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7화: 부인이 어떤 사람이냐
곡 대내내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왜 말이 안 돼? 고 이낭이 직접 한 말이야. 이씨의 혼수, 자기는 부인 대신 뒤집어쓴 거라고. 고 이낭은 부인의 생질녀잖아!”
봉운은 더 화가 났다.
“대내내, 어떻게 고 이낭의 헛소리를 믿으실 수가 있어요? 대내내는 모르세요. 고 이낭…… 휴, 정말 뭐라고 말씀드려야 좋을지조차 모르겠네요. 고 이낭은 부인의 생질녀가 맞지요. 전에 부인이 얼마나 예뻐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런데 고마운 것도 모르고 세자야를 꼬드겼어요. 세자야를 부추겨서 얼마나 소란을 일으켰는데요. 그런 일이 없었으면 예전 대내내가 성 밖으로 옮길 일도 없었어요. 이 사달이 나지도 않았을 거고요. 예전 대내내가 얼마나 좋은 분이었는데요. 대범하고 은자도 많고. 대내내, 어떻게 고 이낭의 헛소리를 믿으세요.”
봉운은 화가 나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고 이낭, 염치없는 건 둘째치고 속이 시커먼 인간. 부인이 얼마나 잘해줬는데. 사사건건 미안한 짓만 하고!
“그래?”
곡 대내내는 말끝마다 이씨를 그리워하는 봉운의 말에 순간 언짢아졌다.
“부인이 가지고 간 건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쉽지.”
“부인일 리가 있나요? 부인이 어떤 분인데요. 그런 일을 하신다고요? 말도 안 돼요!”
부인이 이씨의 혼수를 가져갔다니, 봉운에겐 6월 한여름에 폭설이 내린다는 것만큼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 일을 하지 않아? 그럼 이가에서 가져간 그 황화이백 장식장, 그리고 골동품 같은 건 어떻게 된 거지? 어디에 있던 거지?”
곡 대내내의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갔다.
“그건…….”
봉운의 말문이 막혔다. 곡 대내내가 웃는 듯 코웃음 쳤다.
“있잖아, 이건 정말 모를 일이란다. 지금 세자야가 차용증까지 썼어. 이가에 몇십 만 냥을 빚졌단 말이야. 대야와 나는 걱정 되어서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그런데 부인은 몇십만 냥 은자와 물건을 틀어쥐고 한마디도 하지 않으시잖아.”
곡 대내내는 툴툴거리며 혀를 찼다.
“모르는 사람은 부인이 세자야를 어디서 주워 온 줄 알겠어. 설사 데리고 들어온 아들이라도 그렇지. 하나뿐인 아들인데, 부인이 온 저택의 은자를 틀어주고 있잖아. 저택이 아무리 힘들어도 돈 한 푼 쓰지 않아. 산더미 같은 그 은자를 누구에게 남겨주려고? 대낭자, 이낭자의 혼수로 다 내어주려고?”
“대내내, 허튼소리 하지 마세요!”
봉운은 다급해졌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부인 이야기를!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하는 말은 다 사실이란다.”
곡 대내내가 손수건을 힘껏 휘둘렀다.
“못 믿겠으면 지금 같이 부인 곳간에 가 보자. 내가 말하는데, 이씨의 혼수, 분명 부인의 곳간에 다 있을 거다. 그리고 은자 몇십 냥도!”
봉운이 벌떡 일어섰다.
“부인은 그런 짓을 하실 분이 아니에요! 부인은 그런 분이 아니에요! 대내내가 고 이낭의 헛소리를 듣든 말든 제가 알 바 아니에요. 다만 잘 들으세요. 부인은 그런 일을 하시지 않아요. 그럴 분도 아니고요!”
봉운은 말주변도 없고 속셈도 없지만, 아무도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아무리 뒤흔들어도 변하지 않을 견고한 마음이었다.
곡 대내내가 봉운을 잡아챘다.
“기다려! 말 아직 안 끝났어! 그래, 이 이야기는 하지 말자. 가져갔든 아니든 큰일도 아니야. 상의할 일이 있단다.”
“말씀하세요.”
봉운은 화가 풀리지 않아서 말투가 딱딱했다. 다행히 곡 대내내는 그런 걸 따지지 않고 그녀를 잡아끌어 다시 앉혔다.
“앉아서 이야기하자. 들어 보렴. 우리 저택, 너도 알겠지만, 여기저기 구멍이야. 돈 쓸 곳이 천지야. 다른 건 됐고, 네 어미 병만 해도 그래. 장부에 은자가 있었으면 진작 몇십 냥 내주어서 네 어미 병을 싹 고쳐주었을 거야. 하지만 장부가 텅 비어서 이렇게 말만 할 수밖에 없어.”
“휴.”
봉운은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고 이낭 등쌀에 이 대대내가 떠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이 대내내에게는 은자가 넘쳐났는데. 이 대내내가 아직 이 저택의 대내내라면 저택에 은자가 없을 일이 있나.
곡 대내내는 본론에 돌입했다.
“사실 저택에 은자가 없는 것도 아니야. 이건 네가 나보다 더 잘 알 거야. 부인은 은자를 많이 가지고 있어.”
봉운은 곡 대내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없어요! 대내내, 부인께 효도할 생각은 하지 않고 계산속만 부리는군요. 대내내, 효도가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이라고 했지요? 대내내의 효도는요?”
봉운은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감히 부인을 상대로 계산속을 부리다니. 그녀는 부인에게 잘못하는 사람, 계산속을 부리는 사람, 그리고 부인에게 불리한 짓을 하는 모든 사람을 통한했다.
봉운이 씩씩대며 돌아가자 곡 대내내도 씩씩대며 봉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좋아, 좋아. 그래 좋아. 두고 보자!
왕 어멈은 곡 대내내가 욕하며 성질내는 걸 한참 듣다가 곡란원에서 나와 고개를 숙이고 생각에 잠긴 채 걸었다. 큰 부엌에 거의 당도했을 때, 왕 어멈은 휙 돌아서서 진 부인 정원으로 성큼성큼 달려갔다.
봉운 집안과 몇십 년 동안 이웃으로 지냈고, 봉운이 자라는 걸 봐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봉운이 된통 당하는 걸 눈 뜨고 보고 있을 순 없었다.
왕 어멈은 진 부인 정원 문 앞에서 주저하다가 들어가지 않고 문지기 어멈에게 부탁해서 봉운을 불러냈다.
지금 수녕백부에서 왕 어멈의 체면이 제일 큰 편이라, 문지기 어멈은 서둘러 들어갔다가 얼른 다시 나와서 봉운이 금방 나올 거라고 전했다.
왕 어멈이 잠깐 기다리자 봉운이 문 앞에서 웃으며 안으로 손짓했다.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아니야, 아니야. 몇 마디만 하면 돼. 마침 봄이라 화원에 꽃이 예쁘게 피었으니 구경하면서 이야기하자.”
곡 대내내가 진 부인의 은자를 노리고 있고 은자를 노리는 곡 대내내는 당당한데, 오히려 왕 어멈이 찔려서 진 부인의 정원에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봉운은 주저하다가 겨우 대답하고 계단에서 내려와 왕 어멈과 함께 들꽃이 만개한 화원으로 걸어갔다.
“할 말이 있어서 찾아왔어. 대내내가 널 찾아왔다며?”
몇 마디 늘어놓다가 왕 어멈이 곧 본론에 돌입했다.
왕 어멈이 그 이야기를 꺼내자 봉운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알았어요? 그럼 왜 찾아온 건지 알아요?”
“알아. 휴. 그래서 널 찾아온 거다.”
“대내내 편들려고 온 거예요?”
봉운의 얼굴이 당장 구겨졌다.
“아니야!”
왕 어멈은 얼른 대답하고는 금세 아닌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아닌 게 맞았다. 대내내의 말을 들으라고 봉운을 설득하려고 온 것이지만, 봉운을 위해서지 대내내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러니 오로지 대내내 편들려고 온 건 아니었다.
“너 때문에 온 거야! 휴. 넌 어릴 때부터 올곧아서, 네가 좋은 사람에겐 그보다 더 잘할 수 없을 정도로 잘하지. 하지만 이 일은, 휴, 봉운아, 잘 생각해야 한다. 대내내 이야기는 하지 말고 부인 이야기만 하자. 부인은 그렇게 성심 다해 모실 분이 아니야. 있잖니…….”
왕 어멈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오 어멈 일가가 어떻게 됐는지 아니?”
“힘들게 지낸다면서요.”
봉운이 얼른 대답하자 왕 어멈이 하, 하고 비웃었다.
“힘들어? 그 일가, 지금 상원현 부근의 장원에 산다. 현성에서 1리 남짓 떨어진 오진 저택에 살아. 푸른 벽돌을 쫙 깐 기와 저택에 장원 땅이 족히 300묘가 된다. 상등 논이야. 그 집 영감이 관리한다. 그 장원 말고 점포도 두어 곳 있어. 나날이 금이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비슷해. 이게 힘든 나날이야?”
“무슨 돈이 있어서요?”
봉운이 아연해져서 물었다. 왕 어멈은 연신 헛웃음 쳤다.
“우리 저택에서 속량하고 나간 뒤에 우리랑 전혀 왕래가 없잖아. 이것도 다 예전 장방 전 관사 누이 전 매파에게 들은 거란다. 오 어멈 돈이 어디에서 나왔게?”
왕 어멈이 비밀스럽게 묻는 말에 봉운이 멍하니 되물었다.
“부인이 주신 거예요?”
“아이고, 이 계집애야. 꿈도 크다. 부인이? 배꼽 빠지겠네!”
왕 어멈은 봉운이 진 부인이라도 되는 듯 무시하는 얼굴로 그녀를 흘겨봤다.
“오 어멈은 너보다 한두 살 더 어린 나이부터 진 부인을 모셨다. 충성스럽게 몇십 년 동안 진 부인을 모시다가 나이 들어 은퇴한다고 고했지. 그런데 부인은 어땠어? 거간꾼을 불러 일가의 몸값을 똑똑히 셈하고 거기에 돈을 2할 더 붙여서 받고서 오 어멈 일가를 보내주었다. 몸값도 그렇게 따지는데, 그 많은 재산을 챙겨줬겠어? 너도 참, 참으로 올곧기도 하다.”
“그럼 은자가 어디에서 났어요? 집안을 긴 세월 관리했는데……. 오 어멈이 은자를 많이 꿍쳤을 거라고 다들 그러더니…….”
봉운은 뜬소문을 즉시 떠올렸다. 왕 어멈이 곧바로 봉운의 말을 무질렀다.
“봉운 낭자!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이 저택이 얼마나 궁핍한지 몰라? 온 집안을 털어 간대도 얼마나 나오겠어? 몇백 묘 장원에 점포까지? 오 어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장방에 있던 전 관사, 그때 세자야에게 두들겨 맞아서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잖아. 그리고 일가가 다 팔려갔잖아. 지금 어떻게 됐는지 알아?”
왕 어멈이 샛눈을 뜨고 봉운을 바라봤다. 봉운은 도리질했다. 열심히 부인 시중만 들지 이런 뜬소문을 수소문하는 법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성 밖에 산단다. 전 영감은 임강현 이가 점포에서 장방을 맡았고, 큰아들, 너도 기억하지? 너보다 세 살 어린 걔, 지금 이가 약포에서 배우고 있다. 꽤 잘하고 있대. 며칠 전에 전 매파가 그러는데, 여자아이 두 명 정도 사게 신경 써달라고 올케가 그랬단다. 봐라, 얼마나 잘 사냐.”
“이가 점포요? 예전 대내내? 예전 대내내가 우리 저택 일을 끼어들어요? 세자야는요?”
봉운이 놀라서 고함쳤다. 봉운의 마지막 말에 왕 어멈은 무시하듯 그녀를 바라봤다.
“너도 참. 정말 올곧기도 하다! 생각 좀 해 봐라. 오 어멈은 어릴 때부터 부인을 모시고 수십 년 동안 충성을 다했는데도 나이 들었을 때 부인은 좋은 소리 하나 하지 않고 오로지 몸값만 계산했다. 전 관사는 부인의 배가 노비이고, 몇십 년 동안 유일하게 부인의 명령만 따랐다. 그런데 세자야가 죽일 듯이 때렸을 때, 정말로 전 영감이 잘못해서 때렸니? 설령 작은 잘못을 했더라도 그게 맞아 죽을 죄였어? 그런데도 일가를 팔아치웠지. 그때 부인이 한마디라도 하시디?”
“세자야가 한 말인데 부인이 뭘 어쩌겠어요. 오 어멈은 자기가 속량하겠다고 말 꺼낸 거잖아요. 속량하려면 속량하는 법도를 따라야죠.”
봉운이 진 부인을 위해 변호하자 왕 어멈은 하, 하고 외치며 손뼉을 짝짝 쳤다. 정말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됐다. 어릴 때부터 이런 아이였지. 나도 잘 안다. 융통성 하나 없는 옹고집이지. 그냥 터놓고 말하마. 대내내가 오늘 널 찾아와서 한 말, 대내내 성격은 너도 잘 알지. 작정한 이상, 하고 말 거다. 막는 사람이 있으면, 대내내 성격으로 살인이라도 할 사람이야.”
봉운은 입을 꾹 다물고 적을 바라보듯 왕 어멈을 노려봤다.
“휴, 이야기해도 소용없는 걸 알면서 나도 참. 우리가 몇십 년 이웃으로 살아서……. 됐다, 됐어.”
왕 어멈은 봉운의 그런 시선에 마음이 식었다.
“알아서 하렴. 부인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겠다니. 알았다. 네 마음대로 하렴!”
왕 어멈이 돌아서서 사라지자 봉운은 왕 어멈을 노려보며 코웃음 치고 바닥에 침을 내뱉고는 돌아섰다.