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동-368화 (368/463)

368화: 도와줄 사람이 오다

복안 장공주가 이가를 도와줄 사람으로 백 노부인을 지목하자, 백 노부인은 단번에 승낙했다. 그날 곧바로 조용히 이씨 저택으로 가서 장 태태를 만나 지극히 예를 갖춰 말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태태와 동저아가 이런 문회 하나 제대로 열지 못한다는 건 세상없이 우스운 일일 테지. 이 노인네를 보낸 건 장공주의 호의라네. 경성에서 어리석은 사람이 많아서 상인이니 어쩌니 입방아를 찧을까 봐 그러는 걸세. 뭘 봐도 트집 잡고, 아무리 잘 준비해도 흠을 잡을 테니까. 장공주는 이 늙은이 체면으로 그런 헛소리를 누르려는 것뿐이네. 마음 놓고 준비하게. 난 그저 뒤에 서 있기만 하면 되네.”

장 태태가 이동과 상의하고 이동을 보록궁에 보내 장공주의 의견을 물은 것은 그저 만사 면밀하게 준비하려고 한 것이고, 처음부터 도와줄 사람을 찾을 생각은 없었다. 장 태태는 백 노부인이 이렇게 말하자 체면치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 후로는 자주 백 노부인을 찾아가 성가시게 하지 않고 알아서 일을 처리했다. 일을 다 준비한 후에 만 어멈을 계가에 몇 번 보내 진행 상황을 백 노부인에게 알렸을 뿐이었다.

연회가 열리는 날 이른 아침, 해가 어슴푸레 떴을 때 백 노부인은 계소영과 함께 이가 저택에 도착했다. 장 태태와 이동이 서둘러 맞이하자 백 노부인이 계소영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 녀석도 쓰라고 데리고 왔네. 이 댁에 사내가 신가아 하나뿐이라 혼자는 응대하지 못할 걸세.”

“계 공자, 수고스럽지만 부탁드립니다.”

장 태태는 계소영을 향해 살짝 허리를 숙이며 감사 인사했고 이동은 무릎을 깊이 숙여 예를 갖췄다. 계소영이 연신 장읍했다.

“가당치 않습니다. 저는 대랑과 형제처럼 지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염가아도 금세 올 걸세. 영가아의 말이 맞네. 다들 형제처럼 가까운 사이이니 마땅히 도와야지. 자네도 그렇게 체면 차릴 것 없네.”

백 노부인이 호쾌하게 웃으며 하는 말에 계소영은 백 노부인 곁에 공손히 서서 웃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해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이동의 미백색 치맛자락과 언뜻언뜻 보이는 복(福)자가 수 놓인 작은 신발 끝만 바라봤다. 머릿속에 생각이 천 갈래, 만 갈래 맴돌았다.

몇 마디 이야기 나누는 사이, 이신이 어느새 나타나서 백 노부인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고 계소영과 함께 전원에 있는 장방으로 향했다. 오늘 문회는 문 이야가 전원 장방에서 총괄하기로 해서, 일단 문 이야를 찾아가 이따 어떻게 접객할지 상의했다. 오늘 아마 예상한 것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더 일찍 올 듯했다.

장 태태와 이동은 백 노부인을 모시고 뒤쪽 화원으로 향했다.

이가의 경성 저택은 그리 크지 않고 저택 안의 집채가 모두 작고 정교했다. 이런 규모의 문회, 꽃 연회를 여는 날이 오리라 생각도 하지 못해서 전체 저택 안에 계가의 화청처럼 문회와 꽃 연회를 열 만한 큰 건물이 없었다.

결국 이동이 호수 양쪽에 새로 건물을 세우자는 방도를 냈다. 호수에 있는 누각을 따라 바닥을 한 자 높이로 올리고 위에 마루를 깔고, 거대한 꽃나무가 있는 곳엔 꽃나무 모양새를 따라 공간을 비워서 난간을 세우기로 했다. 그랬더니 얼핏 보면 푸르게 만개한 생생한 꽃나무가 실내에 자란 것처럼 보이는 공간이 생겼다.

백 노부인은 임시로 지어낸, 진정한 화청 안으로 들어가서 혀를 내두르며 둘러봤다. 돈이 많으면 이런 게 좋구나!

백 노부인은 한 바퀴 둘러보고는 큰 탑상 왼쪽의 탑상에 앉아서 웃으며 손짓했다.

“두 사람, 날 상관할 것 없네. 알아서 일 보게. 이 아이들이 시중들면 되네. 도움은 못 되더라도 폐는 끼치지 말아야지.”

“어르신도 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에 계시는 것만 해도 든든한 큰 산이 있는 것 같아서 저와 동저아는 마음이 푹 놓입니다. 그야말로 가장 큰 도움이지요.”

장 태태가 웃으며 하는 말에 백 노부인이 하하 웃으며 손사래 쳤다.

“어서 일 보시게. 난 상관할 것 없네.”

장 태태와 이동도 길게 체면치레하지 않았다. 정말로 할 일이 많아 바빴다. 장공주가 온다는 사실을 떠벌리지 않았지만, 경성에서 알 만한 사람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동안 잘 보이려고 해도 기회가 없었던 장공주가 온다니, 평소에 장공주 줄을 잡으려던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장공주와 얽히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집안에 신분이 가장 존귀한 사람, 그리고 거동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와야만 했다. 장공주가 왔는데, 가문에서 가장 높은 사람, 거동할 수 있는 사람이 빠진다면 장공주 체면을 깎는 짓 아닌가.

장공주의 일시적인 충동에, 이가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은 여가, 계가에서 열리는 연회 때보다 훨씬 많아졌다. 그런데 이가엔 상전이 다 합해야 셋, 내택은 고작 둘이었다. 바쁘지 않을 수가 있나.

장 태태와 이동이 막 화청에서 나왔을 때, 여염의 모친 원 부인이 계소명의 아내 소 구내내를 데리고 벌써 당도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장 태태는 어안이 벙벙해졌고 이동도 얼떨떨해졌다.

원 부인, 너무 일찍 온 것 아닙니까?

모녀가 허둥지둥 맞이하러 나갔더니 원 부인은 소 구내내와 웃으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두 사람이 허둥지둥 나오는 걸 보고 웃으며 손사래 쳤다.

“남도 아니고, 마중은 왜 나오세요.”

“정말 실례했습니다.”

장 태태가 무릎을 깊이 숙여 예를 갖추며 사과하자 원 부인은 그보다 더 깊이 무릎을 숙였다.

“아이고, 이러지 마세요. 나와 구가아 처는 도우러 온 거랍니다.”

원 부인의 싹싹하고 다정한 모습에 이동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며칠 전에 그녀와 어머니가 여 승상부에 갔을 때와는 태도가 너무나 달랐다.

원 부인은 장 태태를 끌고 옆으로 몇 발짝 가서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어르신이 귀댁에 큰 은혜를 입었다는 걸 며칠 전에야 알게 됐답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내가 너무 죄책감이 들어서. 이렇게 큰 은혜를…… 원래라면…….”

원 부인의 죄책감은 대부분 여가 연회 때 장 태태와 이동을 무례하게 대한 것 때문이었다.

장 태태는 사리에 밝은 사람이었고 자책하고 불안해하는 원 부인의 말을 웃음 띤 얼굴로 잘랐다.

“다 옛날 일입니다. 큰 은혜는요. 게다가 오래전 일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원공과 우리 신가아가 참 각별하지요. 며칠 전에 신가아가 이번 문회엔 장원공과 계 공자가 도와줄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장 태태의 말에 장 태태를 향한 원 부인의 호감이 한층 더 깊어졌다.

“장원공은 무슨요. 운이 좋아 장원이 된 겁니다. 태태, 염가아라고 부르세요. 염가아도 허물없이 신가아를 만나러 간다고 곧장 가버렸답니다! 오늘 나와 구내내는 도와주러 온 겁니다. 할 일이 있으면 분부만 하세요.”

“그럼 알겠습니다. 백 노부인이 혼자 화청에서 차를 들고 계신답니다. 그럼 부인과 구내내가 가서 노부인 곁에 좀 있어 주세요.”

장 태태가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체면 차리시네요.”

장군 가문 출신이라 호탕한 성격인 원 부인은 제 시아버지가 장 태태 외할머니의 큰 은혜를 받은 일을 알게 되었을 때 놀라움이 가신 다음엔 곧바로 의아해했다.

그렇게 큰 은혜를 입었고, 장 태태와 이동 모녀 모두 줄곧 경성에 살았는데 시아버님은 이 모녀 두 사람을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고 전혀 돌보지 않았다니. 작은 은혜도 갚는 시아버님답지 않은 일인데?

그 의문을 풀지 않고는 넘어갈 수가 없던 원 부인은 아들을 붙들고 예전에 일어난 일을 캐물었다. 사실을 알게 된 원 부인은 감탄하는 가운데 시부와 시모를 조금 달리 보게 되었다. 한 사람에겐 불만이 생기고 한 사람은 못마땅한 마음이 생겼다. 그녀였다면 절대로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우리 두 가문은 다른 가문과 다릅니다. 친척도 이렇게 친한 집안은 없을 거예요. 체면 차리지 마세요. 이 일은 내 말대로 하세요.”

원 부인은 자기 집 연회보다 더 성의를 다할 생각이었다.

“오늘 손님맞이는 중문에만 사람이 있을 게 아니라, 화청 쪽에도 주인이 응대하고 관장해야 합니다. 태태는 화청으로 가서 총괄하세요. 중문은 나와 동저아, 그리고 구내내에게 맡기시고요. 이따 장공주가 오시면 동저아가 모시고 들어가면 됩니다. 장공주가 오시면 올 사람도 다 왔을 테니 제가 얼른 정리하고 들어가서 태태와 함께 화청을 맡겠습니다. 중문은 구내내에게 맡기면 된답니다.”

원 부인의 계획은 약속이나 한 듯 장 태태와 이동의 계획과 딱 맞았다. 원 부인과 소 구내내가 늘었을 뿐이고 장공주가 도착하면 이동이 모시고 들어가고 중문엔 만 어멈이 남아있으려고 했다. 이제 소 구내내가 있으니 구내내 혼자 있어도 만 어멈보다 격식 있고 면밀하게 돌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큰 폐를 끼칩니까.”

장 태태는 조금 불안해졌다. 원 부인은 지금 돕는 게 아니라 자기 일로 여기고 맡아주고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폐를 마구마구 끼쳐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두 집안이 체면 차릴 게 뭐가 있습니까. 한 가족이에요!”

원 부인은 솔직한 심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 큰 은혜를 받았는데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갚지 않았다니. 성의를 보일 수 있게 이가에서 커다란 골칫거리를 맡겨주길 바랐다.

소 구내내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태태, 우리 부인하고는 체면치레하지 마세요. 어제부터 지금까지 이가는 우리와 한 가족이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는지 몰라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요. 저는 어제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있었는걸요.”

원 부인의 마음을 이해한 장 태태는 더 사양하지 않고 만 어멈을 불러서 모든 일을 원 부인과 소 구내내의 분부를 들으라고 당부하고는 진주를 데리고 화청으로 들어갔다.

장공주가 온다고 하니 모든 가문의 노부인, 부인 그리고 태태, 낭자들은 평소보다 더 일찍 도착했다. 장공주가 언제 온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장공주보다 늦게 도착하면 실례일 뿐만 아니라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진시가 되기도 전에 상 대내내가 탕 오낭자를 데리고 가장 먼저 당도했다. 들어서자마자 원 부인이 맞이하자, 상 대내내는 화들짝 놀라서 무심결에 문 위를 돌아봤다. 원 부인과 소 구내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대내내, 볼 것 없습니다. 이씨 저택 맞습니다. 제대로 오셨어요. 형님과 제가 도우러 왔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오낭자, 오늘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구나.”

“부인과 구내내, 부끄럽습니다.”

소 구내내가 웃으며 하는 말에 상 대내내는 놀라움과 의문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고 공손하게 원 부인, 소 구내내, 그리고 두 사람에게 가려진 주인 이동을 향해 예를 갖췄다.

“나도 동저아 집안에 사람이 없으니 도와줄 것 없나 하고 서둘러 온 것인데, 늦을 줄 몰랐군요.”

원 부인이 힐끔 이동을 바라봤다. 탕가는 잘 아는 집안이 아니라서 상 대내내와 이가의 친분이 어떤지 잘 모른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때 이동이 웃으며 앞으로 다가갔다.

“대내내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사양하지 않을게요. 이따 낭자들이 오면 저 혼자서 모두를 챙기지 못해요. 오낭자의 도움을 좀 받아야겠어요.”

상 대내내의 두 눈이 반짝였다. 오늘 오는 낭자 접대를 오저아에게 맡기다니. 이건 이가를 돕는 게 아니라 이가가 그녀와 오저아를 도와주는 것이었다.

“우리 오저아를 이렇게 예뻐하다니. 대낭자, 마음 푹 놓아요.”

상 대내내는 연신 무릎을 구부리며 예를 갖췄다. 이동은 답례하고는 수련을 불렀다.

“오낭자, 무슨 일이 있으면 수련에게 분부하면 돼. 수련, 우선 오낭자를 모시고 좀 둘러보렴.”

오낭자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 마음 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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