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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370화 (370/463)

370화: 어리석은 한 쌍

어머니 고 부인과 마차에서 내린 초 삼낭자는 소 구내내 옆에서 활짝 웃으며 모두를 맞이하는 해 이낭자를 한눈에 발견했다.

여염의 모친 원 부인이 벌써 다가와 고 부인의 손을 잡고 다정하게 이야기 나누는 사이, 초 삼낭자는 원 부인을 힐끔힐끔 보다가 살짝 뒤로 물러나서 공손하게 예를 갖추고는 해 이낭자에게 다가갔다.

“참 일찍 왔네.”

초 삼낭자는 해 이낭자 곁으로 가서 원 부인을 또 힐끔 보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할 말이 있어.”

해 이낭자는 주저하다가 초 삼낭자를 옆으로 끌어당기며 속삭였다.

“일단 들어가서 기다려. 구내내는 작년에 경성에 와서 사람들을 잘 몰라. 내가 잠시 더 도와줘야 해.”

초 삼낭자가 뭐라고 더 하려고 하자 해 이낭자가 웃으며 안으로 등 떠밀었다.

“일단 들어가. 시간 많아.”

이동은 웃는 얼굴로 한림원 손 학사 부인 명씨와 손 십이낭자를 안으로 안내하면서 곁눈으로 해 이낭자와 초 삼낭자를 살폈다. 해 이낭자가 초 삼낭자를 등 떠밀어 안으로 보낸 다음 어느 댁 여식솔과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소 구내내 곁으로 다시 돌아가는 걸 보다가 시선을 거뒀다. 생각이 참 많아졌다.

전생에 춘시 방이 붙은 지 며칠 안 되었을 때, 해 이낭자가 장원 진안방과 정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마다 급제자의 혼담은 경성의 한가한 사람들이 가장 즐겨 수군거리는 일이었다. 왕년엔 급제자를 사위로 맞은 집안과 그 집 낭자가 복 받았다고 칭찬하는데 그해에는 다들 진안방이 운수대통하다고 했다.

사실 해가에서 진작 진안방을 점찍었다는 소문도 은밀하게 퍼졌었다. 방이 붙은 후 혼담을 넣은 건 그저 겹경사에 금상첨화일 뿐이라고 했다. 해 상서 같은 가문이 굳이 과거 급제한 사위를 노릴 필요가 뭐가 있냐고.

그런데 지금은 해가가 진가와 사돈 맺을 계획이 없는 듯했다. 적어도 해 이낭자는 진안방과 혼인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이동은 다시 해 이낭자를 흘깃 바라봤다. 전에 진안방과 혼인한 이유가 진안방의 됨됨이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장원 신분 때문인 걸까.

그럼 이번엔 어떻게 될까? 여 공자는 진안방과 비교할 수 없다. 여염이 장원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여가와 해가의 혼인은 양측 모두 흠잡을 곳이 없다. 해 이낭자가 이렇게 일찍 와서 저렇게 열정적으로 돕는 건 여가와 혼인 맺으려는 마음에서일까, 아니면 장공주 때문일까?

이동은 한숨이 나올 것 같았다. 만 어멈은 태태가 낭자를 너무 오냐오냐 키워서 너무 어리석고 천진하다고 항상 말했었다. 그럴 때마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때 이동은 스스로 재능 있고 영리하다고 여겼었다.

정말로 심하게 어리석고 안목이 어두웠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사람을 얼마나 많이 잘못 봤는지 모른다.

어수선한 소리 가운에 다급한 손뼉 소리가 들려왔다. 두드러지진 않지만 똑똑히 들리는 손뼉 소리에 이동은 얼른 원 부인을 바라봤다.

“장공주 오셨어요.”

영해가 꾀를 내어 손뼉으로 신호를 보내자고 했다. 장공주가 자기는 간단하게 미복으로 올 테니 다른 사람과 똑같이 접대하라고 당부했었다.

그러겠다고는 했지만, 정말로 그렇게 할 수는 없어서 손뼉으로 신호를 주고받기로 했다. 장공주의 요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대비할 변통이었다. 대문부터 골목, 그리고 큰 거리 조금 앞까지 열 걸음마다 사환이 서 있었다. 물론 모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원 부인은 이동이 눈짓하기 전에 사람들과 함께 문밖으로 마중 나갔다. 측문 쪽에서 이신 무리도 맞이하러 나왔다.

영원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매우 눈에 띄었고, 녹운이 휘장을 젖히자 마차에서 내린 복안 장공주는 한눈에 영원을 발견했다.

“너……도 도우러 온 것이냐?”

장공주는 영원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너는 왜 온 거냐고 물으려던 걸 확 바꿨다.

“예.”

영원이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서 대답했다.

주육은 영원과 딱 붙어서 영원을 바라봤다. 환심 사려는 얼굴로 살짝 허리를 숙이는 영원의 모습은 오늘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가 바로 보림사 뒤에서 꿩을 잡았다가 장공주와 마주친 그때였다. 그때 영원의 낭패스러운 꼴과 ‘누님’ 소리를 떠올린 주육은 웃음을 터트리려다가 장공주의 시선을 마주했다. 주육은 식겁해서 터져 나오려던 웃음을 얼른 삼키고 털썩 무릎을 꿇었다.

“누님!”

주변이 잠시 조용하다가 폭소가 터졌다. 주육은 한순간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고 어리둥절해졌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이 장공주가 너무나 무서웠다. 황상보다 더 무서웠다. 장공주가 바라보자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촌수가 틀렸다!”

영원이 주육을 걷어찼다.

“어?”

주육은 여전히 어질어질했다. 장공주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얼굴로 주육을 가리켰다.

“너, 이리 와봐. 네 할머님, 요즘 몸이 좋지 않다면서? 좀 괜찮아지셨고?”

“아룁니다, 그 뭐냐, 좋아지지 않고 그저 그렇습니다.”

영원에게 대뜸 끌려 나온 주육은 아직 장공주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계산하지 못해서 어물쩍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으시니까. 오늘 네 집안에선 누가 왔지?”

“어머니, 그리고 팔누이가 왔습니다.”

주육은 정신을 조금 차리고 주눅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장공주는 흡족한 듯 주육에게서 시선을 떼고 묵칠, 그리고 계소영에서 고자의까지 한 바퀴 둘러보고 시선을 거뒀다. 그러고는 공손하게 정문으로 안내하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측문으로 돌아섰다.

“나처럼 속세를 벗어날 준비하는 사람은 속세의 예를 연연할 것 없다고 이야기했을 텐데.”

장공주가 그렇게 나오자 이동은 별달리 예의를 갖추지 않고 평소처럼 그녀와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다.

소 구내내는 원 부인이 장공주를 공손하게 중문까지 배웅한 후에 걸음을 멈추자 따라서 걸음을 멈췄는데 해 이낭자는 내친걸음에 따라 들어갔다.

장공주가 화청에 도착해 보니, 백 노부인과 전 노부인, 장 태태를 선두로 화청에 있는 모두 계단 아래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어서 부축해 일으켜. 다들 일어나.”

엎드려 절하는 것까진 아니지만 다들 공손하게 기다리는 모습에 장공주가 얼른 분부했다. 이동이 다가가 백 노부인을 일으켰고 해 이낭자는 이동이 움직이는 동시에 전 노부인을 일으켰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장공주가 나무라듯 백 노부인을 바라봤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다들 이렇게 예의 차릴까 봐 그러지 말라고 노부인을 보낸 건데, 같이 이러면 어찌합니까.”

“정말 법도대로 했으면 다들 대문 앞에서 무릎 꿇고 기다려야 했습니다.”

백 노부인이 웃으며 말하자 장공주는 웃다가 한숨을 내쉬다가 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이 모녀처럼 친밀해 보였다.

“이 사람이 장 태태입니다.”

백 노부인이 가리키며 소개하자 장 태태가 얼른 무릎을 구부리려 하는데 장공주가 얼른 말렸다.

“예 갖출 것 없네. 이신이 이갑 1등이 된 건 자네 공이 크네.”

장공주는 녹운이 건네는 상자를 받아서 뚜껑을 열고 장 태태에게 내밀었다.

“계 노승상이 아끼던 벼루일세. 손에 넣은 이래 늘 지니고 사용하던 물건이야. 잠시도 손에서 떨어뜨리지 않던 걸 내가 얻어 온 거야. 이신에게 주게. 이갑 1등이 된 축하 선물이야. 앞으로 계 노승상처럼 일대 공신이 되길 바라네.”

이동은 문 이야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이 벼루를 내어주는 건 이신에게 세를 만들어 주겠다고 드러내는 것이었다.

장 태태는 길게 사양하지 않고 양손으로 벼루를 받아 공손히 감사 인사했다. 장공주는 돌아서서 이동을 붙잡고 모두를 향해 웃어 보였다.

“보아하니 내가 여기 있으면 다들 자유롭게 담소 나누지 못하겠군. 나는 동저아와 경치 구경하며 이야기 나눌 테니, 다들 편하게 있어.”

장 태태는 황급히 백 노부인을 바라봤고 백 노부인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장공주가 우리 속세 사람을 멀리하시는 거면서요.”

장공주는 웃으며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하고 이동을 끌고 이동이 특별히 준비한 작은 정자 쪽으로 향했다. 해 이낭자는 주저하다가 따라가지 않았다. 장공주는 편히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드디어 해 이낭자를 만난 초 삼낭자는 장공주가 멀어지자 얼른 다가가 해 이낭자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요긴히 할 말이 있어!”

장공주는 정자에 들어가서 주변을 둘러봤다.

“이 화청, 참 재미있네. 꽃나무가 실내에 있다니. 이 정자도 실내에 지은 것처럼 보여.”

“실내에 짓기는요. 이 화청, 임시로 지은 거예요. 저희 집안에서 이렇게 큰 연회를 열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도 하지 못한 걸 아시잖아요. 조금 큰 집채도 없어서 새로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장공주는 이동의 말에 정자 밖으로 나가서 둘러봤다. 정자 옆 만개한 목단 곁으로 가서 목단을 당겨 보고는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이렇게 새로 지으니까 참 좋네.”

이동은 대답하지 않았다. 좋긴 하다.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장공주는 한 바퀴 둘러보고 정자로 돌아가서 앉았다. 호수 안에 마련된 무대에서 흥얼흥얼 시작한 접자희를 감상하며 어느 집안이 왔는지, 누가 왔는지, 누가 가장 먼저 왔는지 묻고는 영원 이야기를 꺼냈다.

“네가 초대했어?”

“제가요? 장공주도 참…….”

이동은 헛웃음 쳤다. 영원을 초대하다니, 온 경성이 웃을 일이었다.

“네 오라비가 초대했나?”

장공주가 이어서 묻는 말에 이동이 고개를 저었다.

“청첩을 보내달라고 하긴 했는데, 저희 가문하고 왕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너무 느닷없는 것 같아서 모르는 체했어요. 올 줄 몰랐죠.”

“모르긴 왜 몰라?”

장공주는 뭐가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다가 손사래 쳤다.

“됐어. 공으로 부려 먹은 셈 쳐. 얼마 전에 첫째가, 곽씨가 병이 났다고 태의를 불러들인 다음 서신을 밖으로 전하려다가 하필 주유민에게 걸린 거, 들었어?”

이동이 놀란 얼굴로 고개 저었다.

“그렇게 공교롭게요? 육소야를 마주쳤어요?”

이동은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주가 육소야였다면 그 머리로, 그 안목으로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리가 없다.

“주 태의는 목이 달아날 그런 일을 첫째를 위해 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어. 흥. 주유민은 영원과 함께 있다가 주 태의를 마주친 거야. 함정에 빠져서도 제가 더 깊이 파면서 알랑거릴 물건이지.”

이동은 즉시 깨달았다. 주 태의는 대황자 대신 서신을 전할 생각이 없었는데 영원과 주육을 만난 바람에 스스로 내놓은 것이다. 영원은 주 태의가 서신을 들고나온 일을 알고 주육을 데리고 가서 밝혔겠지. 그리고 그 책임을 주육에게 지우고. 물론 주육은 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할 것이고.

“황상이 화를 내셨나요?”

이동이 나지막이 물었다.

“주유민이 얼마나 멍청한지 몰라? 주 태의를 태자부로 데리고 갔다더군. 넷째 그 무지렁이는 그 자리에서 주 태의를 거의 때려죽일 정도로 때린 다음 서신을 들고 황상을 찾아갔어. 첫째가 대역무도하다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고 독주를 내리라고 황상에게 청했어.”

장공주가 이를 갈았다. 이동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유민이 그 일을 바로 황상에게 고하지 않았다니. 황상을 안중에 두지 않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황상의 성격이라면 따지지 않을 것이다.

태자가 그 서신을 들고 사사하라고 황상을 찾아갔다니. 휴. 형제의 정은 어쩌고. 주육을 끌고 황상을 찾아가 죄를 고하게 하고 자기는 펑펑 울며 태자답게 자비심을 보이며 용서를 구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맨손으로 전장에 오르는 꼴이었다. 휴, 장공주의 말이 맞다. 어리석은 한 쌍이다.

“서신에 뭐라고 썼대요? 누구에게 보내는 서신이에요?”

“수국공. 내용은 별거 없어. 황상이 그립다고, 황상의 옥체가 어떤지 모르겠다고.”

장공주는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첫째에겐 꽤 쓸 만한 막료가 있어. 장씨인데 같이 갇혀 있어. 서신을 그렇게 쓴 걸 보면 이제는 막료의 말을 조금은 듣는 모양이지.”

“그게 다예요? 그런데도 태자는 황상께 들고 갔어요? 황상의 성격이…….”

황상의 성격으로 화를 낼 리가 있나. 감동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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