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불청객
수련이 활짝 웃으며 상 대내내와 탕 오낭자를 중문 안으로 안내해서 들어가자 원 부인이 시선을 거두고 웃으며 이동을 바라봤다.
“저 오낭자, 아리땁고 귀엽네. 후덕하면서도 영리해. 나도 오낭자가 마음에 드는구나.”
“맞아요.”
이동이 웃으며 대답하고는 이어서 설명했다.
“탕가는 제 증외조모 대부터 저희 가문과 거래했어요. 몇십 년 동안 대대로 교류한 셈이죠. 상 대내내와 어머니가 마음이 참 맞아요.”
“어쩐지.”
원 부인은 단번에 두 가문의 관계를 파악했다.
멀진 않지만 가깝지도 않군. 하지만 서로 마음이 잘 맞으니 가까운 관계지.
상 대내내와 탕 오낭자가 도착했으니 탕 오낭자의 오라비 탕호우도 당연히 도착했다. 탕호우가 대문 앞에서 말에서 내려 왼쪽 문으로 들어가자 영해가 마중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이신은 보이지 않고 계소영이 맞이하자 탕호우가 화들짝 놀라 서둘러 예를 갖췄다.
“계 형, 일찍도 왔군!”
“대랑 혼자 바쁠까 봐 나와 장원공이 일찍 왔네. 대신 접객하려고.”
계소영은 탕호우를 안으로 안내하며 웃는 얼굴로 설명했다.
“나도 도우려고 일찍 왔지!”
탕호우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몇 마디 나누는 사이 이신과 여염이 달려 나왔고 계소영이 두 사람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도울 사람이 또 하나 왔다네.”
“응? 내가 도우러 온 걸 어떻게 알았지?”
탕호우가 입을 열기 전에 문밖에서 영원이 대답했다. 말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사람도 들어왔다.
“자네들도 다 도우러 온 건가?”
감청색 각사 장삼에 옥 허리띠를 가지런하게 차고 머리 위엔 평소에 쓰지 않던 금관까지 쓴 영원은 유난히 상쾌해 보였다.
문 안에 있던 네 사람은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여염, 계소영, 심지어 탕호우가 도우러 온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영원이 도우러 오다니. 왜? 잘못 들었겠지!
이신은 착잡한 표정으로 영원을 바라봤다.
초청하지 않았을 텐데. 초청하지 않았는데도 오다니. 그것도 도와주러? 정말로 도와주러 온 것일까.
“칠야, 조금 전에 뭐라고?”
여염이 주저하며 물었다.
“내 형님이 연회를 크게 열고 손님을 초대하는데 내가 당연히 와야지.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남에게 전가할 수 있나! 여긴 내가 있으면 되니 자네들은 가서 문장 짓고 시를 쓰게.”
영원이 휘적휘적 손을 휘둘렀다.
“자네 형님?”
여염과 계소영이 거의 동시에 고함쳤다. 이신이 언제 영원의 형님이 되었나? 처음 듣는 소린데?
탕호우는 넋이 나갔다.
이 이씨 가문은, 정말 깊이를 알 수 없군.
이신은 영원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무슨 짓이야? 형님? 누가 형님이야!
“수고…….”
수고를 끼칠 수 없다고 말하려던 이신은 억지로 방향을 틀었다.
“칠야, 장공주의 분부를 받고 오셨지요? 그럼 수고 끼치겠습니다.”
그날 문 이야가 한 말을 며칠 동안 몇 번이나 곱씹었는지 모른다. 정말로 문 이야의 말대로 영원이 진심으로 동저아를 아내로 맞이할 생각이라면 적어도 나쁜 일은 아니다. 영원이라는 사람을 줄곧 주시해 왔다. 속셈이며 재능은 말할 것도 없고 보기 드문 인품이었다. 영가는 가풍도 훌륭한 집안이라 좋은 혼처였다. 좋은 혼처라면 유심히 지켜봐야지 밉보일 필요는 없었다.
이신이 장공주 이야기를 꺼내자 영원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이신의 영리함에 감탄이 나왔다. 장공주의 분부라는 말에 자기 의지가 아니라 장공주의 분부로 온 게 되었다. 인정을 베풀려던 것이 수포가 되고 말았지만.
됐다. 장공주가 보낸 것으로 하자. 아니면 괜히 뜬소문이 날 수도 있겠군. 나야 상관없지만, 그녀는 신경 쓸 수도 있지 않나.
여염, 계소영과 탕호우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랬지! 오늘 장공주가 오시지! 겉으로 드러내고 호위하지 않아도 암암리에 준비하고 있겠지. 만일을 대비해서 어전시위인 영원이 총괄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고. 이 당연한 일을 생각하지 못했다니, 너무 어리석었군.
여염이 서둘러 웃으며 공수했다.
“그럼 수고 끼치겠네, 칠야. 그럼 여기를 어떻게 배치할지, 칠야의 분부를 따르면 되나?”
여염이 이신을 바라보며 묻자 이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으며 영원을 향해 공수했다.
“잘 부탁합니다.”
“이 형도 참, 뭘 그런 말을.”
영원은 속으로 내심 거북했다. 정말로 장공주 때문에 온 것이 아닌데.
“여긴 나만 있으면 되네.”
영원이 손을 휘두르며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밖에서 묵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희 나리가 정말로 이렇게 일찍 왔다고?”
문밖에서 영원의 사환 대영이 묵칠을 안내해서 들어왔다.
“나와 소칠만 있으면 되네.”
영원이 안으로 막 들어오는 묵칠을 가리켰다.
계소영과 여염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는 둘이 동시에 이신을 바라봤다. 이가에서 열리는 문회인데 영원과 묵칠이 중문 앞에 서서 접객하는 건 뭔가 좀,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여기서 칠야 분부를 따르겠네.”
여염이 건의했다.
“자네는 장원공일세. 장원공을 중문 앞에 세워두고 접객하면 이 형이 거만해 보일 걸세. 관료 사회에서는 만사 신중해야지.”
영원의 말에 여염 무리의 표정이 매서워졌다. 여염과 계소영은 영원이 감춘 것이 많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신중할 줄은 몰랐다. 이런 말을 할 줄은 더더욱 몰랐고.
탕호우는 경악했다. 그가 알기로 영원은 완벽한 망나니 자제는 아니더라도 거의 7할은 비슷했다. 그런데 저 말이 황당무계하고 허튼짓만 하는 망나니 입에서 나올 말인가?
이신은 착잡해졌다. 영원의 심기가 깊어도 너무 깊었다. 동저아에게 잘하면 다행이지만, 안 좋아지면……. 동저아에게 활로가 있을까?
“이 형, 마음 놓이지 않으면 탕 형이 잠시 여기서 도우면 되네.”
영원이 빙그레 웃으며 하는 말에 탕호우가 얼른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신은 영원이 저렇게 웃는 것에 자꾸 다른 계산이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안원후부 묵 부인은 어머니 전 노부인과 함께 와야 했고, 전 노부인이 서두르니 그녀도 서둘렀고 아들 소자람도 일찌감치 이씨 저택에 도착했다.
막 안으로 걸음 하던 소자람은 맞이하러 나오는 묵칠과 영원을 보고 놀라서 입이 다 벌어졌다.
“너? 너 지금…….”
소자람은 얼굴을 힘껏 문질렀다.
“한참 찾아다녔는데,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묵칠은 영원을 힐끔 보고 해명했다.
“칠 형님과 도우러 왔지. 장공주가 오시잖아.”
“아!”
소자람도 바로 깨달았다. 장공주가 와서였구나. 그런데 장공주가 오는 게 소칠과 무슨 상관이지?
“나도 함께 있으마.”
소자람은 머릿속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건 혼란스러운 거고, 소칠을 잘 단속해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영원이야 부릴 사람이 더 늘어도 아무런 상관없었다.
묵칠을 단속하느라 객에서 주인이 된 소자람이 가장 먼저 맞이한 손님은 바로 주육이었다.
주육은 영원을 보자마자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다른 사람이 눈에 보일 리가 있나, 그는 곧장 영원을 향해 달려갔다.
“원 형님! 여기 있었군. 찾아다녔잖나. 집으로 갔더니 이가에 갔다지 뭐요. 어느 이가인지 한참 생각했지. 여기엔 왜 온 거요? 형님도 문회 하려고? 형님, 나 볼 일이 있소. 급한 일. 아주 요긴한 일이오!”
“바쁘다. 내일 이야기하자.”
영원이 주육의 말을 무질렀다.
“내일? 뭐가 바빠서? 형님이 연회를 연 것도 아니고. 응? 소칠도 있었네? 소 대랑도? 다들 뭐 하는 거지?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나?”
주육은 드디어 묵칠과 소자람을 발견했다.
“장공주가 온다잖아. 난 칠 형님을 도우러 왔고 자람 형님은 날 도우러 왔지.”
“장공주? 하!”
묵칠의 설명에 주육이 머리통을 내리쳤다. 생각났다! 장공주가 이가 꽃 연회에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았다.
“원 형님을 지목해서 일거리를 맡긴 거요?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접객하는 건 아니지. 우리 형제가…….”
주육은 이번엔 매우 빠르게 반응했다. 영원은 주육이 너무 골치 아팠다.
“지목했든 안 했든 내 일이다. 나는 오늘 종일 바쁘다. 넌 이만 돌아가라. 내일 이야기하자.”
“좋소, 좋아. 내일, 내일. 형님이 이렇게 바쁘다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가나. 어차피 나도 오늘 별일 없으니 하루 돕겠소.”
언제나 제 원 형님을 따라다니거나 원 형님을 찾아다니거나 하는 주육이 돌아갈 리가 있나. 묵칠과 좌우에서 영원 뒤를 지키며 돕겠다고 난리였다.
장방에 앉아 총괄하던 문 이야는 형국공 세자 주 육소야가 왔다는 환가아의 보고를 들었다. 주 육소야도 영 칠야와 함께 중문에 서서 각 가문 노야, 대야, 소야를 접대한다는 말을 듣고 눈을 가늘게 뜨다가 한참 만에 한숨을 폭 내쉬었다.
요 며칠, 장공주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반복해서 곱씹어서 어느 정도 단서를 잡았다. 보아하니 영원도 장공주의 의중을 읽은 듯했다. 오늘 알아서 찾아와서 신분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님 접대하는 일거리를 맡아 장공주의 의중에 부응했다. 정말이지 총명하고 영리했다.
음, 오늘 이렇게 알아서 찾아온 일은 일거양득이 되겠지. 영 칠야, 정말이지 굽힐 땐 굽힐 줄 아는군.
이가 문회의 접객을 맡은 것이 영원과 묵칠, 소자람 그리고 탕호우, 주육이라는 보고를 중서원에서 들은 여 승상은 빙그레 웃으면서 종복에게 분부했다.
“반 시진 뒤에도 묵 소야가 이가 저택에 있는지 지켜봐라. 중간에 떠나면 곧바로 돌아와서 기별하고.”
종복이 공손히 물러간 뒤에 여 승상은 구석에 있는 물시계를 보고 시진을 기록한 다음 열심히 상주서를 읽었다. 반 시진 뒤에도 종복이 돌아오지 않았다. 여 승상은 상주서를 내려놓고 살며시 숨을 내뱉었다. 얼굴에 미소가 더 짙어졌다.
묵칠이 이가 저택에서 돕고 있다는 사실을 묵 승상은 자신보다 더 빨리 알았을 것이다. 이래저래 한 시진은 흘렀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묵칠이 이가에 도우러 간 일을 묵 승상이 사전에 알았든 아니든, 적어도 지금은 묵인한다는 의미였다.
여 승상은 붓을 내려놓고 일어서서 천천히 팔을 돌렸다. 모처럼 마음이 홀가분했다.
몇 년 동안 국본 일로 줄곧 근심했고 근래엔 더더욱 노심초사했다. 대황자, 사황자 중에 누가 즉위하든, 신하와 백성에겐 재난이었다. 어쩌면 그대로 나라가 망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와 묵 승상이 방도를 궁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찌 구제할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영원이 경성에 들어오고, 장공주가 강남 일을 꾸몄다.
여 승상은 창가에 서서 맞은편 곁채를 바라봤다.
임씨가 천하를 군림한 지 근 백 년, 태조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크게 불경한 말을 한마디 하자면, 대대로 자질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이르러 금상은 그저 포악하지 않은 군주일 뿐이다. 계 노승상은 원래 예전의 삼왕야에게 기대가 컸었다. 하지만 사람의 계산은 하늘의 계산을 이길 수 없었다.
여 승상은 한숨을 내쉬었다. 장공주가 태어난 것이 임가에 복인지 화일지 모르겠다는 말을 계 노승상이 한두 번 한 게 아니었다. 삼왕야의 일이 벌어졌을 땐 화였고, 지금은 아마도 복이리라.
여 승상은 초점 없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봤다. 계 노승상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나 씁쓸했다. 선생이 떠나기 전에 그에게만 한마디 남겼다. 장공주가 나서면 임씨의 중흥에 희망이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