함밖에 머릿속에 없었다. 눈으로 보이는 건 모두 흥분할 정도로 부귀했다.

이가는 상인이라 지체가 조금 떨어지긴 해도 그 부귀함이 대단했다. 이신은 뛰어난 인품에 용모도 준수한데 듣자 하니 성격도 매우 좋다고 했다. 이런 부귀함은 그야말로 드물 정도이고.

잠시 둘러본 조 구낭자는 결정을 내렸다.

이건, 이가에게 좋은 혼사야!

이가를 살펴보는 사람 중에는, 명 삼낭자와 함께 무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앉아서 열심히 접자희를 감상하는 것처럼 보이는 묵 육낭자도 있었다.

하지만 조 구낭자가 눈에 띄는 부귀를 살핀다면 묵 육낭자는 화청 안팎에 공손히 서 있는 시녀와 어멈들을 살폈다.

“온 저택에 장차 흥할 징조가 가득해.”

명 삼낭자도 묵 육낭자처럼 접자희가 아니라 어멈, 시녀들을 힐끔 쳐다보며 속삭였다.

“음, 경성에 엇비슷한 집안은 거의 다 가봤는데, 이 저택 같은 집안은……. 저쪽 시녀 좀 봐. 어멈이 힐끔 봤을 뿐인데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바로 알잖아.”

묵 육낭자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차 끓이는 화로의 숯을 조용히 가는 시녀를 바라봤다.

묵 육낭자는 줄곧 백 노부인과 전 노부인 등 손님을 모시고 이야기하느라 다른 건 거의 상관하지 않는 장 태태를 바라보며 한숨을 폭 내쉬고는 목소리를 더 낮췄다.

“이 낭자의 인품이든 용모든 재능, 혼수든 뭐 하나 말할 것도 없는데 수녕백부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명 삼낭자도 장공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이동을 힐끔 봤다.

“응. 이 대낭자는 정말이지……. 휴. 따지고 보면 결국은 혼인했던 사람이야. 사람만 따지면 어느 사내를 고른대도 상대가 부족할 텐데, 하필이면…….”

명 삼낭자가 연신 한숨을 내쉬자 묵 육낭자도 따라 한숨을 쉬었다.

“언니는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 사찰에 갔을 때 이 대낭자를 위해서도 향을 올리고 제대로 된 진짜 혼처를 점지해달라고 불조께 빌었어.”

“도?”

명 삼낭자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 널 위해선 뭘 빌었는데?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르신이 고른 상대 없어? 올해 일갑의 3대 재자가 하나같이 인품이며 용모며 뛰어난 공자들인데, 네 마음에 든 사람 없어? 여 장원? 아니면 계 탐화?”

명 삼낭자와 묵 육낭자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이 맞았고 몇 달 함께 지내면서 말 못 할 것이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건 언니겠지! 난 없어!”

묵 육낭자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혀를 깨물고 싶을 정도로 후회가 되었다. 명 삼낭자의 안색이 순간 흐려지고 웃음이 어색해졌다.

묵 육낭자가 얼른 덧붙였다.

“다들 삼정갑이 어쩌고 하는데, 나는 삼정갑 중에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이갑보다 더 뛰어난 것 같지도 않아.”

“그건 그래. 특히 이갑 1등, 이 전려의 책론이 나는 제일 좋더라. 문장에 꾸밈이 없고 이치는 명확해. 딱 봐도 정말로 실무를 아는 사람의 글이었어. 일갑에 들지 못했다니, 정말 아까워.”

명 삼낭자는 말을 돌렸다. 우울했던 조금 전 기분도 계속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묵 육낭자는 잠시 멈췄다가 나직이 말했다.

“이 전려는 사려 깊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야. 올해 상원절 때 칠 오라버니랑 나갔다가 이 전려와 이 대낭자를 만났었어. 정말 보기 드문 사람들이야.”

명 삼낭자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묵 육낭자를 바라봤다.

“너 혹시…….”

“아니야!”

묵 육낭자가 다급히 부인하자 명 삼낭자가 피식 웃었다.

“육저아, 나 아무런 말도 아직 안 했다.”

묵 육낭자는 순간 얼굴을 붉히며 당황한 모습으로 다급하게 잔을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댔다. 명 삼낭자는 턱을 괴고 묵 육낭자를 바라봤다. 묵 육낭자의 얼굴이 더 발그레해져서는 차를 마시지도 못하고 잔을 내려놓고 화난 듯 노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난 정말 아무런 의미 없이 한 말이야.”

“나도 아무런 생각 안 했는데. 내가 무슨 생각하는 것 같은데?”

명 삼낭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묵 육낭자는 입을 내밀고 고개를 돌려 무대를 집중해서 바라봤다. 명 삼낭자는 한참 웃다가 묵 육낭자를 콕 찔렀다. 묵 육낭자가 상대하지 않자 다시 한번 찌르면서 속삭였다.

“육저아, 어르신은 뭐라고 하셔? 이가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무라는 묵 육낭자의 목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다. 무수한 고민과 우울함이 담긴 목소리였다.

“내가 어떻게 알아.”

명 삼낭자의 목소리도 우울해졌다.

“너희 집안은 지체 높은 집안이라서, 이가는…….”

명 삼낭자는 장공주와 함께 있는 이동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 대낭자만 봐도 알지. 본분을 지키는 집안이야. 이가 대야가 4등이 아니라 장원이 됐더라도 너희 집안을 넘보지 못할 거야.”

묵 육낭자는 미간을 단단히 좁혔다. 매우 초조한 듯했다.

“지체 높긴. 우리 할아버님은 가난한 서생 출신이고 가문 사당도 할아버님 대에 겨우 세웠어. 이런데도 지체 높아? 할아버님이 지금 수상 자리에 있어서 다들 빌붙으려는 거지, 지체는 무슨.”

명 삼낭자가 그녀를 힐끔 보다가 금세 한숨을 내쉬었다.

“육저아, 우리가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오랜 벗 같았어. 난 너를 진정한 지기로 생각해. 그러니까 터놓고 말할게. 우리 어머니가 혼인이란 집안부터 보고 사람은 그다음에 보는 거랬어. 집안이 더 중요하대. 이가는 집안도 사람도 충분해. 적어도 내 눈엔 보기 드문 좋은 혼처야. 너도…….”

명 삼낭자는 묵 육낭자가 이가 대야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우리 어머니가 어르신은 사리 밝은 분이라고 하셨어. 내가 보기에도 그래. 이 일, 기회가 없는 건 아니야. 다만 네가 방법을 생각해야만 해.”

“내가 무슨 방법이 있겠어.”

묵 육낭자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명 삼낭자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에게도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서두를 것 없어. 우리 방법부터 생각해 보자.”

잠시 침묵하다가 명 삼낭자가 나직이 타이르자 묵 육낭자가 우울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명 삼낭자는 묵 육낭자가 저조해진 기분을 감추지 못하는 듯하자 무심결에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녀를 끌어당겼다.

“우리 좀 거닐자. 기분 좀 풀고 돌아와서 다시 극을 보자.”

묵 육낭자도 이런 기분으로 있는 건 적절하지 않음을 깨닫고 얼른 일어서서 명 삼낭자와 나란히 화청에서 나갔다. 두 사람은 양쪽에 꽃이 핀 작은 길을 따라 쭉 걸었다.

탕가가 이가와 집안끼리 잘 지내는 집안이라서, 고서강 부인 유씨는 오늘은 웬만해선 잘 데리고 나오지 않는 셋째 며느리 탕 삼내내를 데리고 왔다.

외출이 드문 탕 삼내내는 대화할 만한 사람도 없고, 유 부인이 마음 잘 맞는 영안백부 민 부인, 그리고 주육 모친 화 부인 일행과 이야기 나누는 걸 보고는 슬그머니 물러나서 어머니 상 대내내와 함께 유 부인과 그리 멀지 않은 구석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상 대내내는 애틋한 듯 딸의 손을 꼭 잡았다.

“어미를 걱정할 것 없다. 걱정할 게 뭐가 있냐. 이 어미 걱정은 너뿐이다. 네 아우가 거인이 된 후로 어미는 갈수록 편안해졌다. 이제 네 아우가 진사가 되었잖으냐. 탕가에서 처음으로 진사가 나왔다. 어제 네 할아버님의 서신을 받았는데, 네 아버지가 읽고 나서 일부러 가지고 와서 보여주더구나. 할아버님이 네 아버지더러 만사 네 아우, 그리고 나와 상의하라는 말을 적으셨더구나. 절대로 혼자 결정해선 안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난 네 여동생 혼사도 마음을 좀 놓았다. 휴. 네 여동생은 너보다 복 받았구나.”

탕 삼내내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아우들의 복도 내 복이죠. 우가아가 급제한 일로 나까지 덕을 본 걸요. 며칠 전에 삼랑이 술에 취해 들어와서 또 난리를 부렸어요. 제가 시기가 심하고 어질지 못하다고요. 그런데 전에는 삼랑이 그래도 아무도 아는 체하지 않더니, 이번엔 시아버님이 화를 내지 뭐예요. 삼랑을 때리고 술이 깰 때까지 무릎 꿇으라고 벌하셨어요. 다음에도 이런 허튼짓을 하면 버릇 고칠 때까지 사당에 가둬놓을 거라고까지 하셨어요.”

탕 삼내내가 빙긋이 웃으며 말하는데 상 대내내는 마음이 씁쓸했다. 상 대내내는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꼭 참고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생각만 하면 내가……. 그래, 네 말이 맞다. 드디어 조금씩 나아지는구나.”

“어머니, 난 괜찮아요. 그때 어머니와 비교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탕 삼내내는 얼른 어머니를 위로하며 마음을 풀어 주었다. 상 대내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견딘 그 고통은 지금 딸이 고생하는 걸 지켜보는 고통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 지나갔어요. 우가아가 나중에 1품 관리가 되면 어머니도 저분들처럼 될 거예요.”

탕 삼내내가 화청 정중앙 탑상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전 노부인 무리를 살짝 가리켰다.

“탕가 전체가 어머니 웃는 얼굴 한 번 보려고 애쓸 거예요. 참, 다섯째 혼사, 갈피가 잡혔어요?”

탕 오낭자 이야기가 나오자 상 대내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이다. 네 아버지가 몇 군데 꺼내더라만, 너도 네 아버지를 알지 않으냐. 내 마음에 드는 곳이 하나도 없더라. 지금은 나와 네 아우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네 아버지가 마음대로 하진 못하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성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고, 정말이지……. 내 마음에 든 집안은 딱 봐도 우리가 넘볼 집안이 아니고. 우리랑 비슷한 곳이 몇 곳이나 있겠니.”

그 말에 탕 삼내내가 바짝 다가갔다.

“어머니, 이가는 어때요? 아까 들어오자마자 유심히 봤는데, 보세요, 곳곳이 훌륭해요. 장 태태는 사람 좋고 이 대낭자는 다섯째를 친동생처럼 대해요. 이가 대랑은 인품이며 재능이며 나무랄 데가 없어요. 양자이긴 해도 이가엔 사내가 이 대랑뿐이에요. 다섯째가 이런 집과 혼인하면 절대로 서러움은 안 겪을 거예요.”

“이가는 눈에 불을 켜고 찾아도 없을 좋은 혼처다. 이가 대낭자는 네 동생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마음도 주었지. 바로 그런 이유로 우리가 망상을 품으면 안 된다.”

“망상이라니요. 우리 집안이야말로 이가와 진정으로 걸맞은 집안이지요.”

상 대내내가 고개를 저으며 하는 말에 탕 삼내내는 받아들일 수 없는 듯 말했다. 상 대내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걸맞은 집안인 것이 문제다. 네 아우 처를 고를 때, 나는 첫 번째로 마음 잘 맞고 마음에 드는 사람인지를 보고 두 번째가 바로 도움 줄 수 있는 친정인지를 본다. 우리 집안은 은자가 조금 있을 뿐이라서, 네 아우가 벼슬길에 들면 집안에선 전혀 도움 되지 못한다. 며느리가 도움이 되어 주면 제일 좋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이가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니? 이가는 우리보다 더 불리하지. 우리는 적어도 고가가 있지만, 이가는 그런 집안도 없으니. 이가 대랑의 아내는 반드시 조력자가 될 친정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이가 대랑의 벼슬길에 이끌어 줄 사람이 생기지.”

탕 삼내내는 멈칫하다가 자책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 그 생각을 못 했네요.”

“넌 아직 어리니까.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이가는 우리에게 잘 대해주고 있단다. 상대가 좋은 사람이고 우리에게 잘한다고 상대의 좋은 점을 취할 생각부터 하면 안 되지. 잘해주는 사람일수록 상대 생각을 해주어야 하는 법이다.”

상 대내내는 나직이 딸을 훈계했고 탕 삼내내는 진중한 얼굴로 들었다.

“명심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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